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752화 (752/963)

752화. 가면 쓴 용 (2)

충격적인 말의 연속이었다.

연위의 말은 진심 어린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황제 앞에서 쉬이 할 말은 아니었고, 예의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토록 무례함이 절절 흐르는 발언이 듣기에는 전혀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 때문일까?

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연위의 태도와 분위기 자체가, 그가 하는 말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고 있었다.

그것은 치고 나올 때임이 분명함에도 입을 닫은 채 홀린 듯 연위를 바라보는 황후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주르륵.

우헌의 뒷덜미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는 지금의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궁내대장군 문석이 병력을 이끌고 어전으로 향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병력에 연가의 가주와 팽가의 가주, 그리고 제갈세가의 여식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헌은 정보를 취합하고 그를 바탕으로 현실과 가장 가까운 답을 도출하는 데에 능했다. 하여 그 정도 병력으로는 출동한 금군과 동창의 병력을 뚫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설령 그것을 뚫었다 해도, 어전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는 신화교의 고수들만큼은 절대로 뚫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그것은 당연한 판단이었다. 당장 홍룡검만 해도 구파의 어떤 장문인과 부딪쳐도 뒤지지 않는 무력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저격술(狙擊術)에 능한 홍룡궁은 물론, 직급 없이 오랫동안 황궁에서 신화교의 절공을 연성한 고수들까지 숱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

소림 방장이라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방벽이었다. 아니, 소림 방장급 고수가 셋이 있어도 이렇게 쉽게 뚫릴 만한 방벽이 아니었다. 적어도 우헌은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우헌의 눈이 연위에게로 향했다.

천장을 부수고 떨어져 내리는 대검의 폭우. 그토록 위협적인 살기를 이렇게나 선명하게 드러낼 정도의 고수라면, 가히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수장들을 통틀어 첫손에 꼽힐 무력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우헌이 준비한 그 많은 병력을 뚫고 오려면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

‘설마 저놈이…… 그 경지를 연 것인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러진 못했을 것이다. 무공을 봉인했어도 감각은 죽지 않았다. 그의 기감이, 본능이 연위의 경지가 ‘그곳’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

그래서 더 문제였다.

하늘을 열지 못한 무력으로 그 철벽의 방어를 뚫고 어전에 도달했다?

그것은 곧 하늘에 도달치 못한 경지로도, 하늘을 연 절대고수들을 상대할 비책이 있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말도 안 돼!’

그게 아니라면 매 순간 최고, 최선의 전술을 발휘할 수 있는 눈을 가졌을 수도 있다. 당장 아들인 연호정만 해도 엄청난 무력은 물론 천재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전술안으로 삼교의 온갖 전략을 파훼해 버린 희대의 괴물이 아닌가.

그 전략 전술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높은 확률로 아비인 연위에게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연위의 대단함이 퇴색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에 이르지 못한 경지로 하늘에 도달한 절대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을 갖춘 것이나, 문파급 전력을 단신으로 돌파할 만큼의 천재적인 전술안을 가진 것이나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런 위험인물의 말을 황제가 들어 주고 있다.

아니, 들어 주는 것 정도가 아니라 대화가 되고 있었다.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나 버린 조각은 황제였다.

연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설마하니 황제가 연위에게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다. 연위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황제가 저놈을 처단하라 명했다면 어전을 더럽히는 한이 있더라도 고수들을 끌고 와 연위를 공격했을 것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이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으며, 설마 저럴까 싶었는데 정말로 저러했다.

우헌은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헌이 극도로 당황하여 눈알만 굴리고 있는 사이.

마침내 황제의 입이 열렸다.

“그것은 참으로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발언이구나.”

연위의 눈이 번뜩였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매혹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지금껏 국정을 손에서 놓은 채 일세의 쾌락에 젖어 산 무능한 군주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그대가 처음 짐에게 인사를 올릴 때 분명 천자(天子)라 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란 무엇인가? 천자는 곧 하늘의 자식이다. 하늘의 자식이기에 속세의 인간과 다르며, 그래서 존귀하다.”

“…….”

“이런 짐에게, 그대의 무례는 시간이 지날수록 도를 넘어서는구나.”

“틀렸습니다.”

“틀렸다?”

연위의 목소리는 이제 한 줄기 노래처럼 매끄럽게 들리기까지 했다.

“천자(天子)란 호칭에 불과합니다.”

“……!”

“고래로 황제를 천자라 칭하는 것은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돌봐야 할 위정자인 까닭입니다. 폐하께서는 돌아가신 태후마마께서 낳으셨습니다. 태후마마도 사람의 자식이고, 폐하께서도 사람의 자식입니다.”

“그 발언만으로도 그대는 대역죄인이야.”

“또한, 천자가 존귀한 것은 하늘의 자식이라서가 아닙니다.”

“…….”

“만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은 자, 만백성의 배를 불려야 할 책임자, 만백성이 살아갈 이 땅을 지키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쳐야 하는 천명(天命)을 타고난 자.”

“…….”

“천자가 존귀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 어깨에 헤아리기 어려운 백성들의 삶이 걸려 있기에 존귀한 것입니다.”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로구나. 하면, 짐이 백성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백성이 없으면 천자도 없습니다.”

“…….”

“폐하께서는 근 수십 년 동안 직무 유기를 하셨습니다. 고로, 수십 년 동안 천자가 아니셨습니다.”

