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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51화 (151/205)

<151화 외로운 삶2>

“돌아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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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등학생이지만 나는 인생의 절반을 이미 살아보지 않았던가.

좋았던 인연···

나빴던 인연···

내가 실수했던 인연···

상대가 실수했던 인연···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부딪치며 만나고 싸우고 함께했던 삶···.

어쩌면···

누군가 나를 절벽에서 밀지 않았어도

이미 나는 절벽 끝자락에 서 있던 상태가 아닐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 받는다고 하지만

치유 받기까지 받을 상처가 너무 아파서 나는 내 상처 흉터를 숨기고만 있지 않을까?

종혁이가 유학을 갔을 때 외로웠던 건

아무것도 아니던 경수와도 계속 진정한 친구로 남아 있어 줬던 그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친구라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친구로 남아줄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

하지만 내가 한발 멀어졌을 때 술법을 통해서 자신을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지 종혁이가 의심을 했던 것처럼

정작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그대로 들여내보일 생각이 없는 건 아닐까?

생각이 깊어지고 복잡해질수록 김 씨 아저씨의 말이 내 머리를 울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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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의 상념을 비집고 김 씨 아저씨의 말이 들려왔다.

“누군가는 나를 지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겠지.”

김 씨 아저씨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참 말이 없었다.

그저 밀크티를 다 마시고 캔을 접어서 비닐봉지에 넣을 뿐이었다.

‘김 씨 아저씨도 누군가 이미 떠나버린 외할아버지가 아닌 누군가 자신을 지지하고 믿어주는 존재가 필요했던 걸까?’

한참 말이 없던 김 씨 아저씨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말은 없었지만 나도 다 마신 밀크티 캔을 김 씨 아저씨에게 넘겼다.

캔은 처음 꺼냈던 가방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이전까지 약간의 거리감과 일 적인 만남이었다면 지금을 기점으로 달라진다는 의식처럼 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바람을 빼고 넣었다.

그리고 김 씨 아저씨는 자신의 삶 일부를 내게 보여주었다.

“임시 거처에서의 음식은 전부 자신이 준비해 놓은 걸로 먹어야 한다.”

“네?”

“자신이 가지고 온 물건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수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검은색 비닐봉지가 좋다.”

“왜 그런 말씀을···.”

“한 번쯤은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거나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거야 전 술법을 통해서 김 씨 아저씨와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봤···아···.’

내 입장에서는 김 씨 아저씨와 외할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힌트를 술법을 통해서 봐서 김 씨 아저씨가 어떤 일을 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사장님에게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하지만 마지막 임종에서···.”

나는 외할아버지와의 너무 짧았던 그렇지만 나에게 너무 강렬했던 그 순간에 가슴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듯했다.

“너무 짧은 만남이라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왜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을까···.”

“···.”

“너도 외할아버지를 닮은 거겠지.”

나는 내가 겪은 회귀나 대백공이 나에게 걸어준 술법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 씨 아저씨의 말을 그저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인 건가···.’

“그래도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비밀로 하려고 했다.”

“···.”

“하지만 넌 여기까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타났지.”

“김 씨 아저씨는···.”

“나는 내가 여기에 나타날 거라고 예상하고 기다린 거다.”

“예상하셨다고요?”

“그리고 넌 여기에 나타났지. 아무도 너를 알아보지 못할 모습을 하고.”

“···.”

“나도 처음에는 놀랐다. 전혀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거든. 행색은 충분히 변장할 수 있지만 그 나이대 특유의 분위기···. 그건 현장 요원들과 훈련을 해도 열에 절반은 절대 익힐 수 없는 그런 분위기.”

“네?”

“단순히 변장을 한다고 전부가 아니지. 어린 아들이 아버지 정장을 입더라도 아빠 정장을 적당히 입고 온 애송이로 보이는 사람과 그 정장이 맞춤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 법이지.”

“그걸 구분하는 게···.”

“그래. 분위기. 너를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등산을 즐기는 중년의 남성 아니 그보다는 초로의 노년의 느낌이 났다.”

‘회귀를 하기 전의 내 모습이 변장을 하면서 나타났던 걸까?’

“그런 네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할 기회만 기다리면 늦다고 판단했다.”

“늦다고요?”

“기주 납치사건 그리고 재민이 실종사건의 뒤에는 같은 존재가 있다.”

“설마···.”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3팀.”

“김 씨 아저씨가 몸담고 있던···?”

“비밀각서···물론 지키지 않고 종잇조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걸 어기고 싶지는 않다.”

“아···.”

‘김 씨 아저씨가 몸담고 있던 조직을 회사로 부르는 이유가···.’

“물론 너에게 말하는 내용도 전부 진실은 아니겠지.”

“···?”

“나의 일방적인 입장이니까.”

“김 씨 아저씨가요?”

사견이 들어간 내용이라는 걸 미리 밝히는 것부터가 김 씨 아저씨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판단은 나의 몫이라는 건가?’

“크흠···어쨌든 나는 군에 있다가 회사로 넘어가게 되었다.”

