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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431화 (430/963)

431화. 사신(四神)으로 엮인 과거 (6)

파라라라락!

연호정이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굉장하구만.”

미소를 머금은 탐경이 내뻗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그 손은 멀쩡했다. 은은한 황금빛 서기에 둘러싸인 늙수그레한 손이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크고 넉넉해 보였다.

“금강(金剛)은 비할 데 없는 대력(大力)이라, 바위를 부수고 철판을 찢어 내지. 극에 이르면 천하의 어떤 악인이라도 감히 뚫을 수 없어.”

후우우웅.

황금빛 서기가 사라지자, 탐경의 손바닥에 작은 생채기가 보였다.

피 한 방울이 날 듯 말 듯한 상처였다. 상처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그러나 소림의 유명한 절기인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의 힘을 뚫고 상처를 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주르륵.

오히려 흑룡부를 쥔 연호정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대력금강장을 후려친 충격을 못 이기고 호구가 찢어진 것이다.

가히 강철 같은 강함이었다. 상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병장기를 쥔 손에 상처를 입은 것이 얼마 만이던가?

“권장(拳掌)은 하나라지만, 내 경우 권법보다 장법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네. 기(氣)의 발출력이 워낙 다채로워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야. 그런 내가 발출한 대력금강장을 뚫고 상처를 냈다…….”

탐경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쿵!

진각이 아닌데도 공터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했다.

“자네 스승은 누구인가.”

짐작하고 있음에도 모른 척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네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너무나 달라. 그는 그러지 않았네.”

차아아앙!

백룡부까지 꺼내 든 연호정이 단조로운 음색으로 말했다.

“그걸 알았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거요.”

“다시 묻겠네.”

탐경의 눈에 일순 엄기(嚴氣)가 어렸다.

“스승이 누구인가. 그리고 자네는 누구인가.”

“이제부터 알아보시오.”

파아악!

무서운 속도로 전진한 연호정이 힘차게 쌍부를 휘둘렀다.

탐경의 눈이 빛났다.

흑룡부는 목을 노리고 백룡부는 어깨를 노린다.

작은 손도끼인데도 그 묵직함과 예리함이 상상을 초월했다. 금강불괴신공(金剛不壞神功)을 연성한 그였지만, 신체의 강도를 믿고 받아 낼 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탐경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흑룡부를 쳐 냈다.

쩌어엉! 쩌엉!

엇나간 흑룡부가 백룡부와 충돌하며 연호정의 자세를 송두리째 무너트렸다.

무서운 힘, 놀라운 감각이었다. 그저 손 한 번 휘둘러 흑룡부의 참격을 튕겨 낸 것도 놀랍지만, 궤도를 벗어난 흑룡부를 백룡부와 충돌시켜 자세까지 무너트린다는 발상을 순간적으로 해낸 것이다.

하지만 연호정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쾅!

허공에서 자세가 무너졌음에도 신기(神技)의 내공 운용으로 몸을 회전시켜 각법을 갈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탐경이 팔뚝으로 각법을 막자마자 품으로 파고들어 백룡부를 위로 쳐올리는데, 그 각도가 예술이었다. 회피도, 반격도, 나아가 방어조차도 하기 애매한 사각(死角)을 정확하게 노린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탐경이었다.

연호정보다 한 계단 위에 올라선 고수, 무극의 경지에 이르러 무(武)의 이치에 완전히 통달한 고수가 그였다.

쩌저저저정!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의 위력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빠르고 대단했다. 백룡부의 연환참격을 수십 개의 잔영을 일으키는 수공으로 막아 내는데, 가히 철벽의 위용을 자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정도 방어력을 언제 봤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사신무의 현무공이 생각날 정도, 심지어 탐경은 방어에 특화된 무공을 구현한 게 아니라 현란한 수공을 순간적으로 방어에 맞게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역시.’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이 영역은 쉽지 않아.’

무극이란 곧 무의 이치에 통달하여 의지가 이는 순간 기(氣)가 이미 초식을 형상화해 버리는 경지다.

