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04화 (304/963)

304화. 해답은 하나다 (4)

“어? 형님?”

“왜?”

“그건 뭡니까?”

“도끼잖아.”

“그건 아는데…… 광룡부는 어디에 두고 그런 귀여운 도끼를 매달고 다니세요?”

“귀여운 도끼라니. 나름 잘 만들어진 도낀데.”

“광룡부에 비하면 귀엽죠. 그거 손도끼잖아요.”

“맞아.”

“뭐, 형님 무공이면 뭔들 잘 쓰시겠지만…… 갑자기 왜 손도끼를 쓰세요?”

“손도끼‘도’ 써 보려고. 내 무공,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거든. 이런저런 시도를 해 봐야 나의 한계를 알 수 있겠지.”

“그, 그렇군요.”

“됐고, 마음의 준비는 됐냐?”

“좀 떨리네요. 그 모용가주와 만나러 간다니.”

“매서운 양반이긴 하지. 그 양반 잔대가리 굴리는 것 때문에 낭패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야.”

“형님이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보통 인물은 아닌 모양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묵룡부주 양천보다도 상대하기 어렵지.”

“…….”

“정신 똑바로 챙겨. 아차 하다가는 말려들 테니까.”

“알겠습니다. 한데 형님, 모용가주와 만나러 가는 길에 굳이 제가 왜 필요한 것입니까?”

“가 보면 안다. 그리고 단순히 모용가주를 두들겨 패려고 가는 것만이 아니야. 앞으로 내 옆에 붙어 다니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해.”

“아, 예.”

“자, 가자.”

* * *

“자네는 여러모로 참 흥미로운 사람일세.”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어떤 면에서 말이오?”

모용군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당분간 이렇게 마주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소?”

“역시 자네는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게 하는 뭔가가 있어. 이래서 자네를 상대하기가 어렵지.”

“칭찬으로 듣겠소.”

“새삼스럽게 무슨.”

오랜만에 보는 모용군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듯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 보였다.

연호정의 눈이 반짝거렸다.

“대단하시오.”

“무엇이 말인가?”

“당신의 그 기도…… 예전보다 한층 더 은밀하게 다듬어졌군. 그간에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이오?”

모용군이 감탄을 터트렸다.

“자네는 참으로 대단하네.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고수의 변화를 그리 민감하게 알아채다니. 전에도 느꼈지만, 자네의 그 예민한 감각은 능히 천하제일이라 할 만하네.”

그것은 모용군의 오해였다.

애초에 연호정의 재능은 연지평보다 못했다. 그런데도 그가 모용군의 변화를 느끼고, 나아가 무수히 많은 무림인의 내공 성질까지 간파해 낼 수 있는 것은 그의 상단전이 누구보다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상단전을 제대로 연마하면 두뇌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그리고 그 성장세가 계속되다 보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깨우치기 힘든 신통력을 얻을 수도 있다.

아직도 상단전의 활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연호정의 상단전이 당대 무림의 그 누구보다도 방대하다는 것이고, 그 덕분에 많은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는 자네 역시 무공이 발전한 모양일세.”

“얼마 전, 작은 깨달음을 얻었소.”

“작은 깨달음이라…… 자네답지 않게 너무 겸손한 표현이군. 당장의 실력은 모르겠네만, 기도 자체가 예전과는 천양지차로 변했어. 기공 쪽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모양일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보다 퇴보할 수도, 성장할 수도 있겠지. 다만 변화 그 자체로 보면, 확실히 발전했다고 볼 수 있겠소.”

모용군이 피식 웃었다.

“적당히 좀 달리게나. 그대로 가다가는 이삼 년 안에 따라잡힐 것 같네.”

연호정이 마주 웃었다.

“따라잡히게 놔둘 사람이 아니잖소? 어떻게든 짓누르려 하겠지. 그게 불가능하면 죽이려 들기도 할 테고.”

“물론 그렇겠지.”

모용군은 연호정 앞에서 솔직했다.

“자네의 성정, 무공 그리고 발전 속도는 적에게 있어 심대한 위협이네. 그리고 나는 내 적의 성장을 두 눈 빤히 뜨고 지켜만 보는 사람이 아니야.”

