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6화. 피 묻은 황좌(皇座) (7)
순간 어전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맞은편에 앉은 황후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어전 주변을 지키는 금군 무장들의 얼굴에도 경악이 깃들었다.
“……흐음.”
용상에서 한층 무거워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반역도당이라 하셨는가.”
“그렇습니다, 폐하.”
황후가 입을 열었다.
“폐하, 느닷없이 반역도당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송구스럽지만.”
우헌이 황후의 말을 끊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수만큼이나 상황과 생각이 다른 법입니다. 폐하의 성스러운 치세가 천하를 가로지르고 있지만, 천자의 용상을 노리는 무리는 어디에나 있어 왔습니다.”
당차기 그지없는 발언이었다. 적어도 황제 앞에서 쉽게 할 말은 아니었다.
황후의 눈빛이 표독스러워졌다.
“태감은 말씀을 삼가게. 황제 폐하의 어전일세.”
우헌이 고개를 조아렸다.
“상황이 좋지 않아 소신의 말이 지나치게 거칠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이……!”
그때, 용상에서 또 한 차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감은 마땅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고개를 들라.”
황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멍청한!’
일국의 주인이자 자신의 남편이기도 한 사람.
그러나 그녀는 황제에게 어떠한 정도 없었다. 아니, 처음에는 분명 정이라는 게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식어 버린 감정이었다.
황후가 발작적으로 입을 열었다.
“반역도당이 있다고 하셨는가?”
“그렇습니다.”
“정말로 반역도당이 있다면, 그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난이라도 일으켰다는 것인가?”
“송구스럽습니다만, 어떤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는 소신도 알지 못하옵니다. 그저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태감은 군부와 행정까지도 아우르는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니던가.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한 죄도 크다는 것을 명심하게.”
예전에도 그랬지만, 당금 황궁에서도 태감의 위세는 어떤 고관대작보다 높다. 그러나 아무리 위세가 높아도 군부와 행정까지 손을 대지는 못한다.
황후는 황제에게 대놓고 말한 것이다. 태감이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고.
충신이라는 말 자체에 비꼼이 가득한 것이다.
우헌이 고개를 숙였다.
“소신이 어찌 그 죄에서 눈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성심을 다해 황제 폐하를 모셔야 할 소신이 무도하기 그지없는 반역도당의 움직임 하나 읽어 내지 못했음은 분명한 대죄이옵니다.”
우헌이 미소를 지었다. 용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황후만이 볼 수 있는 비릿한 웃음이었다.
“하나, 폐하의 하해와도 같은 은총을 받는 창위(廠衛)에서조차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위험한 이들입니다. 이 기회에 일망타진하여, 폐하의 위엄과 황실의 존엄을 지켜야만 할 것입니다.”
내 죄는 이 일이 끝난 연후에 받겠다.
그 당당한 발언에 황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상해.’
능글맞고 얄밉지만, 머리 회전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우헌이라는 것을 황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리를 만들어 반역자를 폭로할 리 없었다.
반역, 역모의 죄는 황궁을 넘어 나라 전체를 뒤집는 일대 사건이다.
당연히 죄의 무게만큼이나 파급력도 어마어마하다. 만일 역모를 고발했다가 아니라고 밝혀지면, 그대로 역풍을 맞는다.
제아무리 권력이 강해도 그것을 감당키는 힘들 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도대체 뭐지?’
황후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어찌 저렇게 확신하는 거지? 설마하니…….’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쪽을 치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자신과 태감 사이의 정쟁은 역대 황실의 권력 싸움만큼이나 더럽다. 그러나 각자가 지닌 힘과 목표 때문에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확실히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반역, 역모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쟁에서도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무기가 그것이었다.
‘아닐 것이다. 태감은 바보가 아니야. 하필 이 시점에 역모를…….’
순간 황후의 눈이 흔들렸다.
무림맹에서 보낸 세 명의 고수들이 떠오른 것이다.
‘섣부른 추측이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전력은 당대 강호 무림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황후 역시 태감이 사교 무리의 일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교를 받드는 것도 모자라 황궁에서 잡신의 제사까지 지내는 것은 불경하기 그지없는 대죄였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는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교는 말 그대로 사교일 뿐이다.
민중의 정신을 황폐화하고 나라를 좀먹는 놈들이지만, 결국은 그게 전부다. 이 힘 싸움에서 이기면 금군을 동원해서 일망타진해 버리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림인들은 그들이 지극히 위험한 이들이라고 말했다.
하나하나가 강호 무림과 맞상대해도 큰 부족함이 없는 세력. 그만한 사교가 무려 셋이나 된다고 했다.
당시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황후에게 있어 사교란 족속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었다.
고정 관념이 이렇게나 무섭다. 만약 그녀가 그에 대해 더 깊은 얘기를 나누려 했다면, 절대 이 자리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말로 태감 뒤에 있는 세력이 그리 강하다면…….’
강호 무림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황실과 관부에서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한데 태감 뒤에 그 정도의 힘이 잠자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역풍을 맞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황궁을 점거할 수 있다?’
오싹!
또 한 번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황후는 이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순간 의심이 들긴 했지만,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황궁을 점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힘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황궁을 점거한다 한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무력으로 거머쥔 권력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황좌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힘 있는 자가 쟁취할 수 있는 자리였다면, 역사상 수천 번의 역모가 터졌을 것이다.
태감이 사교의 힘을 빌려 황궁을 장악하려 한다면, 그때부터 제국의 모든 힘은 태감과 그 사교 무리를 향할 것이다.
