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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38화 (38/205)

<38화 유산4>

회귀 전 나는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병원에 입원한 뒤 동생을 보육원에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성당에 나가 고해성사를 하고는 했다.

그런 방황하는 나를 잡아준 신부님에게 한탄하듯 말했던 기억이 김 씨 아저씨가 비운 자리를 채운다.

“신부님 아버지는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셨을까요?”

“글쎄.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

“좋은 사람을 하늘나라에서 빨리 부르는 거야.”

“그럼 지상 사람들은 나쁜 사람만 남잖아요.”

“그러게. 왜 좋은 사람을 그렇게 빨리 부를까. 지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비규환을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좋은 사람이 빨리 죽는다면 전 아주 오래 살 것 같아요.”

“주인아···.”

나를 안타깝게 부르는 신부님을 뒤로하고 내가 걸어 나가는 길···하늘은 야속할 정도로 맑았다.

난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그저 내가 바라는 건 좋은 사람이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 단순한 소망이 어떤 삶에 여파를 미칠지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정답을 말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두 번째 사는 삶이어도 삶은 혼자 사는 것. 결정도 그 결정에 대한 대답도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이란 걸 다시금 느낄 뿐이다.

‘정답이 있는 삶이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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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산소 위로 외할아버지의 산소가 자리했다. 천 씨 문중의 산소와 이곳 중 고민을 하던 어머니였지만 결국 우리 가족이 묻힐 곳은 여기라고 판단하신 것 같았다.

발인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부축했다. 그런 나를 슬픈 눈으로 보던 어머니가 나에게 기대여 말라버린 눈으로 산소에 덮인 잔디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버지. 외손주 주인이가 많이 컸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는데···.”

“이제는 저를 부축할 정도로 컸네요.”

“아버지···.”

“아···빠······.”

“평생 안 볼 생각까지 했는데······제가··제가···.”

“엄마···.”

“미안 주인이 앞에서 엄마가 못 보일 모습을 보였네···.”

“아니야. 엄마 슬프면 울어도 돼. 남자여서 울면 안 되고 엄마여서 울면 안 되고 그런 건 다 자기네들이 그 슬픔을 보살피고 싶어 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그저 말말 말이라고 생각해. 아프면 아프다 슬프면 슬프다 하는 게 뭐가 이상해? 당연한 거지. 나도 외할아버지를 만나고 너무 빨리 헤어져서 슬퍼. 그런데 엄마는 나보다 더 슬픈 게 당연하잖아. 아빠니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고 고개를 푹 숙이셨다. 어깨가 따뜻해졌지만 나는 모르는 척 그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버지를 잃으면 슬픈 게 당연하잖아. 그걸 엄마라는 이유로 슬퍼할 기회마저 박탈당한다면 너무 슬픈 현실 아닐까?’

어머니를 부축해서 산을 내려가자 못 보던 승용차 앞에서 외삼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 커피요.”

나는 발인 작업하는 분들에게 드리기 위해서 준비했던 캔커피 중 남은 커피를 외삼촌에게 넘겼다. 다행히 아직 차가워지지 않아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쉬엄쉬엄 오라니까.”

“자리 일부러 비켜주신 거예요?"

내 질문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은 외삼촌이지만 나를 지긋이 보더니 이내 말했다.

“연미는 정이 많은 아이였거든.”

나는 차 안에서 멍하니 따뜻한 캔커피를 손에 들고 앉아 있는 어머니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말했다.

“저는···.”

“응?”

“어머니는 강하시기만 한 줄 알았어요.”

회귀 전 어머니는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으셨다. 아니 보이지 못한 게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연미는 정이 많고 배려심 있는 조용한 아이였지.”

“지금은 어떤데요?”

“내가 볼 때는 그대로란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

“그런가요···.”

외삼촌의 입에서 듣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은 지금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

회귀 전 나는 나이만 먹었지 어른이 되지 못한 삶이 아니었을까?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내 어깨를 툭 친 외삼촌이 말했다.

“가자. 날이 춥다.”

“네.”

골목길을 지나 우리 집 앞에 우리를 내려준 외삼촌은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연미야. 내가 여기서 산다고?”

“···.”

어머니는 말이 없었고 내가 대답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여기서 살아요.”

“큰아버지, 아니 네 외할아버지 앞으로 아파트가 몇 채 있을 거야. 당장 이사부터 하자.”

“오빠 갑자기 이사는···애들 학교도 있고.”

“엄마, 외삼촌 말처럼 이사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도 이사 와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는 몰라도 애들이···.”

“전학이나 이사는 좀 더 생각해봐요. 그렇지만 긍정적으로요.”

외삼촌은 나와 주신이 때문에 이사를 꺼리는 어머니 모습에서 무언갈 느낀 건지 솔직하게 말했다.

“전학이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지금 환경보다 더 좋아지는 거니깐 잘 생각해봐. 이건 의사로서 의견이야. 아이들 건강도 생각해야지. 날이 늦었는데 우선 들어가서 쉬고 주인아 너는 잠깐 나 좀 보자.”

