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
집에 오자 오랜만에 집안에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음식 냄새가 감돌았다. 익숙한 김치찌개 냄새였다.
매번 먹는 음식이지만 질리지 않았다.
“형 왔어?”
“웬일로 집에 있냐?”
“오늘 엄마가 할 말 있다고 저녁은 같이 먹자고 집에 일찍 오라고 했거든.”
“그래?”
“기주 엄마는 매번 불고기에 계란말이하고 찌개도 막 못 들어 본 거 만들어주는데···형도 한번 먹으러 와.”
“음? 기주 어머니가 요리 잘하시나 봐?”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요리 연구하는 거 좋아하는데 저번에는 불고기를 이렇게 말아서 구워주는데 완전 맛있었어.”
잘 먹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닌 듯 볼이 통통한 주신이의 볼을 한번 꾹 눌러주고는 화장실에서 씻고 나왔다. 식탁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손이 많이 가는 반찬들로 한상 차려져 있었다.
“오늘 저녁 만드는데 너무 힘내신 거 아네요?”
“오랜만에 아들들하고 시간 보내고 싶어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어야 같이 저녁 먹니? 우선 식겠다 먹자.”
나는 김치찌개를 크게 떠서 먹고는 햄 부침과 멸치 볶음까지 같이해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식혜를 한잔 씩 따라준 어머니가 거실 소파에 앉으면서 TV를 끄더니 말을 하셨다.
“이번에 해인이, 해아 사건 듣고 놀랐어.”
“저도 놀랐어요.”
TV를 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주신이가 내 옆에 제대로 안더니 어머니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주신이의 행동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머니를 향해 대답했다.
“그리고 많이 반성했어.”
“···?”
“아니···내 말은 해인이, 해아 사건에 엄마가 관여를 했다는 게 아니라···음···뭐랄까···. 해인이 엄마가 남의 말을 듣고 아이들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했잖아···. 그런데 나는 그런 짓까지는 아니지만 남의 말을 듣고 너희에게 뭔가 강요하거나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엄마···엄마가 그럴 리 없잖아요.”
“아니야···. 엄마도 사실 옆집 아줌마가 애들 몸에 좋다고 흰 우유에 계란 노른자 타서 줬잖니? 주인이나 주신이가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에 좋다니까···.”
“···?”
“그런데 그런 거 전부 옆집 아줌마 생각인 거지. 사실 그게 이론적으로 좋다고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우유하고 계란이 좋으면 따로 먹이면 되는 거지. 그걸 굳이 너희가 역겨워하는데 같이 준 나도 미친 것 같고···.”
“네?”
“내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너희 외삼촌한테 말했더니···바보냐고 불같이 화내면서 괜히 아이들에게 트라우마 줄 행동하지 말고 우유하고 계란이 좋으면 따로 먹이면 되는 게 아니냐고 그 말을 들으니까 정신이 확 들더라···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주신이는 이제 날 계란을 흰 우유에 타서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살 것 같은지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뛰어오를 것 같았다.
“엄마가 바보 같았어. 뭐가 씐 거지. 그저 너희 몸에 좋다고 그런···조금만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이번에 해인이 엄마가 그런 정신 나간 짓을 아는 아줌마가 시켜서 했다는 소식 듣고 정말 미칠 것 같았어. 엄마가 너희를 위한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걸 시키고 너희는 엄마가 한 말이라고 억지로 따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엄마···.”
주신이가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슬프지만 그래도 날 계란을 흰 우유와 섞어서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섞인 말로 불렀다.
“내가···. 엄마가···.”
그런 주신이의 모습에 자신이 진짜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머니의 표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엄마도 처음이잖아요.”
“응?”
“엄마도 우리 엄마가 된 건 지금 삶을 살면서 처음인 거잖아요. 저하고 주신이한테 잘못되라고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우유 처음부터 안 마셨어요. 저는 몰라도 주신이는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요.”
“주인아?”
“그리고 엄마가 저하고 주신이에게 나쁘게 하려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엄마가 우리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을 이용한 옆집 아줌마가 나쁜 거죠. 물론 이제 다시는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요.”
어머니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나와 주신이를 바라봤다.
“엄마가 우리 엄마 하는 게 처음이라서 실수할 수도 있고 그래서 지금처럼 실수해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실수를 만회해야 하는 일도 있을 거예요. 지금 그 역겨운 우유처럼요.”
역겨운 우유라는 내 표현에 진짜 지신이 한 행동을 돌아보는지 어머니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지만 나는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역겨운 우유···.”
“진짜 그건···.”
