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703화 (703/963)

◈703화. 죽음과 인연 사이 (3)

종남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하루가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 연기는 슬픔과 안도, 절망과 고단함을 담고 있었다.

죽은 제자들을 수습하는 데에만 해도 반나절이 소모되었다. 전투가 끝난 이후에 긴장이 풀려서 쓰러진 검사들도 많았으며, 중상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은 검사들도 있었다.

기운이 있는 사람들은 서둘러 마을로 내려가 실력 좋은 의원들을 데리고 왔다. 내공을 다루는 무림인들은 대개 기본적인 의술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 방면의 전문가들에 비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종남 본산 내부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느 문파가 그러하듯 조직의 재산은 사람이다.

수많은 제자를 잃었고, 나아가 장로 중 셋을 잃었다. 종남 역사에 있어 손에 꼽힐 만한 피해였다.

거기에 화산의 매화검수들은 물론 매화창수들도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화산의 장로들은 죽지 않았지만, 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피해였다.

섬서 무림 전체에 비상이 걸린 셈이었다. 당장 혈랑단 정도의 병력이 또 한 번 들이닥치면, 진정 종남은 궤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당장의 피해가 너무나도 컸다.

사흘이 지날 동안 종남 문인들은 문파를 수습했다.

하지만 정신은 수습되지 않았다. 사흘, 나흘, 나아가 닷새가 지나도 종남에 드리운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전투가 끝난 지 칠 일이 지났다.

* * *

“음.”

연호정의 거처에 도착한 패율은 방문 앞 계단에 앉아 있는 묵비를 바라보았다.

홍련궁을 점검하던 묵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패율이 손을 들었다.

“녀석은?”

“아직이에요.”

“아직이라…… 오래도 자는군.”

“계속 자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하루에 세 번은 깨죠. 밥을 먹고 다시 자긴 하지만요.”

“속 편하구먼.”

패율이 허리를 두들기며 묵비 옆에 앉았다.

묵비가 의외라는 눈으로 패율을 바라보았다.

안면은 있지만, 기실 두 사람에게는 이렇다 할 친분은 없었다. 한데도 익숙한 듯 턱 하니 옆에 앉으니 뭔가 어색했다.

가만히 패율을 내려다보던 묵비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패율이 품에서 곰방대를 꺼냈다.

한 줌도 안 되는 가루를 넣고 부싯돌을 튀겨 불을 붙인다. 깊게 빨아들이다가 내뱉으니, 허연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원래 연초를 피우셨나요?”

“피웠지. 근래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안 피웠지만.”

“몸에 좋지 않다고 들었어요.”

“맞아.”

그 외의 대답은 없었다. 패율은 말없이 곰방대를 뻐끔댔다.

묵비가 홍련궁의 활대를 매만지며 물었다.

“용케 잘 살아 있었네요.”

“음? 나 말인가?”

“아니요. 연 공자요.”

패율이 피식 웃었다.

“죽여도 죽지 않을 놈이지. 어떤 의미로는 징글징글해.”

“적장과 싸우는 것을 봤어요. 그러고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쓰러지기 직전의 몸을 이끌고 돌아왔죠.”

“…….”

“아마 계속 그래 왔겠죠.”

“그랬지.”

“무공이 늘고 경지가 깊어져도 사람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도 그렇지.”

“앞으로도 연 공자는, 지금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패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와서 그 어인 걱정인가. 오히려 그런 건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모르겠어요, 이제는.”

“그런가?”

묵비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슬픔에 잠긴 종남산, 그러나 하늘은 맑았다.

“못 본 지 꽤 됐어요. 유달리 긴 시간이었지요. 한데 다시 만난 연 공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더군요.”

“괴물 같은 놈이지.”

“훨씬 더 강해지고, 훨씬 더 깊어진 책임감이 보였어요. 하지만…….”

“…….”

“왠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네요.”

“후우.”

연기를 뱉어 낸 패율이 소매로 곰방대 입구를 닦아 내곤 묵비에게 건넸다.

“한번 피워 볼 텐가?”

묵비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한두 번 한다고 건강이 망가지진 않아. 천고의 내공을 품고 있다면 더더욱.”

“…….”

“자.”

물끄러미 패율을 보던 묵비가 곰방대를 받아 들었다.

몇 번 곰방대를 만지작거리던 묵비가 조심스레 연기를 빨아 보았다.

“콜록!”

기침이 나온 건 필연이었다.

“콜록콜록! 엄청 매운데요? 우웩!”

“역시 그렇지?”

“이런 걸 왜 굳이 피려는 거예요?”

묵비에게 곰방대를 받아 든 패율이 다시 소매로 입구를 닦았다.

“이런 걸 자주 피면 폐장 기능이 약해지지. 그렇다고 딱히 시름이 가시는 것도 아니야. 순간 기분이 몽롱해져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몇 번 빨다 보면 익숙해져. 오히려 머리가 무거워질 때도 있지.”

“그럴 것 같네요.”

“몸을 망치기만 할 뿐 아무 이득이 없는 요물이야. 술은 차라리 낫지.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더군. 뭐, 마시다 보면 적당히라는 게 안 되긴 하지만.”

가만히 곰방대를 내려다보는 패율의 눈은 호수처럼 깊고 맑았다.

“나는 그런 걸 원했었다.”

“네?”

“생사의 싸움 말이야.”

“…….”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나 싸움이 좋았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놈의 싸움이라는 게 연초랑 다를 게 없단 말이야. 생명을 깎아 먹기만 할 뿐, 뭐 하나 도움 되는 게 없어.”

“…….”

