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26)화 (127/133)

126화

* * *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만드는 일은 꽤 시간이 걸린다.

마르코는 이틀 뒤 아침까지 코어를 완성하겠다고 말하며 즉시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골렘 동호회의 책상 옆에는 딱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부스가 있었다. 숨구멍은 뚫려 있었지만 창문은 없다. 마르코는 부스 안에 틀어박히더니 당장 작업에 착수했다.

‘성격은 좀 이상하지만 실력은 확실하겠군.’

그나저나 이 골렘 동호회, 청소라고는 안 하는지 정말 엉망진창이란 말이지. 이래서는 뭐 하나 없어져도 알아차리기 힘들겠다.

‘그걸 써 볼까.’

마침 이런 곳에 쓰기 좋은 마법 도구를 전에 만들었다. 나는 테스트 삼아 골렘 동호회의 책상에 간단한 장치를 해 두었다.

그때, 옆에서 세이르가 말을 걸었다.

“안젤리카, 또 다른 볼일은 없어?”

마르코를 포섭한다는 목적까지 달성했으니 오늘의 할 일은 전부 끝났다. 이제부터는 자유 시간이었다.

“응? 딱히 없어.”

“그럼 나한테 시간을 좀 내줄래?”

어쨌거나 이 연금술 연구소는 오래 있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어둡고 습한 연금술 연구소와 달리 바깥은 화창했다. 성령제가 한창 진행 중인 아카데미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시간도 남겠다, 나는 세이르와 함께 성령제를 구경하기로 했다. 아카데미에 온 목적 중 하나를 달성하고 짭짤한 부수입(이력서)를 얻은 참이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저쪽으로 가 보자.”

“안젤리카, 넘어지겠다. 천천히 가.”

이렇게 걷다 보니, 예전에 데네브 왕국에서 세이르와 함께 축제 구경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재미있었지.’

그 이후로 매년 빼먹지 않고 축제를 열고 있다. 결국 흑막스러운 축제는 열지 못하고 계속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축제만 열고 있지만, 어쨌거나 축제는 좋은 일이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을 하나 꼽자면, 세이르가 다가갔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어! 세이르, 저기는 공격 마법 연구 동호회인가 봐. 가 보자.”

나는 길의 한쪽 편에 위치한 부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공격 마법 연구 동호회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전시하고, 기념품으로 마법 폭탄을 판매하고 있었다. 부스로 다가가 그 마법 폭탄을 하나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헤에, 꽤 수준이 높네.’

내가 직접 만든 마법 폭탄만큼은 아니지만 완성도가 높았다.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좀 사 갈까?’

머나먼 데네브 왕국에서 이곳, 베나토르 아카데미까지 왔으니 기념품을 사 가고 싶었다. 마법 폭탄이면 가격과 실용성 면에서 괜찮은 기념품 아닐까.

좋아, 이걸 사서 왕성 식구들한테 돌려야겠다.

마법 폭탄 여러 개를 집어 들고 계산하려는 때, 옆에서 세이르가 말을 걸었다.

“안젤리카, 뭘 보고 있어?”

“이 마법 폭탄. 괜찮아서 좀 사 갈까 하고.”

“아, 마법 폭탄.”

세이르가 비뚜름하게 웃음 지었다. 까마득한 예전 일을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지하 땅굴에서 섬광탄을 터뜨린 일이라든가.

그러나 부스를 지키던 학생은 세이르의 웃음을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었다. 안쪽의 학생들을 향해 속삭이는 소리가 다 들렸다.

“비…… 비상! 학생회장님이 오셨어!”

우당탕탕!

부스 너머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니 상급생처럼 보이는 학생이 뛰쳐나왔다.

“어, 학생회장님, 어, 어쩐 일이십니까.”

어찌나 서둘러 왔는지 머리카락이 다 흐트러진 상태였다.

세이르는 생긋 웃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기다리던 손님이 와서 돌아보는 중이야. 개인적인 볼일이니 신경 쓰지 마.”

