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56화 (356/963)

356화. 청소의 시작 (6)

쩌어어어엉!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굉장하군.’

석경을 향해 달려들던 연호정은 곧장 방향을 틀어 무성을 공격했다.

말하자면 변칙적인 공격이었다. 그런데도 무성은 기다렸다는 듯 광룡부를 막아 냈는데, 도끼날에서 전해지는 발경의 충격이 실로 대단했다.

‘멀쩡하단 말이지.’

백호기를 한껏 담아 내친 일격이었다. 그 일격을 맨손 수도(手刀)로 후려쳤는데도 손이 망가지지 않았다.

파박!

그래도 연호정 특유의 힘과 광룡부의 무게 때문에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적어도 힘에서는 연호정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놈!”

석경이 곧장 연호정을 향해 열화신장을 뻗었다.

화르르르륵!

좌측 얼굴이 뜨거워졌다. 한순간 엄청난 열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파악!

연호정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콰아앙!

열화신장이 절벽을 부수고 들어갔다. 단순히 뜨거운 것만이 아니라, 바위를 으스러트릴 정도의 위력까지 담고 있었던 것이다.

석경이 연호정을 올려다보았다. 허공으로 피할 줄 알았다는 듯, 어느새 좌수에서 또 다른 장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훅!

음험한 권풍(拳風)이 석경의 몸통을 노리고 쏘아졌다.

공기의 결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장력이었다. 위력은 강하지 않지만, 격중당하면 잠시나마 전투력의 저하가 올 것이다. 장력에서 느껴지는 독기(毒氣)가 무척 거셌다.

‘당가?!’

석경이 당관의 장력을 향해 왼손을 내쳤다.

콰앙!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퍼졌다. 그 불꽃에 달큼한 냄새가 실려 흩어졌다. 독장(毒掌)이 부서지며 나는 냄새였다.

당관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오만한 놈!”

석경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당가의 버러지.”

파아악!

석경이 당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곡강의 움직임보다 한결 빨랐다. 그러면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언제 어느 때라도 반응할 수 있도록 신법과 보법에 여유를 두는 것이다.

당관은 가만히 뒷짐을 지고 석경을 맞았다.

석경의 눈이 깊어졌다.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건가.’

그때, 등 뒤에서 엄청난 살기가 소용돌이쳤다.

‘……!’

석경이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

콰아앙!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며 날아온 광룡부가 석경이 서 있던 자리에 박혔다.

번쩍!

어느새 도끼의 창대 위에 올라선 연호정이 석경을 향해 장(掌)을 내쳤다.

퍼엉!

석경이 뒤로 물러났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폭발시키는 장력이 아니라 밀어 내는 장력이었기 때문이다.

석경이 물러나자, 곧바로 무성이 치고 들어왔다.

연호정의 동공에서 청색 광채가 소용돌이쳤다.

쩍!

단숨에 뽑아 드는 광룡부.

번쩍!

횡으로 둘러친 광룡부의 속도는 어떠한 쾌검보다도 빨랐다.

무성은 열화신장을 세 번 겹쳐 막았지만, 광룡부가 자아낸 일참(一斬)의 파괴력은 삼 장(三掌)의 방벽을 그대로 깨부술 정도로 막강했다.

콰아앙!

무성이 재차 뒤로 물러났다. 내내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쿵!

절벽 사이로 난 소로, 그 앞을 막아선 거대한 신장(神將)이 있었다.

거대한 도끼를 든 연호정은, 그 호리호리한 체형과 도통 맞지 않는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연가신단이 고속으로 회전했다. 회전하는 내단 중심에서 벽라진기가 중심을 잡고, 용포기가 태양의 열기처럼 뻗어 나왔다.

휘이잉! 휘이이잉!

광룡부에서 백색의 광채가 피어올랐다. 반투명한 백색 광채는 서너 갈래로 찢어지며 광룡부의 도끼날과 창대를 연신 휘감아 돌았다.

화르르륵!

등 뒤에서부터 올라오는 붉은 살기엔 충천하는 불사조(不死鳥)의 분노가 담겼다. 태양신의 살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고 있었다.

우우웅.