걱정스럽게 보는 어머니를 집에 들여보내고 나오니 외삼촌이 차 안에서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큰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지고 경제적으로 힘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다. 어떻게···.”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미안하다.”

“아니에요. 어머니 걱정해주시는 어른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 좋아요.”

“주인이가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서 마음이 그렇네. 그런데 연미한테 생각해보라고 해도 연미가 고집이 좀 있잖아.”

“엄마가요?”

“너는 모르겠지만 보통고집으로 이렇게 힘들게 살면서 큰아버지를 한번 안 찾아 갔다는건···.”

“아···.”

나도 모르게 수긍하고 있었다.

“엄마가 정이 많고 배려심이 있다면서요?”

“정이 많고 배려심이 있지만, 고집도 엄청 쎄. 큰아버지 고집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지.”

“···.”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큰아버지가 둔방에 가지고 있는 아파트 주소다. 여기가 미분양이 많아서 전부 비워져 있다고 들었거든? 내가 우선 둘러보고 연미 설득해서 이사 가면 좋겠어. 여기는···너무 걱정돼서.”

“동네 분들 다 좋으신 분들이에요. 그래도 외삼촌 말처럼 이사는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신이가 기관지가 약하거든요.”

회귀 전에 반지하에서 커서 기관지가 약해졌던 나와 주신이를 생각한다면 이사할 수 있다면 이사하는 게 좋았다.

“그럼 여기 주소 문자로 넣어주마.”

“네? 전 휴대폰 없는데요.”

그제야 장례식으로 정신이 없던 시야가 넓어지면서 종이봉투에 담긴 휴대폰이 보였다.

“휴대폰이야. 하나는 연미 쓰게 전달해주고 너는 이 검은색 휴대폰 쓰렴.”

“이건···.”

“이제 고등학생 되니까 하나쯤 가져도 되겠지. 주신이는 중학교 들어가면 생각해보자.”

“외삼촌···.”

“내가 조카들한테 이제까지 해준 것도 없고 휴대폰이 없으니 답답하더라 크게 생각할 것 없이 준비한 거야. 연미가 안 받으려고 하면 버린다고 해. 그럼 아깝다고 쓸 테니까.”

“감사합니다.”

“모난데 없이 잘 커줘서 나도 고맙다. 늦었으니까 들어가 봐. 주신이 아직 친구네 집에 있다고 했지? 나중에 주신 이도 함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멀어지는 승용차의 빨간 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외할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걸 물려주셨다.’

‘내가 이 모든 걸 받을 자격이 있을까?’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지킨 지 3일이 지났을 뿐인데 오랜만에 온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주신이가 없어서 그럴까?’

낯설게 느껴지는 집에서 잠이 들자 기다렸다는 듯 대백공이 나타났다. 자기 전 생각했던 내 의문에 대답이라고 하듯 말했다.

“부담스럽고 힘들 수도 있네. 유산이란 그런 것이지. 단지 재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야.”

“제가 받을 자격이 될까요?”

“자격은 필요 없지 유산이란 혈족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그저 가족이기만 하면 된다네. 다만 자격 없이 받은 유산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지. 좀 더 유복한 자산을 통해 자신의 삶을 탄탄하게 만들던지. 아니면 갑자기 생긴 재물에 현혹되어서 삶을 계획 없이 대는 대로 살던지. 그 결과는 결국 자신이 지게 된다네.”

“저는···.”

“자네처럼 고민하는 친구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나에겐 하나의 큰 보람이지.”

“···.”

“어릴 때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고민은 나쁘지 않지만, 거기에 매몰되어서 결국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못한다면 본말전도이기 마련이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특이점 보상은 내일 찾아가려는 외할아버지의 유산인 집에는 혼자 찾아가라는 걸세.”

“네? 외삼촌 말로는 자신도 주소만 알지 열쇠는 없어서 부동산 중개업자 통해서 같이 가보라고 하던데요?”

“그 집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준비한 것이지. 그것만 안다면 굳이 다른 사람과 동행할 필요가 없다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동행하면 말이 많아지는 법.”

“그 말씀은···.”

“많은 이들이 입을 통해 화를 불러일으키지.”

대백공에게 좀 더 물어보기 위해 입을 떼려고 할 때 눈이 부신 느낌과 얼굴이 얼얼할 정도의 찬 기운에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기시감처럼 느껴지는 상차림에 작은 쪽지로 적혀진 어머니의 정갈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많이 피곤했지? 학교에는 엄마가 연락해놨으니깐 오늘까지 쉬렴. 너무 곤하게 자서 깨울 수가 없었다. 주신이 등교는 엄마가 시켰으니깐 오후에 하교만 도와주렴.’

나는 저번에 받은 쪽지를 끼워둔 다이어리에 이번에 받은 쪽지까지 키워놓고 상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대백공이 말할 정도면 한 번쯤 혼자 방문해봐도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주신이 하교 전에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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