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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101화 (101/963)

101화. 발상의 전환 (1)

“아, 배부르다.”

절제된 식사로 차근차근 몸을 보해야 하지만 배가 고파도 너무 고팠다. 연지평은 난생처음으로 한 끼에 오 인분을 먹어 치웠다.

덕분에 배가 볼록 튀어나왔다. 그래도 이 포만감이 싫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온 연지평은 문득 눈을 돌렸다.

‘어라?’

연지평이 눈을 끔뻑거렸다.

‘누구지?’

괜히 발길 닿는 곳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형의 거처 주변에 다다랐다.

한데 형의 거처 옆, 연려원 안에서 누군가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외양이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호기심이 동한 연지평이 슬금슬금 연려원 앞으로 향했다.

퍽!

부드럽게 휘두르는 도끼질에 큼직한 장작이 반으로 쪼개졌다.

호기심 가득했던 연지평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헉!’

퍽!

또다시 쪼개지는 장작.

특별할 것 없는 도끼질이었다. 힘껏 내리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양손이 아닌 한 손이었다.

그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 도끼질에 장작이 예리하게 갈라졌다. 뭉툭한 도끼날에 실린 기운이 예기를 살려 주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도끼에 맺힌 기운의 질과 도끼의 움직임이었다.

극소량을 담았음에도 홍수처럼 강렬한 기세가 뿜어진다. 휘두르는 형(形)은 별것 없는 듯하면서도 무척 아름다웠다.

‘고수!’

굉장하다. 적어도 지금의 연지평으로서는 감히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틱!

‘엥?’

도끼가 헛방을 쳤다. 튕겨 나간 장작이 저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

여인, 묵비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

“저기…….”

연지평은 아차 싶어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멍하니 보고만 있었네요. 제가 실례했지요?”

솔직하게 사과한다.

묵비는 상대가 왜 사과하는지 몰랐다. 다만 장작 패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구경했는지는 궁금했지만.

“아니에요. 한데…….”

누구시냐고 물어보려던 묵비는 순간 멈칫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은 손님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연가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묵비가 고개를 숙였다.

“묵비라고 합니다.”

“아, 넵! 저는 연지평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

연지평은 눈을 끔뻑였고 묵비는 어색함에 시선을 피했다.

와중에 묵비는 생각했다.

‘연지평? 그럼 그 사람의 동생?’

이곳으로 오면서 연지평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희대의 천재이자 성격도 순한 아이라고 하였다.

묵비가 다시 연지평을 보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연지평의 얼굴은 과연 들은 대로 순해 보였다.

묵비가 헛기침했다.

“음, 그러니까 저는…….”

“손님이시군요!”

“네?”

“어, 아닌가요?”

묵비가 머리를 긁적였다.

손님이 맞긴 맞다. 하지만 연호정과 연위는 이곳을 내 집처럼, 모두를 한 식구처럼 대하라고 하였다.

“손님……의 형태? 라고 해야 할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묵비는 이 어색함과 지진부진해질 것이 분명한 대화를 끊어 낼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연호정을 언급하는 것이다.

“저는 연호정, 그 사람과 함께 왔어요.”

연지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혀, 형님이 오셨다고요?”

“네? 아…… 그래요. 맞아요.”

“헉!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나중에나 오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연지평의 얼굴에 반가움이 어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 근데…….”

그 사람?

어째 단어 선택이 묘하다. 그 사람, 그 사람이라…….

“커헉!”

연지평이 후다닥 달려와 묵비의 양손을 잡았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피할 수도 없었다. 묵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연지평을 내려다보았다.

연지평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형수님!”

묵비는 스스로 관일곡을 몰살하겠다 다짐했던 때와 지금 중 무엇이 더 경악스러운 상황인지를 따져 보는 것은 지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 *

콰앙!

팔십 근 중병에 강철 같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백호기까지 담겼다.

벽라진기가 신체의 강유를 조화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단련되고 있는 근육은 폭발적인 출력과 강인한 인내를 만들어 냈다.

