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09화 (109/205)

<109화 마리오네트 2>

위협적인 내 접근에도 시선도 주지 않던 그녀가 아이들 이름에 반응하듯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알 수 없는 신음과 함께 주저앉았다.

나의 갑작스러운 움직임과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들에 대한 질문에 놀란 건 허깨비 같은 그녀가 아닌 내 양옆의 친구들이었다.

“너 갑자기 왜 그래?”

경수의 질문에 대답을 한 건 내 앞을 막아선 허 경장이었다. 내가 지하 깊은 곳 상처입은 짐승 같았던 신음에 홀린 듯 화장실에서 마주한 저 여자의 기억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종혁이가 허 경장을 부른 것 같았다.

“주인이 너 해인이 엄마 얼굴 알고 있었니?”

“네? 저 아줌마가 오늘 우리가 찾아다니던 해인이 어머니라고요?”

“그래. 나도 오늘 주인이 신고에 발 빠르게 찾아다녔는데 아무래도···늦은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허 경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종혁이와 경수를 보더니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어차피 경찰서로 와서 목격자 진술해야 하니까 말해주는 건데···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무슨 일인데요?”

“지금 안남시 외곽순찰차에서 연락 왔는데 모텔에서 해인이하고 해아가 죽어있는 채 발견되었어. 두 아이다 영양실조로 보인다는 소견하고 함께···.”

“말도 안 돼. 정말 애들을 굶겼다고요?”

“친자식이 아니라고 해도. 먹을 것도 안 주는 건 말도 안 되는···."

“후···정확한 건 아직···사인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 다만 애들이 한눈에 영양실조인 걸 확인할 정도라는 게···.”

내 귀로 들리는 대화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가져다 바치고 좋은 인생을 보장받을 거라고 믿은 저 미련한 여자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의 기억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거친 내 숨소리에 대화를 나누던 허 경장이 나를 부축하면서 종혁이와 경수에게 말했다.

“주인이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까. 집에 데려다주고 올게. 너희는 경찰서에서 목격 진술하고 있으면 내가 데려다줄게.”

“저희는 괜찮아요. 부모님 불러도 되고 주인이 잘 부탁해요. 오늘 충격이 큰 것 같아요.”

허 경장이 안전벨트를 메라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내 핏기 없는 안색을 걱정스럽게 보더니 운전에 집중했다.

미니스탑 오픈으로 바쁜 어머니가 자리에 없어서 걱정스러운 말을 하는 허 경장을 보내자 적막한 집이 나를 반겨줬다.

“익숙하네.”

아무도 없는 빈집은 나에게 익숙했다.

오히려 집에서 따뜻하게 누군가 나를 반겨주고 걱정해주는 지금의 일상이 나에게는 특별했다.

내방에 눕고 눈을 감자 다행스럽게도 대백공이 있는 장소였다.

‘오늘 같은 날 혼자라고 생각하면···.’

오늘 있었던 힘들었던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서 한번 거칠게 털어낸 나는 대백공이 서 있는 오두막을 향했다.

걷고 있지만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당황했을 때 대백공이 나에게 시선을 준 순간 나는 대백공의 앞에 서 있었다.

“어린 친구 오늘 인형술사를 만났구먼···.”

“인형술사요?”

“다른 이의 삶을 침범하는 이들이지.”

“인형술사는 타락자인가요?”

“흐음···. 그들은 타락자가 아닐세. 그저 욕심 많은 평범한 인간들이지.”

“네? 한 가족의 삶이 아니 그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무참하게 죽었는데···이 일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타락자가 아니라는 건가요?”

“인형술사로 인해서 인생을 망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런 이들을 타락자로 분류하기는 힘들다네.”

“네?”

“바로 옆집 사람일 수 있고···매일 보는 친구일 수도 있고···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부모일 수도 있지···.”

“그게 무슨···.”

“인형술사 말일세.”

“···.”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편한 직장에 편한 일을 하기를 바라는 인형술사지.”

“부모님이 인형술사라고요?”

“아니라고 부정하는 인간들이야 넘치지만, 진짜 자녀를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하는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 것 같은가?”

“네?”

오두막 아래의 흙을 한 줌 집어 든 대백공이 말했다.

“이 넓은 땅 위에 많은 이들 중 자신의 자녀를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대우하는 인간은 한 줌의 흙보다도 적다네. 오히려 소유물이나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하는 방향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인형술사가 바로 옆집 사람일 수 있고 매일 보는 친구일 수도 있다는 건···.”

“다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지. 그런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지킬지 아니면 주위 사람의 시선이나 말에 자신의 삶을 흔들면서 살지는 자신의 선택이라네.”

“선택···.”

“인형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지. 그 끝이 파멸뿐이라고 해도 고민도 하지 않을 테고 그런 삶을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네. 그렇기에 인형술사가 타락자가 아니라네. 균형을 무너트릴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지.”

