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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31)화 (132/133)

131화

세이르가 왜 여기에?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한 사이.

“세이르 님, 이곳에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좋은 말로 할 때 막지 마.”

거친 동작으로 시종을 뿌리친 세이르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거친 발소리가 티 테이블 앞에서 멈추었다. 전에 없이 날카로운 표정은 마치 잘 벼린 칼 같았다.

“저분이 이곳에는 어쩐 일이실까요.”

“저는 실물은 처음 뵈어요. 와아…….”

티 파티의 소녀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세이르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선망을 머금고 반짝거렸다.

“저기, 세…….”

“…….”

나는 세이르를 부르려 했지만, 세이르는 내 쪽을 아주 잠깐 흘깃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프네를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외숙모님.”

“그래, 오랜만이군요. 왕의 장례식 날에도 볼 수 없던 얼굴을 여기서 다 보는군요.”

‘이런.’

세이르와 다프네 선왕비가 만나는 상황을 피하려고 일부러 세이르에게 티 파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래서는 말짱 도루묵이다.

나는 입술만 잘근 씹었다.

“안젤리카, 일어나.”

세이르가 내게 다가와서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 어깨를 끌어당기는 순간만큼은 세이르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그러나 아주 잠깐이었을 뿐. 세이르는 다프네를 향해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파티는 파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파트너를 데리러 왔을 뿐이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프네 선왕비와 세이르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아카데미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예의범절은 배우지 못했구나.”

“하하, 제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요.”

드르륵!

세이르가 나를 데리고 곧장 티 파티 장소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안 된다. 아직 돌아갈 수는 없다. 나는 힘을 주어 세이르의 손을 떼어 냈다.

“세이르, 잠깐만! 이거 놔. 아직 가면 안 된단 말야.”

나는 다프네 선왕비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티 파티에 왔다. 아직 그녀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티 파티를 끝내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이르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시 내 손을 붙잡더니 바깥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잠깐, 세이르……!”

어쩔 수 없다. 내 목적도 중요하지만, 세이르와 다프네 선왕비를 한 공간에 둘 수도 없는 일이다. 그녀는 충분히 세이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한숨을 삼킨 뒤, 세이르를 따라 발을 움직였다.

세이르는 아카데미의 별관을 나와서도 한참을 더 걸었다. 말은 없었다. 그가 도통 멈출 기미가 없었기에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이르, 이제 됐잖아.”

“…….”

“나 손 아픈데.”

탁!

그제야 세이르가 내 손을 놓고 돌아보았다. 시선이 잠깐 빨개진 내 손끝에 닿았다가 다시 멀어졌다.

“안젤리카, 왜 저 티 파티에 간 거야?”

“응? 그야…….”

마거릿이 내년에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이고, 내가 마거릿의 후원자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려 했는데, 세이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을 억지로 눌러 삼킨 듯한 말투였다.

“저기 앉아 있는 소녀들 모두, 다프네 선왕비의 사람들이야. 아주 정성 들여 측근으로 만들었지.”

“나도 알아.”

그래서 점쟁이라도 된 것처럼 굴면서 그 소녀들에게 참견했다.

당장에 그들을 포섭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다만 씨앗을 뿌려 두면 언젠가 싹을 틔울 수도 있겠지. 그 정도의 투자였다.

“그런데 왜 티 파티에 참석한 거야? 안젤리카, 네가 다프네 선왕비와 만났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나는 세이르를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당연히 세이르가 걱정돼서 그렇지!”

“…….”

내 말에 세이르는 일순 잘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충격받은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묘한 얼굴이었다. 세이르는 선명한 초록빛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는, 느리게 입술을 움직였다.

“나는 이제…… 네가 걱정해 줘야 하는 어린애가 아니야. 나 때문에 네가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어.”

“위험하다니? 그냥 티 파티에 참석한 것뿐이잖아.”

“아무리 백주 대낮이어도, 주위에 사람 눈이 많아도, 저 여자는 얼마든지 네게 위해를 가할 수 있어.”

“그런 것쯤 나도 알아!”

알아도 지금 시점에서 다프네가 내게 손을 댈 이유가 없었고, 설령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대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다프네 선왕비가 세이르에게 손을 쓸 가능성을 막고 싶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녀가 세이르를 괴롭히게 둘 수는 없어.’

세이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이좋았는데, 그가 갑자기 나를 거절하는 것만 같아 속상했다.

