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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911화 (911/963)

911화. 마(魔)의 숨결 (6)

태사의를 바라보는 목계담(木溪擔)의 눈은 무색투명했다.

그가 밟고 선 융단은 어두운 붉은색 계열이었다. 몹시 푹신해서 한 번 밟으면 복숭아뼈까지 파묻힐 정도였다.

목계담은 생각했다. 이 검붉은 융단은 마치 피로 물든 진흙과 같다고.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 이뤄진 늪지대라 이렇게 푹푹 빠지는 것 같다고.

어울리지 않아.

목계담은 또 생각했다. 이 진흙 같은 융단은 결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신마림의 태사의는 강자만이 앉을 수 있다. 하지만 신마림의 강자존은 삼백 년 전 마도 무림의 강자존과는 차이가 있었다.

진정한 마도(魔道)는 아수라장이나 다를 바가 없다.

마(魔)의 본질이 그러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폭력과 배신, 음란과 죽음, 조소와 갈증, 무너진 질서와 생산적인 파괴가 마구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순수하다.

마(魔)는 혼돈 그 자체였다. 마의 본질이 그러하니 인간 세상에서는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다.

태사의를 바라보던 목계담은 문득 역겨움을 느꼈다.

‘웃기는군.’

강자존이라고? 강한 자만이 정상에 설 수 있다고?

그 반쪽짜리에 불과한 자부심으로 잘도 마도 무림의 신비 단체로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자존은 자연의 법칙이다. 당장 같잖은 도덕을 내세우는 동대륙의 백도 정파란 것들 역시 강자가 아니면 대우해 주지 않는다.

강자를 섬기고 흠모하는 것은 모든 생물의 본능이었다. 즉, 달리 생각하면 저 백도 정파나 흑도 사파 역시 마의 한 지류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마도라면 단순히 강자를 바라보고 흠모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죽음과 죽음, 폭력과 폭력.

배신하기 위한 사랑, 능욕하기 위한 관계, 파괴를 위한 상생으로 가득 차야만 했다.

그것이 진정한 마도였다. 세상의 일면만을 보면서 사는 몰지각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지옥과 다를 바 없겠지만, 본디 세상의 본질은 혼돈이었고 파괴 욕구는 생물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였다.

근본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인간들은 모두 부정한 존재들이다.

오직 마(魔)다. 마를 이해하는 자들은 곧 이 세상의 규칙을 아는 자들이고, 그런 자에게 힘이 실리면 그가 바로 세상의 왕이 되는 것이다.

신마림은, 신마림주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가.”

목계삼의 뒤에서 기묘한 형상이 일렁였다.

연기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했다. 귀신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했다.

정의하기 힘든 존재가 말을 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신마의 태사의가 눈앞에 있는데, 기분이 어떠한가?”

목계삼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웃었다.

“내가 저따위 태사의를 원했던 것 같소?”

“음? 그렇다면 자네는 어찌 힘을 손에 넣고자 했는가? 단순히 강해지고 싶다는 이유 때문은 아닌 듯한데.”

목계삼은 내심 그를 비웃었다.

진정한 마도 무림의 명맥을 이었다는 핏빛 종교에서 나온 초고수도 정작 자신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결국 마(魔)도 깨달음이다. 글자 하나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자신도 참 먼 길을 돌아왔다.

“강해지고 싶다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욕망이오. 나는 그저 강해지고 싶었을 따름이오.”

“그 이외에는 원하는 것이 없다는 건가?”

“지금은 그렇지. 쉬고 싶거든.”

“흐음.”

“그러나 다시 움직이고 싶어지면, 그때는 또 한 번 마의 글자를 짊어지고 살아가겠지.”

“자네가 보는 마는 무엇인가?”

“끝없는 혼돈.”

연기가 한 차례 출렁거렸다.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드넓은 천하를 온통 혼란스럽게 만들겠다, 이것인가?”

“그렇소.”

“자네는 재미있는 사람이야. 삼백 년 전, 사색(四色)의 광인을 상대했던 선조와 비슷한 말을 하는군.”

“그렇소?”

“반쪽짜리지만 말이지.”

그제야 목계삼이 뒤를 돌아보았다.

