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김 씨 아저씨2>
“주인아?”
외삼촌이 날 발견한 듯 나를 불렀다.
“외삼촌, 여기는 내 친구들 종혁이랑 경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움도 잠시 병원에 왔다는 사실에 걱정되는 표정을 하는 외삼촌에게 말했다.
“저하고 같이 온 친구들이 아픈 건 아니고요. 같은 학교 친구가 다쳤다고 해서 문병 왔어요.”
“혹시···방금 응급실로 실려 온 기인하 환자가?”
“맞아요. 저희가 찾아온···왜? 많이 다쳤어요?”
외삼촌은 정착 간호사들이 그렇게 찾는 친족이 아닌 학교 친구들이 먼저 찾아온 게 신기한 듯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환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태거든···.”
나와 종혁이도 인하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경수는 외삼촌에게 매달리듯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경수의 모습을 외면하지 못한 외삼촌은 변호사와 실랑이 하는 경찰을 피하듯 우리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더니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인하라는 환자가 많이 다친 건 사실이지만 다친 것보다 본인이 너무 놀란 상태여서 진정제를 투약했단다.”
“아···그럼 정신이 없는 건···.”
“안정적으로 치료받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형사들은···.”
외삼촌은 이 말까지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우리의 걱정 가득한 모습에 고심 어린 말을 했다.
“난 형사들이 그 환자를 찾아왔을 때 이제야 가정폭력으로 심한 폭행을 당해서 경찰들이 출동했구나 했거든. 그런데 정신도 차리지 못한 미성년자인 환자를 체포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병원에 들어오니 우선 급한 데로 막아서기는 했지만···참 부끄러운 모습을 너희에게 보였다 싶다.”
“아니에요. 형사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환자를 지키는 외삼촌 모습 정말 멋있었어요.”
“멋있어요.”
내 말에 호응해주는 경수와 종혁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던 외삼촌이 말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보호자가 아닌 친구들은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해.”
우리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자 외삼촌이 말했다.
“거기다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어. 환자가 정신이 들면 친구들이 왔었다고 전해주마.”
“아···언제쯤 정신 차릴까요?”
“지속적인 폭력에 오래 노출되어서 몸 상태도 전체적으로 좋지 못하고 영양부족에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나이에 비해서 체구가 너무 작은 데다 오늘 출혈이 너무 심해서···.”
자신의 말이 점점 걱정스러워지는 아이들의 표정에 이게 아닌데 라는 표정을 짓던 외삼촌이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렇지만 병원에 늦지 않게 와서 회복 중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시간이 늦었으니까 집에 들어가고 아니면 내가 데려다줄까?”
“괜찮아요. 알아서 갈 수 있어요.”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이면서 서로 말이 없었다.
“이게 말이 되냐?”
“하아···.”
경수의 화난 음성에 종혁이와 나는 동시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분명 기하 아빠 아니 그 무식한 인간이 기하를 때린 걸 텐데 그런 인간이 체육을 죽였다고? 아니면 기하가?”
“가정폭력을 행사하면서 주변인들한테 잘했다는 건 자기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한테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는 거야.”
“비겁한 거지.”
“그런 인간이 체육같이 덩치 큰 남자한테 덤볐을까?”
“열 받았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열 받아도 인하한테 다 풀어서 열 받을 것도 없을걸? 그러니까 주변에 그렇게 간이고 쓸개고 다 줄 것처럼 하고 인하한테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패지.”
“차라리 인하 아빠가 체육을 죽였다고 하면 이해도 가고 인정할 것 같아.”
“뭐야, 갑자기 급발진이냐?”
“인하 아빠가 딸을 위해서 그런 거라면 차라리 이 속에서 터질 것 같은 열불은 좀 가라앉을 것 같은데···.”
나는 타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심호흡을 계속해야 했다.
‘김 씨 아저씨가 설마? 아니죠?’
‘그럼 나는 체육선생을 살인 청부한 게 되는 건가?’
