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화. 흐름을 바꾸는 자 (3)
퍼억!
연호정의 얼굴이 좌측으로 돌아갔다.
빠각!
명극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제대로 꽂힌 일격들, 한 방씩 정확하게 들어갔다.
그럼에도 입 안이 터진 것 말고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 치명적인 일격은 아닌 것, 무극에 이른 초고수들의 진기는 언제라도 주인을 보호하기에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치명상을 입히기가 힘들다.
퍼어어엉!
가슴에 주먹을 맞은 명극이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둔중한 통증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한발 빨리 물러나며 충격을 해소할 수 있었다. 명극에게는 충분히 그럴 힘과 깨달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물러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생사결에 있어서 자존심이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을 유발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명극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똑똑했고, 이성적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이들을 무수히 많이 봐 왔기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맡은 바 임무를 어렵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쉬이이이익! 쾅!
연호정의 주먹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명극의 도화천신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충돌한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거리를 물러나고 있었다.
미세한 차이라고는 하나 분명 명극의 경지가 연호정을 앞서 있는데도, 정작 정면 승부에서는 동수를 이룬다.
명극의 눈이 서서히 충혈되었다.
‘이놈.’
연호정을 노려보는 명극.
불타오르는 투지, 냉정하기 그지없던 얼굴에 점점 인간다운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연호정은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는 거냐?’
빠각!
한 줄기 불꽃과도 같은 기운이 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좌측으로 이동해 자신의 머리통을 노린다.
팔뚝을 세워 막았지만, 막은 왼팔 전체가 저릴 정도로 무거운 각법이었다.
‘대단하군.’
터어어엉!
기쾌한 장법으로 연호정을 밀어 낸 명극이 짧게 숨을 가다듬었다.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아니 오히려 위력에 있어서는 다소 약해졌다고도 볼 수 있건만.’
퍼어어엉!
밀려나면서도 기어이 격공장을 뻗어 냈다.
순간적으로 도화천신갑을 펼쳐 장력을 막았지만, 뼛속까지 저린 위력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마치 생명 그 자체가 담긴 듯하다.’
부우우웅! 퍼버버버벅!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과 상체를 두들겼다.
‘이익!’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던 명극의 주먹이 일순간 펴지며 날카로운 수도로 변했다.
사악!
단숨에 목을 노리고 휘둘렀지만, 어느새 연호정의 상체가 수그러졌다.
권법 타격은 어느 정도 허용하지만, 육장검 도화천신인은 귀신처럼 피해 낸다. 이 짧은 거리, 정신없이 몰아치는 타격전에서도 명극의 손이 수도로 변하는 그 찰나의 틈을 정확하게 읽어 낸 것이다.
빠각!
하지만 하단에서 올라온 각법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양팔로 막았지만, 파괴력 넘치는 일격에 연호정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갔다.
명극의 눈이 번뜩였다.
기회였다. 허공에 뜬 잠깐의 시간, 승부의 추를 단숨에 기울게 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파아아악!
곧장 연호정에게 접근한 명극은 일순 대경하여 몸을 회전했다.
퍼억! 퍼억!
신체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순간 반격을 당할 것임을 직감한 연호정이, 바닥에 떨어진 흑백쌍룡부를 어부술로 휘둘러 공격한 것이다.
피하지 않았다면 상체가 걸레짝이 되었을 것이다. 명극의 이마에 식은땀이 어렸다.
“후욱!”
땅에 내려선 연호정이 숨을 몰아쉬었다.
명극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뱉으려다가 주춤했다.
‘뭐냐.’
사음교의 후계자 중 한 명, 희대의 천재라 불리는 명극.
그 신안(神眼)에 보이는 연호정의 얼굴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야!’
연호정의 얼굴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표정하지도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한 기색을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시선은 명극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싸움에 완벽하게 몰입한 모양이었다. 주변 상황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단순히 집중력이 강하다는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무언가에 씌기라도 한 양, 연호정의 모습은 이전의 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리멍덩했다.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만으로 싸우는 느낌.
