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발상의 전환 (5)
아버지와 대화를 마친 다음 날부터 연호정은 사흘 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 거처에서 나온 연호정은 곧장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홀로 수련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자연스레 가내 무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수련했다.
연호정의 수련은 혹독했다. 체력을 극한까지 소모하는 건 예사요, 실제 창검으로 무사들의 목숨을 노리는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나치게 위험한 방법이었다. 조금은 야만적인 방법이기도 했으며, 그간 연가의 수련법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방식이었다.
동시에 그는 공사의 구분을 분명하게 두었다.
죽을 것 같은 수련 후, 식사는 항상 무사들과 함께 연무장에서 먹었다. 그는 무사들과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았으며, 어느새 무사들도 그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무사들은 자연스레 깨달았다. 대공자님께서 자신들을 쓸 만한 도구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걸.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하다 보면 알 수 있었다. 연가의 대공자 연호정은 무사들을 한 몸처럼 여기며, 모두가 한층 강해지길 바랄 뿐이라는 걸.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련에 동참하는 무사들이 늘어났다.
연호정은 웃음으로 그들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무지막지한 훈련으로 그들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훈련에서 이탈하는 무사들은 없었다.
연호정은 독하면서도 세심한 구석이 있었다. 상처가 심한 무사들을 일일이 봐주었으며, 다음 날 훈련이 불가능할 것 같으면 꼭 쉬게 했다.
그간 연호정이 보여 준 적 없는 모습이었다. 한없이 강하기만 했던 연호정은 아랫사람들과 함께하며, 비로소 연가의 대공자다운 품격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다시 보름.
작정하고 수련에 임한 지 한 달이 지나자 가내 무사 중 칠 할이 연호정과의 수련에 동참했다.
임무를 나갔거나 근무를 서는 무사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무사가 참여하고 있는 셈이었다.
연위는 무사들의 수련이 예전과 달라졌음에도 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연호정과 무사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만큼 아들을 믿고 있다는 뜻이리라.
시간은 또다시 흘렀다.
여름의 독한 햇살이 기세를 잃고,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
화창한 하늘처럼 한없이 맑기만 했던 연가 무사들의 기도는 천하 명검처럼 예리해졌다. 성품이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자세가 바뀌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즉각 대응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정신력을 갖춘 것이다.
마치 그들 모두가 연호정이 된 것 같았다.
실로 연호정이 바라던 바였다.
빠각!
“컥!”
사정없이 내지른 주먹질에 양흠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연호정이 씨익 웃었다.
“졌지?”
사람 하나를 죽일 뻔해 놓고 잘도 웃는다.
놀랍게도 양흠은 밭은기침을 뱉으며 투덜거렸다.
“제길, 일곱 합도 받아 내지 못하다니.”
연무장 아래에 서 있던 신모가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흠. 대공자님 앞에서 그 무슨 말버릇이냐.”
“콜록!”
“다쳤다고 봐줄 만한 일이 아니다.”
“콜록콜록! 캬아악!”
신모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요새 들어 이것들이 대주의 말을 자꾸만 무시한다. 조만간 몽둥이를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호정이 손을 흔들었다.
“난 괜찮아. 너무 안 그래도 되네.”
“하지만 대공자님.”
“대주만 무서워하면 됐지. 난 그게 낫다고 봐.”
신모가 헛기침을 했다.
“버릇을 고쳐 놓겠습니다.”
“그거야 대주 역량이니 상관하지 않겠네. 하긴, 잡을 때도 됐지.”
양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 그냥 혼잣말한 겁니다. 절대로 대공자님께…….”
“야, 시끄러우니까 얼른 의방으로 꺼져. 이번 내상은 제대로 치료 안 하면 골치 아플 거다.”
“아, 옙.”
양흠이 머리를 긁적이며 연무장을 내려갔다.
분위기가 이 모양이라 티가 안 날 뿐, 양흠은 꽤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면 제 발로 걸어서 나가기도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보행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지난 수련으로 강한 체력과 인내심을 체화한 것이다.
연호정이 보기에, 이제야 가내 무사들은 무인다운 무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머지는 각 조직의 수장들이 알아서 하겠지.’
사람이 피를 자주 보게 되면, 자연히 손속이 거칠어지고 성정이 날카로워진다.
그 부분을 다듬어 주는 것이 신모 같은 수장들의 일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사전에 깊은 얘기를 나누었고, 수장들은 협의지도(俠義之道)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병행했다.
“대공자님. 이번에는 저랑 한번…….”
“안 돼. 바빠.”
연호정이 연무장을 내려왔다.
신모가 물었다.
“오늘 수련은 여기서 끝내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나만 끝난 거지. 하던 거 마저 마무리하게.”
“아, 바쁘신지요?”
과거의 신모라면 이리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닌 듯하면서도 그 역시 이 유연한 분위기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연호정이 웃으며 신모의 어깨를 두들겼다.
“나 없는 동안 제대로 굴려 보게나.”
“예?”
“그럼.”
연호정은 그대로 거처로 향했다.
그가 거처 앞에 도달했을 때였다.
쐐애애액! 타악!
연호정이 보지도 않은 채 왼팔을 뻗어 날아오는 화살을 낚아챘다.
그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느려.”
“그럴 수밖에요.”
어느새 담벼락 밑 그림자 속에서 묵비가 나타났다.
“맨손으로 던진 거니까요.”
“노릴 거면 가슴이나 복부를 노려야지 어깨가 뭐야?”
“그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서요.”
“웃기고 있네. 호랑이가 떨어지는 낙엽에 다치는 거 봤냐?”
“비유가 너무하네.”
“시끄러워.”
묵비가 물었다.
“오늘은 빨리 끝났네요? 어디 가요?”
“너도 준비해.”
