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0화 (30/963)

30화. 싸움의 이유 (5)

신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나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사실인가 싶었다. 허벅지를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저런 기백이……?!’

총 세 번에 걸친 연호정의 공격.

그 공격 하나하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기백이 깃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기백이었다. 상대를 죽일 의지를 담은 살기도 아니요, 전투 의지를 피워 내는 투지(鬪志)도 아니었다.

마치 황야를 질주하는 수만 대군의 질주에서나 느낄 수 있는 거대한 군기(軍氣)처럼.

연호정의 일격, 일격에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깃들어 있었다. 같은 공격이라도 무게감이 다른 것이다.

“뭐야? 뇌협이라면서?”

“왜 저렇게 허둥대지?”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만, 추성도 별거 없는 거 아냐?”

후기지수 몇몇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한가?’

그들의 눈에는 추성의 반응이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빤히 피할 수 있는데도 막고, 막을 수 있는 것도 허둥지둥 피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나 신모는 알 수 있었다.

‘압도된 것이겠지.’

저 정도 기백을, 그것도 코앞에서 느꼈다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대응도, 본래의 실력도 뽐내지 못한 것이다.

‘만약 추성이 나였다면……?’

그때였다.

“어, 엄청나다!”

신모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지평이 홀린 듯 연호정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기(氣)를?!”

신모의 눈이 번쩍였다.

양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라니요?”

“예?! 모, 못 느끼셨어요?”

“……예?”

“방금 형님이 뿜어낸 기요! 아니, 그게 기(氣)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걸 못 느꼈단 말이에요?”

양흠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창응조 모두가 양흠처럼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모는 깜짝 놀랐다.

“설마 느끼신 겁니까?”

“예? 아, 예! 당연하죠! 저렇게 엄청난…… 말도 안 되게 거대한 기를 어떻게 못 느껴요?”

못 느껴야 정상이다.

신모는 연호정에게 놀란 만큼이나 연지평에게도 놀랐다.

‘저걸 느꼈다고? 이공자님의 내력으로?’

연지평의 재능은 연가 역사에서 첫손에 꼽힐 만하다고 하였다.

그래도 그는 열다섯 소년이었다. 꽃을 피우기는커녕 아직 본격적인 무공의 맛을 보기도 전이란 말이다.

그런 소년이 이만큼이나 떨어진 거리에서 대공자님의 기백을 느꼈단 말인가?

‘세상에…….’

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감각을 갖고 태어났으면 자신 정도의 고수나 느낄 법한 군기(軍氣)를 꿰뚫어 봤단 말인가?

신모는 연지평과 연호정을 번갈아 보았다.

‘형제가 다 괴물이로구나.’

연호정. 검도(劍道)의 절정고수인 광풍검 신모마저 공포를 느낄 만한 기백을 발산하는 무인.

연지평. 열다섯 어린 나이로 절정고수가 아니면 느끼기 힘든 기백을 당연하다는 듯 느낀 천재.

신모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연가의 미래는 실로 밝구나.”

“예?”

“아, 아닙니다.”

상념을 지운 신모가 다시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 * *

쩌저정!

장창과 장검이 얽히며 거친 쇳소리를 터트렸다.

‘이런?!’

검을 휘두른 팔이 저려 온다. 평소라면 곧장 후속 공격을 감행했을 텐데, 그 잠깐의 틈 때문에 이격을 구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틈을 연호정은 놓치지 않았다.

부우우웅! 치리리링!

추성은 미친 듯이 휘두르는 난검(亂劍)으로 열여섯 창격을 막아 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검신(劍身)을 타고 흐르는 무게감이 팔꿈치를 넘어 어깨까지 뒤흔들 정도로 대단했다.

‘무슨 놈의 힘이?!’

쩌어어엉!

내리친 강검이 그대로 튕겨 나왔다.

손목의 힘으로 창대를 흘렸는데, 그 창대를 친 검이 튕겨 나올 정도로 거센 반탄력이었다.