주신이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온몸에 경기를 보여줬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정말 어떤 짓을 하려고 했는지 느꼈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실수나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그런 실수나 실패에서 일어나는 건 누구나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게···무슨 말이니?”
“엄마는 엄마가 선택했던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지금 그 실수에서 돌아보면서 이제 저하고 주신이에게 줄 음식은 정말 스스로 맛있다고 생각되는 걸 주실 거예요. 본인도 못 먹는 걸 건강하다는 이유로 들이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정말 이번 일은 너희에게 미안해.”
“그런데 실수나 실패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음?”
“이번에 해인이 어머니처럼 모든 선택을 남이 해주는 경우에는 실수나 실패에서 절대 돌아오지 못해요. 그게 아무리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도 결국 시키는 대로 밖에 못하는 사람이 된 거니까요.”
“주인아···?”
“저는 저나 엄마 주신이 전부 그런 사람이 아닌···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
“실수나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특히 주신이처럼 어린 나이 그리고 엄마처럼···처음 엄마를 해보는 사람은요. 하지만 그 처음이 무섭다고 남에게 선택을 넘기게 되면 결국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겠지만 그게 제대로 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형?”
나는 주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난 주신이 네가 뛰다가 넘어져도 씩씩하게 제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 씩씩해. 혼자서도 잘 일어난다고.”
나는 그런 주신이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면서 어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신이나 저에게 넘어질 수 있는 기회를 뺏지 말아주세요.”
“어···?”
당황한 어머니의 표정에 나는 못을 박듯이 말했다.
‘모든 부모는 인형술사라고 했던가···.’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결정하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인아···?”
어머니는 한참 말없이 바닥만 바라보다가 나와 주신이를 동시에 시야에 담더니 슬프게 웃으면서 팔을 활짝 열었다.
주신이가 폴짝 소파에서 뛰어내려 달려가고 나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 어머니 품 안에 숨듯이 안겼다. 이미 어머니보다 훌쩍 큰 나였지만 이상하게 어머니 품 안은 대해보다 넓은 것 같았다.
“주인이하고 주신이가 무슨 결정을 하든 엄마는 언제나 지지할 거야. 그리고 아파서 넘어지면 일어날 수 있게 언제든지 손을 내밀 거야. 부모가 자녀가 힘들 때 손을 내미는 건 당연한 거니까 이것까지 막지는 말아주렴.”
“제 말이 엄마를 아프게 했으면 미안해요. 하지만 꼭 말하고 싶었어요.”
“아니야. 지금이라도 알아서 엄마는 기뻐. 주인이 말처럼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라서 모르는 게 있었어. 근데 그게 이렇게 중요한 부분인 줄 이제야 알아서 그래서 미안해.”
“아니에요. 엄마가 엄마라서 전 정말 좋아요.”
“나도!”
주신이의 외침에 나와 어머니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다.’
모든 부모는 인형술사라고 대백공이 말했다.
하지만 부모라는 인형술사가 자식에게 잘못되라고 인형술사 노릇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번 자유형이라는 사람의 부모 같은 사람도 있지만···.’
어머니는 나와 동생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날 계란을 흰 우유에 타서 줬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하지만 어린 동생이 먹기에는 역겹고 배탈이 나기 딱 좋은 음식이었다.
이 음식을 권유한 옆집 아줌마는 갑작스럽게 넓은 평형에 자신보다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가 부모 말 잘 듣고 이번에 성적까지 잘 나온 아들을 키운다는 사실에 심술을 부린 것이었다.
‘아마···내가 반항을 하고 집에서 큰소리가 나길 바란 것이겠지.’
물론 어머니가 나쁜 의도로 나와 동생에게 그 역겨운 걸 먹이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우리가 건강해진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와 동생에게 그 역겨운 걸 먹이려고 한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가 잘못되라고 그런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피해를 준 것이다. 어떤 특정 음식에 혐오감을 가지게 만든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대백공이 모든 부모는 인형술사라는 말에 밤잠을 설치면서 악몽을 꾼 것이다.
‘어머니가 인형술사라니···.’
그런 고민은 친구들을 만나서 명문대학생 살인사건에 대해서 듣고 나니 어머니가 인형술사라는 말에 대한 충격보다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래도 나와 동생을 학대하지 않고 키워줬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은 자신의 악의는 교묘하게 숨기면서 조정하려는 인형술사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일이 들키면 그저 장난이었다는 말로 넘어가는 작은 악의를 던지는 이들 말이다.
‘이런 악의를 던지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러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눈을 감자 익숙한 공간이 나를 반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