모용군의 눈에 은은한 살의가 번뜩였다.

“조심하시게. 이제 자네와 나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처지야. 그렇다고 만만히 상대할 자도 아니니, 어떻게든 묻어 버리는 수밖에 없다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외다.”

“하긴, 그도 그렇지.”

모용군이 표정을 풀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인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는가?”

“전에 한 대 때린 곳은 멀쩡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앞으로 또 뭔 짓거리를 하려나 떠보고 싶기도 하고.”

“음? 한 대 때린 곳?”

“공공대사님, 그리고 당가주 말이오.”

“아, 그거 말인가?”

모용군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아찔했지. 그리고 안타까웠네. 설마하니, 당가주 그 사람이 이렇게 관계를 끊어 버릴 줄은 몰랐거든.”

“그럴 만하지.”

“물론 자네가 당가주를 부추겼음을 알고 있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갚아 줄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니 이런 생각도 들더군.”

“……?”

“당가주는 누군가의 말에 쉬이 휘둘릴 만한 사람이 아니야. 말하자면, 자네의 말은 기폭제가 되었을 뿐 언제든 이 사람을 곤란케 할 만한 위인이었단 말일세.”

역시나 대단한 안목이었다. 그간 승승장구를 거듭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방심했겠지만, 지닌바 능력을 잃진 않은 듯싶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오히려 자네에게 감사해야 마땅하지. 게다가 공공대사 건은, 지금 생각해 봐도 무리수였다네. 그때 제법 마음이 급했던지, 나답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어.”

“그러셨더군.”

“자네 덕분일세. 자네가 중간에서 치고 들어와 주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하지 않았겠는가.”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아쉽구만. 그냥 끝까지 놔둘 걸.”

“그래서 의아하다네.”

모용군의 눈에서 의심의 빛이 새어 나왔다.

“자네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 시점에서 굳이 터트릴 필요가 있었을까? 자네, 그 정도 인내심은 있는 사람이지 않았나?”

“글쎄올시다.”

연호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먼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겠지. 그리고 나 역시 개인사가 있어서, 주변이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았거든.”

“허허허.”

“하지만 이제는 됐소. 개인사도 잘 처리되었고, 이제 또 달릴 일만 남지 않았겠소?”

“그래서 찾아왔군. 자네가 달릴 그 길 위에 장애물이 될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당신도 궁금하지 않소? 내가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을지?”

“궁금하지.”

차로 목을 축인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하지 않기도 하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자네를 죽이고 싶네만, 당분간은 자네와 부딪치고 싶지 않거든.”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제갈 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림맹주 후보가 벌써 셋이라고 하더이다.”

“몰랐던 것처럼 말하지 말게. 그중 하나가 당가주이며, 자네가 당가주를 부추겼음을 모르지 않네.”

“눈치 하나는 정말 빠르시군.”

“이 사람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당가주를 앞세우다니, 과연 자네답다는 생각이 드네만, 동시에 자존심이 좀 상하는군.”

“왜 그렇소?”

모용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작 당가주 정도로 나를 견제할 수 있을 줄 알았던가? 차라리 자네 아버지나 팽가, 정 아니면 아미의 장문사태를 내세우지 그랬는가.”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당가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뭐, 자네가 그리 생각한다니 내 더 말하지 않음세. 하긴, 나름대로 방법이 있겠지.”

꽤 자신 있는 말투였다.

모용군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보여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연호정에게만큼은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연호정에게 자극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그만큼 모용군이 연호정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적수로서.

그리고 그것은 연호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선공은 연호정이 날렸다.

“호남에서 귀주상회가 제법 활개를 치고 있다고 들었소만.”

모용군의 눈이 깊어졌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러시는가?”

연호정이 서늘하게 웃었다.

“귀가와 귀주상회가 거래 관계임을 알고 있소이다.”

“그렇다네. 한데 그게 왜? 본가가 있는 호남 땅에서 귀주상회가 활개를 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상해서 말이오.”

“……?”

“귀주상회가 모용세가가 있는 호남 땅에서 활개를 친다, 그리고 두 집단은 거래 관계다. 무척이나 수상한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자네 눈에 수상하지 않은 것도 있는가?”

