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화. 굴에 살지 않는 범 (3)
식당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아연한 기색이 번졌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아비 된 자가 아들을 직접 죽이겠다고 한다.
흑도에서도 이런 경우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애초에 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흑도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묵룡부의 소부주에게 용서를 받지 못했기에 죽이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소부주인 패왕 연호정은 그 무력이 성천에 도달한 일세의 고수였다. 작정하고 손을 쓰면 녹림총채주라도 삼 초를 넘길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묵룡부주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니, 여기서 괜한 술책을 써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아들을 구하지 못할 바에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서 동정표라도 얻는 것이 낫다.
나아가 연호정에 대한 여론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연호정은 흑도 출신이 아니었고, 소부주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알량한 직책 하나 얻었다고 녹림의 산적왕에게 모욕을 준다면, 그것은 소부주 본인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만약 소부주가 그걸 안다면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고, 그걸 모른다면 직접 아들을 죽여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잃는 것이 없다. 아들 하나를 잃을 수도 있지만, 사사건건 사고만 치는 아들놈이라면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것이 조동국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조동국의 그런 의도를, 천하의 연호정이 못 읽었을 리 없었다.
“대단한 용단이시오. 직접 아들을 죽이겠다니, 그런 결정을 내리실 줄 몰랐소.”
“소부주님께서 용서해 주지 않으신다면, 결국 이놈은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아비의 손으로 보내 주는 것이 낫겠지요.”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호정이 히죽 웃었다.
“그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
“앞으로 펼쳐지게 될 흑도의 미래에, 총채주처럼 수완 좋고 처세에 능한 분이 함께한다면 그야말로 든든하겠소이다.”
조동국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칭찬 고맙소.”
“하지만 말이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 법이 지엄하다 한들, 어찌 아비의 손으로 아들을 죽이라 하겠소이까?”
번쩍!
한 줄기 서늘한 광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툭! 푸화아악!
조필도의 머리가 떨어지며 대량의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헉!”
지켜보던 무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조동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호정이 손을 털었다. 수도(手刀) 일격으로 조필도의 목을 날려 버렸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지만, 총채주의 얼굴을 봐서 깔끔하게 보내 주었소이다.”
“……!!”
조동국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눈 밖에 났다 할지라도 아들은 아들이다. 직접 죽이겠다고 나섰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혈육의 목이 날아가 버렸다.
심지어 자신의 손도 아니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묵룡부 후계자 놈의 손에 아들이 죽어 버렸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부르르르.
박도를 쥔 조동국의 손이 잘게 떨렸다.
불안정하게 꿈틀거리던 기도는 엄청나게 거칠어졌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걸 보면, 그의 인내심 하나만큼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연호정은 냉담한 시선으로 조동국을 바라보았다.
“…….”
숨 막히는 적막이 식당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참으로…….”
목이 살짝 메었지만, 조동국은 심호흡까지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참으로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오늘의 일, 흑도의 미래를 위해 결코 잊지 않겠소.”
묘한 말이었다.
다시는 당신에게 대들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고, 오늘의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중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는 오직 조동국만이 알 것이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아비의 눈앞에서 그 아들을 죽였는데도 그의 미소는 해맑기만 했다.
“앞으로 흑도를 위해 열심히 해 봅시다.”
연호정이 포권을 취했다. 고개는 숙이지 않았다.
조동국은 고개 숙여 포권했다.
“영광이오.”
그 인사를 끝으로 조동국이 몸을 돌렸다.
“가자!”
조필도의 호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거칠었다.
덩치들은 연호정의 눈치를 보며 조동국의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아, 그런데 말이오.”
조동국의 걸음이 멈추었다.
연호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총채주께서는 확인해 줄 수 있겠소?”
“……어떤 소문 말씀이시오?”
연호정의 동공에 시뻘건 불꽃이 넘실거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번쩍!
일순간 회오리치는 주작화기가 식당 전체를 장악했다.
“허억!”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연호정의 살기는 단순히 죽이기 위한 살기가 아니었다. 그 살기는 만인(萬人)을 다스려 본 자가 아니면 감히 피워 낼 수 없는 막강한 위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깜짝 놀란 조동국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칼을 세워 들었다.
‘……!!’
조동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느새 연호정이 자신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연호정의 왼손이 조동국의 칼을 잡았다.
치이이이이익!
조동국의 칼날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크윽!”
엄청난 열기를 이기지 못한 조동국은 저도 모르게 칼을 놓고 비틀거렸다. 어느새 그의 손바닥은 보기 흉한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조동국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소부주! 이게 무슨 짓이오!”
치이이이이이익!!
순식간에 최고 온도를 찍은 주작화기.
불그스름한 빛을 발하던 박도가 서서히 그 형태를 바꾸었다. 엄청난 열로 인해 칼날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호정이 주먹을 쥐었다.
툭! 쿵! 치이익!
진흙처럼 물러져 뜯어진 박도가 바닥에 떨어져 자욱한 연기를 냈다.
연호정이 다시 손을 폈다. 그러자 그 손에 잡혀 있던 칼날의 일부가 점도 높은 진흙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조동국의 얼굴에 충격이 일었다.
