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606화 (605/963)

606화. 문제의 중심 (1)

당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쿠르르릉!

대지가 검게 물들었다.

땅 곳곳에서 튀어나온 것은 반쯤 썩은 시체의 손이었다.

그런 손이 수십 개다. 들썩거리는 땅, 꿈틀거리며 바닥을 짚는 손들은 관절도 기괴하게 움직이는지 여기저기 뒤틀려 있기도 했다.

퍼석!

마침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수십 구의 시체들.

시체인지 귀신인지 알 수가 없다. 외양만 보면 시체인데, 두 눈에서는 시퍼런 귀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지?’

심장이 약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졸도해 버릴 것 같은 섬뜩한 광경.

그런 광경을 보면서도 당관은 동요치 않았다. 다만 약간의 긴장과 의아함이 일었을 뿐.

‘환상?’

그때, 당호가 말했다.

“환상이다.”

당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더 묵직해진 듯하다. 목소리 자체에 힘이 실려 있다. 당호의 기도가 이전보다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당장에 공격을 못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순간 사람이 바뀐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변화, 무슨 수를 쓴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아 쉽사리 공격을 감행할 수가 없었다.

“환상이지만, 실제보다 더 무서운 환상이지.”

우우우웅!

당호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당호가 연성한 무공은 도반삼양귀원공(導反三陽歸元功)으로, 당가를 대표하는 신공이었다.

당호만이 아니라 당형의 핏줄들은 전부 그 무공을 익혔다. 그보다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당가의 무공은 달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호가 풍기는 진기는 기존의 도반삼양귀원공과 달랐다.

훨씬 더 음침하고, 훨씬 더 음험했다.

“준비가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솔직히 말하지. 너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어. 너의 강함에 경의를 표한다.”

치리리리링!

당호의 소매 안에서 흘러나온 암기들이 그의 몸 주변을 빙빙 돌았다.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어느 것 하나 새끼손가락 크기를 넘어가는 암기가 없었다. 그런 암기들 수백 개가 몸 주위를 휘도는 광경은 신비로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섬뜩함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너도 여기까지다. 차라리 잘되었어. 반역자의 목을 베어 만천하에 공표해, 이 가문의 주인이 누구인지 톡톡히 알려 줄 것이다.”

말없이 당호를 바라보던 당관이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끄르륵.”

“우우우.”

칠십 구, 아니 팔십 구는 될까.

다 찢어져 흘러내리는 의복과 썩은 살점, 시커멓게 죽은 피부와 기이하게 뒤틀린 팔다리.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뜨거웠다.

‘진법이군.’

진법이지만 평범한 진법이 아니었다. 아예 이 영역 자체가 현실 공간과는 따로 분리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당관이 입을 열었다.

“귀문(鬼門)의 진법이군.”

“……?!”

당호의 눈이 깊어졌다.

“알고 있었나?”

“본가의 수뇌부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다. 당씨 문중의 주인인 내가 귀문을 모를 리가 있겠느냐.”

귀문의 존재를 아냐고 물은 게 아니었다. 이 진법이 귀문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냐고 물은 것이었다.

“다만 이 진법은 귀문의 것이 분명한데, 네놈이 연성한 그 변질된 무공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모르겠구나.”

당관이 어깨를 살짝 돌렸다.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 보도록 하지.”

“미친놈!”

당호의 욕설은 직설적이었다. 조금 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언행이었다.

“이곳에 갇힌 이상 넌 절대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피피피피핑!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당호의 몸을 휘돌던 암기 중 일부가 당관을 향해 쏘아졌다.

일부라고는 해도 수십 개나 되는 암기들이었다. 하물며 그 속도는 당관조차 긴장해야 할 만큼 빨랐다. 이전에 느꼈던 당호의 실력이 아니었다.

파아악!

당관이 한순간 거리를 벌려 암기를 피했다. 추뢰신법의 신묘함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

방위가 다른데도, 그 많은 암기가 직각으로 꺾여 다시 당관에게로 날아들었다.

심지어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허를 찌르는 암기술이었다.

스르륵.

당관의 신형이 한 시체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퍼버버버벅!

또 한 번 방향을 꺾은 암기들이 시체를 관통했다.

순간 당관의 눈이 빛났다.

‘통과한다.’

암기가 시체를 뚫고 자신에게 짓쳐 들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뚫는 것과 그저 통과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당호의 암기는 시체를 뚫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통과하여 당관을 노렸다. 애초에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역시나 환상.’

당관의 양손이 벼락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타타타타탕!

원형을 그리는 손, 허공에 무형의 내공 방패가 생겨났다. 당호의 암기는 그 방패를 뚫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때, 시체가 몸을 돌려 당관의 목을 향해 손을 뻗어 왔다.

‘……?!’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시체의 움직임은 실로 빨랐다. 초절정고수인 당관조차도 깜짝 놀랄 만큼.

그러나 그 속도보다도 더 위협적인 것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사이한 기운이었다.

‘실재한다?!’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당관은 고민했다. 시체의 손짓을 피해야 하는지.

이 진법 자체가 허상이라면 저 손짓에서 저처럼 생동감 넘치는 진기가 느껴져선 안 되었다. 한데도 느껴지고 있다. 진짜 고수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고민하던 당관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파아아악!

철판교의 수법으로 상반신을 뉘었다. 시체의 손이 당관의 몸을 건드리지 못하고 허공을 할퀴었다.

“왜 피하는 거지?”

언제 다가왔을까.

소리도 없이 접근한 당호가 검지로 당관을 가리켰다.

피이이잉! 퍽!

신기(神技)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지풍(指風)에 직격당하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진 못했다. 당관의 장포 자락 끝이 당호의 지풍에 뚫렸다.

파바박!