명극이 버럭 외쳤다.
“그따위 정신머리로 나와 싸우려 하는가!”
파바바바박!
두 사람의 권장이 또다시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하지만 명극의 생각과 달리, 연호정은 본능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린 게 아니었다.
‘역시 강하다.’
괴상한 진법이나 박자를 놓치게 하는 상단전 능력을 완전히 내던져 버린 명극의 무(武)는 오히려 더 단단하고 완벽해졌다.
잡술에 의지하지 않고 지금껏 쌓아 올린 자신의 깨달음과 투쟁심을 바탕으로 싸움에 임하고 있다. 그랬기에 더더욱 공략하기가 난해해졌다.
‘대단해. 지금 내게는 없는 것들, 나로서는 구현할 수 없는 깨달음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상대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을 터였다. 연호정의 무공에도 명극은 상상 못 할 깨달음들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이룬 경지는 비슷하지만 올라간 방법과 특색은 다르다.
말하자면, 이 싸움은 누구의 깨달음이 위인가를 겨루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누가 더 효율적으로 구현하는가, 각자의 장점을 누가 더 잘 살리는가의 싸움이었다.
퍼어엉!
마지막 일타(一打)에 당한 연호정이 땅을 굴렀다.
쿨럭!
그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후속타가 들어올 시기였지만, 연호정은 굳이 방비하려 들지 않았다. 명극 역시 체력 문제로 돌진할 생각이 없다는 걸 읽은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호정이 입가의 피를 닦았다.
‘이대로는 끝이 나질 않아.’
문득 명극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연호정은 극도로 당황했다.
그 뜻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명극은 종남파가 도동들과 학도사들을 대피시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죽여 이쪽의 사기를 꺾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범부의 전쟁에서도 사기는 중요하지만, 특히 기(氣)를 다루는 무림인에게 있어 사기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명극이 노린 게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략은, 지독하리만치 비도덕적이었으나 효율 면에서는 최고라 할 만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놈은 진심이야. 거짓으로 날 뒤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야.’
쾅!
호왕구벽권, 백왕파의 초식이 명극의 도화천신권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어린애들까지 노린다…… 역시 이놈들은 한계가 없다. 선이라는 게 없어. 도의 따위, 승리를 위해서라면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보다도 하찮게 여길 놈들이다.’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그것을 직면하니, 새삼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서 이놈을 죽여야 한다. 이놈을 죽이고 본산으로 가야 해.’
연호정은 문득 황석태를 떠올렸다.
‘자네가 말한 빈틈, 약점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나?’
황석태는 말했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모르겠다. 황 단주가 말한 약점이 아이들을 뜻하는 건지.’
황석태는 묵룡부 소속으로,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과도 같다.
일전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애들도 죽일 거냐고.
황석태는 고민도 없이 그럴 거라고 답했다. 그에게 있어 어린 생명의 무게는 상관의 명령보다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것이고, 정파인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과 함께하는 동안, 그는 흑도와 백도, 양측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시시각각 배우고 있었다.
‘지금의 자네라면 알 거야. 아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이 망할 놈들의 부도덕함을.’
확신이 아니었다. 바람이었다.
제발 황석태가 말한 그 약점이 아이들이었기를. 그것을 알고 미리 조치를 취했기를.
‘하지만…….’
쉬익!
명극의 수도가 연호정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터어어엉!
명극이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연호정의 반룡장이 가슴팍에 적중한 것이다.
피를 토했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도화천신갑으로 대부분의 충격을 상쇄한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고 있는가.’
퍼엉! 퍼어어엉!
충격에 휩쓸려 굴러다니던 바위가 아예 허공을 날아다녔다. 부서진 나무가 가루로 화하여 하늘 높이 올라갔다.
촤르르르륵!
교룡쇄가 명극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터엉!
