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태풍의 눈3>
인적이 드문 산길을 타면서 시외버스가 달리는 도로를 내려다봤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진 버스를 타면 편하게 운산까지 갈 수 있었지만 행적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 때문에 산길을 타고 안남시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안남시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산을 타고 달려가도 지기 소모가 없겠지.’
안남시를 벗어난 다음 운산을 향한 기타를 탈 생각이었다. 운산으로 바로 향하는 기차는 없지만 운산 근처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도 되고 아니면···
생각이 길어지는 사이에 안남시 끝자락을 넘어섰는지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산골짜기 물이 강하고 합쳐지는 줄기에서 물맛이 변하는 느낌이랄까?’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마시는 공기가 변한다고 해야 할지 내가 술법으로 강화된 육체를 가지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다.
‘여기서부터는 에너지를 아껴야지.’
대백공이 말한 배터리가 충전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산을 타던 나는 시외버스가 다니던 눈여겨본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버스정류장이 하나쯤 있을 줄 알았지.’
인적이 드문 아는 사람만 타는 정류장이기 때문에 외지인인 내가 타면 버스 기사가 나를 기억할 수 있겠다.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산행용 상 하의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가벼운 배낭을 멘 상태였다. 외지인이지만 산행을 즐기는 사람으로 평범한 산악인으로 보이는 차림새였다.
버스가 출발하고 기차역에 도착하자 나와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동선을 들어낼 필요도 없었지만 이렇게 주의하면서 다닌 적은 손에 꼽힌다.
‘단순한 일이었다면 김 씨 아저씨가 나를 찾아왔을까? 분명 심상치 않은 사건에 재민이가 휘말린 거다.’
나의 안전보다는 내가 재민 일에 같이 휘말렸을 때 가족에게 위험이 가지 않도록 나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을 통제하는 게 중요하다.
‘김 씨 아저씨가 괜한 경고를 할 이유가 없겠지.’
기주의 사건도 어떻게 보면 기주 가족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정치적 입지가 생긴 덕분에 자신이 계획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삶이 내동댕이 쳐지는 것만큼 기분이 더럽고 위험한 일은 없다.
‘나 하나로 끝나면 다행이지···기주 아버지처럼 가족이 사건에 같이 휘말려 들어가는 경우가 무서운 거지.’
나는 기주 사건을 되새기면서 심상치 않을지도 모르는 일에 접근할 때는 철저하게 동선을 숨길 요량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지만 이제 덩치는 웬만한 성인은 내려다볼 정도로 컸기 때문에 등산복 차림에 등산용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나를 학생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미리 준비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음악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미세하게 주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 자체가 이전과 다르게 감각을 칼날처럼 예리하게 하지만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감각을 감지하는 한계를 올리기 시작했다.
천장에 떨어지는 물방울까지 감지할 정도로 감각의 한계를 올렸다가 필요한 이상 에너지를 쓴다는 생각에 감각의 기준을 좀 예민한 정도로 내리고 눈을 뜨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사이 비가 그쳤는지 노상은 빗방울이 씻고 나간 모양새였지만 우산 없이 걷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차갑다.’
기차역을 나서서 미리 확인했던 버스를 기다리려고 정류장에 가보니 내가 알아봤던 시간대와 다른 시간대로 변경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있다면 빠르게 검색해서 미리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버스를 기다렸다. 운산 자동차 전문 공업고등학교 근처에서 내렸다.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가 나를 기억할 확률이 높아서 대중교통을 통해서만 이동했더니 이동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대백공의 술법에 필요한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지만 않았어도 달려서 한두시간이면 도착할 곳인데···.’
아쉽지만 운산시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데 술법에 필요한 에너지를 남용할 수 없었다.
미리 숙지했던 지도는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재민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운산시에서도 외곽에 크게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등산객 차림의 내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지만 산을 좋아하는 외지인들이 찾을 만한 풍광을 보여주는 산자락이 고등학교와 인접한 곳에 산길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재민이가 말해줬던 이야기를 기억한 덕분이지···.’
재민이와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의 친구들끼리 만난 상태였기 때문에 재민은 학기 초에 많은 연락을 했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
당시에는 별로 깊은 생각 없이 들었던 문장 하나까지도 기억책 속에서 찾아내 운산시와 재민의 고등학교 전경을 그려내 위화감 없이 조사할 수 있는 차림을 고심한 것이었다.
‘평일에도 등산객을 많이 봤다고 했었지.’
고등학교 앞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분식들이 늘어선 가게 앞을 지나다가 학교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백반집에 들어가 식사를 시켰다. 방학기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겨울이라는 날씨의 특수성 때문인지 가게에는 나를 제외하면 손님이 없었다.
나는 모자를 벗지 않고 시킨 백반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주인이 후식으로 식혜를 내려놓을 때까지 아무런 특색이 없었다.