이건 내공의 양이나 질을 따질 게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강한 완력을 타고난 것이 분명했다. 호리호리한 몸에서 어찌 이런 힘을 발산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연호정의 공격이 이어졌다.

파파파팡!

허공을 꿰뚫듯 살벌하게 찔러 들어오는 창격은 독사처럼 악랄했다.

회피, 반격은 꿈도 못 꾸게 하는 공격이었다. 추성은 본능에 따라 검결을 풀어냈다.

쩌저정! 티이잉! 카앙!

창날과 창대, 검신이 얽히며 소름 돋는 기음을 터트렸다.

소리가 말해 주고 있었다. 일격이 들어가면 무조건 죽는다고.

창검의 부딪침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 비무는 친선이 아니라고.

연무장 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파바바박! 쩌정!

제각기 땅을 밟고 병장기를 휘두르는데 한 치의 틈도 보여 주지 않는다.

추성의 실력에 의아함을 품었던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질린 빛이 어렸다.

‘너무 살벌한데?!’

‘이러다가 누구 하나 크게 다치는 거 아니야?’

‘다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러다가 죽겠는데?’

하지만 누구도 둘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부딪치는 창검이 터트리는 소리와, 그 소리에 스며든 살벌함이 외원 전체를 장악했다.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일대일 싸움. 마치 삼국시대의 고대 장수들이 일기토를 벌이듯 사납기 짝이 없는 격전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콰직!

창날이 연무장 바닥에 박혔다.

상대의 발목을 날려 버리려고 내친 일격이었다. 추성이 피하지 않았다면 세 합 안에 승부가 났을 것이다.

‘이!’

좌측으로 피해 낸 추성.

기어이 그의 눈에도 살기가 어렸다.

‘어린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짧은 순간 추성의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를 느낀 것이다.

우우웅.

벽라진결이 솟구쳤다.

안광에 푸른빛이 어른거리고 창대를 쥔 손등에 굵은 핏줄이 꿈틀거렸다.

추성이 땅을 박차 접근하려 할 때.

파아아앙!

시기를 선점하여 일 보 전진, 이 보 창격으로 공격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창날에 실린 살기에는 자비가 없었다.

워낙 변칙적인 박자라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이 매서운 창술을 피할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이익!”

타다닥!

추성의 몸이 연무장 바닥을 굴렀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콰득! 콰득!

연호정은 무자비했다. 몸을 굴러 피한 추성을 끝까지 따라잡아 창을 마구 찔러 넣는데, 창날이 박힐 때마다 연무장 바닥이 들썩이고 있었다.

집요하고 살벌했다. 마치 사냥감을 잡는 맹수처럼 독하게 공격했다.

추성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땅을 굴러 피하는, 소위 나려타곤(懶驢打滾)이라 불리는 치욕적인 수법을 쓴 것도 화가 나 죽을 지경인데, 그러고도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다.

화가 났다. 분노가 정수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으아아! 이 개자식아!”

콰앙!

땅을 박차고 접근한 추성의 몸놀림에는 격식이 없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짐승처럼 움직인 것이다.

부악!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었을까? 창날이 그의 어깨를 찢어 놓았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이놈! 내 차례다!’

수치심과 분노로 벌겋게 달아오른 추성의 얼굴.

‘죽어라!’

번쩍!

추성의 검이 연호정의 목젖을 향해 찔러졌다.

“헉! 형님?!”

“위, 위험해!”

절체절명의 순간.

콰아앙!

한 줄기 폭음과 함께 추성의 몸이 연무장 중앙으로 날아갔다.

추성의 입에서 울컥 피가 튀었다. 엄청난 반탄력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뭐, 뭐야?!’

당한 추성조차도 어떤 무공인지 보지 못했다.

다급하게 바닥을 박차고 일어난 그의 눈에, 마침내 연호정의 모습이 보였다.

우우우우웅!