내가 다프네 선왕비를 만나려 한 여러 이유를 전부 설명해야 하나. 하지만 설명한다고 해서 세이르가 이해할까.

잠시 침묵이 무겁게 깔리고.

“안젤리카, 돌아가.”

“뭐?”

“네가…… 안젤리카, 네가 다프네 선왕비를 만나러 갈 줄 알았다면 애초에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을 거야.”

“돌아가라니! 아직 마르코한테 골렘 코어도 못 받았고, 또…….”

“그건 내가 받아서 왕국으로 보내 줄게. 그러니까 돌아가.”

“……세이르!”

뭔데? 대체 왜 그러는데?

나는 오랜만에 세이르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걱정해 줘야 하는 어린애가 아니라고?

‘뭐야. 그렇게 갑자기,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 버렸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훌쩍 자란 세이르의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별것도 아닌 말이 어째서 이렇게 속상하게 느껴질까.

곧장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는 그때.

타다닷!

큰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 찾았다. 안젤리카, 세이르! 여기 있었네.”

“루카?”

맞은편에서 루카가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얼마나 멀리서부터 달렸는지 숨이 턱 끝에 걸렸다. 루카가 숨을 고르더니 물었다.

“그런데 너희 분위기가 왜 그래?”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그보다 루카, 왜 그렇게 깜짝 놀라서 뛰어와?”

“어, 아! 안젤리카, 빨리 와 봐야겠어. 그 미친 골렘 마니아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응? 뭔데 그래?”

“초대형 골렘 코어가 없어졌대.”

“……뭐?”

* * *

우리는 곧장 연금술 연구실로 향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잠깐 와 보지 않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금술 연구실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좀비, 아니, 연금술 연구실의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챙기고 있었고, 먼저 도착한 스텔라가 현장을 정리 중이었다. 나는 빠르게 그들 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된 거야?”

“히힛, 큰일이 있었어. 도둑이 들었거든.”

가장 피해가 큰 곳은 골렘 동호회였다.

“히이익……. 이럴 수가…….”

털썩.

마르코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작은 골렘이 놓여 있었다.

“마르코, 무슨 일이야?”

그러나 마르코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부서진 골렘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탄식할 따름이었다.

“리리스, 내 부인이…… 히이익…….”

아, 저런.

부서진 골렘이 마르코의 부인 리리스였구나. 나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아무튼.

마르코가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대신 연금술 연구실의 좀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었다.

“연구실에 도둑이 들었어, 히힛.”

오늘, 성령제를 맞아 연구실의 실장이 학생들에게 회식을 제안했다.

대체로 내향적인 연금술 연구실의 사람들은 가고 싶지 않아 했지만 강제 참가였다나.

그래서 약 두 시간 동안 연구실이 비어 있었는데, 사건은 그때 일어났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났고, 사람들이 돌아와 보니 연구실 문이 열려 있었다.

“히힛, 처음에는 그냥 자주 일어나는 폭발 사고인 줄 알았지만…….”

“……자주 일어난다고?”

“없어진 물건이 있어, 히힛. 도둑이 든 거야.”

“그 없어진 물건이 하필이면 내 초대형 골렘의 코어라는 이야기네.”

머리가 아파 왔다. 도둑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왜 하필 내 골렘 코어를 훔쳐 갔단 말인가.

‘어차피 그거, 내가 아니면 써먹지도 못하는 건데.’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모르면 그냥 위험하고 비싸고 복잡한 돌덩이에 불과하다.

나는 우선 제일 쉬운 해결책을 모색해 보았다.

“마르코, 코어를 새로 만들 수는 없어? 돈은 내가 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히이익, 그게…… 당장은 불가능해요.”

“그래? 왜?”

“초정밀 마력 회로에 들어가는 감광 마석이 다 떨어졌어요. 생산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물건이라, 곧바로는…… 히이익, 죄송합니다.”

하필이면 중요 부품이 다 떨어졌네.

‘아이고, 골치야…….’

로디를 통해 수소문하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양이 필요한 데다, 실로프 상회까지 오가는 시간만 해도 한참이다.

그렇다면…….

“에휴, 그럼 결국 도둑을 잡아야 하나?”

“……안젤리카.”

세이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내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아까 하던 이야기가 어중간하게 끝나 버렸지만……. 어쨌건 이 사건을 먼저 해결해야겠지.

세이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주위를 향해 말했다.

“교내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니 유감스러워. 이 일은 학생회에서 책임을 지고 범인을 찾도록 하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아카데미, 뭐가 이렇게 개판이람?’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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