나는 손에 쥔 마법 폭탄을 내밀고 말했다.

“저어, 이 마법 폭탄 사려고 하는데…….”

“죄, 죄송합니다!”

“……?”

상급생은 황급히 내 손에서 마법 폭탄을 빼 가더니 등 뒤로 숨겼다.

“폭탄 제작 시 중화제 첨가 규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당장 판매를 중지하고 시정 조치하겠습니다!”

“아니, 그, 괜찮은데…….”

그 정도야 내가 살짝만 손보면 아무 문제 없다.

“아, 아, 아닙니다! 손님께 하자품을 판매할 수는 없죠.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난 그냥 기념품으로 사려고…….”

그러나 겁을 집어먹은 공격 마법 연구 동호회는 자진해서 기념품 판매를 중지하고 부스를 철수해 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찔리는 일이 많은 모양이다.

이런 일은 계속 이어졌다.

다음에는 검술부에서 주최하는 검술 대회를 구경하러 갔다.

참가자가 검술부 학생 다섯 명을 이기면 호화 상품을 받을 수 있는 형태였다. 다만 안전을 위해 목검을 사용한다고 했다.

뒤로 갈수록 더 강한 상대가 출전해, 상품을 받기는 무척 어려워 보였다.

나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참가자를 기다리는 검술부 학생들을 보며 세이르에게 물었다.

“세이르는 검술 대회에 참가 안 해?”

이미 검기도 쓸 수 있겠다, 세이르라면 검술부 학생 다섯 명쯤 간단하게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세이르는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오락용 행사에 뭐 하러. 내가 끼어 봐야 분위기만 깰걸.”

“우와, 방금 엄청나게…….”

“……엄청나게?”

“강자의 여유 같은 게 파바박 느껴졌는데?”

“하하,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대기 중인 검술 대회 참가자 중에 뜻밖의 인물이 보였다. 바로 루카였다.

‘루카 녀석, 어딜 가려나 했더니 여기에 와 있었구나.’

“세이르, 저기 봐! 루카가 있어.”

나는 루카를 응원할 생각으로 대회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마침 1회전을 준비하고 있던 루카가 우리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루카의 뺨과 귓불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비밀로 하고 검술 대회에 나온 모습을 들키니 민망한 모양이다.

‘대체 왜 부끄러워하는 거지.’

대회에 나올 생각이었으면 와서 응원해 달라고 말하면 될 텐데.

여전히 사람이 한 명뿐인 암흑 기사단의 일원인 루카는, 얼마 전부터 혼자서 검술을 연습하고 있다.

그런데 도통 나에게는 연습 중인 검술을 보여 주지 않았다. 연습장에 몰래 다가가서 보려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숨어 버렸다.

아직 어설프다느니 자신이 없다느니 하며 말이다.

‘별로 잘하지 못해도 상관없는데.’

자연 친화적인 암흑 기사단 활동만으로도 루카는 충분히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니 어설프다고 해서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루카의 검술을 볼 수 있겠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루카, 힘내! 파이팅!”

“됐으니까, 빠…… 빨리 저리 가 버려!”

그런데 루카가 내 쪽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시작종이 울려 버렸다.

“루카, 앞! 여기 보지 말고 앞에 봐!”

부우웅!

1회전 상대가 재빨리 목검을 휘둘렀다.

“으악, 앗!”

기습에 놀란 루카가 몸을 휘청휘청했다. 목검이 루카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곧 자세를 바로 한 루카가 상대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공중에서 목검이 부딪치나 싶더니…….

샤악!

상대의 목검이 두 동강 나면서 순식간에 1회전이 끝났다.

‘어라? 지금 뭐였지?’

1회전 상대의 목검은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단면이 깨끗하게 잘려 있었다.

목검끼리 부딪히면 ‘딱!’이나 ‘뽀각!’ 하는 소리가 나는 거 아닌가? 루카는 목검을 휘둘렀는데 왜 ‘샤악!’ 하면서 잘리지?

