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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56화 (56/205)

<56화 평범한 삶의 무게2>

지금은 가족이 내 옆에 있고 친구들과 나를 둘러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홍익인간처럼 거창한 목표의식은 아니다. 그저 행복한 일상을 영유하면서 조금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건가?’

그렇기 때문에 대백공의 경고를 흘려들을 수 없었다.

‘이제야 평범하다는 거짓에 속지 않고 살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니.’

“얼마나 진심이길래 애가 표정이 이렇나?”

“게임 배경이 실감 난다잖아.”

“메이저 한 게임이 아니면 클리어하려면 이스터에 그 같은 걸 찾아야지 않아?”

“맞아. 밸런스 때문에라도 아무리 아포칼립스라고 밸런스 때문에라도 멸망을 막을 방법이 없을 수 없지.”

“그렇겠지?”

“물론 찾기 어렵겠지만 GM이나 도우미 같은 걸로 찾으면 되지 않을까?”

“게시판 같은데 나.”

‘역시, 대백공을 통해서 방안을 마련해야 하나?’

“그런데 너 이렇게 정신 놓고 있어도 돼? 아무리 게임에 열중해도 현실감각을 놓치면 안 돼.”

“맞아. 그거 놓치면 한순간에 게임폐인이라니까?”

나는 종혁이와 경수의 말에 머리가 차게 얼어붙는 듯 정신이 드는 걸 느꼈다.

‘그래, 대백공이 말한 멸망은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야. 결국, 내가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해서 허둥거린다면 회귀 전 삶처럼 결국 후회만 남을 뿐이야.’

종혁이와 경수의 게임에 대한 이야기, 반 전체를 감도는 소란스러움, 교실 특유의 오래된 집기 냄새, 그리고 따뜻한 인기척···.

한결 여유가 생기고 나니까 주변의 대화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잠 덜 깬 것 같더니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어···오늘 너희 아버지한테 감사하다고 전해줘. 아니면 정말 지각했겠다.”

“상중에 상은 개근상 아니겠어? 며칠 안 남았는데 삐끗하면 아깝지.”

“그래···고맙다.”

종혁이와 대화하다 보니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잘 안되는 경수의 모습에 질문했다.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은 게 내가 아니라 네가 지각할 뻔한 줄 알겠다.”

“인하가···.”

“인하가 왜?”

“뭐, 정확한 건 아닌데 어제 정신 차리자마자 자살 시도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애들이 체육 이야기는 하면서도 인하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고 있었구나?”

“뭐?”

이제야 정신을 차린 내가 봐도 반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어제 사건의 피해자가 된 체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는 거야?”

“현진이가···오늘 배달하는데 기자가 죽치고 있다가 백신중학교 학생이냐고 물어보면서 질문하다가 그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더라.”

“사실 확인도 안 된 걸 그냥 학생한테 질문해도 되는 거야?”

“후···그래서?”

“정확한 건 너희 오면 물어보려고 했지.”

“응?”

“주인이 외삼촌이 거기 의사라면서.”

“아···.”

“휴대폰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듯.”

내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자 종혁이가 그런 나를 보고 대단하다는 듯 손뼉을 친다. 뭔가 기분이 오묘한데 화를 내기도 뭐 한 반응이라 무시하고 떠들썩한 교실을 나가서 복도에서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신호음이 지나가고 외삼촌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외삼촌···.”

“주인이니? 자주 연락하라니까···이제야 한 번 하네.”

“하하 죄송해요. 요즘 주변 일이 정신없이 생겨서. 그래서 그런데 어제 입원한 인하요. 몸은 좀 괜찮아요?”

나는 전화가 끊어진 줄 알고 화면을 한번 살펴봐야 했다. 전화는 연결 중인 상태였다.

“하아···.”

깊은 한숨이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외삼촌은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환자 상태는 보호자 외에는 발설할 수 없다.”

“네?”

황당해하는 내 표정에 다급해졌는지 경수가 전화기를 뺏어들 듣지 들고서 외삼촌에게 질문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어제 경찰은 변호사가 잘 돌려보냈는데 언론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병원을 이곳저곳 염탐하면서 어찌나 일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지. 내가 환자 정보 누설하는 사람은 윤리규칙 위반으로 징계한다고 단단히 일러뒀다. 그러니 나도 지켜야지. 그러니깐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어. 단지 면회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했으니까. 하지만 걱정돼서 어제 병원으로 달려올 정도의 친구들이니까 면회시간 정도는 알려주마.”

“그럼.”

“다만, 면회 신청하는 건 자유지만 면회를 받고 안 받고는 환자의 의중에 따라서 갈리니깐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우리는 결국 전화통화로 알아낸 건 인하의 면회시간과 면회를 받을 정도로 회복은 되었다는 사실. 거기에.

“정말 그런 인간이 아빠라는 게 말이나 돼?”

“병원에 입원해서 경찰까지 왔다 갔는데 보호자가 안 나타난 거 사실이냐?”

“입원한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후우···.”

나와 종혁이 경수가 허탈해하면서 한마디씩 하다 결국 종혁이 어머니가 손을 써서 다행이란 결말이 이었다.

“외삼촌도 믿기 힘들어했잖아. 그래도 종혁이 어머니가 빨리 손을 써서 병원비라도 해결했으니 망정이지.”