나의 물음에 헛기침을 한 김 씨 아저씨가 자신이 회사로 이직하게 된 이유를 진짜 간단하게 설명했다.

‘너무 간략하잖아. 여기에 어디가 일방적 입장이 들어있다는 거지?’

“회사는 국외 1팀, 국내 2팀으로 이루어져 활동했지.”

김 씨 아저씨가 회사에 속해있을 때 1팀은 국외 정보수집, 2팀은 국내 정보수집을 하는 팀이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1팀에 소속되어서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도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내가 1팀에 속해서 국외 정보수집 중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 회사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계륵처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어째서···.”

“회사에서 실패가 확실하다고 생각한 임무를 성공시켜서였다.”

‘실패하길 바란 임무라고···? 그런 임무를···.’

“어떤 임무였는데요?”

“그저 상당히 어려운 임무라고만 말하겠다.”

비밀유지 각서를 종잇조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틈에서도 최소한의 의무를 지키고 싶어하는 김 씨 아저씨는 임무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았다.

‘다들 지키고 있지 않는데···.’

어려운 임무를 달성하고 돌아온 김 씨 아저씨에게 돌아온 건 회사의 무관심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생활비를 걱정할 처지까지 몰렸다고 했다.

“김 씨 아저씨가 생활고에 시달렸다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에 소속된 내가 임무에 나가지 않는다고 급여를 받지 못한 건 누군가의 수작이라고 밖에는 판단할 수 없지만···.”

“···.”

“당시에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그저 임무만 할 줄 아는 그런 기계 같은 인간이었지.”

“김 씨 아저씨가요?”

나는 아저씨가 세상 물정도 모른다는 표현을 쓸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위험한 제안이 들어왔다.”

“일부러 아저씨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한 제안이라면 제대로 된 건 아닐 것 같은데요.”

“죽어달라고 했다···.”

“죽어달라고요? 그게 무슨···.”

“실제 죽는 건 아니지만 서류상 죽은 사람이 되달라는 요구였다.”

“···!”

“그리고 회사 내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3팀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

“회사에는 1팀과 2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회사 내에 소문으로는 비밀리에 활동하는 3팀이 있다고 했지만 난 회사에서도 독불장군처럼 혼자 일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알지 못했지.”

“···.”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건.”

“3팀이 얼마나···.”

김 씨 아저씨가 한참을 말을 고르더니···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지.”

“있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요?”

“3팀이 하는 일은 양지는 아니어도 나라를 위해서 움직이는 회사의 내규와 다르게···음지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따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요?”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운용되는 팀이라고 말했지만···.”

“어느 국가나 정보를 다루는 단체는 비밀스럽지 않나요?”

“모든 정보가 풀린다고 국가에 이득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정보 관련 일은 비밀을 요구하지. 하지만···.”

“하지만?”

“3팀이 하던 임무가 정말 국가를 위하냐고 묻는다면···.”

“큰 권한 준 만큼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요.”

“1팀과 2팀은 네가 알고 있는 것과 일반적인 상식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하지만 3팀은 다르다는 거네요?”

“국가를 위해서···VIP를 위해서 활동한다고 했지.”

“음···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딘가 미묘한데요?”

“어디나 흑과 백으로 선명하지 않고 회색인 부분이 있지. 회사 내의 3팀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아···.”

“그리고 내가 3팀에서 받은 업무 브리핑 중에는 국민의 시선을 크게 받는 사건을 조작해서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입맛에 맞게 설계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조작한다고요?”

“간첩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다면 대부분이 조작이지.”

“어째서요?”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이 1년에 몇 명이나 되는지 아나? 아니면 그 반대는?”

“몇 명 안되지 않을까요? 넘어올 때마다 신문에서 크게 뉴스가 나고 그러잖아요.”

“언론에서 크게 다루는 인물이 아닌 경우에는 회사에서 집계한 숫자가···.”

“숫자가?”

“음···비밀이다.”

“네?”

“비밀유지각서.”

“아참···다들 지키지도 않는다면서요. 그리고 김 씨 아저씨가 저하고 대화한 걸 누가 알겠어요. 제가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말할 입장도 아니고요···.’

나는 술법을 통해서 본 기억들을 실수로라도 말하지 않기 위해서 입이 무거워져야만 했다.

20세기가 되면 비밀도 아닐 정보였지만 김 씨 아저씨는 자세한 내용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와 네가 안다면 그건 더 이상 비밀유지각서를 지킨 게 아니다.”

“하지만···1팀이니 2팀이니 계속 말했잖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정확한 명칭을 말하지 않고 대화한 거니···괜찮다.”

“그것참 편한 대로 내요.”

김 씨 아저씨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법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처럼 모든 종이의 서명은 힘이 있는 자가 원하는 데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

“내가 본 사건만 봐도···. 아니···대화의 요지에서 벗어났군.”

“궁금하게 하고 말도 안 해주시면···.”

“쉽게 말해서 동종의 혐의를 받는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힘이 있다면 법을 통해 집행유예를 받고 힘이 없다면 법을 통해 실형을 선고받는다는 거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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