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80화 (80/205)

<80화 A와 B의 사이>

“주인아?”

내 옆에 걸레짝도 ‘너 같은 놈하고 같은 수준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라고 외칠 것 같은 비주얼의 송태연의 모습을 보고 놀란 외삼촌의 모습에 나는 송태연을 부축하면서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이게···무슨···.”

“여기 이 형이 깡패들하고 시비가 붙었나 봐요. 보고 그냥 올수 없어서 병원에 데리고 온 거예요."

“그건···주인이 너는 다친 데는 없고?”

“전 괜찮아요.”

공장에서 대차게 덩치들을 패던 내 모습을 봤던 송태연은 연신 옆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지만, 외삼촌은 많이 다쳐서 그런 것으로 알았는지 내 모습을 살피면서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요즘 세상이 험해서 걱정이다. 우선 이 친구 입원 수속 도와주고 내가 집에 데려다 주마.”

나를 걱정하는 외삼촌의 모습에 마음의 소리를 외치고 싶다는 표정의 송태연을 못 본척하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요즘 수술일정 때문에 바쁘다고 들었는데 불쑥 찾아와서 죄송해요.”

“아니야. 언제든지 와야지. 우선 이 친구 힘들어 보이니깐···.”

바쁘게 병원 안으로 의료진들을 불러모으는 외삼촌의 등을 보면서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난 지나가다가 너 주워다 준거다.”

“내가 무슨 개새끼냐? 주워다 주게.”

“어쨌든···그 찐× 패거리 선 없어 보이는데 구해줬으니까 대충 입 좀 맞춰줘.”

“진× 패거리? 크크큭 너 진짜 마음에 든다.”

다가오는 외삼촌에게 세상 선량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송태연의 옆구리를 쳤다.

윽.

하는 신음 소리를 무시하고 부축하자 자신에게 기대면서 낮게 말했다.

“알겠으니까. 부축 좀 살살할래? 지금 죽을 것 같거든.”

“안 죽어···내가 병원 데려왔으니까.”

“크흑···.”

웃다가 뱃가죽이 당기면서 상처가 아픈지 신음을 내는 모습에 의료진이 송태연을 데리고 사라지자 외삼촌이 내 앞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는 사람이니?”

“아···외삼촌 만나기 전에 초등학생 납치사건 있었거든요.”

“어···그 사건?”

“외삼촌도 신문에서 봤죠? 그때 사건 해결할 때 도와준 사람 중에 한 명···.”

“너 설마 그런 위험한 일에 또 연관된 건···.”

“아뇨···전 그냥 이형이 다친 거 병원에 데려온 거밖에는···.”

나는 어째서 인지 모르지만 변명하는 듯한 어조로 쩔쩔매면서 외삼촌의 질문에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으면 바쁜 시간을 내서 나를 데려다주기까지 하는 건 무리일게 뻔해서 항상 거절했다.

하지만 오늘은 집까지 태워다 준다는 걸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삼촌은 폭탄을 던졌다.

“이대로 주인이와 주신이를 이곳에 살게 할 수 없다.”

“오빠?”

“뭐가 문제든 오빠가 해결해주마. 도저히···.”

나와 주신이가 벙찐 표정으로 어머니와 외삼촌의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보고 있어야 했다.

어머니는 이대로 계속 대화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외삼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학교에 갔다 온 사이에 집은 이사하기로 결정되었다.

종혁이가 등굣길에 집에서 나오는 이삿짐을 보면서 놀란 표정을 말했다.

“너희 외삼촌 추진력이···.”

“나도 놀라고 있어.”

“어차피 며칠 있으면 방학이라 그때 이사한다고 한 거 아니야?”

“그런데 웃돈을 줘서라도 빠르게 이사 날 잡았다고 하더라고···평일이라서 가능했고.”

“어제 무슨 일 있어? 너희 외삼촌 막무가내인 사람으로 안 보이시던데?”

“아 그게···.”

어제 있었던 일을 각색해서 종혁이에게 말하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주 사건을 끌어당기는 구만. 네가 코×이냐?”

“내가 그렇게 어려 보여?”

