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화. 붕괴의 조짐 (1)
닷새 후.
“정말이지…….”
황석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지막지하군.”
사천성으로 넘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신법에 자신이 있는 고수에게는 조금 까다로운 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일행 중 신법이 모자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강량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사천 진입이 힘들다는 거?”
강량을 힐끔 본 황석태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강호행을 하면서 몇 번씩 사천을 넘어가 보았던 그였다. 지금과 같은 길은 아니었지만, 어디서 진입해도 어려운 곳이 사천이었다.
황석태가 새삼스레 눈살을 찌푸리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역시나 진격하기가 어렵겠어.’
다른 부대라면 모를까, 철기단이 사천으로 진입할 때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사실상 중원에서 사천성으로 신속하게 진격하기 위해서는 한중을 통과하거나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잔도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데,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위험성이 상상을 초월한다. 소수 병력이라면 모르되, 대병력의 진군이라면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무림인이라면 지형을 크게 타지 않는다?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는 이상, 범부든 무림인이든 위험한 지형은 똑같이 위험한 법이다. 그저 안전성에서 조금 차이가 날 뿐이었다.
일행만큼, 중원에서도 최고급 전력으로 분류되는 고수들이나 지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한 산을 몇 개나 넘었다. 다른 지역으로의 진입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다.
후우우우웅.
가을을 넘어 서서히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불어오는 바람이 상당히 차가웠다.
절벽에 가까운 땅 위에 서서 사천성의 거대한 분지를 내려다보는 연호정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습도가 제법 높군.’
사천의 초거대 분지는 안으로 움푹 들어간 형태였다. 사방이 엄청난 높이의 산맥으로 둘러싸여서 수성(守城)의 이점이 굉장했다.
게다가 분지의 특성상 구름과 안개가 잦았다. 당연히 일조량도 적어서 지금처럼 풍광이 탁 트여 보이는 날은 얼마 없었다.
‘바람이라.’
상당한 강풍이 휘몰아치며 일행의 의복을 마구 펄럭였다.
그 바람을 맞으며, 연호정은 자신의 감각이 점점 날이 서는 것을 느꼈다.
‘묘해.’
이곳에서 당가가 있는 성도까지 족히 사흘은 더 걸릴 것이다.
작정하고 달린다면야 그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테지만, 이제는 체력 유지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이유인즉, 사천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특히 성도 인근의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파악해야 해.’
당가는 성도를 중심으로 사천성 대부분의 지역을 꽉 틀어쥐고 있다.
즉, 성의 분위기가 곧 당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절대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연호정이 급하게 움직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현 상황을 모르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텁텁하군.’
우우웅. 우우우웅.
연가신단이 회전과 정지를 반복하며 불안한 진기를 발산했다.
‘잡스러운 살기(殺氣)라.’
정확히는 살기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그저 사천 분지를 훑고 올라오는 바람에서 불쾌한 무언가를 느꼈을 뿐이다. 지극히 희미하지만.
그리고 이 불쾌한 분위기의 중심에는 고약한 살기가 자리 잡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분위기가 묘하네요.”
연호정이 옆을 바라보았다.
강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해는 잘 비치는데, 저 너머에는 구름도 많고…… 단순히 기분 탓이겠지요?”
연호정이 물었다.
“분위기가 어때서 그러냐?”
“글쎄요? 그냥 좀 칙칙하다고 해야 하나? 뭐, 여기까지 오는 길이 힘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은근히 습도도 있고.”
패율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툭 던지듯 말했다.
“젊은 놈이 고작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해서야 쓰겠냐?”
“젊으면 안 힘듭니까? 그리고 선배와 저의 무공 격차를 생각하십시오. 왜 자꾸 딴지를 거세요.”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거다. 칙칙하기는 개뿔, 공기만 좋구만.”
“선배님도 나이가 드신 모양이에요.”
“싸가지가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은데?”
“원래 동네에서 싸가지 없기로 유명했습니다. 부모님이 오냐오냐 키웠거든요.”
입심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패율이 피식 웃으며 연호정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좀 쉬다가 갈 거냐?”
연호정은 말없이 강량을 바라보았다.
강량이 눈을 끔뻑였다.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연호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오늘따라 못 생겨서.”
강량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반면 패율의 얼굴에는 묘한 통쾌함이 일었다.
연호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동안 노숙했는데 오늘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얼추 두어 시진 더 달리면 괜찮은 주루들이 나올 겁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시지요.”
흑암제 시절에 안 둘러본 지방이 없었다. 특히나 사천성은 지역 특성상 몇 번이나 오가곤 했다.
“자, 가십시다.”
파아앙!
연호정이 출발하자 일행 모두가 빠르게 그 뒤를 따랐다.
경사도가 지독하게 높은 산길을 내려가는 일행의 경신술은 흔들림이 없었다. 모두 꽤 지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자세가 흐트러질 리는 없다.
연호정은 일행의 상태 하나하나를 전부 읽고 확인했다.
위험한 임무이기 때문이었다. 그간 어려운 임무가 많았지만, 특히나 이번에는 아차 하다가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전장이다.
별일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면 좋겠지만, 공기가 전해 주는 불쾌한 냄새로 볼 때 그럴 확률은 낮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연호정은 자신의 옆에서 달리는 강량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이 녀석, 감이 이렇게 좋았나.’