“한번 빠져드니 적당히라는 것도 없었지. 칼부림을 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 하물며 천하 명문인 점창의 장로이니 섣불리 검을 뽑을 수도 없었다. 내 기분 좋자고 사문의 이름에 먹칠할 순 없으니까.”

“……그렇군요.”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목숨을 건 싸움을 원했다.”

퍼석!

패율의 악력을 이기지 못한 곰방대가 그대로 동강이 나 버렸다.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지. 호승심? 쾌감? 그런 건 이유가 될 수 없어. 정말 그런 이유라면 문파의 이름값이고 뭐고 집어던진 채 그럴듯한 고수를 찾아가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겠지.”

“…….”

“이유를 생각했어야 했다. 왜 그렇게 싸움을 원했는지.”

“답은 나오던가요?”

“아니.”

“…….”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하나는 깨달았어.”

“그게 뭐죠?”

“단순히 이기기 위해서만 벌이는 싸움은 시시하다는 것.”

묵비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패율이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연호정의 방이었다.

“당금 무림에 저 미친놈만큼 많이 싸운 놈도 없을 거다. 하지만 저놈은 싸움 그 자체를 즐긴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무공 경지의 상승을 기뻐하고 실전 능력도 탁월하지만, 싸움 그 자체에 미쳐 있진 않았단 말이다.”

“…….”

“상대와의 칼부림 속에서 기뻐하기도 하고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녀석은 언제나 지키기 위한 싸움을 했을 뿐이다.”

묵비의 눈이 깊어졌다.

패율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가는 검사들을 본 적이 있나?”

“종남이요?”

“그래.”

“네, 봤죠.”

“그 녀석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던가?”

말없이 패율을 보던 묵비가 고개를 저었다.

“죽어 있더군요.”

“그래. 살아 있지만 죽은 것처럼 보이지.”

패율이 눈을 감았다.

“그게 이 싸움의 결과다. 산 사람도 죽은 존재로 만드는 것. 전쟁이란 그런 거야.”

묵비의 눈이 흔들렸다.

다시 눈을 뜬 패율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해 보였다.

“그 얼굴들이 본문 제자들이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더군.”

“…….”

“목적이 있든 없든, 싸움은 생명을 깎아 먹고 정신을 피폐하게 하지. 내가 원했던 싸움이라는 게, 내가 미쳐 있었던 전장이라는 게 결국은 지옥이었음을 이번에 비로소 깨달았다.”

“…….”

묵비는 어쩐지 패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패율이 고개를 저었다.

“연호정 저놈은 정말 대단한 놈이야.”

“네?”

“자네는 저 녀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

“……!”

“이 세상에서 나고 자라 무엇 하나 도움 되려는 것도 없이, 그저 싸움만을 원했던 나와는 다르다. 내 사람,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단 말이다.”

“…….”

“저 젊은 나이에 알고 있었던 거다.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내 사람이 입을 피해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는 걸, 저놈은 진즉에 알고 있었던 거야.”

“…….”

“그래서 언제나 독하게 사는 거지. 남들이 어찌 보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을 거다. 주위의 평판에 휩쓸려 흔들릴 시간이 없어. 내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순간 묵비는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연호정은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살다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녀는 그 말을 믿기로 했지만, 사실 그런 것은 믿는다고 믿어지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율의 말을 듣자 연호정이 고백했던 과거이자 미래의 시대가 생각났다.

중원 전체가 전화(戰火)로 들끓었던 시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았던 시대. 친구라도 믿을 수 없고,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가족의 등도 찔렀던 짐승들의 시대.

‘정말이었나요.’

연호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듯하면서도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의 얼굴이.

‘그러한 시대가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신은 이렇게나 열심히 살아가는 건가요.’

말없이 허공을 보던 패율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쓸데없이 말이 많았군.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어. 낯부끄럽게.”

“아니에요.”

패율이 묵비를 내려다보았다.

“잘 받쳐 줘라.”

“네?”

“더 독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지. 그래도 녀석은 꺾이지 않아. 살아가는 원동력은 그대로거든.”

“…….”

“하지만 자네 말마따나 사람의 정신력이라는 건 한계가 있어. 그럴 때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안식처가 되어 줘야지.”

묵비가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은요?”

패율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더러 저 녀석 위로라도 해 주라고? 웃기지 마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애초에 그런 관계가 아니야.”

“그런가요?”

“녀석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어. 어지간해서는 갚기 힘든 은혜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오히려 내 앞에서 힘든 기색을 보이면 머리통을 깨 버릴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하네요.”

피식 웃은 패율이 몸을 돌렸다.

“나중에 깨어나면 말해. 다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지.”

“그럴게요.”

그렇게 패율이 사라졌다.

묵비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싸움의 이유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패율만큼은 아니었다.

연호정 덕분에 세상에 나왔고, 연호정 덕분에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일까?

어떤 싸움이라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 그 이상을 보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그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패율이 남기고 간 말은 그녀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흑제성.’

묵비는 과거 연호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흑암제…… 오대신장…… 신궁…….’

그녀는 알지 못하는, 오직 연호정만이 알고 있는 과거이자 미래.

‘그때의 나는 지금과 그리도 많이 달랐을까.’

당시의 나는 삶의 이유를 분명하게 찾았을까? 아니면 지금과 같이, 뭉실뭉실하고 막연하기만 한 친분에 휩쓸려 살아갔을까.

묵비가 나직이 탄식했다.

“나도 아직 멀었구나.”

그때였다.

“묵 부장!”

이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후개 가득상이었다.

“오셨어요?”

“연 대수는? 아직 회복 중이오?”

“네. 무슨 일이죠?”

가득상이 한숨을 쉬었다.

“종남 장문인께서 오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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