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24)화 (125/133)

124화

* * *

다음 날.

오늘은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애초에 아카데미의 성령제를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여정이었기에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따로 목적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처음에 루카는 그래도 나와 함께 다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세이르와 함께 연금술 연구실에 갈 예정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서 물러났다.

……연금술 연구실의 음침한 모습이 많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대신 내게는 동물들이 함께였다.

“로코, 언니한테 와!”

“피이잇!”

기다렸다는 듯 로코가 냉큼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웬일인지 오늘은 모코도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했다. 대신 모코를 손수건으로 둘둘 싸서 밖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해야 했다.

“……끼이잉.”

손수건에 파묻힌 모코가 나른한 울음소리를 냈다. 언제 봐도 참 내향형인 고슴도치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나자, 방문객용 숙소 앞에서 세이르가 문을 두들겼다. 정확히 약속한 시각이었다.

나는 사라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갔다.

“안녕, 세이르.”

“안젤리카, 잘 잤어?”

세이르는 어제에 비해 차분한 차림을 하고 화사한 금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겼다. 이른 오전의 투명한 햇빛이 그의 얼굴을 영롱하게 비추었다.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오늘에야말로 중요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나는 성큼 한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그럼 가자.”

“안내할게. 그런데 어딜 가려고?”

“연금술 연구실. 찾을 사람이 있어.”

“하필이면 거기서? 왜?”

세이르가 뜻밖이라는 듯 반문했다. 연금술 연구실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듯하다.

“아, 초대형 골렘을 만들어야 하거든.”

“초대형 골렘?”

나는 최근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도로 공사 중에 제거하기 힘든 바위가 나왔다는 사실. 그리고 초대형 골렘을 만드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 등이었다.

내 긴 이야기를 다 들은 세이르가 물었다.

“으음……. 잘은 모르겠지만, 그 초대형 골렘을 만들기 위해 연금술 연구실에서 누구를 찾으려는 건데?”

“그건, 골렘 동아리의 미친 골렘 마니아…… 아니, 마르코라는 사람.”

우뚝.

세이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세이르의 등에 고개를 부딪칠 뻔했다. 나는 볼멘소리를 내었다.

“아야, 놀랐잖아.”

세이르는 나를 돌아보며 짧게 물었다.

“마르코라고? 남자야?”

가만 보니, 세이르도 마르코라는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걸?”

세이르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그러고 보니, 미친 골렘 마니아를 찾는 데만 집중하느라 마르코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마르코의 신상 정보를 더 떠올려 보았다. 신상에 대해 알고 있으면 포섭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으음……. 마르코, 마르코라……. 분명…….’

“아! 그 마르코라는 사람, 벌써 결혼했대.”

“……아아.”

세이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르코라는 자는 졸업반이기는 하나 아직 미성년자다. 아카데미 학생 신분으로 기혼은 드무니 놀랍기도 하겠지.

나는 그의 감상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기하지? 어린 나이에 결혼하기도 하나 봐.”

만약 1회차에서 내가 일찍 죽지 않았으면 나도 성인이 되기 전에 결혼했으려나. 그렇게 따지면 신기한 일까지는 아닌가?

‘심지어 상대가 세이르였단 말이지.’

뭐, 이미 1회차와는 정말 많은 스토리가 달라져 버렸다. 그러니 이제 와서는 별 의미 없는 설정값에 불과하다.

“알겠어. 찾을 사람이 있다니 얼른 가자.”

세이르는 그새 연금술 연구소에 흥미라도 생겼는지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를 안내했다.

어젯밤 무도회의 여파 때문인지, 이른 오전의 교정은 나른한 분위기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연금술 연구실은 변함없이 음침하고 습했다.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으며, 퀴퀴한 냄새가 났고 한기가 느껴졌다.

멀쩡한 사람도 여기 계속 있으면 좀비화할 것만 같다.

입구 근처를 터벅터벅 배회하던 좀비가 나와 세이르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히힛, 학생회장님. 여긴 무슨 일이시죠.”

좀비가 ‘학생회장’이라고 말하자마자 어제와 달리 엄청난 시선이 이쪽으로 쏟아졌다.

그렇다고 이쪽으로 다가오지는 않으면서 흘깃거리며 배회하는 모습이 정말 좀비 같았다.

그리고 어제 무도회에서 본 나딘 역시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입에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영양제가 물려 있었다.

세이르는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는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로 물었다.

“골렘 동호회의 마르코라는 사람을 찾아왔는데.”

“이쪽입니다, 히힛.”

좀비가 우리를 골렘 동호회로 안내해 주었다. 이상하다. 어제도 이곳에 왔었는데 하루 사이에 잡동사니가 더 늘어난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마르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이르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마르코는 어디 있지?”

좀비가 연구실의 어느 한구석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저기 있었는데요, 히힛.”

“무…… 무슨 일이시죠, 히이익!”