이런 나의 모습의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건지 잠시 대화가 줄어든 틈에 종혁이 질문했다.
“주인아 괜찮아? 표정이 안 좋은데···.”
“표정이 좋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그건 그렇지만···.”
“아···범인도 범인이지만 인하는 어쨌든 피해자잖아. 그런데 체육이 더 당당하고 인하가 숨어다니는 느낌이어서 그게 좀 거북했나 봐.”
“맞아. 학교에서도 체육이 집행유예 받았으니까 다 헛소문 아니냐. 선생한테 안 좋은 그런 소문 낸 애들 잡아내자는 소리까지 있었다니까.”
“그런데 집행유예가 뭔데 나오는 거야? 무죄인 거야? 그럼 진짜 죄가 없는데 우리가 오해한 거야?”
“그럴 리가 있겠어? 정부에서 감옥 유지 비용이 아까워서 적은 형량 나오는 범죄자들을 그냥 풀어 주는 거지.”
“그럼 나쁜 짓 한 게 맞는데 풀려난 거라고?”
“그런 엄청난 짓을 했는데 형량이 작아서 풀려난다고?”
“거기에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이런 성범죄는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하는데 피해자들을 손가락질하고 주홍글씨 새기니깐 그냥 피해받은 사실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그러더라. 친고죄 뭐 그러던데?”
“친고죄?”
“신고한 죄만 조사한다는 거야.”
“그럼 체육한테 피해당한 피해자가 더 많을 수도 있겠네?”
“원래 성범죄가 신고된 사건 수보다 배는 많을 거라던데?”
“그럼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걸 예상하면서도 그냥 두고 본다는 거야?”
“하긴 학교에서 인하가 하얗게 뜬 얼굴로 다니는 것 보면 나 같아도 신고 안 하겠다.”
“그래도 같은 학교에 같은 학급이면 제대로 알 텐데 왜 이렇게 되는 거지?”
“학교에서 헛소문이라고 일축하니까 선생들도 그렇게 말하고 아이들은 거기에 동조하는 거지 뭐.”
“잘못된 사실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거구나.”
“학교 입장에서는 가해자인 체육을 교사로 채용했잖아.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무슨 짓을 못 하겠어.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 정도는 별일 아니지. 오히려 언론사에 압박하는 게 더 큰 문제야.”
“언론사?”
“신문 말이야 신문.”
“뭐?”
“지역신문은 백신 재단이 꽉 잡고 있고 안남시 경찰청장도 몰랐는데 백신 중고 나왔다고 하더라.”
“그럼···.”
“자기가 다녔던 학교 ×칠하는 것도 싫고 학교에서 조심하겠다고 하니깐 언론 조용히 시키는 거지. 너 그···어쨌든 학교 못 나온 사이에 체육 기사 하나도 안 났어.”
“관심에서 멀어지게 한 다음?”
“빠르게 확정판결 내고 체육도 풀려나는 거니까 불만 없었지. 면직 조치에 불만을 표시 했지만, 학교에서 시끄럽게 해서 피해자 접근금지 받고 나니깐 언론에서 관심 가질까 봐 알아서 자중한 거고.”
“너는 어떻게 그렇게 아는 거야?”
“나도 들은 건데 현진이가 왜 소식통인 줄 알아?”
“응?”
“현진이가 신문 배달하거든. 오래 했을 걸?”
“아침에 아슬아슬하게 등교 하는 게···.”
“배달구역이 점점 늘어서 그렇데···현진이가 일하는 신문보급소가 인쇄소 일까지 하는데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거 들으면 가관이라고 하더라.”
“뭐?”
“신문사에서는 광고하나 더 받으려고 기사를 넣었다 뺏다 그래서 아예 시끄러운 사건 있으면 아예 한 구역을 빼고 우선 인쇄 준비한다고 하더라고.”
“진짜?”
