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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271화 (271/963)

271화. 손님맞이 (3)

“흐음, 향이 좋구나.”

모용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근래 탕마군 훈련은 어떠하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몇 번의 실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네가 자신할 정도면 가히 기대해 볼 만하겠구나.”

모용우가 고개를 저었다.

“실전에서 통하지 않으면 별무소용입니다. 탁 트인 개활지에서의 전면전은 그럭저럭 소화할 수 있을 듯하지만, 시가전(市街戰)이나 산악전(山岳戰)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의 전투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같이 중갑주 차림에 기마를 탄 부대가 아니더냐. 시가전이나 산악전과는 애초에 맞지 않지.”

“멸사군은 다르더군요.”

“음?”

“멸사군은 시가전, 산악전에도 능합니다. 아마 개활지에서의 전면전 실력도 출중할 겁니다.”

모용군이 피식 웃었다.

“멸사군 소속 대부분이 명문가 출신이다. 명문의 무공일수록 개성이 뚜렷한 법. 하나로 똘똘 뭉쳐 적을 분쇄하는 것보다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전술이 더 효과적이겠지. 연호정이 휘하 군병들에게 경갑을 입힌 이유가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탕마군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전면전에 특화가 된 조직으로, 멸사군은 능수능란한 대응 능력으로 특수전에 특화가 된 조직으로. 양 조직이 제각기 장점을 살려 발전하는 것도 좋지.”

모용우는 생각했다.

이럴 때의 모용군은 정말 무림맹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같다고.

그 발언에 진심이 묻어 나왔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 잘 처리했다.”

모용우의 눈이 깊어졌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너의 상재(商才)는 보통이 아니로구나. 이번 일, 처리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을 텐데 참으로 잘해 주었다.”

“귀주상회는 상계에서도 숨겨진 강자 중 하나입니다. 단번에 기선을 제압하지 못했다면 이 일로 골치깨나 썩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잘 보았다.”

“앞으로 본가와의 거래가 훨씬 원활해질 겁니다.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모용군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나를 돕겠다고 했을 때부터 너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정말 예상외였다. 네게 그런 결단력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

“품성을 가꾸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품성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모용우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발언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렸을 것이다.

모용군이 흐뭇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다. 허! 이제 너도 정말 만반의 준비가 된 모양이다.”

모용우가 딱 끊듯이 말했다.

“형님께서 먹이를 던져 주실 때만 기다려서는 안 되겠지요. 이제는 저도 제 나름대로 달려 보겠습니다.”

“크하하하!”

한 번의 실수로 스스로를 한껏 조이고 있는 모용군이었다.

말하자면 재정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모용우의 이런 결단력은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새삼 동생의 존재가 이렇게 든든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때였다.

“가주님.”

“무슨 일인가?”

“실례합니다만, 탕마군장에게 서신이 왔습니다.”

“우에게? 들어오게.”

모용우가 서신을 받아 펼쳤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누구에게서 온 서신이더냐?”

“멸사군장입니다.”

모용군의 눈이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연호정, 그놈에게서?”

“예.”

“뭐라고 하더냐.”

“형님.”

“응?”

모용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 군장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돌아와서 말씀드리지요.”

* * *

“여어.”

연호정이 이 층 창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모용우가 피식 웃었다.

“이 층으로 올라가면 되겠는가?”

“그럼 이 추운 날 밖에서 마시려고?”

“술?”

“대화에 술이 빠지면 쓰나. 어서 올라와.”

저 녀석, 저렇게 술을 좋아했었나?

모용우가 연호정의 거처로 들어갔다. 창가 앞 탁자에는 그럴듯한 향이 풍기는 어향육사와 독한 화주 두 병이 놓여 있었다.

모용우가 혀를 찼다.

“또 화주인가?”

“화주가 어때서?”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화주만 마시다가는 속 버린다네. 오죽 독해야 말이지.”

“독한 술이 뒤끝이 좋아.”

“독하면서도 깔끔한 술이 뒤끝이 좋은 걸세. 이 화주, 딱 봐도 그냥 취하라고 만든 것 같은데?”

“그럼 술을 취하라고 마시지, 뭐 하러 마셔? 일단 앉아. 밥도 안 먹었을 거 아냐.”

“그럼세.”

모용우가 잘 볶아진 고기를 한 점 집어 먹었다.

“연제가 요리했나?”

“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식당까지 가기 귀찮더라고.”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잖나. 귀찮긴 뭐가 귀찮은가.”

“그냥 기분이 그렇다고. 맛은 어때?”

“신기하군. 상당히 맛있어. 연제는 요리도 잘하는군.”

“혼자 살다 보면 이 정도는 바보라도 만들어.”

“난 바보였군…….”

연호정이 모용우의 잔을 채워 주었다.

“어때? 모용군은.”

모용우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몸을 사리고 계시네. 이번에 본인 실수를 크게 자각하신 모양이야.”

“예상대로군.”

“확실히 이번 형님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어설펐네. 경솔했어.”

모용우도 연호정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래서, 자네가 제대로 반격하지 않은 이유는 묵룡부 때문인가?”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안목이 아주 예리해졌는데?”

“안목이랄 것도 없네. 미리 듣지 않았다면 절대 유추하지 못했을 게야.”

모용우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제대로 준비해서 터트린다…… 내년 선거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군.”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가해야 반격 가능성을 줄일 수 있어. 모용군에게는 다소 공포스러운 결과가 되겠지만, 어쩌겠어?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지.”

“수단과 방법은 가리게. 형님과 똑같은 사람이 되려고 그러시는가?”

