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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57화 (57/205)

<57화 평범한 삶의 무게3>

기다리던 하교 시간이 돼서 다 같이 뛰쳐나왔지만, 평소와 다르게 우리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나는 집으로 향하고 종혁이와 경수는 병원으로 향하는 갈림길 버스정류장 앞이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주신이 점심으로 할 게···장이나 볼까?’

나는 평소와 다른 적막감에 머쓱하게 머리를 쓰다듬고는 평소와는 좀 돌아가는 길로 들어섰다. 아웃렛은 평일 낮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트가 있는 층으로 향해 익숙하지 않은 손길로 바구니를 채우고는 곧장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끝내고 봉지에 담긴 물건을 들고 마트를 나갈 때였다.

“주인이?”

마트 코너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당혹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넌···.”

“너희 반에 갔는데 너만 없더라···그다음에는 담탱이한테 한 소리 들어서 못 가고···괜찮은 거야?”

“아···걱정해줘서 고마워. 왔다 갔다는 소리는 종혁이하고 경수한테 들었어.”

지혜는 중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복을 입고 그 위에 크게 형광색 조끼까지 입은 모습은···

‘여기서 일하는 건가? 아직 미성년자인데?’

“뭐, 옷이 좀 그런가? 익숙해져서 난 교복보다 편해. 교복은 넘 작지 않니?”

“좀 작게 만들어져서 불편하기는 해.”

“그래도 바지로 만든 교복은 우리보다는 낫지 여자 교복은 여름에는 넘 얇아서 문제고···겨울은···?”

이야기하다가 나를 보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웃던 지혜가 나를 끌고 아웃렛에서 나와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길 쪽으로 나왔다.

“저 아줌마가 날 잡아먹으려고 해서.”

“아줌마?”

“같이 일하는 아줌마 있거든. 날 무척 싫어해. 왜 그런지 모르겠다니까.”

“여기서 일한 지 오래된 거야?”

“음···1년쯤?”

‘그럼 지혜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서 일하기 시작한 건가?’

“미성년자인데 써줘?”

“아주 좋아하지. 저 아줌마랑 일하는 건 똑같은데 임금은 절반도 안되거든."

“뭐? 그럼 다른 곳에서···.”

“다른 곳은 이상한 일 시키거나 아르바이트비 떼먹거나 그래서 그나마 여기는 아웃렛 매장이라서 그런지 적게 주긴 해도 따박따박 주거든.”

나는 어이없음을 느끼면서도 지혜가 학교에서 보였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의 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건···너무 하잖아.”

“너무한 일은 어디서나 있잖아. 그래서 난···.”

내 눈을 직시하면서 해맑게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면서 하늘을 보고 말았다. 하늘은 맑고 파랬지만 찬바람이 뜨거운 내 체온을 식혀주는 게 느껴졌다.

내가 눈을 피한 부분에서 기분이 상했는지 입을 삐죽거리던 지혜는 이내 나한테 무언갈 전하고는 급하게 마트로 들어갔다.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몰라서 이거 받아.”

“이건···.”

내가 지혜가 준 물건을 살펴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지혜의 뒷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휴대폰 고리?’

휴대폰이 생긴지 얼마 안 돼서 고리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핸드폰 고리는 투명한 끈을 솜씨 좋게 엮어서 만든 술이었다.

집에 어떤 정신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게 와서 해야 하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고 있었다.

씻고, 자르고, 기름 두르고, 볶고······

“형···형···타는 것 같은데 괜찮아?”

주신이 점심을 만들기 위해 볶고 있던 양파가 거의 녹아내리듯 캐러멜처럼 되어버렸다.

‘어···.’

나는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방향을 틀어서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형, 대박 카레 넘 맛있다. 방금 양파를 그렇게 오래 볶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양파는 오래 볶으면 단맛이 강해지거든.”

“근데 볶음밥 해준다고 한 거 아냐?”

“왜 카레는 싫어?”

“아니, 카레도 좋아. 그런데 형이 자꾸 딴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응?”

“아까부터 저기서 핸드폰 소리가 요란한데 한번을 확인을 안 하잖아.”

“뭐?”

나는 점심 먹고 치우던 그릇을 싱크대에 급하게 넣어놓고 허둥대면서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종혁이?’

“어, 무슨···.”

“야, 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미안, 동생 점심 해 준다고···.”

“후으···.”

“왜? 병원에서 무슨 일 있어? 둘 다 점심은 먹었고?”

“병원에 도착하긴 했는데···.”

“음?”

종혁이가 말하는 중에 경수가 휴대폰을 달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경수가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면회거절이래.”

“뭐?”

다시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종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병원 근처에서 점심 먹으면서 전화하는 거야. 여기···.”

“당장 병원으로 와.”

“뭐?”

갑작스럽게 경수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병원으로 오라는 소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말았다.

진정하라는 종혁이의 말 뒤로 다시 종혁이가 휴대폰을 잡았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경수가 많이 흥분해서 여기는 병원 앞에 햄버거 가게야. 너도 알지?”

“어, 거기? 그런데···.”

나는 주신이가 냉장고에서 내가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집어 드는 걸 보면서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주신이가 걱정돼서 그러면 엄마한테 맡기고 와. 지금 집에 계실 거야.”

“요즘 바쁘다고 하시지 않았어? 우리가 부탁한 것 때문에?”

