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39화 (339/963)

339화. 밝음을 겨누다 (7)

제갈문호의 설명을 들은 연위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적어도 겉으로 봤을 때는 그러했다.

제갈문호가 조심스레 말했다.

“충분히 심사숙고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당장은 위험한 상황입니다. 본래 가주와 한 번 더 대화를 나눈 후 결정하고 싶었으나…….”

“괜찮소. 내게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이 건에 관해서는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잖소?”

“허허.”

“호정에게는 내 따로 얘기해 두었소. 이왕이면 안정적으로 가는 게 좋으나, 시급을 다투는 경우라면 서로의 결정을 믿자고. 그 정도 믿음 없이는 저들과 싸우기 힘들잖소?”

“맞는 말씀입니다. 또한,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일단 연수를 맺는다 한들, 모용군을 완전히 믿지는 않고 상세히 조사에 들어가겠다 하였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자는 양천과 모종의 거래를 했을 확률이 높으니, 사음교와도 선을 대 놓았을 수 있지요.”

“이해합니다. 다만…….”

“예?”

연위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아들의 전생을 알고 있었다.

‘굳이 그런 확인 작업이 필요할까? 모용군 그자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들었거늘.’

물론 그때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너무나도 다르다. 아들에게 듣기로, 그때는 묵룡부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연위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모용군과 일시적 동맹을 맺는다 한들, 그자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오.”

“그 문제는 이 사람 역시 고민이긴 합니다만.”

제갈문호의 눈이 빛났다.

“그가 함께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적어도 묵룡부 때와는 양상이 달라질 겁니다.”

“사음교가 몰래 묵룡부를 노리고 있다는 것까지 말해 줘야 할 테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이것은 모용군이 삼교와 아무 관련이 없을 시에 그렇다는 겁니다. 아직은 지켜봐야겠지요.”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내 그간 말은 하지 않았소만, 적어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안심하고 있었소.”

“어째서 그렇습니까?”

“군사께서는 그를 어찌 보시는지 모르겠소만, 호정은 그를 독이 묻은 칼처럼 보고 있소. 찾아보기 힘든 명검이긴 하나, 그 칼을 쥔 자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독검(毒劍) 말이오.”

“정확한 비유십니다.”

“나는 다르오. 내가 본 모용군은 검이 아니오. 그저 탐욕이 누구보다 큰 호랑이일 뿐이오. 호랑이는 산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할 뿐, 왕 노릇을 할 만한 다른 야수와는 동석하지 않소이다.”

제갈문호의 눈이 빛났다.

연위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자가 양천과 손을 잡은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에 불과하오. 당장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으니 별수 없었던 것이지. 나아가, 모용군은 양천과 함께 천하를 둘로 나눠 먹을 생각 자체가 없소. 애초에 양천마저 밟고 올라서서, 천하제일의 권력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오.”

“맞습니다.”

“거기에 광신삼교가 낀다? 그럴 리가 없소. 기실, 내가 보기에 그자의 자존심도 제멋대로일 뿐이오. 다만 이것 하나는 내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었소. 삼교를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잡지는 않았을 것이오.”

잠시 고민하던 제갈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리 생각하니, 가주께서 확신할 만합니다.”

한번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행동이 자아낸 결과를 보지 않고 과정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확실히 모용군은 삼교와의 접점이 없다고 봐야 했다. 그가 삼교와 손을 잡았다면 이런 탐심 가득한 정쟁을 벌일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까.

“묵룡부 때도 그랬지요. 그는 양천을 철저하게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언젠가 반드시 부딪쳐야 할 난적이었으니까요.”

“그렇소. 물론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일단은 지켜봅시다.”

“그럽시다. 사람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연위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아군이 된다면…… 아마 많이 부딪치게 될 것이오. 그자는 선이라는 걸 모르니까.”

“어쩌면, 오히려 잘 맞을지도 모릅니다.”

“음?”

제갈문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 사람 역시 선을 넘기 시작했거든요.”

* * *

모용군의 눈이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파괴력 넘치는 공격에 내부가 뒤흔들렸다. 어떻게든 잘 막고 흘렸으니 다행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피까지 토할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무슨 헛소리냐?”

연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살의가 번뜩이는 눈으로 모용군을 노려볼 뿐이었다.

모용군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삼교? 묵룡부를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나아가, 현재는 황실과 관부에도 암약해 있지.”

“……!”