두 다리에선 은은한 녹청빛 바람이 휘돌아 나오며 은근한 여유를 자아내고 있었으며, 연호정 전면 일 장 앞에선 반투명한 육각 흑갑(黑鉀)이 떠오르며 절대 무적의 방어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벽라진결, 용포신공이 합일된 연가신단이 극도로 활성화됐다. 사신기(四神氣)가 온몸을 누비며 주인의 전투력을 완전하게 개방하고 있었다.

모든 힘을 뽑아낸 연호정. 하늘이 내린 무적의 장수가 되어 적들을 노려보니, 그 매서운 안광에 석경과 무성조차 흠칫하며 물러났다.

연호정이 광룡부로 가볍게 바람을 갈랐다.

후우우우웅.

새하얀 바람이 증폭되며 광룡부에 야수의 이빨을 달아 주었다.

“자.”

연호정이 좌수를 중단으로 내밀었다.

훅.

손끝에서 시뻘건 불꽃과 허연 바람이 마구 섞이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제 들어와 봐.”

도발적인 한마디였다.

석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번쩍!

놀랍게도, 석경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무성이었다.

조금 전의 일합에서 밀린 게 수치스러웠을까? 전신 가득 시퍼런 불꽃을 피워 내며 돌진하는 무성의 기파는 실로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연호정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쩌저저저저정!

두 사람의 무공이 부딪치며 무서운 경파를 발산해 냈다.

쩌저저적! 콰지지직!

그 충격파로 땅과 절벽에 금이 갔다. 혼신의 힘을 다한 두 초절정고수의 격돌에, 대자연이 수천 년을 공들여 만든 돌벽에 흠집이 난 것이다.

무성의 염왕권이 연호정의 가슴을 노렸다.

연호정이 그대로 창대를 올려 쳤다.

쩌어어어엉!

화려한 충돌이었다.

염왕권과 함께 뿜어지는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광룡부를 휘감았던 백색의 바람이 연기가 되어 쫙 펼쳐졌다.

파바바바박!

순간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기백으로 적들을 막아섰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당해 줄 리는 없다. 백 명의 신화병들이 좌우 절벽을 타고 달리며 돌진하고 있었다.

후미를 잡아 포위해서 공격하겠다는 뜻이었다. 간단하면서 효율적인 전술이었다.

물론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연호정이 아니었다.

연호정이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콰앙!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힘을 모아 호왕구벽세, 호조요란(虎爪搖亂)을 펼쳤다.

콰콰쾅! 콰릉!

전면은 물론 좌우까지 베고 찍어 버리는 희대의 난격술(亂擊術)이었다.

그야말로 미친 살인마의 도끼질이 따로 없었다. 팔십 근이 넘는 중병으로 난격술을 펼치니, 경지의 고하를 떠나 그 위압감이 필설로 형용키 힘들 정도였다.

퍼어어억! 푸화아악!

돌풍을 일으키는 대호의 발톱에 신화병 셋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날아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를 아우르는 난격이라, 설마설마하다가 당해 버린 것이었다.

무성의 눈이 빛났다.

퍼억!

연호정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난격술로 좌우의 진입을 막았지만, 정작 전면의 무성을 향한 공격은 약해졌던 것이다.

훅!

무성이 탄력을 받아 움직였다.

일직선으로 치고 들어오는 무성, 수도(手刀)로 펼치는 화룡마도(火龍魔刀)가 연호정의 하체를 노렸다.

‘……?!’

순간 무성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지?’

놈의 실력이라면 회피, 방어, 반격 등 어떤 술수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하체를 노린 것은, 그다음 공격의 연환으로 연호정을 밀어붙이기 위함이었다.

한데도 연호정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공격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좌우를 향해 다시 한번 난격술을 펼치려 드는데, 그러다가 다리가 잘려도 괜찮다는 기색이었다.

‘왜?’

그때였다.

“무성!”

번쩍! 콰아앙!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석경이 무성의 머리 위를 막아 냈다.

“큭!”

무성과 석경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치이이익!

두 사람의 손에서 탁한 회색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기(毒氣)였다.

무성은 깜짝 놀라 전면을 바라보았다.

퍼버버버버벅!

전방위를 아우르는 난격술을 구사하는 연호정.

그리고 그런 연호정의 어깨 뒤, 시퍼런 안광을 토해 내는 당관이 있었다.

당관이 손가락을 튕겼다.

피이이이잉!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비수 두 자루가 곡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일직선도 아니고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는데, 회전하는 그 순간 속도가 배가되기까지 했다.

퍽! 쩌엉!