“그 전날 나오기로 했던 기사 넣었다 뺏다 광고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그건 너무하잖아. 나는 이 사건 뒤로 내내 조용히 있던 게 인하 같은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현진이가 그래서 좀 냉소적이잖아? 그게 보고 듣는 게 그래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
충격으로 말문이 막힌 상태로 아무 말 없이 우리는 그저 걷고 또 걷기만 반복했다.
“오늘 너무 충격받았어.”
“나도···.”
“힘든 날이기는 했지.”
“이런 날일수록 잘 먹어야지.”
나는 눈에 보이는 정육점에 들어가서 고기를 주문했다. 많은 양을 주문하자 배달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오는 나를 종혁이와 경수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야, 그걸 어떻게 다 먹게?”
“글쎄?”
내가 개구진 표정을 지으면서 종혁이와 경수를 바라봤다.
한 시간 후.
우리는 종혁이 집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가족끼리 모여서 외식을 하곤 했기 때문에 익숙하게 준비가 되었다.
다만, 아쉽게도 경수네 부모님은 오시지 못하고 종혁이네와 우리 부모님 그리고 경수만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기는 넉넉했기 때문에 익힌 고기 중 일부는 종혁이 어머니가 경수네를 위해서 따로 빼고 있었다.
나와 경수는 테이블 위를 세팅하고 종혁이는 고기를 굽고 있었다. 주신 이는 이미 양껏 먹고 종혁이의 방을 자기방 삼아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7명이 먹고도 남는 고기는 종혁이 어머니와 어머니가 양념에 재워두겠다며 주방으로 가시고 종혁이 아버지와 우리만 남은 거실에서 우리를 차가운 음료를 먹으며 기름칠한 속을 달래고 있었다.
묘한 눈초리로 나를 계속 주시하는 종혁이 아버지 모습에 나는 음료를 다 마신 컵을 거실에 내려놓고 말했다.
“오늘 종혁이 어머니한테 도움 요청하는 전화 드렸어요.”
“나도 들어다. 무슨 피해자 학생을 도와달라고?”
경수가 마음이 다급했는지 급하게 끼어들 듯 말했다.
“그냥 피해자가 아니에요. 요번에 시끄럽게 했던 체육한테 당한 피해자라고요. 그런데 그런 인하가 체육을 살인했다니···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원한이 강하면 동기는 충분하지.”
“제가 볼 때는 남을 미워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미워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나는 경수를 통해 봤던 인하의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말했다.
“그냥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정말 나쁜 건 힘든 인하의 상황을 이용한 체육인데 어째서.”
“주변에서 다 자기를 비난하면 결국 스스로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흠···아무래도 어릴 때는 주변의 생각에 좀 더 빠르게 동조가 되지.”
“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같은 학교의 심리학과 교수가 연구 중인 내용인데···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겠지만 외국에서는 따로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심도 깊게 연구하고 있거든.”
“학교에서 그런 주변 반응을 일부러 만드는 것 같아요.”
“뭐? 그냥 방관한다고?”
“네.”
종혁이 아버지는 무표정이었지만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다만 그저 피해자를 걱정하는 아들과 아들 친구들 앞에서 분노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인내하시는 것 같았다.
‘저쪽이 치사하게 나온다며 이쪽도 마냥 정당하게 응수할 필요는 없지.’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평일이었기 때문에 경수를 데려다주기 위해서 종혁이 아버지가 자동차를 끌고 나오자 경수와 종혁이가 뒷자리에 타고 차가 출발했다.
“너는 안타?”
“엄마가 고기 재운다고 바쁘니까 누구 한 명은 주신이가 깨었을 때 옆에 있어야지.”
“아···그 일 때문에?”
“당분간은 조심해야지.”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조심해서 갔다 와.”
“어. 내일 학교에서 보자.”
종혁이와 경수와 인사를 하고 종혁이 아버지에게는 가벼운 목례를 하자 이내 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골목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익숙한 인형에 발걸음이 멈췄다.
“김 씨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