그러고도 밀렸다.

쩡!

연호정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연위가 쥐고 있는 검은 흔하디흔한 장검이었다. 그 장검에서 뿜어지는 경력이 해일처럼 막강했다. 연호정의 도끼 무게에 십 분지 일도 안 되는 검날이 천 근의 무게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쾅!

물러났던 연호정이 재차 뛰어들었다.

백호군림의 보법을 펼친 순간부터 완전한 임전 태세를 갖춘 그였다. 일 보 전진, 이 보 필살의 각오로 거침없이 무공을 전개했다.

파라라라락!

휘둘러지는 도끼 주변에 무형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다.

엄청난 중병을 다루면서도 빨랐고, 와중에 중병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일격이기도 했다. 어떤 절정고수라도 감히 맞상대하길 꺼릴 만한 파괴력이었다.

연위의 검이 직선적인 움직임을 그려 냈다.

쩌어어엉!

상박과 어깨 근육이 움찔했다.

연위는 아들의 괴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칠대세가, 아니 육대세가 가주 중에도 수위를 다투는 무공. 게다가 지금은 예전처럼 실력을 죽인 것도 아니었다. 전력은 아닐지라도 진심으로 무공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 초절정 고수의 근육을 무의식적으로 조여지게 할 만큼 강력한 일격이라면, 중원 천하 어디에서도 통할 만한 무력이라고 봐야 한다.

치링!

도끼와 맞닿은 연위의 검이 일순 부드러운 움직임을 그려 냈다.

‘……!’

연호정의 표정이 돌변했다.

마치 한 마리 뱀처럼 도끼날을 타고 내려와 창대로 흘러온 검날이 손목을 노렸다. 그 움직임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서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놓쳐 버렸을 정도였다.

파아악!

창대에서 양손을 뗀 그가 창대 끝을 후려 찼다.

쩌저저정!

근접거리에서 도끼가 쏘아졌다. 연위의 검이 찰나지간 열두 번의 연환검으로 도끼날을 후려쳐 위력을 감소시켰다.

터어엉!

연위의 눈이 커졌다.

고개를 들어 보지 않았지만, 어느새 아들이 머리 위 허공으로 이동한 것을 깨달은 그였다.

‘빠르다!’

정수리로 쏟아져 내리는 화기가 굉장했다.

백색의 금기가 홍색의 화기로 바뀌었다. 백호공(白虎功)에서 주작공(朱雀功)으로 옮겨 가는 시간이 벼락처럼 빨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압!”

흔치 않은 기합성이었다. 두 다리에 홍색의 날개를 달고, 오른 주먹엔 백색의 폭풍을 담아 내리쳤다.

사신무, 두 가지 속성의 무공을 동시에 구현한 것이다.

콰아앙!

주먹이 뚫고 들어간 연무장 바닥, 그 권격의 파괴력이 연무장 전체에 실금을 만들어 냈다.

강력한 권법,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백호공의 호왕구벽세(虎王九霹勢)를 권형(拳形)으로 구현한 것이다.

파아아악!

천라신보로 회피한 연위가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수법으로 접근했다.

‘……!’

엄청난 속도였다. 주작공의 혈익휘천만큼이나 빨랐다.

연위가 혈익휘천처럼 빠른 보법을 익혀서가 아니었다. 이건 그냥 순수한 무공의 경지 때문이다. 그의 내공, 육신, 깨달음이 합쳐지자 단순한 발걸음으로도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번쩍!

연호정이 연위를 피해 좌측에 떨어진 도끼를 쥐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순간 방향을 꺾은 연위는 어느새 연호정의 전방 일 장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두 사람의 병기가 신기(神技)의 속도를 뽑아냈다.

쩌저저저정! 치치치칭!

일수유에 열여덟 번이나 부딪친 병기들.

연위의 검속(劍速)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연호정의 부속(斧速)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중병을 다루는 무림인 중 이 정도의 쾌공(快功)을 보여 주는 자도 찾기 힘들 것이다.