“그럼 김××?”

“살인사건은 없지 않냐? 정말 그 정도로 살인이 주변에 일어나면 혼자 살아야지.”

“그런가···그래서 어제 구해준 형이 그 송태연이라는 사람이야?”

“너도 알아?”

“뭐 난 잘 모르지만···태권도 유망주로 유명했었는데 어느 순간 불량아로 낙인찍혀서 퇴학당하고 아르바이트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가족은?”

“내가 알기로 보육원 출신으로 들은 것 같은데?”

“뭐?”

“그래서 유명했거든. 보육원 출신인데 체육 특기로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 받고 운동하는 유망주라고 지역신문에도 나고 그랬어.”

“그런데 갑자기 퇴학이라고?”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솔직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 일이라···.”

“누구 자세히 알만한 사람 없을까?”

“그럼 현진이한테 물어보는 게 빠를걸?”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와 종혁이는 오현진을 찾아 교실을 둘러보았다.

의아스럽게도 현진이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경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뛰듯이 경수 자리로 다가갔다. 종혁이도 내 뒤를 다급하게 다가왔다.

“어?”

“안녕.”

“현진이?”

“내 이름 알아?”

“경수가 말해줬거든.”

“여기 경수 자린데···.”

“나도 알아 이거 넣어두려고 잠깐 앉은 거야.”

현진의 손에는 여러 신문사의 신문이 들려있었다. 그중에 몇몇 기사는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거 신문?”

“응. 혹시나 해서 챙겨오긴 했는데 역시 오늘은 등교 못 하나 보네···.”

“그거 인하사건 기사만 챙겨놓은 거야?”

“아무래도 그렇지?”

“같은 기사인데 여러 개 신문을 다 오려놨네?”

“한쪽만 보면 다른 쪽에 휩쓸리거든.”

“응?”

“이야기해도 재미없을 텐데?”

“뭔데? 말하다 말면 그게 더 싫거든?”

“내가 신문보급소에서 일하면서 느낀 건데···언론이라고 꼭 진실만 전하는 건 아니야.”

현진이 머뭇거리듯 하지만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나는 익숙하지 않은 짠 내음과 멀리서 들려오는 구슬픈 울음소리 그리고 동시에 악다구니를 쓰는 여러 명의 원망 어린 목소리가 귓속을 쨍하고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감각을 줄여서···.’

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이명을 들으면서 최대한 감각을 떨치는 듯한 느낌으로 흐름을 잡자 점차 흐릿한 오래된 사진 속 장면처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사진이 움직이는 듯한 이상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조금 감을 잡을 것 같은데···.’

이명이 섞인 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점차 소리가 선명해진다.

아주 어두운 검푸른 바닷물이 덮쳐올 듯한 방파제 사이로 현진이의 앳된 얼굴과 뒷모습에서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잡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아빠가 우리 다 버리고 도망친 거야?”

“너희 아빠는···.”

“그렇지만 재준이도 민주도 전부 나한테 배신자라고···나쁜 놈 자식이라고···.”

현진이가 훌쩍거리면서 울기 시작하자 울음을 삼키는 듯 여성이 목이 매인 목소리로 작지만 단단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변에서 전부 너희 아빠 매도해도···현진이 넌 잘 알잖아.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그건···.”

“아빠가 다른 선원들하고 탑승객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칠 사람이야?”

“아니···아빠는···아빠는······.”

모진 풍파를 이겨낸 듯한 여성은 현진을 꼭 안으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너희 아빠···아버지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어. 너무···차라리 뉴스에서 떠드는 것처럼 정말 배에서 도망쳐서 어디에서라도 살아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런 사람이 못 되는 거 알아서···흐···흡···.”

“울지마···내가 잘못했어. 아빠 이야기 안 할게요.”

“아니야···엄마도 현진이 아빠···보고싶어···정말로···살아와서···그래서······.”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듯 지지직거리는 TV 브라운관이 보였다. 화면은 깨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아나운서의 맑은 목소리만은 똑똑하게 전해졌다.

