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37화 (337/963)

337화. 밝음을 겨누다 (5)

“오셨는가?”

“예.”

송국현의 눈이 커졌다.

‘도끼?’

엄청나게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친, 큰 키를 제외하면 그 살벌한 도끼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학사풍의 호리호리한 청년.

‘이게 무슨?’

제갈문호는 무림맹의 군사다.

군사라는 직책은, 상황에 따라 봉공들보다도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전시 상황에선 조직의 수장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물며 무림맹이다. 섣부른 말일 수도 있지만, 제갈문호는 실질적인 무림맹의 최고 실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데 그런 사람의 거처에 저 흉흉하기 짝이 없는 도끼를 대놓고 들고 들어오다니?

연호정이 송국현을 힐끔 쳐다보았다.

‘……!!’

순간 송국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릴 뻔했다.

딱히 눈에 힘을 준 것도 아니요, 조금 전 제갈문호처럼 살기를 뿜은 것도 아닌데 마주하기 힘들 정도로 눈빛이 강렬했다.

그 눈빛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뚫고 들어와 속내를 낱낱이 분석하는 듯했다. 이렇게 신비롭고도 위압감 넘치는 눈빛은 송국현의 오십오 년 인생에서 두 번째였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의미를 알기 힘든 미소, 그럼에도 송국현은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것은 상계의 거물이기 전, 인간 송국현의 자존심 문제였다.

“손님이 계셨군요.”

부르르르.

방 안의 공기가 강하게 진동하는 듯하다.

아주 낮은 목소리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기가 뒤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전신 근육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뭐 이런 청년이……?!’

심상치 않은 존재감. 소매로 가려진 송국현의 손바닥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인사하시게. 이분께서는 중원전장의 수장이신 송국현 장주님이라 하네. 당대 중원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시는 일대 거인이시지.”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대단한 분이 오셨군요.”

쿵!

광룡부를 벽에 기대 놓은 연호정이 짧게 포권했다.

“강동 연가의 장남, 무림맹 멸사군을 이끌고 있는 연호정이라 합니다. 장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상당히 격식 있는 인사였다. 상대의 신분 이전에, 제갈문호의 손님이기에 더더욱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다.

송국현이 입을 열었다.

입술이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중원전장을 이끄는 송 모라 하오. 소문 자자한 호장(虎將)을 뵙게 되어 내가 더 영광이오.”

“과찬이십니다.”

인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연호정이 제갈문호에게 말했다.

“중한 손님께서 오신 줄 몰랐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오지요.”

“아니, 괜찮네. 장주님과의 공적인 대화는 끝났기에 들인 걸세.”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고, 예까지는 어인 일로 오셨는가?”

연호정의 얼굴에 옅은 의아함이 일었다.

자신이 찾아온 것 역시 공적인 일 때문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데 외인(外人)을 앞에 두고 묻는다는 건, 이 자리에서 맹의 공무에 관해 논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정보 고문에게 소식을 듣고 오는 길입니다만. 군사님께 먼저 보고를 올렸다고 들었습니다.”

제갈문호의 눈이 빛났다.

“도지휘첨사?”

“……!”

연호정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괜찮은 겁니까?”

이 자리에서 신화교에 관해 말해도 괜찮냐는 뜻이었다.

눈치가 빠른 만큼, 어지간하면 연호정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 사안이 사안이라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제갈문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장주님께서는 며칠간 맹에 머무르실 것이네.”

“예?”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셔야 할 듯하네.”

연호정이 송국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송국현의 눈이 깊어졌다.

‘정말이지…….’

자신을 내려다보는 젊은 고수의 눈빛이 바뀌었다.

신비로우면서도 위압감 넘치는 눈빛에서, 지독하게 무심하여 차갑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 살벌한 눈빛으로.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겠구나.’

송국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수양이 깊기로는 누구 못지않았지만, 연호정과 눈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양생술로 단련된 내공과 수십 년간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위축되어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군요.”

“이왕지사 자네도 왔으니, 장주님께서 어인 일로 예까지 오셨는지 말해 주겠네.”

제갈문호는 조금 전 송국현과의 대화를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좌포정사 어르신이라…… 군사님께서 승부수를 던지실 만했습니다.”

“이해해 주어 고맙군.”

송국현은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섭섭해하거나 자존심 상해 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 둘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살벌함을 보면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다만 걱정이 되었다.

‘내 제아무리 중원전장의 수장이라 한들, 이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 앞에서 맹의 극비 정보에 대해 논하고 있다.’

좌포정사 어른? 미지의 조직?

그런 문제를 떠난 상황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돈을 바라는가? 나를 아예 잡아 두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내 목숨을 바라는가.

셈이 빠른 송국현도 지금 상황을 분석하기가 어려웠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위치에 있음에도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였다.

“이번 건은 십이무장 진무 건과 같이 생각해선 안 됩니다. 단독 행동을 하고 있지만, 위치가 위치인 만큼 쉽게 건드릴 수 없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가 무림맹으로 치고 들어올 경우일세. 애초에 그가 신화교 측 인사라는 물증도 없으니, 작정하고 따지고 들어오면 우리로선 대응할 수가 없어.”

