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 *
세이르와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연금술 연구실의 사람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그러나 골렘 코어를 도둑맞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에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대 한국과 달리 CCTV가 설치된 것도 아니니 쉽게 범인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먼저 마르코에게 더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려 했다.
“마르코,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어디에 뒀었어?”
“리리스, 흑…… 히이익…….”
그러나 마르코는 부서진 골렘을 껴안고 눈물 흘리느라 내 말에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세이르가 마르코의 어깨를 톡 쳤다.
“마르코, 묻는 말에는 대답해야지?”
“히, 히이익! 죄송합니다! 저기, 저쪽입니다.”
이런…….
마르코가 가리킨 곳은 골렘 동호회의 책상 위였다. 잠금장치도 없이 오픈된 곳이라, 연구실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누구라도 골렘 코어에 손을 댈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더했다.
“마르코, 왜 골렘 코어를 그대로 책상 위에 둔 거야?”
“그야 거기다 둬도 아무도 관심 없어서…… 히이익, 죄송합니다!”
“으응,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골렘 제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냥 돌덩이로 볼 뿐이니까.
‘그렇다면 범인은 골렘에 관심이 있는 사람……?’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구실에 도둑이 들었으니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골렘 그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마르코 외에도 골렘 마니아가 더 있었다면, 골렘 동호회가 이렇게 구석진 곳에 있지는 않았을 테지.
내 낯빛이 심각해지자 더더욱 겁을 먹은 마르코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제가 골렘 코어를 아무렇게나 방치해 둔 것은 아닙니다, 히이익! 안전장치가 있어요.”
“안전장치? 그게 뭔데?”
“그건, 흑…….”
마르코가 바닥에 쓰러진 골렘, 리리스를 가리켰다.
“원래 다른 사람이 골렘 코어를 가져가면 리리스가 경보를 울리게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리리스마저 망가뜨리다니……. 히이익, 잔악무도한 놈!”
현장에 남은 흔적으로 보아, 리리스는 경보를 울리기도 전에 파괴된 듯했다.
그때 주위를 통솔하던 세이르가 내 옆으로 돌아와 말했다.
“안젤리카, 일단 관련된 사람들은 전부 모았어. 시간은 걸리겠지만 범인은 꼭 찾아낼 테니 우선…….”
“……아, 맞아!”
“안젤리카?”
‘맞아, 그게 있었지.’
나는 어떤 사실을 떠올리고 손뼉을 짝 쳤다.
어제 마르코를 만난 뒤 어떤 장치를 하나 해 두었다. 그냥 골렘 동호회가 하도 엉망진창이라 보험을 들어 둔 건데, 설마 써먹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
“세이르, 골렘 동호회에 접근한 사람들을 알아낼 방법이 있어.”
“……어떻게?”
나는 품에서 작은 시약병을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슬퍼하는 마르코의 옷에 시약을 한 방울, 학생회의 스텔라 옷에도 한 방울 뿌렸다.
마르코의 옷에 뿌린 시약은 빨간색, 스텔라의 옷에 뿌린 시약은 파란색이 되었다. 어제 내가 책상 위에 뿌려 둔 투명한 물질이 시약을 만나 반응하는 원리였다.
“이렇게, 골렘 동호회의 책상을 만진 사람한테 시약을 뿌리면 빨갛게 변해. 도움이 될까?”
“……시험해 볼게.”
세이르가 내게서 시약병을 받아 갔다. 곧 학생회 사람들이 관계자들에게 시약을 뿌리면서 색깔을 확인했다.
같은 연구실이다 보니 빨간색이 나온 사람은 꽤 많았다. 그중에서 도난 추정 시각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는 사람은 제외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용의선상에 남은 사람은 다음 세 명이었다.
첫 번째, 비리 전 부학생회장이자 얼마 전 연금술 연구실로 좌천된 나딘.
“이, 이 나딘 님을 의심하는 거냐!”
나딘은 오늘 있었던 회식에 참석했었지만 도중에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 이후에 그를 본 사람이 없다.
나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나딘을 보며 생각했다.
‘딱 봐도 쟤가 범인이네. 얼굴에 쓰여 있네.’
자신의 감만 믿고 사람을 의심하면 안 된다고? 알 바냐. 그냥 봐도 의심스럽잖아.
어쩐지 삼류 악당 엑스트라 같은데 자꾸 마주친다 했다. 이렇게 얽히게 될 줄이야.
두 번째, 연금술 연구실의 관리자인 폴 씨였다.
“나는 그냥, 연구실 청소를 하러 온 거요. 항상 그 시간에 청소를 하거든.”
학생들이 폴의 말이 맞는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폴이 연구실 청소를 하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후보가 대단히 의외였는데…….
“어어, 나? 나 말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루카였다.
시약 반응에 따르면 루카는 아무도 없는 시간에 연금술 연구실에 들어와 골렘 동호회에 접근했다.
‘루카가 골렘 코어에 손을 댈 이유는 없지.’
애초에 루카는 내가 데려온 일행인걸. 의외로 소심해서 사고 같은 걸 칠 성격도 아니고.
그러나 연금술 연구소의 사람들은 루카에 대해 잘 몰랐고, 외부인을 경계했다. 의혹을 깨끗이 정리하기 위해 일단 루카 역시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럼 이제 어떻게 범인을 찾고 증거를 밝혀내느냐가 문제인데…….