어떤 무공을 배웠든, 사고의 속도가 벼락과 같다면 시전자의 무공 역시 벼락을 방불케 한다. 사각을 노리든 약점을 끌어내 공격하든, 진지하게 무공을 구사하면 절대 당하지 않을 강철의 방비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그와 같은 경지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는 자.’

오히려 지금, 이 경지에서 더 올라서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기(氣)가 의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그 찰나의 틈에서 적과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끊임없이 궁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내 연호정이 움직였다.

파바바바바박!

신들린 보법으로 탐경의 반격을 피한 연호정이 흑백쌍룡부를 벼락처럼 휘둘렀다.

상대를 난자해 버리려는 듯 살벌하게도 휘두른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참격의 벽이 그대로 탐경의 상체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자유자재로군.’

탐경의 눈에는 보였다. 연호정의 도끼가 만들어 내는 참격의 흐름이.

‘어찌 이런 절묘한 공격을…….’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참격의 연환 공격이 회피와 반격의 기회를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어떻게 해도 방어가 가능한 것을 인지하곤 빠져나갈 길부터 원천 봉쇄해 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몇 번을 감탄하는지 모르겠다.

상대의 대응을 단 한 번 본 것만으로도 공격의 밀도를 바꿔 버린다. 사고력과 실전 감각도 비할 데 없이 뛰어나지만, 그에 더해 머리에 떠올린 것을 한순간에 무공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탐경이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콰르르릉!

쌍장에서 뿜어지는 대력금강의 힘에 흑백쌍룡의 참격이 모조리 깨져 나갔다.

파아앙!

연호정이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물러난 연호정을 향해 달려 나가던 탐경은 순간 대경했다. 어느새 시커먼 도끼 하나가 자신의 미간 세 치 앞까지 날아온 것이다.

‘빠르다!’

탐경이 재빨리 고개를 틀었다.

콰앙!

흑룡부가 땅에 박히기도 전에 연호정의 장력이 탐경의 흉부 앞에서 터졌다.

위력은 별로지만 속도만큼은 탐경조차 놀랄 만큼 빨랐다.

‘무엇을 위해?’

왜 직접 타격하지 않고 흉부 앞 허공에서 터트려 자세만 망가트린 것이지?

촤르르르르륵!

그 순간, 섬뜩한 쇳소리에 탐경의 눈이 흔들렸다.

‘엇!’

만일 탐경이 지금껏 오롯이 무(武)에 심취해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무신(武神)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닌 더 높은 경지를 위해 손을 뻗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연호정의 이번 수법을 피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탐경은 그러지 못했다. 무극의 경지에 올랐다 한들 그 역시 사람은 사람인지라, 오랜 세월 실전을 겪지 않은 만큼 감이 많이 무뎌진 것이다.

치리리리링!

탐경의 자세가 어정쩡해졌다.

“……이건?”

그는 자신의 오른발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쪽 발목에 흑회색 철쇄가 옹골차게도 묶여 있었다.

파아아아아악!

한쪽 발목을 봉함과 동시에 연호정이 움직였다.

놀랍게도 특유의 직선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속도는 이전과 다를 바 없지만 곡선을 그리는 움직임으로 탐경의 좌측방을 향해 접근하는데, 그 몸놀림이 몹시 유연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탐경은 힘차게 장을 뻗었다.

그때였다.

‘……!!’

연호정의 소매 안쪽으로 연결된 교룡쇄가 움찔했다.

그다지 대단한 힘도 아니었다. 한데 그 한 번의 당김으로 인해 거침없이 뻗어 나오던 탐경의 장력 투로가 흔들려 버렸다.

약간 정도가 아니었다. 그대로 내뻗어진 장력은 연호정의 몸 주변이 아닌, 저 멀리 하늘 높이 올라가 버렸다.

이 정도면 완전히 헛손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작 발목의 움직임이 흐트러진 것만으로도 장력의 투로가 이렇게까지 흔들려 버린 것이다.

파아아앙! 콰앙!

탐경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근접 거리까지 접근한 연호정의 호왕구벽세를 제대로 흘려 내지 못한 것이다.

그때부터 연호정의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콰콰쾅! 퍼퍼펑!

