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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652화 (651/963)

652화. 존귀한 깨달음 (2)

철장개가 막을 시간도 없었다. 아니, 그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도 없었겠지만, 애초에 연호정의 공격을 인지하지도 못한 것이다.

번쩍!

밤하늘보다도 어두운 도끼날이 반월을 그렸다.

후우우우우웅!

그 잔상이 눈에 채 각인되기도 전에 화검자의 목에 닿은 도끼날.

실로 벼락과도 같은 빠르기였다. 어느새 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서서 화검자를 노려보는 연호정의 두 눈은 귀신의 그것이었다.

“허.”

화검자의 얼굴에 순수한 놀라움이 어렸다. 마치 신기한 것을 본 어린아이 같았다.

“엄청나구먼. 사람은 이렇게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이로군.”

흑룡부는 화검자의 목을 날리지 않았다.

아니, 더 자세히 보니 닿은 것조차 아니었다. 그저 그 주름 가득한 목에 닿을 듯 말 듯한 위치에 정확히 멈춰 있을 뿐이었다.

철장개는 기겁했다.

“멈춰라!”

그때, 화검자가 손을 들었다.

철장개가 멈칫했다.

화검자가 말했다.

“이 친구가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미 내 목은 날아가고 거지 친구의 몸도 두 쪽이 났을 것일세.”

“……!”

“그렇지 않은가? 젊은 강자여.”

연호정은 말없이 화검자를 쏘아보았다.

화검자 역시 연호정을 올려다보았다. 목젖 옆, 경동맥을 노리는 도끼날에서 섬뜩한 살기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철장개가 버럭 소리쳤다.

“이놈! 당장 도끼를 내리지 못할까!”

연호정이 시선을 돌려 철장개를 노려보았다.

“……!!”

철장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털썩.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연호정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다리의 힘을 몽땅 앗아 가 버린 것이다.

화검자가 말했다.

“힘 푸시게.”

철장개를 죽일 듯 노려보던 연호정이 천천히 화검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아아아아.

지독히 고요하고도 파멸적인 살기를 정면에서 받고 있었지만, 화검자의 신색은 변함이 없었다.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을 아네. 적어도 지금은 말일세.”

“…….”

“술 한잔하게. 기분이 좀 가라앉을 게야.”

무섭도록 침착하다.

침착함을 넘어 여유롭기까지 하다. 이미 이러한 과정을 전부 예측했던 것인지, 아니면 죽음 앞에서도 담담한 성정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이나 화검자를 쏘아보던 연호정이 도끼를 회수하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화검자가 미소를 지었다.

“젊은 친구가 수양이 잘 되었군.”

연호정이 술이 담긴 잔을 그대로 비웠다.

캉!

손바닥으로 빈 잔을 눌러 깨트린 연호정이 화검자를 응시했다.

방금과 같은 살기등등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깊고 담담한, 호수와도 같은 눈. 연위를 빼다 박은 눈이었다.

그러나 화검자는 알 수 있었다. 눈빛이 바뀌었다고 이 젊은 청년이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을.

연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의 울분을 억누르지 못해 무례를 저질렀소. 사과드리오.”

말투가 바뀌었다.

화검자는 웃었다.

“그토록 삼교를 증오하고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좋은 수확이었네.”

“그렇소?”

“많은 것을 포기했다 치더라도 너무 젊은 나이에 무극을 열었다 했더니, 심즉발(心卽發)의 무공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군. 그 영역에 오르기 전부터 잘 숙성된 삶을 살았겠어.”

무공이 아닌 삶을 얘기한다.

역시나 그렇다. 화검자는 승현진인과 다르면서도 닮았다. 사람을 볼 때 무공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다.

연호정이 말했다.

“사족을 더 붙이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소.”

장황한 미사여구나 샛길로 빠지지 말고 본론을 말하라는 뜻이었다.

화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세. 그 전에, 하나 물어볼 것이 있네.”

“…….”