“종혁이 어머니가 일 처리 속도가 다르다.”

“난 우리 엄마가 음식 할 때 손만 큰 줄 알았는데···손도 빠르네.”

“그러니까 능력자.”

“하긴 우리 아빠도 엄마가 하는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더라.”

“그거하고 이거 하고는 좀 결이 다른 것 같은데.”

“어쨌든 이따가 학교 끝나고 병원으로 바로 갈 거지?”

“그래야지. 주인이 넌 가능해?”

“아직 엄마가 마트를 그만두지 않아서.”

“정리하신다면서···?”

"그러려고 했는데 엄마가 그 마 둔다니깐 점쟁이 붙잡고 그만두지 말라고 난리래.”

“왜?”

“몰랐는데 엄마가 점장일까지 다하고 있었나 봐.”

“뭐? 점장일까지 할 정도면 급여는 더 받고 일하신 거야?”

“그러겠냐? 아마 엄마가 처음 인수인계받을 때 이것저것 다 시켜보고 잘한다 싶으니깐 점점 늘려간 거 같아. 주변에서는 그저 점장이 엄마 편의 봐준다고 생각하고 헐뜯었는데 실제로 이번에 그만둔다고 하니까 점장이 일 엄청 몰아준 거 알게 된 거지.”

“일 할 때는 그렇게 뒤에서 말 많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래도 그만두라고 말했지. 엄마가 일 더한다고 해서 급여를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주신이 전학 가면 거기까지 다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하긴 지금도 종혁이네로 이사 오면서 거리가 멀어서 힘들다고 하셨지?”

“출퇴근 시간만 줄여도 주신이하고 있는 시간이 늘 거라고 하소연하는 거 지나가다가 들었잖아.”

“어쩌다가?”

“너희 어머니한테 등 떠밀어 달라고 부탁했거든”

“우리 엄마?”

“응, 내가 아무리 말해도 다니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니까. 아무래도 엄마가 지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달리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갑자기 멈추라고 하면 그게 쉬울까? 차라리 바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게 더 힘든 삶에서 벗어나는 어머니만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자기 가게 얻어서 나가라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더 고민이신 거지. 사실 내가 말한 미니 스탑에 마음이 간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마트에서 점장이 할 일을 대신했다면 혼자서 미니 스탑은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래서 종혁이 어머니한테 등 떠밀어 달라고 부탁했다가 고민하시는 모습 보니까. 내가 너무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야. 이참에 정리하는 게 좋지. 그만둔다고 했다가 점장이 붙잡는다고 또 다닌다고 하면 거기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겠어?”

“점장이 자기일 많이 도와준다고 붙잡은 건데?”

“거기 마트가 말 많은 아줌마들 많은 곳이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거리가 좀 있어도 마트가 커서 엄마가 자주 가는데 한동안 안 갔었잖아. 뒤에서 생각 없이 말한다고 한동안 기분 나빠하시더라고.”

“어떤 말을 했길래 그래?”

“엄마가 말을 안 하니까···나도 모르지.”

“어쨌든 말 많은 곳인 건 알겠네.”

“엄마가 나하고 주신이 때문에 마트에서 일할 때 시간 조정을 많이 했나 봐···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미운털 박힌 것도 있을 테고···.”

“그럼···말 나온 김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네.”

“나도 그렇게 말하는데 자꾸 점장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붙잡으니까 또 기분이 그런가 봐.”

“하긴 있어도 그만이에요. 하는 것보다는 잡아주는 게 더 기분이 좋긴 하겠다.”

“주인이 어머니가 성격이 좋아서 잡으면 그만두실 수 있으려나?"

“성격이 좋은 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약해서 문제야.”

“갑자기 급발진이냐?”

“이번 일도 그만둔다고 말한 데로 밀어붙이면 좋을 텐데 마음이 약해서 붙잡는 데로 하루 이틀 자꾸 나가서 일하시니까.”

종혁이와 경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짜?”

“점장은 자기일 해주는 사람이 나가면 일거리 늘어나는 게 싫어서 그러는 게 눈에 보이는데 크게 말하지도 못하고···.”

“그런 걸 보면 우리 엄마가 참···대단해.”

“왜?”

“보험 일 한다고 했잖아.”

“사람 만나다 보면 별이 별일이 다 생기는데 우리 엄마가 일 처리 하는 것 보면 아주 칼이야. 칼.”

“사람 좋아 보이시던데.”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니다 싶은 건 딱 걷어 내는 거지.”

“보험 하다 보면 맘에 안 들어도 그냥 넘어가고 그러지 않아?”

“그런 거 말고 사람이 아니다 싶으면 딱 끊어낸다는 거지.”

“원래 아니다 싶은 사람은 딱 멀리하지 않나?”

“엄마가 그러는데 영업하면서 그렇게 하기 쉽지 않데···자기 정도 되니깐 강단 있게 하는 거라고 하던데?”

“대단하시다.”

“대단한 거야?”

잘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하는 종혁이에게 내가 덧붙였다.

“나도 잘 모르지만, 사회생활 하면서 그러기 쉽지 않지.”

‘잘 알지···사회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 게 그런 거지. 아닌 것 같은데 애매한 부분이 있을 때 끊어내는 게 가장 힘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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