충격 가득한 얼굴로 연호정을 마주 노려보던 모용군이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네놈이 이제는 같잖은 거짓말로 날 농락하려 드는구나.”

목소리가 은은하게 떨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역시 연호정이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가 했던 말처럼, 연호정이 휘두른 도끼에는 진심만이 가득하였다.

무(武)로써 상대를 알아 간다. 연호정과의 짧은 부딪침 속에서 모용군은 어떠한 꾸밈도, 거짓도 느낄 수 없었다.

“다시 묻는다.”

휘이이이이잉!

거센 백색의 폭풍이 광룡부를 휘감았다.

“광신삼교(狂信三敎), 즉 사음교와 신화교, 그리고 광혈교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알고 있었나?”

“헛소리는 그만하라 하였다.”

목소리가 한층 침착해졌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은 것이다.

연호정의 눈이 무저갱처럼 어두워졌다.

‘당신은 날 죽였어. 사음교 외에 신화와 광혈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제아무리 내 힘이 두려웠다 한들, 네 사람도 지켜 줄 나란 존재를 묻어 버린 건 이해가 안 돼.’

문제는 이것이다.

‘사람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

모용군은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변화는 남녀노소, 빈부격차는 물론 강자와 약자도 가리지 않는다.

만에 하나라도 양천이 사음교에 대해 말해 주었다면? 모용군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물론 연호정이 아는 모용군이라면, 정쟁을 멈추고 놈들부터 공략하자고 제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용군은 그러지 않았다. 고로, 연호정이 아는 모용군은 삼교의 존재를 모른다.

‘그러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의 신중함을 위해 그 직전까지 과감하게 달려왔다.

연호정의 입이 다시 열렸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치이이이익!

차가운 바람이 연호정의 살기 앞에 무섭게 들끓었다.

“모용군. 너는 삼교와 손을 잡았느냐?”

기어이 모용군은 분노를 터트렸다.

“헛소리하지 말라 하였다!”

쩌어어어어엉!

모용군의 폭발적인 일격에 연호정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

동작에 빈틈이 그대로 드러난, 오직 위력만을 살린 일검이었다. 반격하기가 너무나도 쉬웠지만, 연호정은 그의 검격을 그대로 받아 냈다.

파지지직!

광룡부에 시퍼런 전광이 이글거리다 사라졌다. 연호정의 내력 방패를 모용군의 뇌정기(雷霆氣)가 뚫어 내지 못한 것이다.

푸스스스.

광룡부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용군의 눈에서 살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 농밀함이 연호정의 살기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네놈의 오만함은 정도를 넘어섰다. 내, 오늘 널 죽이지는 않겠다만 그 버르장머리를 따끔하게 고쳐 줄 것이다.”

연호정이 대답할 새도 없었다.

퍼어어엉!

모용군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왔다. 연호정의 혈익휘천 못지않은 엄청난 속도였다.

전신에 뇌정기를 두른 모용군의 진짜 실력, 폭발적인 진격과 함께 휘두르는 보검에 푸른 전광이 이글거렸다.

연호정이 호왕구벽세를 펼쳤다.

콰르르릉!

요란한 폭음과 함께 멀리 떨어진 나무 몇 그루의 표피가 퍽퍽 깎여 나갔다.

파지지직! 휘이이이이잉!

무시무시한 광풍과 섬뜩한 뇌기(雷氣)가 사방을 할퀴고 지나갔다.

본신의 힘을 아낌없이 펼쳐 내는 모용군의 힘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힘으로는 누구 못지않은 연호정조차 한순간 휩쓸릴 정도, 강검(强劍)으로는 아버지보다도 더 강한 것 같았다.

모용군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쩌어어엉!

검이란 양날이며, 두께가 얇기 때문에 베는 것보다는 찌르는 것에 더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모용군의 검은 달랐다. 마치 연호정이 도끼를 휘두르듯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리치는데, 일검에 만근의 힘이 실렸다.

콰아아앙!

연호정의 두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연가신단을 형성하며 한층 더 성장한 무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에서 밀렸다. 분명 모용군의 경지가 더 위긴 했지만, 이만한 고수와의 결전에서도 힘으로 밀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

연호정의 두 눈은 맑고도 서늘했다.

내상으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과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눈으로 모용군의 무공을 하나하나 쳐 내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리 화가 났지?’

굳이 힘 대 힘으로 받아칠 필요가 없다.

