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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560화 (559/963)

560화. 낙원의 치욕 (2)

탁! 타닥!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는 묘한 운치가 있었다.

당관은 손수 모닥불을 뒤적였다. 불씨가 타오르며 모닥불이 투정을 부렸다.

당양선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제가 하겠습니다.”

“되었다.”

“……예.”

당양선은 헛기침을 하며 정좌했다.

무림맹을 떠나 이곳까지 오며,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아버지는 말이 많으신 분이 아니었으니까. 가문에서도 무공이나 업무에 관련된 게 아니면 하루에 서너 마디를 넘기지 않았던 분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누님과 그리 친근한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누님이라.’

당양선의 눈이 깊어졌다.

‘망할 년.’

그는 당상아를 싫어했다.

아니, 싫어하는 걸 넘어 증오했다.

‘혼기가 찼으면 그럴듯한 사내놈이나 들여 살림이나 하며 살 것이지.’

당가 내에서 당상아의 위상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성격이 유독 돋보였다. 그녀는 가주 직계였음에도 방계 출신들에게 상냥했고, 그들의 어려움을 무시하지 않았다.

또한, 재능 역시 출중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아버지가 중간에서 당상아의 가르침을 막지 않았다면, 몇 년 전에 무종지벽을 뚫었을 것이다.

당양선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여자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굳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당상아는 절대 무종지벽을 넘지 못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당양선 역시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조부님조차 당상아의 재능에 탄복하셨더랬다. 제대로 연마한다면 훗날 자신의 경지에 도달하고도 남을 거라며 극찬까지 하셨더랬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성천의 초고수가 직접 입증한 사실. 당양선의 안목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암왕 당형에 비할 수 있겠는가.

당양선은 그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당상아의 재능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남자로 태어났다면 진즉에 소가주로 추대되고도 남았을 거라던 주변 사람들의 말이 듣기 싫었을 뿐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네년은 본가에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다.’

당양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여자는 당가의 가주가 될 수 없다. 당가의 차기 가주는 나야. 내가 가주가 되면, 본가의 불합리하고 쓸데없는 가규 따위는 모조리 바꿔 버릴 것이다.’

불합리하고 쓸데없는 가규.

그것은 공적인 이득을 위한 판단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직 당양선, 그 자신을 위한 왕국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 역시, 당양선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수백 년 당가의 역사를, 당가의 근본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관이 말했다.

“양선.”

“예? 아, 예.”

“꾸준한 노력만이 성장을 끌어내지는 않는다.”

“……?”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

당양선이 의아한 눈으로 당관을 바라보았다.

당관은 여전히 모닥불을 뒤적거리며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비단 무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야.”

“……?”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과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 부족한 재능, 부족한 경험은 물론 어느새인가 틀린 사실을 광신하고 있는 자신의 무지함.”

“…….”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 설령 스스로의 부족함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다. 또한 바꾼다 한들, 그로 인해 더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고.”

타다닥!

불꽃이 확 하고 타올랐다.

그 불꽃이 당관을 보는 당양선의 시야를 가렸다.

“그럼에도 나 자신의 문제를 명확하게 직시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변화 없는 노력은 성장의 한계를 갖기 마련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자 노력하는 자의 성장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스르륵.

불꽃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넘실거렸다.

그 속에 드러난 당관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지쳐 보이는 듯도 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한다.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내가 선 위치가 정녕 나에게 어울리는 것인지 등등.”

“…….”

“스스로를 의심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어느 순간 엇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고치기가 어려워지지.”

당양선은 말없이 당관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을 보던 당관이 당양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애비는 널 잘못 가르쳤다.”

“예?”

“정확히는, 거꾸로 가르쳤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너는 본가가 사천제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는 본가의 영향력이 사천을 넘어 천하를 뒤흔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는……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왜 본가가 사천제일이냐?”

“……?”

“사천제일이라 불리기 때문에 사천제일이 아니다. 본가가 사천제일로 불리는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는 그에 대해 한 번이라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당양선은 당황했다.

“본가는……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명문가입니다. 본가의 힘과 명성은 천하에 이르렀어요. 천하 어떤 세력도 감히 본가를 거스르려 들지 않습니다.”

“틀렸다. 본가를 우습게 아는 사람도 많고, 본가를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나는 네게 본가가 사천제일인 이유를 물었음에도, 너는 합당한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리 불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만 말하고 있다.”

“아, 아버지.”

“바로 그것이, 거꾸로 배웠다고 말하는 것이다.”

당관의 눈이 깊어졌다.

순간 당양선은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모닥불을 받아 번뜩이는 아버지의 눈빛은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속에는 분노가 있었고, 서글픔이 있었으며, 동정이 있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하지만 본가는 두 분야의 끝을 본 가문이다.”

“…….”

“검으로도, 창으로도, 권법으로도 최고가 될 수 없었어. 그래서 암기와 독에 손을 대었다.”

“……아버지?”