그것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환상인지, 실제로 기(氣)가 그러한 형태를 만드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추성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보고 있었다.

연호정의 몸을 서서히 휘도는 두 개의 반투명한 육각 무늬를.

상체를 뒤덮을 정도로 큰 귀갑(龜甲)이었다. 양쪽 어깨 위로는 뱀인지 용인지 모를 기다란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형태 자체는 기괴한데, 보는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다거나 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후우.”

연호정의 숨결에 따라 현무(玄武)가 꿈틀거렸다.

추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또 무슨 사술(邪術)이냐!”

파아아악!

눈이 뒤집힌 추성, 내뻗는 보검에 선명한 녹광(綠光)이 이글거렸다.

지금껏 일심으로 익힌 진신절학, 추명삼검(追命三劍)이었다. 그는 이 검법을 펼친 후 단 한 번도 적의 목숨을 취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연호정의 안광이 시린 빛을 뿜었다.

쿠웅!

일 보를 내딛는데, 그 걸음이 이전의 진각과는 달랐다.

훨씬 느릿하고 무거웠다. 동시에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

추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섬전처럼 쏘아지는 검이 일순 느려지는 것 같았다.

아니, 느려지는 것 같은 게 아니라 느려졌다. 심지어 연호정의 심장을 노린 검격 자체도 틀어져서 그대로 빗나갈 판이었다.

‘뭐야!!’

휘이이이잉! 치이이잉!

사방에서 살을 엘 듯한 한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북방의 어두운 바람, 계해의 수신 현무의 등장을 반기는 현무기(玄武氣)의 환상이었다.

그 환상과도 같은 바람이 연호정의 창에 깃들어 사신무(四神武)의 절대방어 운용술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현무의 보법, 괴주부동(怪柱不動).

괴주부동에 이은 강철의 비술, 북천십이벽(北天十二壁)이 모습을 드러냈다.

쩡! 쩡! 쩡!

“크윽!”

추성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추명삼검은 연환격이라, 세 번의 검격으로 적의 사혈(死穴) 세 곳을 노린다. 그 삼검의 연환격이 모조리 튕겨 나간 것이다.

후우우웅!

무겁고 어두운 바람을 가르는 장창 끝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이이익!

피어오르는 연기가 흔들리며 현무기를 채찍질한다.

북천십이벽의 연환삼초(連環三招), 삼중귀벽(三重龜壁)이었다. 맨손 육장으로 펼치든 병장기로 펼치든, 위력의 편차가 전혀 없는 극상승의 초식이었다.

북천십이벽만이 아니었다.

사신의 무공 모두가 그러했다. 사신무(四神武)는 불패의 무공이며 천고의 절학이라, 맨손과 병기를 가리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무의 무공은 방어의 궁극이지만, 모든 무공이 그렇듯 쓰는 자의 손에 따라 공격으로도 쓸 수 있다.

후웅.

연호정의 보법은 특이했다.

동작도 작고 느릿했다. 한데 어느새 이미 추성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괴주부동이었다.

“이놈!!”

파앙!

추성도 끈질겼다. 끝까지 쥐고 있는 검을 마구 휘두르는데, 상대를 난도질할 기세였다.

타악!

지금껏 창대를 잡지 않았던 왼손이 창의 하단부를 쥐었다.

그리고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드드득!

“크아악!”

추성의 손목이 부러졌다.

어떻게 부러졌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창대에 맞은 것인지, 창날의 면으로 후려친 것인지 누구도 볼 수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연호정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화아악!

육 척이 넘는 기다란 장창, 심해의 무거움을 담은 창날에 야수의 송곳니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현무를 펼치기 전 추성을 몰아쳤던 무공, 야수창법(野獸槍法)이었다.

현무기를 담아 사납기 짝이 없는 야수창을 휘두르는 연호정. 그 창날엔 많은 것이 담겼지만, 적어도 자비는 담기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철창이 추성의 몸을 마구 베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크아아악!”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