시야에 똑바로 담지 않았을 때는 연기와 같았는데, 막상 정면으로 바라보니 너무나도 분명한 사람의 외양을 한 존재였다.

연기의 괴인은 왜소했다.

왜소한 것도 왜소한 것이지만, 허리가 잔뜩 굽었다. 의복도 낡아 보였고, 피부 역시 쪼글쪼글했다.

못해도 팔십은 넘은 듯한 노인이었다. 땅을 짚고 있는 지팡이가 몹시 고풍스럽게 보였다.

기묘한 노인이었다.

어느 시골 마을에 가면 한 번씩 볼 수 있는 그런 외양이었다. 옷도, 자세도, 얼굴도 그러했다.

하지만 빤히 보고 있지 않으면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사람에게 응당 느껴지는 생기(生氣)마저도 없다. 그렇다고 사마기(邪魔氣)가 그것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었다.

완전한 무(無)였다. 노인의 존재감은 그러했다.

“반쪽짜리라고 했소?”

“그렇다네.”

“왜 반쪽짜리요?”

“혼돈을 원한다고 했나?”

“그렇소.”

“정의될 수 있는 개념에 진정한 혼돈 따위는 없다네.”

“……?!”

“혼돈이란 말 그대로 혼돈이야. 혼돈은 복속될 수 없는 개념이지. 마에도 그러한 속성이 없지는 않지만, 진정 혼돈을 추구한다면 자네도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없었네.”

목계삼의 눈이 흔들렸다.

노인이 씨익 웃었다.

나이가 그렇게 들었는데도 이빨은 어느 하나 멀쩡하지 않은 게 없었다.

“자네는 강해. 재능도 출중하지. 만약 신마림주가 아니라 본교의 교주님 눈에 먼저 들었다면, 어쩌면 자네는 외인(外人) 최초로 부교주 직위까지 올랐을지도 모르겠네.”

광혈교의 부교주.

교주와 부교주는 직계 혈통이 아닌 이상 오를 수 없는 위치다.

그중 교주 자리는 불변이지만, 부교주 자리는 그렇지 않다. 유독 빼어난 성취를 지닌 이가 있다면 혈통을 무시하고 부교주의 직을 하사한 전례가 소수나마 있었다.

즉, 당대 마(魔)를 짊어진 이들이 노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가 바로 광혈교의 부교주 자리였다. 물론 사음과 신화를 제외하고.

“하지만 신마림주, 그 변절자에게 배워서 그런 것일까? 자네의 시야는 몹시 한정적이군. 뭐, 자기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도 마(魔)라면 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목계삼의 눈에 은은한 마기가 실렸다.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노인도 알 수 없었다.

‘확실히 대단해.’

노인은 목계삼보다 두 배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런 그도 천재라 불리던 마재(魔才)였다.

하지만 눈앞의 저 젊은이는 자신보다 훨씬 더 윗줄의 재능을 안고 태어난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붙는다면야 저 젊은이가 자신을 이길 확률은 일 푼도 되지 않겠지만, 향후 십 년을 더 수련하면 승패가 어떻게 갈릴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쉬워. 본교로 들어왔다면 저 재능을 활짝 꽃피울 수 있었을 터인데.’

노인이 아쉬움을 느끼는 사이.

목계삼이 입을 열었다.

“보았소?”

“무엇을 말인가?”

“전대 림주를 보았느냔 말이오.”

노인이 씨익 웃었다.

“보았지. 거의 다 죽어 가더군.”

“아직 살아 있소?”

“생명력 하나는 쇠심줄보다도 질긴 사람이더구먼. 대단해. 그런 상황에서도 정신력은 그대로야. 마도 무림의 일대 종사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어.”

목계삼이 불쾌한 듯 말했다.

“그는 쓰레기에 불과하오.”

“그래도 한때나마 자네에게 애정을 주고 가르침을 내린 스승에게 잘도 그런 말도 하는구먼.”

“내가 원래 편협하오.”

“허허허허.”

노인이 융단 위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네. 본래 실력은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마기의 순도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높은 경지를 구축한 신인(神人)인지를 알겠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오.”