“준비요?”
“편 신공께 연락 왔다. 네가 쓸 활도 공수해 왔다고 하니 너도 가야지.”
묵비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 그럴까요. 잠시만 기다려 봐요!”
그녀가 후다닥 연려원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보면 참 어린애 같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병신 여럿 만들어 놓고는.’
묵비 역시 무사들과의 수련에 몇 번이고 참여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만히 본 무사들과의 비무에서 그들 대다수를 박살 내 버렸다.
묵비는 빠르고 강했다. 활을 들고 있지 않아도, 기본적인 박투술만으로 가내 무사들을 압도했다.
‘신법이 워낙 사기이니.’
극한 신법의 소유자답게 그녀의 하체는 거의 흉기나 다를 바 없었다. 가볍게 후려친 각법 한 방에 무사들의 뼈가 우수수 부러지기 일쑤였다.
강철은 날을 세우지 않아도 위협적이다. 묵비의 신체와 내공이 딱 그러했다.
‘신법이라…… 마침 잘 됐어. 가는 길에 단련해야겠군.’
거처로 들어가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연호정은 곧장 가주실로 향했다.
“왔느냐.”
“예. 그리고…….”
연호정이 한옆에 수북이 쌓인 문서 더미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전히 바쁘시군요.”
“그렇게 되었다.”
“이 부장은 총관 안 한답니까?”
“그렇다.”
“얼른 사람 좀 구하시죠. 그러다 과로로 쓰러지시겠는데요.”
“괜찮다.”
“아버지가 아무리 고수라도 업무 앞에선 장사 없어요.”
“적당히 하다가 이 부장한테 다 넘길 것이다. 본인이 힘들면 알아서 사람을 구하겠지.”
정말이지 불쌍하기 짝이 없군.
벌써 이백현의 곡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이백현 역시 연가의 내공을 익힌 사람이지만, 이 살인적인 업무량을 버틸 정도로 연마했는지 궁금했다.
“편 신공에게 가느냐?”
“그렇습니다.”
연위가 연호정을 위아래로 훑었다.
“편 신공이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만, 너무 힘을 준 것 아니냐?”
연호정이 헛기침했다.
가만히 연호정을 보던 연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격이 그리 급해서야 쓰겠느냐.”
“어차피 가야 할 일이었습니다.”
“쯧, 어쩐 일로 대낮부터 들렀나 싶었더니만.”
연호정은 편일강의 대장간에 들른 후, 곧장 절강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연가의 사업을 절강까지 확장하기 위한 사전 조사가 명목이었지만, 진짜 목적은 모용우였다. 그는 개방을 통해 닷새에 한 번씩 모용우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여전히 절강지부에 있었다.
슬슬 날이 추워지고 있다. 겨울이 되면 해상 무역에도 타격이 온다. 아마 연가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연위가 탁자 밑 서랍에서 금낭 하나를 꺼냈다.
“혹시 몰라 미리 준비해 놨거늘 벌써 주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뭡니까?”
“돈이다. 괜히 수련한답시고 노숙하지 마라. 날이 추워지고 있다.”
“알겠습니다.”
연호정이 재빨리 절을 올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몸 성히 잘 다녀오너라.”
“예. 어? 근데 지평은 어디에 있습니까? 근래 안 보이던데요.”
연위가 혀를 찼다.
“지평이 없는 걸 이제야 알았단 말이냐?”
“……?”
“잠시 아는 분에게 보냈다. 그게 벌써 스무날 전이다.”
“……그렇게 오래되었습니까?”
“심지어 비응조도 딸려 보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들, 잠시 어디 다녀온다고 했던 것 같기도…….”
“…….”
“…….”
“네가 얼마나 무심한지 알겠느냐?”
“제가 원래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 합니다.”
“시끄럽다. 떠나기 전, 너와 밥 한 끼 하겠다고 하더니만 무사들과 수련하는 걸 보곤 그냥 가 버렸다. 돌아와서 지평과 어울려 주거라.”
연호정은 입맛을 다셨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반성해야겠군.’
아무리 바빠도 놓쳐선 안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는 형으로서 동생에게 미안했다.
“어찌 되었든,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 * *
“어르신.”
“오셨는가.”
두 달 전에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외양이었다.
수염은 더 덥수룩했고 몸은 다소 왜소해졌다. 지난 두 달 동안 일에 열중했던 모양이었다.
편일강이 웃으며 말했다.
“굉장하구먼.”
“예?”
“자네나 이 소저 말일세. 고작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그때와는 또 달라. 거칠게 날 서 있던 기운이 꽤 잠잠해졌네.”
그런 것까지 보인단 말인가.
편일강은 일견에 무인이 사용하는 병기까지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이니만큼 결코 빈말은 아닐 것이다.
‘내 기도가 그리 변했나.’
기(氣)는 의념으로 움직이며, 의념은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
마음이 달라지니 당연히 기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가내 무사들과 훈련하며, 바짝 날이 섰던 그의 기도는 오히려 잠잠하게 가라앉은 상태였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저희와는 달리 어르신께선 괜한 고생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떽! 고생이라니? 그리 말하지 말게. 나는 도검장(刀劍匠)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일세. 불과 철을 다루는 내게 있어 멋진 병기를 만든다는 것은 천명(天命)이란 말이야.”
편일강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고생한 보람은 있는 듯하네. 부디 자네의 마음에 꼭 들었으면 싶어.”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 자신을 가지시니, 최대한 냉정하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자네와 함께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 놈인데.”
저 성품에 저런 자신감이 나오기도 힘들 것이다.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뜻이리라.
“자, 들어오게.”
연호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대장간에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 구석에 세워 둔 거대한 도끼가 보였다.
연호정의 입이 벌어졌다.
“어떤가? 그럴듯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