‘강하다.’

연위는 출가 전보다 몇 단계는 훌쩍 올라서 버린 아들의 경지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강해졌어!’

연원을 알 수 없는 내공들이 연호정과 함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들은 다른 무학을 익혀서 성장한 게 아니라, 이미 성장한 연후에 익혀서 보완한 것이 분명했다.

즉, 이미 아들의 깨달음은 여러 무공을 품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완성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병기를 통해 느껴지는 투로의 절묘함, 응변의 기지에서 느껴지는 고절한 무리(武理)는 그 한계가 어디인지조차 상상이 가질 않았다.

‘대체 어떻게?!’

희대의 천재라는 연지평도 이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사람의 십 년, 이십 년 세월을 고작 몇 달 만에 돌파해 버렸다.

연위가 아들의 엄청난 성장에 경악했다면, 연호정 역시 아버지의 강철 같은 무공에 새삼 놀랐다.

‘명천보다 강하시구나!’

지금은 무림공적이지만, 본래 구주명가는 천하제일가라는 명성을 백 년 동안 이어 온 희대의 무가였다.

그런 가문의 가주보다도 강하다. 가짜 사신무를 익혔으니 무공 전반의 균형이 흐트러졌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아버지의 무공은 명천을 상회하고 있었다.

‘굉장해. 나에게 없는 것들이 이렇게 많이……!’

진심으로 무공을 전개하는 아버지의 검력(劍力).

비록 흑암제 시절의 자신에 비하긴 어려우나, 그 안에는 자신조차 놓치고 있던 많은 부분을 빠짐없이 쌓아 올린 이상적인 무인의 깨달음이 녹아 있었다.

완벽하다. 완전하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아버지의 무공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체의 무도(武道)였다. 연호정으로서는 수십 년이 지난다 한들 깨닫기 어려운 백도 무공의 총화(總和)였다.

쾅! 쾅! 쾅!

어느 순간, 연호정이 연위를 밀어붙였다.

백호군림보는 기세를 탈수록 힘을 받는다. 강력한 연환 진각에 호왕구벽세, 야수의 이빨이 점점 크고 예리해졌으며 한층 사나워졌다.

철검대연의 절묘한 검리로 연호정의 무공을 받아 내는 연위.

‘그래, 이 정도라면.’

구현하는 무공보다 쏟아져 들어오는 투기의 압박감이 더 대단했다. 압도적인 기세로 적을 쓸어 버리는 전사의 살기, 장수의 위엄이 거기에 있었다.

‘이 정도라면 능히 이 검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순간 연위의 눈이 번뜩였다.

쩌어엉!

무시무시한 강검에 도끼가 갈 길을 잃었다.

단 일검(一劍)에 백호군림보가 기세를 잃고, 호왕구벽세의 송곳니가 잘려 나갔다. 엄청난 검력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위의 검첨으로 순식간에 막강한 진기가 모여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화아아악!

연위는 자신의 시야를 어둠으로 물들이는 거대한 손 하나를 보았다.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초식 변화가 한 마리 용을 보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빨랐다. 막을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는 공격이었다.

연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반룡장(反龍掌)!!’

반 호흡도 쉬지 않고 뻗어 낸 장력에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강력한 심폐 능력을 활용한 초고속의 공격이었다.

새로이 얻은 깨달음의 검을 보여 줄 새가 없다. 연위는 재빨리 공력을 전환하여 장법을 막아 냈다.

꽈앙!

연호정이 십여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반면 연위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후우.”

연호정이 손을 흔들며 자세를 바로 했다.

“역시 안 되는군요.”

연위의 눈이 흔들렸다.

“설마 알고 있었느냐?”

“예?”

“다음 공격을 읽고 있었느냔 말이다.”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무공답지 않게 약간의 빈틈을 보았기에, 명확히 약점이라 생각해 공격했을 뿐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스르릉. 탁!

연위가 납검했다.

“비무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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