온전한 황실의 권력을 쥐는 게 아니라 진짜 전쟁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간이 커도 그런 짓을 저지를 생각은 못 할 것이다.
황후의 머리가 한창 빠르게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쿵!
저 멀리 어디에선가 대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후는 깜짝 놀랐다. 어전 밖에서 들려온 소리가 이 정도다. 엄청난 굉음이 분명했다.
용상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헌이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 다급하여 부득불 금군을 동원하여 반역도당을 잡아 오라 하였습니다.”
“금군을?”
“황송하옵니다, 폐하. 하나, 그만큼 반역도당들의 힘이 대단합니다. 하여 동창의 숨은 실력자들도 보냈으니, 뒤늦게나마 일망타진할 수 있사옵니다.”
잠시의 침묵이 어렸다.
황후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그 반역도당이라는 작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우헌이 차갑게 웃었다.
“곧 진압이 될 터이니, 송구스럽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 *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제삼 궁문이 수만 개의 파편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아무리 목재 궁문이라지만, 그 두께가 성인 남성 팔 길이보다도 두꺼웠다. 그처럼 두껍고 큰 궁문이 일격에 분쇄되어 버린 것이다.
“뭐, 뭐야!”
“당황하지 마라!”
사라져 버린 궁문. 흩어져 휘날리는 목재 파편.
그리고 그 너머에 시퍼런 안광을 뿜어내는 위엄 넘치는 검사가 있었다.
“저 복식은?”
“대장군부 궁내 천인장의 복식이다! 반역도당이니 당장 붙잡도록 하라!”
투항하라거나 무릎을 꿇으라는 따위의 말은 없었다.
대장군을 제외, 무조건 죽이고 본다. 그런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훅!
연위의 몸이 엿가락처럼 길쭉하게 늘어졌다.
눈 한 번 깜빡이기도 전에 오 장 거리를 이동한 연위가 왼손으로 전면의 무장을 밀쳤다.
치리리리리링! 쿠구궁!
“으아아아악!”
“뭐, 뭐냐!”
“버텨라!”
가볍게 밀친 게 전부였지만, 밀려 나간 무장은 병졸 삼십여 명을 쓰러트리고 쓰러졌다.
타격으로 부러트린 것도, 내가중수법으로 오장육부를 박살 내 버린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밀었을 뿐이다. 다만 그 힘이 너무 강해서, 무장은 물론 병졸들까지 쓰러진 것이다.
쓰러진 이들 대다수가 사지 중 하나가 부러졌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연위는 절대 금군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어디냐.’
파아아악!
연위가 좌측에서 다가오는 병졸의 어깨를 밟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연위를 올려다보는 금군의 장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람의 어깨를 밟고 하늘을 날았다. 그 높이가 무려 칠 장을 넘었다.
구름을 찾아보기 힘든 밤하늘. 휘영청 뜬 달빛을 뒤로한 채 한 자루 검을 뽑아 들고 지상을 내려다보는 검객.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장병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현실에서 벌어질 것 같지 않은 광경, 거리가 한참 벌어졌는데도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검객의 자태였다.
연위의 눈이 번뜩였다.
‘저기로군.’
우르르 밀려 나오는 금군 너머.
시커먼 의복 위, 붉은 수실이 달린 푸른 장포를 걸친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동창!’
환관의 우두머리인 태감이 제독을 맡은 기관으로, 그 유명한 금위위보다도 권력이 큰 위험한 조직이었다.
일체의 사법 기관도 거치지 않으며, 백성은 물론 관리까지 임의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라 그 무서움이 제국을 위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역시나 그랬구나.’
동창의 복식을 입은 이들에게서 너무나도 익숙한 기세가 느껴졌다.
‘신화교!’
화아아아악!
일순간 극점까지 달아오른 검극사기가 연위의 몸 전체를 푸른 광영으로 뒤덮었다.
훅!
장병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하늘 높이 날아올랐으니, 당연히 그대로 떨어져야 정상이다.
한데 연위는 그러지 않았다. 허공을 한 번 박차는가 싶더니, 그대로 공중을 가로질러 금군의 뒤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천종운행비.
날아가듯 움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꼿꼿한 자세였다.
부당한 외압에도, 악의 넘치는 힘에도 굴복하지 않는 군자의 신법이었다. 사신기를 연성한 연호정과 달리 천종운행비를 운용하는 연위의 자세는 놀랍도록 올곧았다.
그리고 빨랐다.
연위의 몸이 눈 깜짝할 새에 동창 복식을 한 고수들의 뒤로 떨어져 내렸다.
“엄청나구나!”
동창 적란조(赤蘭祖)의 조장이자 신화교의 무장인 진사가 수도를 쳐들었다.
화르르르륵!
가지런히 편 손가락 끝에 시뻘건 화염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손을 넘어 팔꿈치까지 붉은 화기가 넘실거렸다.
신화교의 절정무공인 화룡마도(火龍魔刀)였다. 맨손 육장으로 도검과 같은 절삭력을 내는 고급의 무공이었다.
“검을 보아하니 연가의 가주로군.”
펑! 화르르르륵!
진사 옆으로 선 적란조의 조원들 모두가 화룡마도를 피워 올렸다. 진사만큼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경지가 깊어 보였다.
진사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네놈 역시 우리 무장들을 죽였다고 들었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지녔는지 보겠…….”
퍼억!
진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머리통. 머리를 잃은 몸통이 서서히 기울었다.
이내 쓰러지는 몸뚱이 앞에 연위가 서 있었다.
연위의 검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