“히힛, 나한테 좋은 물건이 있어.”
그때,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좀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세이르가 좀비에게 물었다.
“네크로, 무슨 물건이 있다는 거지?”
‘쟤 이름이 네크로였구나.’
속으로 계속 좀비라고 부르다 보니 이름을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잠시만 기다려, 히힛.”
좀비, 아니, 네크로는 터덜터덜 자기 자리로 가더니 어떤 물건을 가지고 왔다. 장갑처럼 생긴 물건에 두 개의 전구가 달려 있었다.
“거짓말 탐지기야. 히힛, 대상자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어.”
“뭐? 잠깐 보여 줘.”
나는 네크로에게서 거짓말 탐지기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간단! 거짓말 탐지기>
대상자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대상자의 마법 저항력에 따라 판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불량이 아닙니다.]
‘……진짜잖아?’
상태창에도 확실하게 거짓말 탐지기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에 관계된 아이템은 만들기 힘들다. <마.왕.꾸>에서는 B급 이상의 고대 왕국의 유물에서나 가능한 기능인데.
“이건…… 설마 고대 왕국의 유물이야?”
“히힛, 그럴 리가. 고대 왕국의 유물을 본떠서 내가 만든 아이템이야. 성능은 확실해.”
뭐?
이 좀비, 유능하다. 그냥 할일 없이 연구실을 배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 거짓말 탐지기를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에게 써 보기로 했다.
‘에휴우, 성령제를 즐기러 왔다가 이게 무슨 일이람.’
왕국 경영 게임이 갑자기 추리 게임이 되어 버렸다. 게임 장르를 좀 지켜 주면 좋겠다.
첫 번째 타자는 바로 루카였다. 시간상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연구실에 다녀간 데다가, 의심 섞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루카가 먼저 하겠다며 나섰기 때문이다.
루카가 거짓말 탐지기를 착용했고, 나는 질문을 시작했다.
“루카, 여기 있던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가져갔어?”
“아니. 그게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몰라.”
참을 의미하는 초록색 불이 켜졌다. 내심 긴장했었는지, 루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곳 연금술 연구실에 들른 이유는 뭐야?”
“안젤리카, 네가 도통 안 돌아오길래 찾으러 왔어.”
이번에도 참.
“그래? 그럼 내가 여기 없는 걸 알고 곧장 돌아갔겠네?”
“다, 당연하지!”
삐삐삐!
이때 거짓을 의미하는 빨간 불이 켜졌다. 루카는 크게 당황했고, 연구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저 소년, 다른 연구실에서 보낸 스파이 아냐?!”
“검술부 놈들, 전부터 우리 연구실을 노리고 있었다니까.”
“나 봤어! 저 애, 검술부 검술 대회에서 우승했어!”
술렁술렁!
소란스러움이 점점 커졌다. 그들은 루카가 골렘 코어에 손대지 않았더라도 다른 불순한 목적을 품고 연구실에 들어왔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검술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크게 당황해서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아, 아니, 잠깐. 루카는 그냥 나랑 같이 성령제를 보러 온 관광객이야.”
“보통 평범한 관광객은 이런 곳에 안 온다고, 히힛.”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기가 눅눅하고 음침한 연구실 풍경이 보였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
어쨌건 사실을 밝히지 않고는 저들을 진정시키기 어렵겠다.
“루카, 여기서 뭘 한 거야?”
“그…… 그건 말 못해!”
“……루카.”
대체 진실이 뭐길래 루카가 나한테도 말을 못하는 거지?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일행인 루카가 골렘 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외부인을 경계하는 분위기는 도통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히힛, 나는 다 봤지.”
그때 네크로가 추리물 조연 같은 말을 하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세이르가 그에게 물었다.
“봤다니, 무슨 뜻이지?”
“검은 머리 소년은 저기 저쪽, 연구실 소지품 보관함 쪽에 한참 서 있었어.”
“서, 설마!”
네크로가 가리킨 쪽으로 학생이 한 명 다가갔다. 그리고 곧 진실이 밝혀졌다.
“이거야! 지그소 퍼즐이 전부 맞춰져 있어……!”
“뭐?”
“틀림없어. 사다 놓고 반도 맞추지 못했었다고. 저 소년이 맞춘 게 분명해.”
“으…….”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루카가 진실을 실토했다. 알고 봤더니, 진실이란 실로 시시한 것이었다.
나를 찾아서 연구실에 온 루카는,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곧장 돌아가려 했다. 그러다 방치 중인 지그소 퍼즐을 발견했고, 그만 전부 다 맞춰 버렸다는 것이다.
“그게, 조금만 맞추려 했는데. 재미있어서…….”
남의 지그소 퍼즐을 전부 다 맞춰 버린 것이 민망해서 말하지 않으려 했단다.
내 참, 그럼 그렇지. 루카가 나한테 비밀이 있을 리 없지.
“루카, 이럴 때 거짓말을 하면 오해를 사기 쉬우니까 사실만 말해 줄래?”
“미안…….”
루카가 연구실에 왔을 때 골렘 코어는 남아 있었다고 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루카는 굉음을 듣지 못했다.
‘루카가 왔다 간 다음에 도난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군.’
다음 순서는 내 마음속의 유력 용의자, 나딘이었다.
나는 험악한 표정으로 나딘을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