“놈을 잡는다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예상하십니까?”

“정삼품 도지휘첨사일세. 그 정도 급이면 오히려 품계가 낮은 관료들보다 움직임에 제약이 크네. 분명 상부에 보고한 후일 테니 도지휘사(都指揮使)까지 나서겠지.”

“도지휘사가 나서면…….”

“오군도독부에서 비상이 걸릴 걸세.”

“그 말인즉, 황실까지 개입하겠군요.”

“구 할이 넘는 확률로, 그렇다고 보고 있네.”

송국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도지휘첨사를 잡는다? 이런 위험천만한 얘기까지 나오다니? 그것도 외인인 자신 앞에서?

그는 상황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걸 직감했다.

“아직 그가 신화교 측 인사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일세. 조금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움직여야겠지요.”

“그 또한 맞는 말일세.”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상정 범위를 예상했어야 했는데, 설마하니 도지휘첨사까지 잡아먹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어찌 자네 잘못이라 하겠는가. 자네 능력이 제아무리 특출나더라도, 보고 듣지 않은 것까지 알 수는 없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제 놈들이 어떤 관직에 앉아 있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현재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는 도지휘첨사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자가 무림맹으로 들어오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확하네. 급한 불부터 꺼야지.”

“일차원적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자의 정체부터 알아보는 게 급선무이고, 대비는 대비대로 해야 하며, 한발 더 나아가 놈들의 뿌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야겠습니다.”

“생각해 둔 계획이 있으신가?”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을 만들기에 앞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처리?”

“예.”

“말씀해 보시게.”

“…….”

“왜?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인가?”

“그렇습니다. 저도 이곳에 와서야 든 생각이라 정리가 필요합니다만.”

“자네의 창의력과 파격은 언제나 내게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네. 동의와 거부는 듣고 나서 할 테니, 기탄없이 말씀해 보시게.”

잠시 침음하던 연호정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얘기했다.

“……!!”

제갈문호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놈들을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선 다른 데에 신경이 분산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이 싸움을 끌고 온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제갈문호의 눈이 깊어졌다.

“연 군장.”

“말씀하십시오.”

“정녕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가?”

“가서 직접 만나 봐야겠지요.”

“상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리고 만에 하나를 생각해야 하네. 우리가 괜히 봉공회의에서 삼교(三敎)에 관한 얘기를 터트리지 않았겠는가?”

“알고 있습니다.”

“…….”

“동의하신다면, 제가 직접 가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네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닐세. 하지만…… 만약 그가 신화교와도 연결되어 있다면, 그때는 어쩔 생각인가?”

“그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일 생각입니다.”

“상대는 강하네.”

“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뜻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갈문호가 탄식을 토해 냈다.

“그 정도인가? 삼교라는 존재의 무서움이?”

“예.”

“내, 신화교라는 악적들이 관부에 침투한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걸세. 하지만 아직 적의 전력이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야. 제아무리 최악을 상정한다 한들, 어느 정도라도 유추가 가능해야…….”

“부디 절 믿어 주십시오. 지금이라도 놈들이 일제히 발호하면, 그 순간 중원은 지옥이 됩니다.”

“…….”

혼란스러운 눈으로 연호정을 보던 제갈문호가 문득 송국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제갈문호의 눈이 번쩍였다.

“이보게, 연 군장.”

“말씀하십시오.”

“이곳에 와서 그 계책을 떠올렸다는 뜻은 설마?”

“그렇습니다.”

연호정 역시 송국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림맹의 숨은 실세들이 자신을 주시한다. 송국현의 얼굴에 솔직한 긴장이 드러났다.

잠시 후, 제갈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래, 모험 한번 걸어 보세.”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호정이 송국현을 보며 웃었다.

“제가 협상의 달인 아닙니까?”

송국현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순간 그는, 와서는 안 될 곳에 왔다는 불안감과 일생일대의 모험이 시작될 거라는 확신을 동시에 느꼈다.

* * *

그날 밤.

“음?”

차를 마시던 모용군이 갑자기 눈을 치떴다.

모용연화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

“아버지?”

“연화야.”

“아, 네.”

“이 대화는 잠시 뒤로 미뤄야겠구나.”

“네?”

“꽤나 골치 아픈 손님이 왔어.”

골치 아픈 손님이라니? 대체 누가?

모용군이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야심한 시각에 저놈이 어찌? 당분간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거늘.”

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훅.

어두운 밤, 수십 장이 떨어진 거리에서도 서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두 사람이었다.

뇌전(雷電)과도 같은 모용군의 안광과 강철처럼 단단한 연호정의 눈빛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기며 부딪쳤다.

가만히 연호정을 바라보던 모용군이 벽 쪽으로 손을 뻗었다.

후우우웅. 철컥!

보검을 쥔 그가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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