“그리 말하지 말게. 말했듯, 마기의 순도만 놓고 보면 본교의 어떤 사제장도 그를 넘볼 수 없을 것이네. 부교주 정도라면 승부가 될까?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교주님께서 직접 손을 쓰셔야 했을지도 몰라.”

엄청난 고평가였다.

목계삼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끝까지 스승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는 마(魔)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소. 하지만 도달할 수 있었음에도 포기해 버렸지. 그리고 눈을 돌려 무(武)에 관심을 두었소.”

“대륙 놈들이 마선(魔仙)이라는 별호를 괜히 붙여 준 게 아니지.”

“마선? 웃기지도 않소. 그자는 반쪽짜리조차도 못 되는 쓰레기요. 그만한 재능을 안고 태어났음에도 온전히 마에 몸을 던질 용기도 없다니…… 역겹기 짝이 없어.”

“허허허.”

대화를 나누면서도, 노인은 계속 융단 위를 걸었다.

목계담을 지나쳐 태사의 앞에 선 그가 허리를 두들기며 그 자리에 앉았다.

순간 목계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태사의엔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내려오시오.”

“허세였던가?”

“그 자리는 공석이오. 지금 당장 부술 생각이지.”

“자존심인지 뭔지는 모르겠네만, 헛소리 그만하고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지나 말해 보시게. 나이를 먹었더니 서 있는 것도 힘들어.”

“…….”

가만히 노인을 노려보던 목계삼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훗날 당신은 내 손에 죽을 거요.”

“어차피 오늘내일하는 사람이야. 협박이라면 대상을 잘못 골랐네.”

“…….”

“그래서, 앞으로 어쩌겠다고?”

목계삼이 한 손을 들어 보였다.

화르르륵!

순간 그의 손이 시뻘건 불꽃을 뿜어냈다. 손 전체가 붉은 화염을 뿜어내는데, 그 화력이 실로 엄청났다.

목계삼이 화염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그 안에 있었다.

“호마단과 싸우고 있군.”

“호오, 그래?”

노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무림맹 병력을 데리고 온 삼공자 말이지?”

“그렇소.”

“무시무불대진이 대단하긴 하구먼. 흘러나오는 군기(軍氣)와 살기도 느낄 수가 없어.”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건 그렇지.”

불꽃을 보는 목계삼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 죽으라고 보낸 병력이긴 하지만…… 그래도 놀랍군.”

“왜?”

“고작 다섯이서 오백을 상대하고 있소. 벌써 절반이 넘게 쓸려 나갔소이다.”

“오호?”

마치 손주의 재롱을 보는 듯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무림맹에서 상당한 고수들을 파견해 준 모양이구먼. 어중이떠중이라도 신마의 마공을 익힌 이들인데, 고작 다섯이서 다 박살 내고 있다는 겐가?”

“엄청난 궁술(弓術)을 지닌 여고수가 있소.”

“궁술? 여고수?”

“그렇소.”

목계담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술에 능한 여고수라……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데.”

“귀궁신녀.”

목계삼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미소 가득했던 노인의 얼굴이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귀궁신녀 묵비라는 년이네. 당금 대륙 무림에서 최고의 궁사로 손꼽히는 젊은 고수야.”

“음, 그렇…….”

잠시 멈칫했던 목계삼이 말을 이었다.

“듣기로, 귀궁신녀인지 뭔지 하는 년과 함께 다니는 고수가 있다고 하던데.”

노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 그곳에 도끼를 쥔 자가 있는가? 나이는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청년일세.”

목계삼이 다시 불꽃을 들여다보았다.

“……있소.”

“기가 막히는군.”

노인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연호정…… 정말이지 우리와는 지독한 악연으로 얼룩졌구나.”

노인이 태사의에서 내려왔다.

“연호정 그놈은 자네가 감당할 만한 인사가 아니네. 섣불리 덤비지 말게.”

목계삼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놈이오.”

“무공으로는 자네가 훨씬 더 어려. 모르긴 몰라도 놈과 붙다간 자네, 오십 합도 넘기기 전에 처참히 살해당할 걸세.”

융단 끝에 선 노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는 연씨 성만 들어도 지긋지긋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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