모용군의 힘은 분명 대단했지만,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몰아치는 공격이라 허점이 많았다. 제대로 반격을 가한다면 치명적인 일격을 먹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호정은 반격하지 않았다. 허점을 노리지도 않았다.

그저 진득하게 모용군의 강검을 받아 낼 뿐이었다.

‘삼교와 연관이 있는 걸 숨기기 위해 화를 내는 거냐? 아니면 의신회 같은 놈들이 또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거냐? 그도 아니면, 혼자 바보가 되었다는 사실에 분개한 거냐? 그것마저도 아니라면, 아는데도 지금껏 외면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거냐?!’

무로써 그릇을 본다.

그릇을 보기 위해선 진심을 읽어야 하고, 진심을 읽기 위해선 기(氣)와 기가 부딪쳐야 한다.

알아 간다. 서로의 진심을.

연호정의 눈에, 서서히 모용군의 진심이 엿보이고 있었다.

쩌엉! 쩌저저정!

힘에 속도까지 붙었다.

연호정이 모용군의 진심을 읽어 가는 것처럼 모용군 역시 연호정의 진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나아가, 광신삼교라는 미지의 조직을 얼마나 뿌리 깊게 증오하는지를.

모용군의 눈에, 서서히 다른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대지는 메말랐고, 하늘은 솟구치는 불길에 시뻘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체들이 사방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한 청년이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고 있었다.

연호정이었다. 연호정이 피 흘리는 제 아비와 동생을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순간 모용군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이놈.’

환각인 듯, 혹은 환각이 아닌 듯.

연호정의 마음이 느껴졌다. 미래를 걱정하는 그 마음이, 충분한 대비를 하고도 지옥이 되어 버릴 세상을 걱정하는 그의 긴장과 슬픔이 느껴졌다.

제 가족이 죽을까 걱정하는 한 무사의 진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무로써 진심의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도, 상대가 자신의 기(氣)를 통제하면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이 내게, 처음으로 그 진심을 보여 주는 것인가.’

강철의 성문이 열린다.

기는 곧 마음이요, 마음은 곧 사람이 사람답게 움직일 수 있게끔 해 주는 영혼의 심장이다.

그리고 지금, 연호정은 거침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기를 통해 모용군이 알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삼교를 증오하는지, 그들이 얼마나 걱정스러운 존재인지를.

순간 모용군의 안광이 시퍼런 뇌광을 쏟아 냈다.

쩌어어어엉!

이번 일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한 검격이었다.

힘과 속도, 무리(武理)와 시기적절함 등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쿨럭!”

십여 걸음 물러난 연호정이 피를 한 움큼 토했다.

위력과 침투경이 엄청난 수준에 이른 검격이었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지만, 마지막 일검까지도 기어이 받아 낸 그였다.

연호정이 입가를 닦고 앞을 주시했다.

어느새 검을 하단으로 내린 모용군이 무표정한 얼굴로 연호정을 보고 있었다.

“…….”

다시 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번의 침묵을 깬 것 역시 모용군이었다.

“날 믿는가?”

“퉤!”

핏물을 뱉어 낸 연호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안 믿소. 다만, 당신의 능력은 믿소.”

과거 묵룡부에 침투하기 전, 작전을 함께하게 되었을 때와 같은 문답이었다.

물끄러미 연호정을 바라보던 모용군이 납검했다.

스르릉. 탁!

검날이 검집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한 줄기 노래처럼 매끄러웠다. 마음이 완전히 진정된 것이다.

모용군이 몸을 돌렸다.

“내일 정오, 파군각으로 갈 것이네.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을 모아 주게.”

“그사이 허튼짓은 마시구려. 지금 바로 후개에게 가서 모용세가의 거처 전부를 통제해 달라 말할 것이오.”

모용군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연호정을 노려보았다.

“삼교인지 뭔지 하는 놈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아 두어야 할 걸세. 만에 하나라도 오늘 자네가 한 말에 거짓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었다간, 내일 파군각은 피바다가 될 게야.”

“기대하지.”

다시 몸을 돌린 모용군이 숲을 떠났다.

쿵.

광룡부를 내려놓은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쉽게 좀 살자, 이 인간아.”

드러낸 감정은 진심이다. 그러나 모용군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내가 죽을 때처럼 허튼수작을 부리면, 그땐 형님의 부탁이 있어도 모용세가의 뿌리까지 뽑아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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