무성이 피한 비수가 신화병 하나의 복부에 박혔다. 석경은 주먹으로 비수를 부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당가인 앞에서 맨손으로 달려들다니.”

촤르르르륵!

당관의 양손에 무수히 많은 암기가 잡혔다.

대체 그 많은 암기를 어디에 숨기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종류도 제각각이라, 어떤 암기가 어떤 효용을 지니는지도 파악이 안 된다.

“그 오만, 죽음으로 깨닫도록.”

당관이 쌍수를 휘둘렀다.

파바바바박!

수십 개의 암기가 연호정을 피해 두 사람에게로 쏟아졌다.

석경이 이를 갈았다.

“이놈!”

콰앙!

강력한 진각과 함께 그가 사방으로 장을 내쳤다.

퍼퍼퍼퍼퍼펑! 쩌엉! 퍼벅!

암기의 칠 할이 석경의 장력 방패에 막혔다.

석경의 눈이 흔들렸다.

‘피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전면 전체를 막을 요량으로 내공을 있는 대로 쏟아부었다. 한데 그중 삼 할의 암기가 공기를 타고 휘어 넘어가더니, 등 뒤의 신화병들을 덮쳤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크아아악!”

“으아악!”

암기에 맞은 신화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꾸러졌다.

‘비명이라니?!’

석경은 물론 무성도 놀랐다.

다른 교도들과 같이, 신화병 역시 충성심과 신념을 위해 정신 무장이 제대로 된 이들이었다. 어지간한 고문에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을 정신력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그런 신화병들이 비명을 지른다. 고작 암기에 맞았을 뿐인데도!

곧이어 그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투두두두둑!

쓰러진 신화병들이 칠공에서 피를 토했다. 한데 쓰러진 그들의 몸이 연신 움찔거리고 있었다.

암기였다.

체내로 파고든 암기가 전신 혈도를 돌아다니며 혈관을 찢고 신경을 끊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잔혹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석경은 당관의 잔혹한 암기술에 치를 떨었다.

“이 미친!”

당관이 손가락을 튕겼다.

피이잉! 퍼엉!

욕을 할 새가 없었다.

빈틈을 노리고 날아든 암기를 쳐 내는데 손목이 뻐근했다. 그 작은 암기에도 무시할 수 없는 내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쾅! 콰르릉!

좌우 절벽이 이제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졌다.

안 그래도 좁은 길이 더 좁아졌다. 연호정의 호조요란에 깎여 나간 벽에서 튀어 오른 돌 조각들이 신화병들의 몸에 끔찍한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후우웅! 퍼억! 후우웅! 퍼억!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쏘아진 당관의 장력에 신화병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치이이익!

쓰러진 신화병들은 희뿌연 연기와 함께 검붉은 피를 토했다. 피를 토한 신화병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당가천독수였다. 요뢰를 죽였던 독랄한 내가중수법이 신화병들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성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전면에선 거대한 도끼를 든 미친 살인마가 철통같은 방어로 버티고 있고, 등 뒤에선 접근을 불허하는 독암(毒暗)의 마왕이 살벌한 공격을 가해 온다.

마치 평생 손발을 맞춰 온 듯, 두 고수는 각자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로 쓸어 버리려던 그들의 계책은, 적어도 이 두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 되겠군.’

석경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일순간 화가 나서 총공격을 명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병력만 잃게 될 것이다.

“모두 공격 중지! 후방으로 물러나라!”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무성은 물론 신화병 모두가 그 즉시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파바바박!

연호정과 당관이 벌어진 거리를 다시 좁혔다.

한번 우위를 점한 전투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다. 실전 능력에 있어서 천하에 비할 데가 없는 두 사람은 대화 한마디 없이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으아압!”

콰앙!

방어에 집중하던 연호정이 순간 일직선으로 치고 들어가 석경을 향해 광룡부를 휘둘렀다.

석경의 눈이 번뜩였다.

쩌어어어어엉!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연호정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피이이이잉!

동시에 당관의 비수 일곱 자루가 석경을 향해 쏘아졌다.

순간 무성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쩌저저정!

무성의 염왕팔권이 비수 일곱 자루를 모조리 쳐 냈다.

연호정이 씨익 웃었다.

슬슬 열이 오르는 듯, 그의 목덜미가 빨갛게 변했다.

“역시 그냥 당해 주지는 않는 건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