순식간에 당호와 거리를 벌린 당관이 시체들을 향해 무차별로 장력을 날렸다.

퍼퍼퍼펑! 퍼펑!

시체를 뚫고 지나간 장력이 대지를 뒤흔들고 건물 외벽을 부쉈다.

“크르르르.”

순식간에 일대가 초토화되었지만, 시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관을 향해 절뚝거리며 다가가고 있었다.

당관이 인상을 찡그렸다.

“재미없는 장난이군.”

“장난 같으면 굳이 피할 필요도 없었을 테지.”

“실재와 허상을 교란하는 진법이라…… 이런 사이한 공부를 받아먹고 있었던가.”

당호가 턱을 치켜들었다.

“너는 그게 문제다. 지나치게 고지식한 것 말이야.”

“고지식한 게 아니라 신중하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

신중함.

주변 경계를 풀지 않으며 담담하게 대꾸한 당관은, 문득 그 신중함이라는 단어를 말한 스스로가 어색했다.

‘…….’

왜일까?

이 부덕하기 그지없는 전투 중에, 왜인지 과거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방식은 지나치게 고지식합니다! 아버지의 방식을 고수하다간 당가가 정체될 겁니다!’

‘이놈! 네 눈에는 고지식할지 몰라도 이것은 신중한 것이다! 나아가, 확신 없는 미래에 집착하여 가인(家人)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지식한 것이 낫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본가를 운영할 테니, 더는 제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마십시오!’

‘한 단체의 주인이란 손짓 한 번으로 가인들을 지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법이야! 변화를 향한 너의 욕심을 가인들의 밝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 변명치 말아라! 백 번을 생각하고 천 번을 신중해도 실수하는 것이 수장이라는 자리이니라!’

당가 내원 전체에 울릴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서로가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 논했던 부자.

‘신중함이라.’

스르륵.

저도 모르게 자세를 푼 당관은 착잡한 눈으로 당호를 바라보았다.

‘그때의 나는, 참으로 패기 넘치는 놈이었지.’

음험한 진기를 피워 올리며 기괴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당호.

그런 동생을 보며 당관은 생각했다. 당호의 저 모습은, 과거 자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물론 그는 당호처럼 막 나가지는 않았다. 당관에게는 선이 있었지만, 지금의 당호에게는 선이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그나 당호나 다를 것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넘어선 자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오만.

개인의 순수한 욕심을 대의라 포장하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음에도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광기 어린 집착까지.

“어이가 없군. 벌써 포기한 것이냐?!”

우우우우웅!

당호의 양손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의 색이 실로 짙었다. 마치 지옥의 겁화를 양손에 쥔 듯, 살벌한 위압감을 뿜는 기파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당관이 눈을 감았다.

“이제 그만하는 건 어떠하냐?”

당호가 버럭 외쳤다.

“그래서 네게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본가의 핏줄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적이 된 이상 일말의 정도 배제해야 하는 법! 너는 본가의 가주로서도, 본가의 핏줄로서도 자격이 없어!”

쿠우웅!

강렬한 진각과 함께 쌍장을 내치는 당호.

콰르르르릉!

검붉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당관을 향해 쏘아졌다.

무서운 힘이었다. 장력이 공간을 격하기도 전에 기압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나아가는 길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파멸의 장법이었다.

광혼독풍장(狂魂毒風掌).

당가의 절정 무공 도반삼양귀원공에 백면인이 구해다 준 상고의 절학 광혼기공(狂魂氣功)을 곁들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낸 당호의 진신절기였다.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당호는 확신했다.

귀문의 진법, 사자소혼진(死者召魂陣)은 그 자체로 출입자의 내공과 진기 흐름을 억제한다.

반면 사자소혼진에 내성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그 흐름을 이용하여 본래의 내공을 증폭하고, 진기 흐름 또한 훨씬 더 빠르게 운용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은 사자소혼진의 부가적인 기능일 뿐이었다. 진짜 소혼진은 지금 이곳에 펼쳐진 반쪽짜리보다 훨씬 더 무섭다.

그러나 이걸로도 충분했다.

예상 이상으로 강했지만, 당관 하나를 박살 내는 데에는 지나치게 큰 힘이라 할 수 있겠다.

‘잘 가라, 당관.’

그때였다.

당관이 눈을 감은 채 손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훅!

“……?!”

당호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당관을 통째로 갈아 버려도 모자랄 거대한 장력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우우웅! 우우우웅!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분해된 장력의 기운은 진법 내부를 돌고 돌았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일순 진법 내부의 세상 여기저기가 일그러졌다.

“본가의 위대한 무공에 불안전하기 그지없는 마공 구결을 섞어 반쪽짜리로 만들어 놨구나.”

“……!!”

“그래도 그 근본은 본가의 무공이라, 파훼법이 다르진 않아.”

치리리리리리링!

당관의 소매 안에서 온갖 쇳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그의 손에 제법 큼직한 철구가 잡혔다.

울퉁불퉁한 철구였다. 자잘한 수십, 수백 개의 철 조각을 제멋대로 뭉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주르륵.

당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저 울퉁불퉁한 철구를 보자 왠지 모르게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었다.

번쩍!

당관의 두 눈이 뜨였다.

위이이이잉!

오른쪽 눈은 여전히 진녹색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지만, 왼쪽 눈은 그 색이 이전과 달랐다.

황금빛 안광.

극한의 경지를 초월하기 위한 마지막 선에 서 있음을 증명하는 눈빛.

제왕독공의 금천신안이 불완전하게나마 개안(開眼)되었다.

“잡기술은 그쯤이면 되었다. 이 불온하기 그지없는 만천(滿天) 아래, 내 손수 꽃비를 내려 피비린내와 썩은 내가 진동하는 패륜의 업을 지워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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