“나는 새외에서 왔다고 했지, 삼교에서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네. 그저 내 속명을 말했을 뿐이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는 내가 삼교 출신임을 알고 있군.”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잖소.”

“그렇다고는 해도 도끼까지 뽑아 휘두를 만큼의 확신을 내리진 못하지. 아무리 성정이 독해도 말이야.”

“…….”

“자네, 삼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충분할 만큼.”

눈빛은 담담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충분히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도 산더미요. 확실한 것은 삼교가 전쟁을 벌이면 우리는 고향을 잃을 것이고,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이 날아가리라는 것이오.”

“그것일세.”

화검자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시종일관 담담하고 여유 있던 이전과는 달랐다.

“중요한 건 그것이야. 많은 사람이 죽으리라는 것.”

“…….”

“세상은 변하네. 인간은 무섭도록 번성하고 있고, 실제로 이 세상은 인간이 지배하고 있지. 그러나 훗날 인간은 멸망하고, 또 다른 종이 나서 세상을 지배할 걸세.”

“…….”

“하지만, 전쟁과 기아 역시 세상의 흐름이라고 앉아서 지켜만 보는 것도 옳다고 볼 수 없네. 하늘이 힘을 부여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어차피 변할 세상이라면, 고통받는 이들의 수가 적었으면 하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래.”

화검자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지나치게 거칠지만, 중요한 것은 잊지 않았군. 자네를 만나러 오길 잘했어.”

“…….”

“본론으로 안 들어가면 또 한 번 도끼를 뽑을 기세로군.”

“인내심이 좋은 편은 아니오.”

“허허, 알겠네.”

화검자의 얼굴이 다시 진지해졌다.

진지한데도 웃는 것처럼 보인다. 사심(邪心)을 찾을 수 없는 얼굴, 도력(道力) 충만한 각자(覺者)의 얼굴이었다.

“중원에도 호연씨는 있네. 그 호연씨가 중원에서 났는지, 새외에서 났는지는 몰라. 중요한 것은 새외에도 호연씨 일족이 있다는 것이지.”

“…….”

“호연씨는 대대로 소뢰음사(小雷音寺)를 지켜 왔네. 승려 출신이 아니라, 그저 소뢰음사를 지키는 무사 집단으로 출발했고, 성장한 것일세.”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처음 접하는 정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소뢰음사를 지키는 건 아니었네. 그중 몇몇 혈족은 십 년에 한 번씩 영음산(影陰山)이라는 곳으로 끌려갔네.”

“영음산?”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네. 눈을 가리게 한 채 끌려가거든.”

화검자가 고개를 저었다.

“두 달을 가더군. 같은 자리를 빙빙 돌았는지, 아니면 정말 먼 곳에 존재하는지는 몰라. 눈과 귀를 막고 몸의 자유를 박탈시킨 채로 이동시키는데, 그것만으로도 많은 아이가 정신적 압박을 이기지 못해 죽었네.”

“…….”

“그렇게 영음산으로 끌려간 호연씨 중 대부분이 여아(女兒)일세.”

“여아.”

“그렇다네. 여아들이 적당히 장성하면, 영음산 산주(山主)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네.”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호연씨 일족은 천성적으로 건실한 신체를 타고나지. 온갖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호연씨 중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아. 몸 하나는 강골이지.”

“…….”

“산주와 호연씨의 피를 받은 아이들 대다수는 굉장한 자질을 타고나네. 호연씨 이상으로.”

화검자가 눈을 감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최고의 무공을 배운다네. 그러나 산주가 정해 놓은 기간 내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면, 모두 목숨을 잃지.”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목숨을…….”

“그리고 그건 호연씨만이 아니야. 소씨도 있고 금씨도 있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유목 민족에서도 소수지만 끌려온 여아들이 있네.”

화검자가 눈을 떴다.

달빛보다도 맑은 그의 눈에 서글픔이 묻어났다.

