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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32화 (32/205)

<32화 아버지의 삶2>

나는 크게 심호흡하면서 흘리던 눈물을 안 보이게 닫아내고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런데 누구세요?”

“아···.”

어떻게 보면 간단한 질문인데도 그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힘겹게 말했다.

“외삼촌이라고 할까? 이제 고등학생?”

“이번에 고등학교에 들어가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학년이라고 말하자 한참을 말을 고르더니 이내 깊은 심호흡과 함께 말했다.

“혹시···연미···아니 어머니 모시고 와줄 수 있을까?”

“그건···.”

나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내가 상처받은 것 이상 믿었던 아버지이기 때문에 더 깊은 상처가 있을 어머니를 무작정 병원에 데리고 올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내 표정이 굳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걸 알았는지 외할아버지 침상에 다가와 나에게 계속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에 마음이 아픈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처방을 내렸는지 외할아버지는 천천히 눈을 감고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큰아버지가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서 우선 진정제를 놓아드렸다. 최소한 연미 얼굴은 보고 가셔야 할 것 같아서···.”

“그 말씀은···.”

“연세도 있으시고 가슴에 무얼 그렇게 담아두시는지···많이 안 좋으셔. 그렇게 긴 시간은. 연미를 찾으려고 해봤지만, 전화번호도 바꾸고 이사를 가버리니 찾을 길이 없었다. 이렇게 네가 먼저 큰아버지를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구나.”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마트에 연락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첫마디 마만을 말했는데도 어머니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 아셨다.

“주인아? 무슨 일이니? 괜찮아?”

“엄마···나 안 괜찮아. 너무 힘들어 와줄 수 있어?”

자기 남편이 죽고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큰아들의 약한 모습을 봤다고 느낀 어머니는 내가 뭐라고 더 설명할 여지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부른데 죄송함을 느꼈지만, 혹시나 어머니가 평생 후회하시며 살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선택권조차 드리지 못했다.

“주인아 무슨 일이야? 괜찮아?”

병원에 도착해서 눈시울이 붉어진 내 얼굴을 부여잡고 공포심과 같을 정도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어머니의 손을 이미 뜨거워 질대로 뜨거워진 손으로 부여잡고 외할아버지 병실로 향했다.

어머니는 병실 앞에서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무언갈 느낀 건지 덜덜 떨면서 병실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꼭 앉아 주고 병실 앞 가족들을 위한 의자에 어머니를 잠깐 앉게 만들고 외삼촌을 불러왔다. 외삼촌은 나에게 음료수를 사와 달라고 했다.

사실 음료수는 핑계고 잠깐 자리를 비켜달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런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알겠다고 하고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와 외삼촌이 보이지 않는 먼 복도에서 강화된 육체를 믿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눈동자가 시선을 둘 곳이 없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어머니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못했다.

“오빠 오랜만이네요.”

“연미···, 정말 연미니? 너하고 매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지 못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눈시울이 붉어진 외삼촌의 모습에 방황하던 어머니의 손이 외삼촌의 손을 꾹 잡았다.

“저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그런데···찾아줘서 고마워요.”

“내가 찾은 게 아니야. 아들이 병원에 찾아왔어.”

“그런···.”

“아무리 연을 끊었다고 해도 핏줄이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닌 거지.”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속 깊은 한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그럴 리가요. 저희를 그렇게 쉽게 내치던 아버지인데요.”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외삼촌은 깊은 한숨과 함께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의사가 되나니 놀랍지 않니?”

“큰오빠는 몰라도 오빠가 의사가 되다니 세월이 참 대단하네요. 항상 철없이 저한테 짓굳은 장난만 치던 작은 오빠가요.”

“사실 나 방황하던 이유가 있었어.”

“네?”

“이제 남은 가족 중에는 나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뭘···말이에요?”

“네가 작은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우리 아버지하고 내가 큰아버지라고 부르는 너희 아버지 혈연관계가 아니야.”

“네?”

어머니는 너무 큰 충격에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의자에 눕듯 기대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버지··아빠는···.”

“그래 큰아버지는 늘 가문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 조차도 뒤로 미루고 집안일부터 처리했지. 분명 어린 너한테는 상처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모르는 게 있는 건가요?”

“우리 부모님이 해방 세대인 건 알지?”

“네···.”

“사실 이런 사실은 나도 모르고 있었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큰아버지만 불러서 대화 나누신 적 있잖아? 그때 우연히 듣게 된 거야. 우리 가문이 친일한 가문이 아니냐고 조사가 들어왔을 때 뒤에서 경제적으로 독립운동가의 자녀를 외국으로 도피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큰아버지가 주장하면서 가문에 입적하신 거야. 아마, 가장 힘들 때 손 내밀어 준 할아버지에 대한 의리였겠지. 정확하게는 나도···충격에 제대로 사고가 되지 않았거든. 그래서 제대로 듣지 못한 부분도 많고 그저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대화하는 걸 어쩌다 듣게 된 거라서···.”