“균형을 어그러트릴정도가 아니면···.”

“순리인 거지.”

“그게 어떻게 순리가!!”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도 대백공은 그저 허허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인형술사는 남의 인생에 관여하고 영향을 주는 것을 즐긴다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하거든. 틀린 말도 아니지. 자신의 삶은 확실히 이롭게 될테니까. 그 영향으로 다른 이의 삶이 망가지는 건 그들의 일이 아닐테니 말이야. 물론 인형술사에게 삶을 맡긴 이들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 일제 강점기에 저항해서 고문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삶처럼···누구나 눈을 감고 이런 부당한 행동이 당연시되는 시대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서 결정했던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산 것이네. 그렇지 못하고 외부의 힘 또는 인형술사의 생각에 휘둘린 이들은 그들만의 인형으로서의 삶을 산 것이고 말일세.”

“···.”

“인형술사가 만들어준 정해진 틀에서 삶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선택한 것은 그들 자신일세. 선택권이 없다면 모를까 그런 선택을 했다면 그에 대한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렇기에 인형술사는 타락자가 아니라 순리에 의해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간 삶의 모습 중 하나일세.”

“그런 인형술사에게 조종당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해인이와 해아는 무슨 죄인가요?”

“죄가 있겠나? 그저 인연보다 악연을 먼저 만난 것이지.”

“오늘 죽어버린 아이들은···도대체 언제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난다는···!”

“그건 하늘만 알겠지.”

“너무 불공평해요. 어떻게···어떻게···.”

“그럼 자네는 삶이 공평하다고 생각했나?”

“네?”

“자네가 회귀를 해서 지금의 삶을 사는 건 공평한 기회라고 생각하나?”

“···.”

“삶은 누구나 불공평하고 그 불공평에서 살아남는 걸 전제로 한다네.”

“어째서 불공평하게 시작해야 하는 겁니까? 그게 순리라는 건가요?”

“흠···대답하기 어렵지는 않지만 시시한 질문이군.”

“어째서 시시한 질문이라는 겁니까?”

“시시한 질문이라고 말한 건 자네가 아직 세상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나의 작은 아쉬움을 표현한 거라고 말할 수 있지.”

“···.”

“나 같으면 지기가 소모되고 있는 이런 귀한 시간을 시시한 질문으로 보내지 않겠지만 자네가 대답을 원한다면 안 할 이유도 없지.”

“···.”

“인간의 삶이 다른 존재들과 다르게 흥미로운 점은 같은 인간이라는 종이여도 인생이란 삶의 행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일세. 보통 종이 비슷할 경우 비슷한 삶을 사는 것과 아주 다르지.”

“그건···.”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네···같은 시작점 공평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불공평으로 가거든···왜 그렇게 되는지 아는가?”

“어째서···.”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세···. 즉, 합리적으로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결정할 결과조차도 자기 파멸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선택하고 말지.”

“네?”

“죄수의 딜레마라고 아는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추정되나 아직 확인은 되지 않은 용의자들이지. 어떤 범죄를 함께 저질렀다고 짐작되는 두 용의자에게 담당 검사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네. ‘지금부터 당신들을 떼어놓고 심문하게 될 텐데, 만약 둘 다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면 비교적 가벼운 형벌인 징역 3년을 구형하겠소. 그런데 한 사람은 순순히 자백했는데 다른 사람이 부인한다면, 자백한 사람은 정직에 대한 보상으로 방면해 주려고 하나 부인한 사람은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구형하려 하오. 만약 둘 다 부인한다면 당신들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을 걸어 징역 3개월을 구형하도록 할 작정이요.’ 만약, 이 두 용의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가장 가벼운 형벌만 받을 수 있을 것일세. 서로 자신이 배신당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결국 자백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지. 인간이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한다는 것일세.”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

“차라리 동물은 살기 위해 먹어도 독이 든 음식은 먹지 않지만···인간은 그것이 독이 든 성배 라고 해도 자신의 욕망 때문에 참지 못하지. 참 흥미로울 뿐이야.”

“독이 든 성배라고 하면···.”

“타락자가 독이 든 성배인 거지. 당장의 힘을 얻기 위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걸 알아서 그 선택을 하는 존재···.”

“아···.”

“더 흥미로운 점은 인간들은 불공평하다고 신을 원망하는데 신은 공평한 기회를 나눠줬다는 걸세.”

“네?”

“단 한 번뿐인 삶 그것이지.”

“···.”

“그렇기에 자네가 불공평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한다면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겠는가? 불공평한 삶의 기울기만큼 자네는 우대를 받은 것이니까.”

“···.”

“그리고 인간만큼 불공평한 세상을 원하는 존재들이 없다네.”

나는 대백공의 말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신음 같은 쇳소리가 올라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