무종지벽을 돌파하여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패율과 황석태도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불길함을 읽지 못했다.
그건 당연했다. 두 사람의 무력은 연호정보다 한참 아래였다. 진기도, 깨달음도 비교할 수 없었다. 연호정이 느낀 것을 두 사람이 느끼지 못한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강량의 감각이 더 빛을 발했다.
칙칙한 분위기? 그게 기분 탓일 리 없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연호정이 보는 강량은 굉장히 예민한 녀석이었다.
강량은 패율과 황석태보다도 아래인 무공으로, 연호정만 느꼈던 불길함을 거의 비슷하게 공유했다.
‘역시.’
연호정이 다시 전방을 보았다.
시선은 전방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계속 강량에 대해 생각했다.
‘옛날에도 그랬다.’
흑제성 최강의 고수인 오대신장의 일익을 담당했던 철혈의 검왕.
오대신장 중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그 무력만큼은 오대신장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그였다.
특히나 강량은 검(劍)의 화신이라 불릴 정도로 깨달음이 높은 무인이었다. 단순 검의(劍意)로는, 당대 천하제일검인 검신 모용군보다도 위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니까.
깨달음은 곧 인지 영역의 확대와도 닿아 있다. 누구보다도 깨달음이 높았던 강량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는 초감각의 소유자였다.
그 예민하기 그지없는 감각이, 무종지벽을 코앞에 둔 지금 조금씩 개화하고 있었다.
“강량.”
“예?”
연호정은 무심한 얼굴로 달리며 말했다.
“적당히 놀고 후딱후딱 올라와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연호정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강량이 나직이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못된 버릇이라니까요. 형님의 그 화법은 개조할 필요가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량은 연호정의 말을 진지하게 곱씹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역시 연호정의 화법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후딱 올라오라고?’
강량이 연호정의 옆얼굴을 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무심한 얼굴이었다. 그가 이번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가 표정에서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적당히 놀고 올라와라…….’
강량은 자신의 검병을 잡았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형님.’
그 마음처럼,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할 것이다.
연호정은 한 번도 자신을 재촉한 적이 없었다. 특히나 무공에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오히려 급하게 성장하려 욕심내지 말라는 말을 주로 들었다.
그런 연호정이, 이제는 올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는 그 영역으로.
오싹!
강량은 저도 모르게 팔뚝을 쓰다듬었다.
연호정의 그 말은, 단순히 늦다고 타박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인정하는구나.’
비로소, 이제야.
언제나 자신을 동생으로 여기던 연호정이, 지금은 동등한 입장으로서 자신을 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전우(戰友)로서.
‘이 괴물에게 인정을 받은 거야.’
가슴이 두근거렸다. 목덜미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강량이 입을 열었다.
“형님.”
“말해라.”
“형님은 정말, 사람 가지고 노는 재주가 많은 양반이에요.”
“헛소리 그만하고 체력 안배나 잘해.”
“예, 예. 누구 말씀이라고 거역하겠습니까.”
“맞는다.”
“저 그런 취미 없어요. 살살 달래 주세요.”
그리 말하는 강량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던 패율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끔찍한 새끼들. 잘하면 깍지 끼고 달리겠군. 요새 애들은 다 저런가?’
두 시진 후, 일행은 제법 활기찬 도시의 주루로 들어섰다.
* * *
“흐음.”
서신을 보는 당호(唐虎)의 눈이 깊어졌다.
당여선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버지?”
“…….”
“무림맹에 무슨 문제라도 터졌답니까?”
당호가 서신을 접으며 말했다.
“형님이 양선을 데리고 가문으로 돌아온다는구나.”
“……!”
당여선의 얼굴이 구겨졌다.
“설마 양선이?”
당호가 고개를 저었다.
“양선은 오만하고 조심성이 없는 녀석이다. 그러나 제 애비를 향한 존경심은 진짜야. 게다가 너도 보지 않았느냐? 양선 역시 성장이라는 걸 할 줄 아는 녀석이다.”
“그렇긴 합니다만…….”
당여선은 당양선이 마뜩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를 믿질 않았다.
사촌 형제지간이지만, 그에게 당양선은 질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저 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력도 없는 놈이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것까지는 상관없지만, 문제는 자신이었다. 당양선과 같이 전대가주의 아들을 아비로 둔 자신에게는, 당씨 문중의 주인이 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차라리 당양선의 재능과 성품이 누구나 인정할 만큼 뛰어났다면 미워할지언정 인정이라도 했겠다.
당양선은 제 아비나 조부와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녀석이었다.
“양선 때문이 아니라면, 백부님이 무슨 이유로 오시는 것일까요?”
“네 백부의 마음을 어찌 알겠느냐. 다만, 무림맹이 반 봉문 상황이니 이럴 때 들러서 가문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생각 정도는 있겠지.”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당연히 아니지.
당호는 속마음을 아들 앞에서 꺼내지 않았다. 아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들에게 할 말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로원은 어떠냐?”
“예, 조심히 접근 중이라고 합니다. 남은 사람들이 워낙 강경해서…….”
“그렇구나.”
당호는 당관이 도착할 시간을 짐작해 보았다.
잠시 후.
“사흘 안에 장로원을 완전히 장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호의 눈이 창가로 향했다.
순간 그의 동공에 은근한 공포가 일었다.
“슬슬 아버지를 뵈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