“오빠가 방황하기 시작했던 할아버지 돌아가신 때 말하는 거예요?”

“그래. 그때 친일의심을 받던 가문이라는 소리에 그 사실을 알게 돼서 크게 방황했지.”

“그래도 결국 그런 건 아니라고 밝혀진 것 아닌가요?”

“그렇게 깨끗하게 갈라서 생각하기 어려운 거지. 군사정권 때 우리 가문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건···.”

“그것하고 다를 게 없었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면피 목적으로 한번 큰할아버지를 도왔던 그 행동으로 친일이 아니라니···.”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어요.”

“지금이야 말할 수 있지 당시에는 말도 꺼내기 어려웠으니까.”

“···,”

“그런 큰 문제를 해결해준 큰아버지는 그것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고모를 친혈육보다 더 챙기고 가문의 대소사에 발 벗고 나서서 해결했어. 이전과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후회?”

“큰아버지 성함이 천오뇌 난, 그 이름의 뜻을 듣고는 다른 한자를 잘못 쓴 게 아닐까 했는데 아니었어. 큰아버지는 입적할 때 그 이름을 원하셨데. 뉘우쳐 한탄하고 번뇌한다는 뜻이야. 그 혼란했던 시절에 가족을 전부 잃어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가족이라고 하면 무조건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주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하고.”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저한테 너무 무심하셨는걸요.”

“너한테 무심한 건 맞지 어쩔 때는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으니깐. 그런데 네가 결혼한다는 상대를 데리고 왔을 때 큰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셨잖아?”

“북한사람은 절대 반대라고 하셨죠. 그때 남산 씨가 상처받은 걸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해요.”

“사실 큰아버지는 사랑을 표하는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

“그게 무슨···.”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난 할아버지가 무서웠거든. 항상 큰소리로 야단만 치시고 그런데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할아버지는 널 사랑하는데 그 표현방법을 모르는 거라고.”

“하지만 친척들에게 하던 것하고 저한테 모질게 대한 건 완전히 다르지 않았어요?”

“네가 너무 귀해서 어찌할 바 몰랐던 게 아닐까 해. 혼자 어린 거기다 여자애인 너를 키우면서 고모한테 많이 의지했지. 그런데···이건 내 생각이지만···어쩌면 큰아버지하고 너 사이에서 오해를 부추긴 사람이 고모일지도 몰라.”

“고모가···.”

“큰아버지 재산 야금야금 빼먹고 이제 남아 있는 땅마저···돌아가시면···난 도저히 그 꼴 못 보겠다. 그래서 너하고 매제 한참 찾았어. 그런데 찾을 길이 없어서···하아···.”

“저한테는 어머니나 다름없었는데···.”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어. 그 당시 일만 아니었다면.”

“그게 무슨.”

“너하고 매제가 찾아왔을 때 있었던 사고 말이야. 난 고모가 부추긴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어. 물론 심증뿐 이여서···그래서 내가 의사가 된 후에 알게 된 건데···큰아버지가 젊었을 때 너무 고생해서 손 관절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거 아니?”

“아버지가···관절이 안 좋으셨어요?”

“너한테는 좋은 것만 보여주겠다고 숨기고는 하셨지만, 손의 떨림과 절임이 심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어. 내 생각에는 화를 내면서 흥분하다가 그 증상 때문에 손주를 놓치신 거라고 본다. 물론 그 자리에 없어서 그리고 당사자들한테 이제는 제대로 설명을 들을 길이 없어서 확신은 못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아버지가···.”

“연미 네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해. 그리고 화를 내. 그저 서로 마주 보고 화를 내고 대화하고 그러면 좋겠다. 외면하고 그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거 해결방법이 안 된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외삼촌을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외삼촌은 힘겹게 말을 꺼냈다.

“큰아버지가 잘했다는 게 아니야. 단지, 큰아버지는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게 빨갱이라고 부르면서 마음껏 미워할 수 있었던 존재가 필요했던 거야. 물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지 내가 봤을 때 정말 그건 답이 아니지만···, 당시 시대상황도 그렇고 그저 마음껏 미워하면서 한풀이를 하던 대상을 사랑하는 딸이 남편이라고 데려오니 화가 폭발하신 거지. 그렇지만 난 그날 있었던 사건은 사고라고 생각해. 큰아버지가 당시에 손 관절이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손이 거의 굳어서···.”

“···.”

“연미야. 아버지가 밉니?”

“···.”

“미워도 한 번만 만나서 서로 이야기해볼 생각은···.”

“저···아버지 만날게요. 그리고 물어보고 싶어요. 절 정말 사랑했는지.”

“그래.”

외삼촌은 어머니를 부축해서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들리는 건 어머니의 울음소리 밖에 없었다. 원망하고 원망하던 상대가 볼품없이 침대에 의지해 자신을 반기는 상황은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슬프고 허망할지.

나는 어머니가 병실에서 나오기를 한참···한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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