그사이에 2회전이 시작되었다. 루카는 이번에도 여유롭게 상대의 검을 부러뜨리고 승리했다.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세이르에게 말을 걸었다.

“세이르, 방금 봤어?”

“루카의 목검 말이지? 목검에 무슨 힘이 담긴 것 같네.”

“……응.”

루카의 목검은 은은한 검은색 힘을 머금고 있었다. 결코 평범한 상태가 아니었다.

‘마력? 아니야……. 저건 마기에 가까운 거 같은데.’

한 가지 가설이 재빠르게 머리를 스쳤다.

루카 안에는 마족 안드라스가 잠들어 있다. 루카는 검술을 연습하면서 그 마족의 힘을 검에 불어넣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거 아닐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마검사.

‘이게 되는 건가?’

으음……. 모르겠다. 수천 시간 동안 <마.왕.꾸>를 플레이했지만 몸에 마족이 잠든 상태의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무척 대단한 일이라는 점이다.

‘십대 때 검기 쓰는 애나, 마검사가 되는 애나…….’

여러모로 놀랍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3회전도 금방 끝났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루카가 무난하게 5회전까지 진출할 수 있을 듯했다.

“세이르, 만약에 5회전을 통과한 참가자가 여러 명이면 어떡해?”

“참가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1등에게 상품을 주지만…… 그럴 일은 보통 없을걸.”

“왜?”

“5회전에 나오는 사람이 강하거든. 상급생인데, 벌써 꽤 유명한 기사단에 스카우트받았다던가.”

“루카보다도 강해?”

이 물음에 세이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고.”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대회가 시작되었다. 루카가 4회전을 치르기 위해 목검을 들고 경기장에 섰다.

“와아, 루카, 파이팅!”

나는 루카에게 박수를 짝짝 치다가, 검술부 운영 담당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어, 어어, 어……!”

“……?”

그는 나와 세이르를 번갈아 쳐다보며 몹시 당황하더니, 황급히 검술 대회 행사 규칙을 적어 둔 석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호화 상품: 500 골드 상당의 상품권 증정’과 ‘우승자를 맞추면 배당금’이라고 쓰인 문구를 지우개로 지웠다. 이어서 ‘500 골드 상당의 호화 상품 증정’으로 문구를 고쳐 썼다.

나는 세이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속삭였다.

“왜 저래?”

“원래 환금성이 있는 물건을 상품으로 주지 못하게 정해져 있거든. 베팅을 거는 것도.”

“아항…….”

“저 정도는 굳이 단속 안 하지만.”

이런. 세이르의 시선을 받은 운영 담당 학생이 다시 글씨를 지우고 ‘400 골드 상당의 기념품 증정’으로 고쳤다.

“금액은 왜 줄어드는데?”

“글쎄, 뭐 찔리는 부분이 있나 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대회를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계속 열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고민 끝에 세이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안 되겠어, 가자.”

세이르가 여기에 더 있다간 루카가 받을 상품만 점점 줄어들겠다.

그러나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여신의 축복을 받은 카드점 어떠세요?”

“아, 재밌겠다. 저기서 카드점 볼까?”

“흐아악! 저, 저희는 디드리크 신관님에게 사사받은 정식 업체입니다. 여기 등록증이요!”

…….

…….

“안젤리카, 카페테리아에서 간식이라도 먹을래?”

“응, 좋아.”

“으아, 죄송합니다, 지금 청소 중이라서요! 거기, 주방 더 깨끗하게 닦아!”

이렇게 귀신이라도 본 듯 사람들이 피하는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

세이르와 함께 아카데미를 한 바퀴만 더 돌았다가는 모든 부스가 장사를 접게 될 판이었다.

무도회에서는 오히려 세이르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보였는데, 어떻게 된 일이람.

“세이르…….”

나는 원망 섞인 눈으로 세이르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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