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한 열양공을 익혔기에, 단단하게 주조된 칼날을 진흙처럼 녹여 버리는가.
그야말로 소름이 끼치는 힘이었다. 이런 힘을 지닌 자에게 대응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듣기로, 녹림의 우두머리 중 몇몇이 세금을 내는 마을에 찾아가 재미로 사람을 사냥하고 아녀자들을 겁탈하길 반복한다 하였소.”
“……!!”
“제아무리 산적 출신이라지만,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소이까?”
“소, 소부주!”
퍼어어어억!
조동국의 얼굴이 붉어졌다.
“쿠웨에엑!”
포탄 같은 각법에 명치를 맞은 조동국이 그 자리에 쓰러져 피를 토했다.
경악스러운 것은 그가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조동국 정도가 되면 일격을 당한 즉시 반사적으로 손이 나갈 실력을 갖추었을 텐데도 당한 자세 그대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연호정의 발에 담긴 강력한 경력이 그의 단전과 신경에 강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품격이 별거냐?”
조동국을 내려다보는 연호정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말투도.
“사람에게 품격이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행동 양식과 규율이 있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컥!”
“알량한 힘과 직위가 아니라!”
연호정의 일갈에 식당 전체가 부르르 떨었다.
“지켜야 할 최소한을 업신여기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품격은 그 단단한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
“한데 네놈들은 어떠냐?”
치이이익!
연호정의 몸에서 흑회색 살벌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마을을 지켜 주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로, 너희는 그들에게 세납을 받아 왔다.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라는 것을 손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어찌 되었든 그것이 계약이라면 그것으로 만족했어야지.”
“커헉! 쿨럭!”
“양 무리를 지켜 주는 개가 돌연 늑대처럼 양을 잡아먹기 시작한다면, 그것을 어찌 경비견이라 할 수 있겠느냐.”
조동국이 이를 악물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연호정의 살기는 진짜였다. 진짜로 자신을 죽일 기세였던 것이다.
“으아아압!”
피 섞인 고함과 함께 주먹으로 기습을 가하는 조동국.
퍼억!
그의 기습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실패해 버렸다. 주먹이 연호정의 손에 잡힌 것이다.
연호정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콰드드득!
“아아악!”
연호정의 발이 움직였다.
퍼어억!
단전을 얻어맞은 조동국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푸스스스스!
조동국의 피부가 순식간에 탄력을 잃어 갔다.
단전이 깨지고, 그간 모아 놓은 내공이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강력한 침투경이 일격에 그의 몸을 박살 내 버린 것이다.
그 광경을 보는 이들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흑도에서 녹림총채주 호마 조동국의 위상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묵룡부주 등 몇몇 이들을 제외하면, 가히 최정상 위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한데 그만한 위계를 지닌 인사가 너무도 허무하게 그 힘을 잃고야 말았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집단은 집단일 뿐이야. 거기에 흑도와 백도의 구분 따위는 없어.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를 뿐, 흑도라고 짐승처럼 살고 백도라고 위선자처럼 살아야 쓰겠느냐?”
“…….”
“지금 네놈이 내 손에 작살이 나고 있는 것은 나에게 잘못해서가 아니다. 네놈은 흑도의 격을 무너트렸어. 자식 하나 건사하지 못할 만큼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전국에서 납치한 아리따운 처녀들을 유린한 것도 모자라, 질리면 죽이고 묻어 버렸다고?”
기운을 잃은 조동국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그 일은 녹림 안에서도 아는 이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걸 연호정이 알고 있는 것이다.
“쿨럭! 모, 모함하지 마시오!”
기운은 잃었지만,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증거로……!”
“증거야 많지. 나에게도 있고, 내게 전달되기 전에 부주님께도 들어갔고.”
“……!!”
그렇다.
흑도가 백도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보력이다.
물론 중원 전체를 아우른다면 백중세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만큼은, 흑도의 정보력이 백도를 압도한다.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서, 설령 그렇다 한들 내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소부주가 관여할 권한은 없소!”
콰득!
“으아아악!”
두 다리가 부러진 조동국이 바닥을 굴렀다.
연호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뚫린 주둥이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오는구나.”
“으으으!”
“그따위 추잡스러운 짓거리를 하는데 권한은 무슨 권한? 네놈이 그따위로 살아온 이상, 천하에서 가장 천한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억울해할 일이 아니지.”
“나, 나를 죽이면 녹림 전체가 돌아설 것이오!”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욕심은 많으면서도 제정신이 박힌 놈이야 찾아보면 하나는 튀어나오겠지.”
조동국의 얼굴에 절망이 일었다.
“애비 된 놈이나 아들이나, 똑같은 쓰레기다.”
“사, 살려……!”
콰득!
연호정의 발이 조동국의 머리통을 부숴 버렸다.
“……!”
끔찍한 적막이 식당을 에워쌌다.
연호정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나는 너희가 의로운 인생을 살길 바라지 않아. 나 살기도 바쁜데 남까지 도우면서 살 필요가 있겠느냐? 우리는 그런 성인(聖人)도, 샌님도 아니다.”
“…….”
“백도 정파의 의협처럼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답게는 살아라. 내가 추구하는 흑도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