커튼 아래에 서 있던 덥수룩한 머리의 남자가 움찔 놀라며 대답했다. 옷과 커튼의 색이 비슷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마르코의 첫인상은…….

‘……유령?’

앞머리가 눈을 덮을 정도로 길고, 햇빛을 받지 못한 피부는 창백했다. 그리고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겁을 먹은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정말 <마.왕.꾸>의 묘사와 똑같았다. 이렇게까지 똑같이 생겼을 줄은 몰랐다.

나는 마르코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안녕, 마르코. 나는 데네브 왕국의 왕녀 안젤리카 데네브라고 해.”

“네? 히이익! 그런 높은 사람이 저를 왜……. 히이익!”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왜 저렇게 겁에 질린 걸까.

‘성격이 상당히 특이한 것 같지만…….’

저 성격에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진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물어보도록 할까.

아무튼.

[이름 : 마르코

직위 : 골렘 동호회의 장(B)

소속 : 베나토르 아카데미

레벨 : 21

특성 : 미친 골렘 마니아(A)]

상태창에도 ‘미친 골렘 마니아’라고 적혀 있으니 확실하다. 초대형 골렘을 만들어서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마르코가 필요했다.

“마르코의 재능을 보고 의뢰할 일이 있어서 왔어. 골렘 코어의 제작을 의뢰하려고 해.”

“골렘 코어라고요?”

순간, 유령 같던 남자의 눈이 번쩍 빛난 것 같았다. 마르코가 커튼 뒤에서 나오더니 내게 다가왔다.

“워, 원래 골렘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의 의뢰는 받지 않지만……. 히이익, 무서우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어떤 코어를 원하시는 거죠?”

“초대형 골렘의 코어야.”

바들바들 떨던 마르코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냥 쳐다봤을 뿐인데 겁에 질려 하던 표정도 차분해졌다. 그는 아까와 달리 단호한 투로 말했다.

“그건 만들 수 없어요. 돌아가세요.”

“어머, 왜?”

“2m 이상의 골렘을 초대형 골렘이라고 부릅니다. 크면 무조건 좋은 줄 아는 사람이 꼭 있는데, 골렘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알못’들이라고 할까. 골렘 코어의 출력을 너무 높이면 몸체가 버티지 못하고 터져 버려요.”

“헤에, 그렇구나.”

“초대형 골렘을 제작해 준다고 하는 놈들은 전부 사기꾼입니다. 그 돈으로 비둘기 먹이나 주는 쪽이 나을 겁니다.”

마르코의 긴 말을 들으며 나는 활짝 웃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대뜸 초대형 골렘을 만들어 준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이 맞다. 고도화된 마력 회로인 골렘 코어는 일정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부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로서 초대형 골렘은 실존할 수 없는 도시 전설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현재로서는, 말이지.’

그러나 나, <마.왕.꾸>의 슈퍼 플레이어가 있으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할 수 있는 법이지.

나는 가방 속에서 미리 그려 온 회로도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마르코, 이걸 봐 줄래?”

“초대형 골렘 같은 헛소문을 믿는 골렘 알못과는 이야기 안 합니다. ……어? 이건?”

마르코가 잽싸게 회로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종이에 거의 코를 박을 듯이 얼굴을 들이대고 낱낱이 살피기 시작했다.

이 회로도의 가치를 알아본 걸까. 그의 눈이 경이에 가득 차 빛났다. 실로 골렘 마니아다운 모습이었다.

“이건 정말로 엄청나군요. 히이익! 훔쳐 가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엄청난 바람에, 히이익!”

맹세컨대 나는 아무런 눈치도 안 줬다. 그냥 마르코가 혼자 겁에 질린 것뿐이다.

그러면서도 회로도를 꼭 쥐고 읽는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어때? 이 회로도대로라면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만들 수 있지 않아?”

그러나 이 질문에 마르코는 다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확실히 엄청난 회로도고, 이대로 만들면 초대형 골렘 수준의 출력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로도에는 결함이 있습니다.”

“헤에, 결함이라니?”

“이대로면 남는 마력이 회로 안을 돌아다니다가 폭발을 일으킵니다.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흐음…….”

“히, 히이익! 그렇게 쳐다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히익!”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마르코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잠깐 훑어보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다니, 내가 사람을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나는 책상 주변의 잡동사니 더미에서 적당한 펜을 하나 찾았다. 그리고 회로도에 선을 슥 그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때? 여기에 남는 마력을 저장하는 장치를 다는 거야. 이렇게, 이렇게 고치면?”

“……! 이, 이럴 수가!”

마르코가 충격과 환희에 감싸인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감격에 차 덥석 내 손을 잡으려…….

“마르코, 실례잖아. 조심해야지.”

“히이익! 죄송합니다. 너무 기쁜 바람에.”

……했지만, 세이르가 막았다.

마르코를 포섭하고 싶은 것과 별개로, 저 차갑고 축축한 손을 잡고 싶지는 않았던 만큼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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