“음식이 맛있네요.”
“감사해요. 여기가 숨은 맛집이죠. 요 앞의 학교 선생님들이 자주 와요.”
“학교가 커 보이는데 학교 안내 구내식당이 없나요?”
“기숙사 학교여서 큰 구내식당도 있죠. 하지만 구내식당에서는 술을 못 마시잖아요.”
“아···.”
“그리고 술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수정과 한 잔씩 내주는 백반 생각난다고 단골도 많아요.”
“그런데 오늘은 손님이 저밖에 없네요.”
“겨울방학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 학생이 실종됐는데 학교에서 좀 대처하는 게 이상하다고 단골 선생님이···.”
“대처가 이상하다고요?”
백반 주인은 자신이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화제를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백산 찾아오신 등산객이시면 산행 들어가려면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늘 버스 시간을 놓쳐서 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자고 일찍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긴 이번에 버스 시간이 갑작스럽게 바뀌어서 여기 살던 주민들도 헷갈린다니까요.”
“버스 시간이 근래에 바뀐 건가요?”
“갑자기···물론 다들 근처에 사니까 맞춰서 나가면 되기는 하는데 왜 바꾼 건지 이유도 몰라서···.”
“자주 있는 일이 아닌가 보죠?”
“버스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시간대가 바뀌면 이런 작은 도시에서는 큰일이죠.”
“음···.”
“그것 때문에 말이 많다니까요.”
학교에서 대처가 이상했다는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묻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만 콕 집어서 물어보면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지금 하고 있는 대화도 멈춰버릴게 분명해서 말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백반 집에서 학교에서 대처가 이상하다는 선생이 있었다는 것과 버스 시간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는 정보 외에는 옆집에 대한 험담이나 갑작스럽게 추워지는 날씨에 대한 한탄만 길게 듣고 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은 옆집에 대한 험담 사이에 이곳에서 머물만한 숙소를 들을 수 있었지만···.’
유명한 산맥의 한 자락이 내려온 곳이어서 민박이나 여관은 몇군데 있었지만 내 동선이 남는 게 마음에 걸렸던 나한테는 유용한 정보였다.
‘여기 근처에 텐트를 치고 낚시를 할 만한 저수지가 있다고 했지.’
낚시꾼 중에는 밤새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어서 낚시터에서 텐트도 대여를 한다고 했으니 민박이나 여관보다는 내 흔적을 덜 남기고 움직일 방법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옆집 아저씨가 낚시 광이어서 매번 부부 싸움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고 했던가?’
백반 주인의 수다에 따르면 낚시에 푹 빠진 남편들을 찾는 부인들이 종종 낚시터에 텐트 예약 상황을 묻기 때문에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텐트를 예약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물론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그걸 알아낸 부부가 싸우게 된 이야기였지만.’
덕분에 가명으로도 쉽게 구할 숙소를 정한 나는 해가 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낚시터에 해가 저물고 낚시꾼들이 낚시 대를 걸어놓고 텐트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텐트에서 나왔다.
겨울이라서 추운 날씨라 사람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예상외로 세 명의 낚시꾼이 낚시터에 있었기 때문에 술법을 써서 인기척을 죽이고 텐트촌을 벗어났다.
거리가 멀어지자 극도로 올렸던 감각을 좀 낮추고 낮에 봤던 학교를 향해 달렸다. 분명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어둠 속이었지만 밝은 달빛 하나만으로도 시야 확보가 충분히 가능한 나였기 때문에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이정만 아저씨도 학교의 대처가 좀 이상하다고 했어. 오늘 백반집 주인이 말한 이야기까지 하면 이상하다고 말한 내부의 선생도 있다는 거고···.’
원래는 학교부터 조사할 생각은 없었지만 백반 주인의 흘리듯 말한 말이 마음에 걸려서 어두운 밤 학교 부지 근처로 향했다.
‘아직 CCTV가 많을 시기는 아니니까. 학교도 정문이 아닌 담벼락을 넘어서 가면 될 거야.’
그런 나의 기대는 학교 근처에 와서 실상을 파악하자 생각보다 학교를 둘러싼 CCTV의 개수에 학교를 한 바퀴 반 이상 돌아야 했다.
‘생각보다 CCTV가 많다.’
학교로 향했을 때 내 생각보다 CCTV의 사각이 보이지 않아서 학교 주변을 서성였던 걸까?
새벽의 차가운 공기 사이로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멀리서 타박처럼 들려왔다.
“내가 말이야. 지금은 말이야.”
약주를 좀 심하게 걸친 듯 시끄러운 술주정 소리에 나는 학교 앞에서 서성이던 몸을 어두운 골목으로 숨겼다. 발소리가 가까워진다고 느낀 순간.
“나오라고.”
‘설마?’
“거기 너.”
나는 술 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골목길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남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