명극의 좌장 단타에 교룡쇄가 힘을 잃고 흐물흐물해졌다.
‘전쟁에서의 패배가 무서워 아이들을 걱정하는가, 아니면 아이들의 죽음 자체가 두려워 걱정하는가.’
퍼어억!
연호정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이젠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깊어지는 상념, 휘몰아치는 생각이 점차 그의 이성을 구겨 본능 뒤로 밀어 넣었다.
‘생각…… 본능…….’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파아아아앙!
고개를 젖혀 명극의 주먹을 피해 냈다. 풍압에 귓불이 조금 찢어졌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퍼억!
명극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내 팔다리는 어찌 움직이고 있는가.’
팡!
연호정의 몸이 회전하며 명극의 장력을 흘려 냈다.
명극의 눈이 흔들렸다.
치명상은 입히지 못할지언정, 절대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한데 그 일격을 연호정이 피해 낸 것이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고민?
‘내가 왜 고민해야 하지?’
파파팡!
서로의 삼권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고민할 필요가 있나? 이 위급한 상황에?’
해야 한다.
어떤 고민을?
‘무(武)다.’
화르르르륵!
일순간 뿜어져 나오는 주작화기가 명극의 접근을 차단했다.
흐리멍덩했던 연호정의 두 눈이 매서운 신광(神光)을 토해 냈다.
‘내 주먹은 놈에게도 통한다. 하지만 치명적인 일격은 넣지 못하고 있어.’
힘이 모자라는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치다.’
연호정의 몸이 회전하며 명극의 좌측방으로 움직였다.
퍼버버벅!
벼락처럼 빠른 사권(四拳)이 명극의 옆구리에 모조리 박혔다.
명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퍼억!
각법에 맞은 연호정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가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퍼어억!
회전하며 휘두르는 선풍각이 명극의 턱을 후려쳤다.
명극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껏 당했던 그 어떤 공격보다도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었다.
‘이치에 따른 움직임은 일 푼의 힘으로 천 근의 위력을 내는 법. 그렇다면…….’
파아아아앙!
‘지금껏 내 손발은 이치를 따르지 않았던 건가.’
빠각!
본능적으로 내친 명극의 발이 연호정의 왼팔을 부러트렸다.
섬뜩한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연호정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이치대로 움직여라.’
훅!
명극의 양팔 사이로 들어간 연호정의 오른손이 그의 빗장뼈에 닿았다.
순간 명극은 강한 섬뜩함을 느꼈다.
파아아아악!
연호정의 손이 빗장뼈를 잡아 뜯기 직전, 명극의 몸이 후방으로 움직였다.
“…….”
명극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
츠츠츠츠츠.
연호정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살기는 아니었다. 살기보다는 오히려 투기(鬪氣)에 가까운 기운이었다.
“너……!”
“이치를.”
“……?”
“합당한 움직임을…….”
중얼거리던 연호정이 명극을 노려보았다.
연호정이 서늘하게 웃었다.
“도망치는 거냐?”
“……!!”
“무엇이 그리 겁난다고 도망치는 거냐?”
순간 명극의 눈에서 살기가 폭발했다.
퍼어어억!
명극의 도화천신인이 연호정의 복부를 뚫었다.
“허억! 허억!”
혼신의 힘을 다한 질주, 그리고 일격.
명극의 호흡이 엄청나게 거칠어졌다. 긴장이 풀리고, 몸 곳곳에서 살벌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때, 연호정의 손이 명극의 손목을 잡았다.
“잘 따라 줬다.”
“헉헉! 뭐?”
“무(武)의 이치를 따지기 전에, 전장의 이치를 따르는 게 우선 아니겠나.”
명극이 버럭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냐!!”
그때였다.
“연 공자!!”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한 자루 철전이 질풍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졌다.
명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연호정에게 손목을 잡힌 탓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연호정이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일대일, 정직한 싸움만이 인정되는 전장이 어디에 있다더냐?”
퍼어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