“아직 사무실? 그런 거 못 구해서 아빠 집무실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깐 주신이 잠깐 돌바 주는 건 하실 수 있을 거야.”

나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 통화를 끊어져 버린 신호음만 어이없다는 감정으로 듣고 있어야 했다.

‘휴대폰 있는 거 철저하게 나하고 경수 앞에서 티 안 낼 때는 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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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에 도착하자 내가 햄버거 가게로 갈 필요도 없이 나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튀어나오는 종혁이와 경수에게 붙잡혀 연행되듯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집는 간호사의 표정에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경수의 말이 먼저였다.

“기인하환자 면회하고 싶은데요.”

“다시 말하지만, 환자가 면회를 일절 거부했어요.”

“왜요.”

“방금 전에도 설명한 것 같은데···.”

“여기 애가 여기 병원 의사 조카라고요.”

“네?”

당혹스러운 표정이 나와 간호사 얼굴에 동시에 스치자마자 나는 화가 나려는 마음을 다스리고 경수의 뒤에서 헤드록을 걸면서 말했다.

“너는 잠시 뒤에 보자. 응?”

경수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하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의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희 외삼촌이 여기 의사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면회하고 그러려는 건 아니에요. 제 친구가 좀 다혈질이라서 그런데 왜 면회가 거절되는 건가요? 몸이 안 좋아서? 아니면 환자 본인이?”

“그게···환자가 면회를 거절하는 거예요. 친인척이 아닌 경우에는 환자가 거절하면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곤란해하는 간호사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실례했다는 말로 자리를 벗어나 종혁이와 경수에게 싸늘한 표정을 보이면서 말했다.

“무슨 일인데?”

“경수 애가 자꾸 앞뒤 없이 굴어서 그런데 괜히 부른 게 아니야.”

말은 오히려 종혁이가 먼저 꺼냈다.

“···?”

“처음 병원에 가서 간호사가 한 설명에 이해하고 점심이나 먹고 집에 가자고 병원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었거든.”

“난 따뜻한 밥이 먹고 싶은데 자꾸 햄버거 먹자고 해서 그렇게 된 거지.”

나는 경수의 말에 종혁이를 쳐다보자 시선을 외면하고는 말했다.

“엄마가 햄버거 같은 패스트 푸드를 못 먹게 해서 기회가 되면 먹고 싶다고.”

“난 따뜻한 밥이 좋다고.”

“그래서 식당 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덩치 큰 사람 두 명이 지나가는 거야.”

“가게 문을 막고 있는 것 같아서 피하는데 두 명이 말하는 걸 들은 거지.”

“형사야.”

“형사라고?”

“말하면서 지나가는 게 인하를 잡으러 왔다는 거였어.”

“아니지 정확하게는 구속하고 있으니깐 이 건 빨리 끝나겠다는 거였지.”

“그래서 걱정돼서 경수가 저러는 거야.”

“내가 뭘?”

“진짜 모르겠냐?”

종혁이의 날카로운 째림에 경수가 딴짓을 하면서 다른 곳을 보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신병을 구속한다는 말이 나오니까 병실에서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 건지 걱정돼서···.”

“드라마가 사람을 망쳤지.”

“뭐?”

“아니 막 구타하고 그런 장면 나왔는데 최고 시청률 갈아치우고 있는 그 드라마를 안 본다고?”

“TV가 오래돼서 눈 나빠진다고 내가 못 보고 하고 있거든.”

“뭐? 우리 엄마인 줄.”

“어쨌든 그런 수사가 병원에서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무사한지 멀리서라도 보고 싶다는 거지.”

“하아···내가 정말···그래서 외삼촌이 여기 의사니깐 나를 부른 거고?”

앞뒤 생각도 없이 그저 나를 불러내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 종혁이와 경수가 어이없으면서도 피씩 웃음이 나왔다.

“야, 갑자기 왜 그래.”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버리자 당혹스러운 듯한 종혁이와 경수를 뒤에 두고 나는 외삼촌에게 전화했다.

엉망진창이고 논리적으로 설명도 안 되지만 친구들이 나를 의지한다는데 웃음이 나와버렸다.

“주인이니? 자주 연락하니까 얼마나 좋아. 하하.”

기분 좋은 웃음을 내비치는 외삼촌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본론을 꺼내고 말았다.

“외삼촌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이제까지 혼자 버티기 힘든 일을 옆에서 알게 모르게 도와준 외삼촌에게 다시 한번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게 힘들었지만, 친구가 나를 찾는 이 순간 모른척할 수 없었다.

“설마···기인하 환자 때문이니?”

“윽···벌써 알고 계셨어요?”

“입원실 간호사한테 연락이 왔었다. 친구들인 것 같은데 면회 관련해서 몇 번이나 오늘 방문했다고.”

“죄송해요. 그···면회는 안 돼도 잘 있는지만 확인할 수 없을까요?”

“환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별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가 긴장해서 외삼촌의 뒷말을 기다리자 이내 웃어버리고는 병원으로 오라고 말했다.

“외삼촌이 병원으로 오라는데?”

“면회 된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응?”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면회는 불가래.”

“그런데 병원으로 오라고?”

“뭔데?”

“나도 모르거든.”

나는 종혁이와 경수의 딴죽에 진이 빠진 상태로 병원으로 다시 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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