연위가 눈을 감았다.

“부디 천자가 되어 주십시오.”

마치 벼락이 떨어진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황후는 물론 머리가 어지러운 우헌조차도 연위의 말에 흠칫했다.

천자가 되어라.

이전의 명민했던 황제로 돌아와라.

당금의 잘못된 황궁을 바로잡고 천명이 무엇인지 깨달아라.

그 어디에서도,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기 힘든 직언이었다. 무례와 희망, 진심과 사실, 법도를 무시한 법칙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위험한 발언이야. 삼족, 아니 구족을 멸해도 과하지 않을 대역죄인의 발언이다. 내, 과거 선황께서 살아 계셨을 적을 통틀어 그대처럼 무엄한 자를 본 적이 없다.”

“…….”

“하나, 그대의 눈은 참으로 맑구나.”

순간 음영 가득했던 용상에서 한 쌍의 안광이 벼락처럼 일렁였다.

‘……!’

연위의 눈이 흔들렸다.

잘 보이지 않는 황제의 용안(龍顏). 그 용안을 장식하는 보물과 같은 두 눈이 소름 끼치도록 맑은 투명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바로 그 순간, 연위는 확신할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으셨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폐하께서는 황궁을, 제국을 포기한 게 아니셨구나.’

연위는 그간의 사정을 알지 못했다.

아니, 이곳에 있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황후는 물론, 황제를 못쓰게 만들기 위해 온갖 간교한 계책을 짠 우헌조차도 황제의 진짜 사정은 모를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황제의 눈을 본 순간,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천자란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에 불과할 뿐, 하늘이 점지한 신인(神人)은 아니다…… 그래,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구나. 듣기만 해도 입 안이 씁쓸해지는 직언 말이다.”

“폐, 폐하!”

우헌은 저도 모르게 그리 외쳤다.

황제가 말했다.

“내, 그대를 연가주라 부르면 되겠는가.”

“영광일 따름입니다.”

“연가주, 그대가 무엇을 믿고 이 자리까지 왔는지 짐은 알 수가 없다. 그대는 짐은 물론 황궁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한데 어찌 이곳까지 왔는가? 내 이리 보니, 그대와 당적할 만한 고수가 천하에 많지 않음은 알겠지만, 동시에 알량한 무공 하나만 믿고 날뛰는 얼치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

“자칫 잘못했다간 역적 가문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었어. 내가 그대의 얘기를 듣지 않고 태감을 시켜 잡아 죽이라 말했다면, 절대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야.”

“그랬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오셨는가?”

“목숨을 걸고 왔습니다만, 황제 폐하의 손에 죽을지언정 간신배와 사교 무리의 손에 죽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생과 사가 어디 그대 마음대로 된다던가?”

“적어도 미뤄 둘 수는 있겠지요.”

“어떻게 말인가?”

“저는 황제 폐하의 손에 죽을 각오는 했지만, ‘당대’ 폐하께 죽을 각오를 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

“만약 폐하께서 천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면, 소인은 이 자리에서 제가 자랑하는 최고의 장기를 선보일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연위가 한 발언 중 가장 무시무시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옅게 분칠한 황후의 얼굴이 완전히 하얗게 질려 버렸고, 우헌조차 경악하여 입만 뻐끔거렸다. 연위의 발언은 그 정도로 과했다.

저 황제조차도.

용상에 앉은 황제의 눈조차도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 놀라운 것은 이어진 황제의 발언이었다.

“황제는 만백성의 어버이이자 제국의 통치자일 뿐, 천자 노릇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스러져 버릴 수 있는 존재라 이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만인의 위에서 군림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들 무림인은 황궁과 관부를 인정치 않아. 관무불침이라는 치욕적인 조항 속에서 사는 그대의 입에서 어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설령 그런 자리라 한들, 소인에게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 만큼의 안목과 지혜가 없습니다.”

연위가 눈을 빛냈다.

“소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입니다.”

“…….”

“하나, 세상에 눈을 뜬 지가 오래되지 않아 소인 또한 많은 것을 잘못 보고 살았습니다. 외세가 침입하여 이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 작정을 한 지금에야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달은 벽창호가 소인입니다.”

“…….”

“지금에서야 올바름이라는 자존심 하나만 들고 찾아온 소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죄, 살아서는 갚지 못할 것입니다.”

무섭다.

무섭지만, 우헌과는 다르다.

우헌은 충신의 가면을 쓴 간신배로서, 법도와 예를 어긴 데에 대한 죄를 훗날 받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연위는 죽음을 불사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러 왔지만, 황궁의 예법과 법도를 어긴 것은 죽을죄가 아니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진짜 죽을죄는, 너무나도 늦게 와 버린 자신의 우둔함이다.

황제가 눈을 감았다.

어쩐 일인지, 용상에 내려앉은 음영이 조금은 걷힌 듯했다.

“…….”

지독히도 무거운 침묵이 어전을 휘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간신배와 사교 무리.”

“…….”

“그대가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는 묻지 않겠네.”

“…….”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들의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날 수 있느냐, 없느냐일세.”

그때였다.

척!

벌떡 일어난 우헌이 어전의 벽으로 물러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연위의 손이 우헌에게 향했다.

우우우우우웅!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우헌의 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우헌의 몸이 덜덜 떨렸다. 연위의 엄청난 무형지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연위의 눈이 차가워졌다.

“저희가 가진 장기를 활용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스르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