“수단과 방법은 안 가려도 최소한의 윤리는 지킬 거야. 걱정하지 마.”

“허허.”

모용우가 잔을 들어 올렸다.

“한잔하세.”

“좋지.”

잔을 부딪친 두 사람이 시원하게 술을 넘겼다.

“크으, 너무 독하군. 오늘 술이 유독 독한 것 같아.”

“그럴 때 안주가 필요한 거지. 얼른 먹어. 일부러 기름칠도 많이 했어.”

모용우가 헐레벌떡 고기를 씹어 삼켰다. 확실히 위장에 기름기가 도니 살 것 같았다.

“그나저나…….”

모용우가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는가?”

“음?”

“뭔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서 말일세. 예전보다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고나 할까.”

“그래?”

“그간 풀리지 않았던 숙제라도 해결한 겐가?”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마음이 편해졌어.”

정말 그렇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분위기가 바뀌었다면 아마도 자신의 과거를 아버지께서 받아 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서만 간직한 것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마다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야 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묵비도 묵비지만, 아버지께서 알고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좋은 일일세. 그래, 마음에 부담이 없어야지.”

“그러는 형님은 한결 날이 섰는데?”

“그래 보이는가?”

“엉. 그래도 뭐, 피곤해 보이진 않아. 이제 작정하고 달려 보실라고?”

모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연제의 눈은 정말 날카롭군.”

“내 눈이 날카로운 게 아니라 형님이 알기 쉬운 거지.”

“하하, 그런가.”

모용우가 연호정의 잔을 재차 채워 주며 물었다.

“그래, 어인 일로 부르셨는가? 형님이 계신 걸 알면서도 서신을 보낸 걸 보면, 공적인 얘기인 듯한데.”

“맞아.”

연호정이 젓가락으로 모용우를 가리켰다.

“별일 없으면, 이번에 나랑 같이 콧바람 좀 쐬러 갈까?”

“콧바람?”

“서역신녀라고 알아?”

“아, 물론일세. 일세의 성녀(聖女) 아니던가.”

“호오, 아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

“하긴, 모를 수도 있지. 나야 상계 일로 이런저런 소문을 워낙 많이 들었으니까. 한데 서역신녀가 왜?”

연호정이 자세한 사정을 들려주었다.

모용우의 눈이 빛났다.

“호위라?”

“응.”

“그렇다면 차라리 멸사군이나 탕마군 전체가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호위잖아? 제아무리 자유를 보장받은 군대라지만 호위 일로 쓰는 건 좀 그래. 게다가 우리 쪽 애들은 한참 진형을 연마하는 중이거든.”

“호오.”

“탕마군도 바쁘다며? 전에 난전 시의 대응 능력을 기르기 위해 피땀을 쏟고 있다 하지 않았어?”

“그렇다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

“그러니까 말이야. 개인적으로, 멸사군의 다음 출정 때는 중원 전역을 쏘다니다 귀맹할 생각이야. 이런 일로 시간 죽이는 건 좀 아깝지.”

“쩝, 시간 죽인다는 표현은 좀 그렇군. 그만한 사람을 호위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영광일 수도 있잖나.”

“그 좋은 영광 둘이 같이 나누자고.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수련도 하고. 좋잖아?”

“흐음.”

모용우의 눈이 반짝였다.

“공적인 임무를 핑계로 한 동행이라……. 하긴, 머리는 안 아프겠군.”

“어차피 맹에는 우리 아버지도 계시고 군사님도 계셔. 모용군도 당분간은 함부로 날뛰지 못할 테고, 시기적으로도 딱 괜찮다고 보는데.”

모용우가 미소를 지었다.

“달리 걸리는 게 없다면 나야 좋지.”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사흘 뒤에 출발할 테니까 그때까지 준비 착실하게 해 둬.”

“좋네. 아! 한데…….”

“응?”

“나와 연제만 가는 겐가? 다른 일행은 없고?”

“글쎄.”

연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한 놈 고민 중이긴 한데, 그놈 정신 상태를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 * *

사흘 후.

“그래, 잘 다녀오도록 하거라.”

“예, 아버지.”

“별일 없어도 꼭 서신 전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 그리고 지평이가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방을 통해 시시각각 연락하라고 했으니, 중간에 만날 수 있다면 데리고 오는 것도 괜찮을 듯하구나.”

“오, 좋지요.”

그때였다.

“준비 끝났습니다.”

강량과 묵비가 걸어 나왔다.

연호정이 눈을 끔뻑였다.

“묵비, 너는 왜?”

“나도 가려고요.”

“어딜?”

묵비가 연호정을 가리켰다.

연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너까지 가면 애들 훈련은 누가 시켜?”

“아연이가요. 그리고 군병들이 무슨 애들이에요? 윗사람 없어도 알아서들 잘해요.”

“…….”

“게다가 귀빈을 모시러 가는 거잖아요. 유군 부대 하나가 통째로 움직여도 과하지 않을 일인데, 애들 수련하라고 놔두고 가는 거면 나라도 같이 가야죠.”

연위가 연호정을 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다만, 나도 비아 말에 동감한다.”

묵비가 씨익 웃었다.

“봐요, 아버님도 그러시잖아요.”

강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수련 여행 아니었습니까?”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같이 가자. 하긴, 혹시라도 일이 터지면 네 궁술은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렇죠?”

그때, 모용우가 말을 몰고 대문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 끝나셨는가?”

“……대충.”

연호정이 광룡부를 견봉에 얹었다.

“뭐, 사람 하나 호위해서 돌아오는 건데 별일 있겠냐. 후딱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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