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뒤흔들다 (5)
잡은 듯, 걸친 듯 묘한 파지법으로 비수를 쥐고 있는 청년의 눈빛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닿지 못했다.’
비수의 날은 몹시 예리했다.
적당한 두께, 적당한 길이, 적당히 괜찮은 손잡이.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금을 주고 살 만한 물건도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그놈 몸뚱이에 이것까지 박아 넣었어야 했어. 그랬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쌍두독비(雙頭毒匕).
기억을 되찾은 후, 지난 삼 년간 오직 음신을 죽이기 위해 갈고 닦은 사마현만의 독창적인 살법이었다.
기실, 말이 살법일 뿐 그저 음신을 죽이기 위해 고안한 사마현 고유의 수법이라고 봐야 했다.
음화홍류, 음한백류를 합쳐 대성한 음신에게는 사천당가의 무형지독 정도를 제외하면 통하는 독이 없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전무하고, 암살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즉 남은 선택지라곤 천재지변으로 죽기를 바라거나, 타인의 손에 살해당하길 꿈꾸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사마현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을뿐더러,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삼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바로 쌍두독비였다.
어지간한 극독은 통하지 않으니, 합성독으로 독력(毒力)을 증폭시켜 상대의 생명력을 일시적으로 무(無)에 가깝게 깎아 버리는 것.
음신 대대로 내려오는 독창적인 극독, 사화문(死花紋)의 제조법을 완벽히 알았다면 굳이 이런 식의 방법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음신, 사마현의 사부이자 사음교의 간자는 그에게 사화문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다.
음신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몇 가지 비술(祕術)을 터득해야 했다. 사마현은 그중 대다수를 홀로 터득했지만, 사화문만큼은 제조법의 칠 할 정도밖에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격필살이 아닌 이격필살의 독 비수를 만든 것이다. 상대가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비술을.
‘빌어먹을.’
사마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참았어야 했는데.’
그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연호정의 쇠사슬이 야율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지던 순간을.
그들보다 낮은 경지를 거닐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현은 알 수 있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야율적은 연호정의 공격을 흘려 낼 수를 알고 있었다. 그것이 제대로 통할지를 떠나, 이미 연호정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단 말이다.
나아가 야율적은 도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오직 야율적만을 살펴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원수의 도주.
사마현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놓치면 평생 잡을 수 없다. 오히려 몸을 추스른 이후 자신을 암살하러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음신의 암습을 절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뿌드득.
사마현이 눈을 감았다.
‘아니야.’
그는 자책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게 나의 착각일 수도 있어.’
음신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 특히 섭혼술이 깨진 이후부터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언행과 습관 등을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만약, 음신이 자신을 속인 거라면?
굳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 대외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 자체가 전부 꾸며진 모습이라면 어쩔 텐가?
보통의 경우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음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걸 다 떠나서, 그자는 저 새외의 정체불명 집단에서 중원으로 파견한 첩자라고 하였다.
숨기고 감추는 데에 누구보다도 능하다는 뜻이다. 하물며 자신에게 섭혼술까지 건 것을 보면, 자신이 모르는 능력을 여럿 갖추고 있는 듯했다.
‘결국, 내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푹.
손에서 떨어진 비수가 땅에 박혔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갈고 또 갈았던 비수였다. 어찌나 날카로웠는지, 던진 것도 아니고 자연스레 떨어진 것뿐인데도 칼날의 절반이나 땅에 박혔다.
사마현이 그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얼마나 독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뭐 하냐.”
움찔!
사마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연호정이 서 있었다.
“칙칙한 놈이라는 거야 첫 만남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혼자서 궁상떨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마현은 말없이 연호정을 보았다.
연호정의 얼굴엔 이렇다 할 표정이 없었다. 말하자면 무표정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마냥 차가워 보인다거나 무심해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후, 사마현이 입을 열었다.
“때가 되었소?”
“무슨 때?”
“나 때문에 목표물을 놓쳤고, 나아가 부하가 사경을 헤매고 있잖소.”
“그런데?”
“날 죽이러 온 거냔 말이오.”
연호정은 생각했다. 확실히 이놈 성격은 암살자의 그것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통의 암살자였다면 목표물을 놓친 것에만 신경을 쓰지, 부하가 다친 것에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천성을 떠나, 그런 환경에서 살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한데 사마현은 부하를 잃을 뻔한 연호정의 분노와 자책을 ‘이해’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공감에서 시작한다. 언행과는 달리, 사마현 역시 자신의 사람을 챙길 줄 아는 위인이란 뜻이었다.
“내가 그럴 거라 여겼다면,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
“지금은 어딜 가도 위험하니까.”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표정이랄 것이 생겼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것은 없다.
“야율적 그놈이 암습이라도 가할까 싶어서?”
“그렇소.”
솔직한 대답이었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왜 그렇소?”
“무림맹이 놈을 노리고 있어. 게다가 시원하게 한판 붙기까지 했지. 지금 그놈 머릿속에, 너 같은 잔챙이가 남아 있기나 할 것 같으냐?”
“……!”
“자의식 과잉인가? 아니면 복수에 실패한 충격에 시야가 좁아지기라도 한 건가? 지금 그놈은 털려 버린 본진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어.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단 말이다.”
“…….”
사마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조금 흔들리는 눈으로 연호정을 주시할 뿐.
“그리고 나 역시, 널 죽일 생각 따위는 없어.”
“왜 그렇소?”