“1990년 10월 건조된 110톤급 철선인 서해 패리호는 1일 1회 정기 운항하였습니다. 정원은 승무원 14명을 포함, 221명이었지만 1993년 10월 10일 9시 40분경 362명의 승객과 화물 16톤을 적재하고 출발하였습니다. 10시 10분쯤에 해상에서 돌풍을 만났고, 회항하려고 뱃머리를 돌리던 도중에 파도를 맞아 심하게 흔들리면서 곧바로 전복되고 침몰 되었다고 합니다. 임수진 캐스터 현재 상황이 어떻죠?”

“저는 지금 서해 패리호가 침몰한 인근 항구에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봐와 같이 많은 유가족들이 피해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서···.”

“임수진 캐스터 그럼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안전하게 도주했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취재한 바로는 서울에서 선장과 비슷한 체구의 남성을 봤다는 제보자와···.”

“그렇다면 이들이 빨리 체포될 수 있도록 저희 채널에서도···.”

“승무원 전원이 수배······.”

“국민들의 제보로 빠른 시일안에 체포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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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화면이 감기는 듯한 모습과 함께 현진은 그저 넋 놓고 서 있어야 했다. 현진의 손을 꼭 잡아주던 여성은 다른 승무원 가족들과 함께 시신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현진은 두 다리가 굳은 듯 멀리서 카메라 앵글을 통해서 보듯 그 모습을 천천히 오래도록 하지만 잊지 않겠다는 듯 바라봤다.

“이건···말도 안 돼···.”

“아빠···아빠···.”

“살려내. 아빠 살려내라고. 너희가 아빠 살아있다고 말했잖아.”

“아악···.”

서해 패리호 선장의 아내와 딸의 외침이 허무하게 부둣가를 떨치고 지나갔지만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그저 지나가는 고깃덩이를 물어뜯고 버려지는 부산물처럼 사람들의 관심에 멀어져서 썩고 썩어버리는 악취와 진물처럼 그들은 울고 또 울 뿐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썩어들어가는 심장의 고통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않았다.

토할 것 같은 울분에 터질 것 같은 복장이 썩어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빙그르 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보는 현진의 모습에 순식간에 울렁거리던 심정을 정리해야 했다.

“언론도 편파적이고 오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들 간과하는 것 같아.”

종혁이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그렇지만 아빠는 항상 뉴스나 신문을 끼고 사는데?”

“언론도 사람이 하는 거기 때문에 자기 이익에 따라서 같은 사건도 다르게 말할 수 있거든. 너희 아버지가 뉴스나 신문을 자주 보는 건 그래서 일 거야.”

“같은 뉴스를 계속 보는 게 그래서라고?”

“어떤 방송사나 신문사에서 같은 뉴스를 거론해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거든.”

“그건 또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으음···말하자면 ‘컵에 물이 절반이 있다.’ 그건 사실이지. 하지만 A 언론사에서는 ‘컵에 물이 절반밖에 없다.’ B 언론사에서는 ‘컵에 물이 절반이나 있다’라고 보도하는 거지.”

“그게 무슨 차이야?”

현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나와 종혁이 얼굴을 보더니 이내 머리를 짚고 고심하다가 다시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설명하기 위해서 말하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응?”

“지금 난 백신 재단의 지원을 받는 지역 신문기자 입장이야. 그럼 체육 교사 일에 대해서 이렇게 쓰겠지. 여학생들의 순결교육이 시급하다?”

“너 미쳤어?”

“아니···이건 지역 신문사에서 쓴 거라고 이것 봐···이런 신문 내용 있잖아.”

“이거 기자가 미친 거 아냐?”

“그런데 실제로 쓴다고···.”

“그리고 여기 중심 신문의 작게 나온 신문기사보면···.”

“어···이건 그래도 정상이네.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문제인가? 사회적 안전망 학교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은 같은 사건이라도 이렇게 시각차에 따라서 다른 기사가 나온다는 거지?”

“그래. 그래서 언론 속성에 대해서 좀 느끼는 게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뉴스를 접하는 거지. 방금 종혁이 말처럼 말도 안 되고 기분 나쁜 기사도 보는 거야. 그래야 진짜 사건의 실체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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