“정파 무림은 암기와 독을 비겁하다며 멸시했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들의 시선과 냉대를 무시했다. 언제고 최고가 된다면, 두 분야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면 그때는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도 달라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후우웅.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따라 모닥불도 춤을 추었다.

“그리고 우리는 독과 암기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독을 다루니 자연스레 의술도 발전했고, 암기를 제조하니 자연스레 철방업도 발전했다.”

“…….”

“모든 사람이 상식과 주변 시선에 매몰되어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을 때,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중심으로 다른 분야에 도전하여 승리의 깃발을 휘날렸다.”

“…….”

“알겠느냐? 본가가 사천제일로 명성을 떨치는 것은 힘이 강해서도, 돈이 많아서도, 영향력이 지대해서도 아니야.”

당관이 검지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이 사천의 하늘 아래, 본가만큼 멸시받고 억압당했던 가문은 없었다. 그 치욕의 역사를 이겨 내고 마침내 정점에 올랐으니, 이는 한 가문의 대를 이은 의지가 천하의 인식을 뒤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양선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말이, 그 말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이, 그 내용이 그를 전율케 했다.

“그래서 본가는 사천제일이다. 그래서 본가의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패배해선 안 되고, 그래서 혈족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

“본가 사람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한 놈이 있으면, 그놈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게 해야 한다. 본가 사람을 죽인 놈이 있으면, 그놈은 물론 그놈의 뿌리까지 뽑아서 복수를 달성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생존 방식이었고, 본가의 자존심이다.”

“…….”

“너는 어떠하냐?”

“예?”

기분 탓일까? 아니면 모닥불의 불빛 탓일까?

당양선은 왠지, 아버지의 두 눈이 조금 전보다 싸늘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너는 본가의 자존심을, 본가의 위대함을 뼛속 깊이 깨닫고 있느냐?”

“무, 물론입니다!”

“분명하냐?”

“그렇습니다! 저는 본가야말로 천하제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언제고 천하 무림인 모두가 우리의 발아래 무릎을 꿇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당관이 슬쩍 턱을 들었다.

“내, 너에게 본가의 공부가 천하를 논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예!”

“본가의 공부는 혈족들의 노력과 희생이 담긴 혼(魂)의 결정체다. 당가의 사람이라면 응당 본가의 무공을 존중하고 그 끝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

“한데 너의 그 삿된 무공은 무엇이냐?”

“예?”

우우우우웅.

당관의 동공이 진녹색으로 물들었다.

“너의 배 속에 들어차 있는, 지금도 부글거리는 그 탐욕스러운 무공은 무엇이냐 물었다.”

순간 당양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관이 손으로 모닥불을 덮었다.

훅!

기세 좋게 타오르던 모닥불이 한순간에 꺼졌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바람이 차가워졌다.

“이해한다.”

목소리에도 색이 있다면, 당관의 목소리는 먹물빛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 그 또한 자유일 수 있다. 가주의 아들이든 방계의 자식이든, 고민의 깊이엔 차이가 없다. 그저 고민의 방향이 다를 뿐이야. 네가 본가의 무공이 아닌 다른 무공을 배우고 싶다 했다면, 안타깝고 화도 났겠지만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아, 아버지! 그것이……!”

“부모인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으니, 어찌 자식에게만 그 죄가 있다고 할 것인가. 자식이 엇나갈 때 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 자식에게 소홀했다.”

스르륵.

당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사람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정녕 그것을 원했다면 분명히 허가했을 것이다.”

“아버지! 이, 일단 제 말을……!”

“선택이란 곧 포기다. 너의 그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너의 자리를 포기해야만 한다. 네가 그만큼 타류의 무학을 원했다면, 나는 너를 존중했을 것이다. 다만…….”

번쩍!

당관의 몸에서 진녹색 광채가 터져 나왔다.

어두웠던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하지만 그 밝음은 모닥불의 밝음과는 차이가 있었다.

어둠보다도 어두운 빛.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끝도 없는 어둠으로 가라앉게 될 것 같은 암천(暗天)의 휘광.

“그저 미안할 뿐이다.”

“……!!”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다. 하지만, 제아무리 잘못 가르쳤다 한들 그따위 난잡하고 사이한 무공에 손을 댄 것은 명백한 너의 잘못이니라.”

순간 당양선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달아났다.

파아악!

순식간에 당관에게서 멀어지는 당양선.

그것은 본능이었다. 당관이 풍기고 있는 무시무시한 기운 아래, 당양선은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후욱!

당양선의 몸이 덜컥 멈추었다.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후방으로 날아갔다. 당관의 손에서 엄청난 인력(引力)이 솟구친 것이다.

터억!

“큭!”

당관이 당양선의 멱살을 잡았다.

당양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

“그래, 내가 너의 애비다.”

번쩍!

동공을 넘어 흰자위까지 진녹색으로 물든 당관의 얼굴은 그야말로 악마나 다를 바 없었다.

“이제야 부모 노릇을 하는 애비를 용서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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