“왜냐니?”
“분하지 않소? 나 때문에 그놈을 놓쳤는데?”
“분하지. 너한테 화도 많이 났다.”
“한데 왜?”
“화난다고 아무나 다 죽이면, 그게 대책 없는 살인마지 사람이냐? 하긴, 내 적들은 날 그렇게 볼지도 모르겠군.”
“……차라리 뺨이라도 한 대 갈기지 그러시오.”
“마음이 편해지고 싶나?”
“…….”
“제대로 대화할 상태가 아니로군. 하지만 난 바빠. 그러니 억지로라도 네놈의 정신을 일깨워 줘야겠다.”
“무슨 말이오?”
연호정이 보란 듯이 팔짱을 꼈다.
“분하지 않냐고? 맞다. 네놈한테도 화가 많이 났지. 하지만 내가 가장 화가 나는 대상은 네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사마현의 눈이 깊어졌다.
“나 자신이라니?”
“고작 너 같은 애송이의 기습도 쳐 내지 못한 무능력에 대한 분노. 너처럼 쉬운 놈의 행보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멍청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
“……!”
“결국 내 잘못이다. 네놈이 어설픈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난 나 자신의 성장에 도취되어 그걸 고려하지 못했다. 뼈아픈 실책이지.”
사마현의 눈가가 살짝 떨려 왔다.
연호정이 말을 이었다.
“같은 의미로, 너 때문에 내 부하가 다쳤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부하에게 너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너 때문이지. 그리고 나 때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부분에 더 큰 책임을 느끼느냐일 뿐이야.”
“…….”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느끼고 있다면, 나중에 내 부하에게 한마디 사과라도 해라. 나는 그걸로 족해.”
“당신 부하는 아닐 수도 있소.”
“그건 네 사정이고, 내 부하 사정이다.”
“…….”
“한마디만 더 하지. 내 부하를 너무 띄엄띄엄 보지 마라. 가끔 머저리 같은 모습을 보여 줄 때도 있지만, 복수의 때를 기다릴 줄 모르는 너 같은 잔챙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릇이 큰 놈이야. 네가 왜 사과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마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난 당신 부하에게 미안하지 않소. 애초에 동료도 아니고, 당신 멋대로 날 지키라고 했을 뿐이오.”
“그래서 어쩌라고?”
“…….”
“미안하지 않으면 사과하지도 마. 가식 가득한 사과 따위 해 봤자, 상대를 농락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
“당신은 정말, 내가 밉지 않단 말이오?”
“미워했으면 좋겠나? 당장이라도 죽여 줄까, 그럼?”
“…….”
“뭐가 그리 혼란스러운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이야. 내게 적의가 없다면, 네놈이 날 따라다니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면서 따라붙는 건 사양이야.”
물끄러미 연호정을 올려다보던 사마현이 땅에 박힌 비수를 뽑아 닦고는 품에 넣었다.
“나한테서 알고 싶은 게 무엇이오?”
“야성에 대한 모든 정보.”
“…….”
“현재 야율적, 즉 네놈의 사부이자 원수인 음신은 구백 명의 정예 암살자들을 이끌고 야성 인근에 주둔 중이다.”
순간 사마현의 눈에 불이 붙었다.
영영 놓칠 뻔한 원수가 야성 인근에 주둔 중이라고 한다. 그 사실이 의욕을 잃었던 그의 마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동시에 의아했다.
‘야성 인근에…… 대체 왜?’
주둔이라면 말 그대로 암살자들을 병사처럼 도열시켜 공격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데, 그건 도저히 암살자가 떠올릴 만한 병법이 아니었다.
암살자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본진이 털릴 때를 대비해 이차, 삼차 안가(安家) 정도는 만들어 놓는 게 정석이며, 당연히 음신 야율적도 광동에 수많은 안가를 숨겨 두고 있다.
연호정의 눈빛이 칙칙해졌다.
“이상하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 오히려 몸을 더 꼭꼭 숨겼다면 모를까, 대놓고 병력을 소환해 보란 듯이 우리를, 야성을 노리고 있어.”
“……이상하군.”
“사음교 때문이다.”
“……?!”
“놈은 사음교의 첩자야.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본진에 알릴 필요가 있지. 세작이든 뭐든, 타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에겐 사태의 급격한 변화를 그 즉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건 중원이나 새외를 막론하고 어떤 조직도 똑같아.”
“당신 말은, 그 작자가 사음교인지 뭔지인 곳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본진을 탈환하려 한다는 것이오?”
“탈환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들러야 할 이유가 있는 거다. 나는 그것이 사음교로 정보를 보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아니오.”
“뭐?”
사마현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오.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일 작자가 아니지.”
연호정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네 생각은 뭐지? 놈이 어떤 이유로 본진을 탈환하려는 것 같으냐?”
“사음교…… 그곳으로 연락을 보내기 위함임과 동시에…….”
“동시에?”
사마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매만졌다.
“도주…… 피해…… 병력 증발에 정보 공작에서도 뒤지는 상황이라면…….”
“…….”
“전쟁이군.”
“뭐?”
사마현의 눈이 빛났다.
“그자,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거요.”
“……우리와 전쟁을 벌일 거라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전쟁 말고, 암살자만이 벌일 수 있는 음지의 전쟁.”
“……!”
“그리고 내 예상대로라면…… 그자는 이미 야성에 침투했을 거요.”
연호정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움직이자. 서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