연호정의 공격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호왕구벽세의 투로를 지키는 듯하면서도 자유자재로 초식을 전환하며 탐경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탐경은 벼락같은 진기 운용으로 연호정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그것도 몹시 급급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교룡쇄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진기의 발출 정도를 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허어!’

파파파파팡!

연호정의 공격을 다급히 쳐 내면서, 탐경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설마하니, 읽고 있었단 말인가?’

탐경이 오른발을 힘차게 뒤로 뻗었다.

부우웅!

연호정이 그대로 딸려오는가 싶더니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쾅!

탐경의 몸이 흔들리며 뒤로 밀려났다. 어찌나 충격파가 강했는지, 양팔을 교차시켜 막았음에도 십여 걸음이나 물러나야 했을 정도였다.

그의 본래 실력이라면 이렇게까지 물러났을 리가 없다. 아니, 물러나기는커녕 애초에 이런 과격한 주먹질을 막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군. 읽고 있었구만.’

탐경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내 오른발, 정말 읽고 있었어.’

번쩍! 쩌어엉!

벼락처럼 날아간 백룡부가 팽팽하게 당겨진 교룡쇄를 후려쳤다.

순간 탐경은 오른발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백룡부에서 뿜어진 암경이 교룡쇄를 타고 흘러들어 그의 발목 신경을 눌러 버린 것이다.

화르르르르륵!

그때, 연호정의 두 눈에 주작화기가 깃들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 시뻘건 화기가 밀집하며 불꽃의 날개를 만들었다.

콰아아아앙!

탐경의 후방, 반경 일 장에 달하는 땅거죽이 폭발하며 거대한 불길을 일으켰다.

탐경은 담담하게 서 있었다.

흘려 내거나 피한 것이 아니었다. 연호정이 탐경의 몸에 적중할 뻔한 장력을 후방으로 통과시켜 버린 것이다.

연호정은 여전히 손을 뻗은 채로 서 있었다. 그의 손은 탐경의 가슴 반 자 앞에 고정되어 있었다.

“굉장한 수법일세.”

탐경은 놀라움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제껏 많은 고수를 보았지만,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수법을 이렇게까지 수준 높게 구현하는 자는 본 적이 없었어. 자네, 정말이지 연배에 맞지 않는 무공을 연성했구먼.”

격산타우란 곧 고정된 물체를 건너뛰고 그 뒤에 있는 물체를 타격하는 최고급 무리(武理) 중 하나였다.

실제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실전에 녹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경지의 문제가 아니라 활용도의 문제요, 감각의 문제였다.

이 젊은이는 그걸 할 줄 알았다.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무공을 실전에서 활용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나? 내 오른발.”

“세 번 부딪치고 알았소.”

“세 번이라…… 허허허!”

탐경이 하늘을 보며 웃었다.

“고작 세 번의 부딪침만으로, 내 무공이 오른발 진각과 오른 다리의 회전을 주축으로 한다는 걸 알아냈단 말이지?”

수십 년 전, 탐경은 왼발을 크게 다쳤다.

워낙 공사가 다망해서 대충 치료하고 넘겼는데, 나이가 드니 문제가 생겼다. 걷고 뛰는 데엔 문제가 없으나, 좌측 발목 쪽으로 이어지는 혈도가 많이 좁아져 버린 것이다.

의원도 해결 방법을 몰랐다. 그저 끊임없는 운기조식으로 혈도를 넓히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다.

탐경은 그것을 그대로 놔두었다. 어차피 그는 무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로 인해서 양발이 부담해야 할 것을 오른발 하나로만 부담하게 되었다.

연호정은 바로 그것을 본 것이다. 탐경의 모든 무공이 그의 오른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며칠 동안 함께했기에 빨리 알아챘을 뿐이오. 노인장이 초전부터 진심으로 나왔으면 절대 당하지 않았을 거요.”

“진심이든 방심이든 결과는 결과일세.”

탐경이 빙긋 웃었다.

“내가 졌네.”

“승패를 나누는 건 의미가 없…….”

“그리고 이제야 확신할 수 있겠네.”

“……?”

“자네는 ‘그’의 제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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