“그게 수상하다는 게 아니오.”

“하면?”

연호정이 서늘하게 웃었다.

“귀주상회의 그 떠들썩한 움직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소. 마치 모두가 귀주상회를 주시하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오.”

“……!”

“제갈 군사께서 그러시더군. 동귀어진을 해서라도 막겠다고. 그 의지는 참으로 강단 넘치는 것이지만, 내가 봤을 때 귀주상회를 통해 모용세가를 잡겠다는 것은 의미 없는 죽음인 것 같소만.”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 생각하시는가?”

“그렇소.”

“하면, 계속 그리 알고 계시게나.”

“물론이오. 계속 그리 알고 있을 거요. 다만, 이거 하나는 잊지 않았으면 하오.”

연호정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나는 언제든 귀주상회를 이용해 댁을 칠 수 있소이다.”

모용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묵룡부 작전에서 그쪽 사람을 건드린 걸로 어떻게 해 보겠다면, 그리하시게. 어쨌든 자네들도 공범으로 알 테니 나만 죽지는 않을 것이야.”

“그건 나중에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그러시게나.”

아마 모용군은 귀주상회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을 전부 없애 버렸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모용군을 보던 연호정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음?”

“언뜻 심각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별거 아닌 것 같은 이런 얘기. 서로 물어뜯겠다며 날 서 있는 대화로 압박하는 이 묘한 분위기 말이오.”

모용군이 피식 웃었다.

“자네는 그리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닐세. 근래 마음 편히 지내고 있었는데, 자네 덕분에 내 평화가 깨져 버렸잖은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허허허.”

연호정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자, 나름의 회포도 풀었으니 이제 슬슬 패 하나씩 꺼내 봅시다.”

모용군이 인상을 찡그렸다.

“싫네.”

“회포랍시고 한 지금까지의 얘기, 결국 서로가 알고 있는 얘기였잖소. 겉도는 대화를 했으니, 이제는 알맹이 있는 대화로 넘어갑시다.”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다네.”

“예전과 다르다?”

“그렇다네. 예전의 나는 내가 상황을 주도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더 공격적으로 나섰고, 먼저 후벼 파내 화근을 제거하려 했었네.”

모용군이 조소를 지었다.

스스로를 향한 비웃음이었다.

“자네만 아니었다면, 꽤 재미있는 역사를 만들 수도 있었어.”

“하지만 아니었지.”

“그렇다네. 심지어 공공대사를 작업하는 성급한 짓까지 저질렀어. 그 일 이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네. 왜 나답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래서 답은 나왔소?”

“그래서 지금 이러고 있잖은가?”

모용군이 양손을 펼쳤다.

“공세 이전에 수세부터 확실히 해 놓을 생각일세. 고로, 나는 자네에게 더 묻고 싶은 것이 없네.”

“…….”

“내가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없으니, 이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을 걸세. 즉, 자네 역시 내게서 뭔가 알아낼 것은 없을 게야.”

“그건 좀 김새는군.”

모용군이 찻잔을 들었다.

“이왕지사 예까지 왔으니, 그 차는 다 마시고 가게나. 귀한 차일세.”

“이왕지사 예까지 왔는데, 차만 마시고 갈 수는 없소이다.”

“허허, 그러신가?”

확실히 조심성이 많아진 것 같았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런 자세를 취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물론 연호정은, 그걸 두고만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말이오.”

“안 그래도 이질적인 기도가 느껴지더군. 뿜어져 나오는 생기를 보니 젊은이 같은데, 꽤 단단한 검기(劍氣)의 소유자로고.”

“얼마 전에 동생 삼은 녀석이외다.”

“그러신가?”

“그렇소.”

“우애 깊게 사귀도록 하게.”

연호정이 차갑게 웃었다.

“저 친구, 흑도 출신이오.”

“……뭐라?”

“한데 말이오, 저 친구가 무림맹 인근에서 같은 흑도 출신의 정보원들을 봤다고 하오. 심지어 운 좋게 한 놈 잡기도 했소만.”

“……?!”

“눈치를 보니 그놈, 묵룡부 쪽 인간 같던데.”

찻잔을 든 모용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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