“많은 아이가 죽었고, 많은 사람의 삶이 유린당했네. 동시에, 그러한 희생을 발판 삼아 영음산은 세를 불렸지.”

“영음산은 그럼…….”

“사음교(邪淫敎).”

“……!!”

“영음산은 사음교의 본진이네.”

순간 연호정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살의가 치솟음과 동시에 그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 그리고 사음교의 행태에 대한 분노가 차례로 떠올랐다.

화검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연호정은 나직이 심호흡하곤 입을 열었다.

“계속하시오.”

“영음산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네. 그리고 사음교에 대해서도.”

“……?”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야. 다만, 내 정체를 말해 주고 싶었네.”

“…….”

“영음산으로 끌려간 아이 대부분이 여아지만, 남아도 있지. 끌려온 남아는 노예가 되거나 필요 여하에 따라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역할을 부여받게 되네.”

화검자가 눈을 감았다.

“나는 중원으로 파견 나온 사음교의 세작이었네.”

“……!”

“열 살이 조금 넘는 나이였을까? 세작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였네. 물론 철저히 교육받았기 때문에 세작 일을 하는 데에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어.”

연호정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고작 열 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세작 노릇을 했는데도 불편하지 않았다니.

어떻게 교육시켰느냐를 떠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가 목표 문파 내에서 정보를 빼돌리는 상상을 하니 괜스레 털이 곤두섰다.

행위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 나이가 무섭고, 어린아이를 교육시킨 사음교의 사상이 무서웠다.

“나는 일 년도 되지 않아 한 도사에게 세작질하는 것을 발각당했다네.”

“…….”

“그분이 바로 내 스승일세.”

연호정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길로 화산의 제자가 된 것이오?”

“삼 년을 버텼지. 삼 년 동안 내가 어디 소속인지 밝히지 않았다네.”

많아 봤자 열세 살의 나이.

그 나이에 걸려서 삼 년 동안 사음교에서 왔다는 걸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독기였다. 아마 화검자만이 아니라 중원에 파견 나온 세작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바로 저 청성의 풍벽자처럼.

물론 풍벽자는 사음교 출신이 아니었지만.

“스승은 날 포기하지 않았고, 나는 마침내 고집을 꺾고 새사람이 되었네. 놀랍게도 사음교에서는 나를 찾지 않았지. 하긴, 중원에 뿌린 세작이 나 하나였겠느냐마는.”

툭.

연호정이 주먹으로 바위를 살짝 쳤다.

툭. 툭.

습관처럼 보이는 행동. 바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두드리던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중에 삼교를 상대로 싸우는 이 중 내가 가장 화려했음은 부인하지 않겠소만.”

“용선에게 듣자 하니 화려한 정도가 아니던데.”

“아무리 그래도 굳이 이 시점에 나를 보자고 한 이유를 모르겠소. 물론 말씀해 주신 정보들은 고맙게 받겠소만.”

화검자의 미소가 짙어졌다.

“젊은 사람이 대단히 날카롭군.”

“나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싶은 거요?”

“자네가 방금 그랬지? 굳이 이 시점에 자네를 보자고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렇소.”

“그렇다네. 중요한 건 이 시점이지. 하필이면 자네가 섬서로 온 이 시점에 자네를 보자고 한 이유가 있네.”

“…….”

“사음교에서 연락이 왔네.”

“……?!”

“무려 팔십 년이 넘도록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던 사음교에서 은밀히 연락이 왔네.”

“……어떻게?”

“표식이지. 당연히 서신이나 사람이 오진 않았어. 그러나 나는 그 표식을 알아보았네. 화산 본산에서 다소 떨어진 청매관 기둥에 새겨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표식을 말일세.”

“노도장께서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요?”

“그건 모르네.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지.”

“하면…….”

“중요한 것은 그 암어(暗語)의 내용일세.”

화검자의 눈에 핏발이 섰다.

한순간의 변화, 걱정과 울분이 느껴지는 그 강렬한 눈빛이 연호정을 압도했다.

“화산이 위험해질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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