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화. 대종사(大宗師) (3)
“사, 사부님!”
반파된 대전 속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혁련휘의 마지막 제자, 방원후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돌가루를 뒤집어쓴 몰골이 참으로 가엽다. 왼팔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발목이라도 접질렸는지 절뚝거리는 모양새가 보는 이의 동정을 유발하기 충분했다.
“…….”
오색으로 빛나던 혁련휘의 두 눈이 점차 본래대로 돌아왔다.
마치 혁련휘의 영혼이 가시화라도 된 양, 그의 등 뒤에 우뚝 서 있던 거대한 지옥수도 서서히 사라졌다.
공포로 가득하던 방원후의 얼굴이 점점 울상으로 변했다.
“사부님!”
“원후.”
“흐흑!”
울음을 터트린 방원후가 혁련휘에게 달려갔다.
그 달음박질은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어린아이의 달리기 그대로였다. 정말 겁에 질린 듯 호흡까지 들썩이는 모습을 보면 흔한 열 살짜리 아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였다.
“헉!”
달려가던 방원후가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부님?!”
방원후를 향해 파천월도를 겨누고 있는 혁련휘의 얼굴에는 자책의 기색마저 어려 있었다.
방원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사, 사……!”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한다.
가만히 방원후를 보던 혁련휘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하라.”
“네, 네?!”
“그런 같잖은 연기는 집어치우란 말이다.”
“……사부님?”
부르르.
파천월도가 희미하게 떨렸다.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산에 사는 짐승의 울음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 주변에는 맹수가 살지 않는다.
그 울음소리는 혁련휘의 육신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포효였다.
뿜어져 나오는 진기의 파편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지옥수처럼, 오색지옥공을 최초이자 최후로 개방한 그의 몸 안에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짐승의 소리를 무시하며, 혁련휘는 말했다.
“천요명 선사께서는 말씀하셨다. 광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魔)로써 하늘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육신을 탈피하지 못한 이상 불가능하니 결국 광혈교가 꿈꾸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라고 하셨느니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방원후가 숨을 헐떡이며 몸을 떨었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삼 년 동안 스승으로 모셨던 사람이 칼을 겨누고 있었다. 본디 말수도 적던 스승이니, 두려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 사부님. 살려 주세요!”
인간의 생존 본능은 대단한 것이다.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방원후는 살려 달라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도 무림의 일대 종사인 혁련휘 앞에서.
“살려 주세요! 제, 제가 잘못했어요! 부디 살려 주세요!”
그때, 멀리서 한 줄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관이었다.
혁련휘가 천천히 그들을 돌아보았다.
쿵!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연호정과 옥청이었다. 이 잠깐의 이동 중에도 원거리 공격에 능한 당관과 묵비가 후미에서 따라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당관이 외쳤다.
“어린애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당장 칼을 거두지 못하겠나!”
피도 눈물도 없다는 당가의 수장이지만, 그래도 예외로 두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었다.
하물며 마도 무림의 본산이라는 곳에서 기괴한 마기를 흘리는 고수가 덜덜 떠는 아이에게 칼을 겨누고 있으니, 누구라도 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
연호정이 손을 들어 모두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묵비의 눈이 흔들렸다.
“연 공자?!”
연호정은 말없이 혁련휘를 바라보았다.
두근.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몸 안의 황룡이 거칠게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껏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흉흉한 눈으로 혁련휘를 노려보는데, 연호정조차 당황할 정도로 진기의 밀도를 올리고 있었다.
푸스스스.
연호정의 몸에서 허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주인의 의지와 상반되는, 영성(靈性)이 있는 진기의 독자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것을 막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심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크르르르.
혁련휘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의 몸 안에 숨어든 지옥의 짐승이 진한 살기를 피워 올리며 연호정을 노려보고 있었다.
혁련휘 역시 의도하지 않은 마기의 증폭에 놀라 서둘러 진기를 억눌렀다. 그러나 억누르려 해도 쉽게 억눌리지 않는 강렬한 맥동이었다.
다만 그는 연호정보다는 훨씬 쉽게 진기를 제어할 수 있었다. 연호정의 황룡기는 그의 정신과 함께 성장한 기운이지만, 혁련휘의 지옥수는 조잡한 마기로 만들어진 반쪽짜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푸스스스스.
지옥수를 잠시지간 완전히 봉인한 혁련휘.
상단전의 기운을 무더기로 끌고 와 힘으로 제압해 버렸다. 순간적으로 이지가 어두워지는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몸은 더 자유로워졌다.
부르르르.
놀랍게도 지옥수의 기운이 완전히 봉인되자 사납게 으르렁대던 황룡기도 점차 기세를 죽였다.
아무리 영성이 있는 진기라지만, 이럴 때면 정말 의지가 분명한 생명체를 키우는 것 같았다.
“후우.”
한 차례 긴 숨을 내쉰 연호정이 신중함이 가득한 눈으로 혁련휘를 바라보았다.
혁련휘의 입이 열렸다.
“셋째가 모셔 온 무림맹 측 인사들이신가.”
가만히 혁련휘의 얼굴을 살피던 연호정이 광룡부를 놓고 절도 있게 포권했다.
“강동 벽산연가의 장남이자 흑도 연맹 묵룡부의 소부주 연호정이 마선(魔仙) 혁련휘 선배님을 뵙습니다.”
순간 일행은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저토록 기괴한 차림새의 노인이 혁련휘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혁련휘 역시 조금은 놀랐다. 강동 벽산연가의 장남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왔지만, 그가 이 정도의 고수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묵룡부의 소부주라니? 정파 무림의 명문가 출신 장남이 어찌 흑도 연맹의 작은 주인이 되었단 말인가?
‘하기야.’
주변을 둘러보는 혁련휘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 아니던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혁련휘일세.”
“영광입니다.”
“영광이라…….”
혁련휘가 큭큭 웃었다.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마도 무림의 총수였던 자를 마인이 아닌 무인으로 봐 주는가?”
“그렇습니다.”
“무르군. 지닌 무공과는 달리.”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듣는 말입니다.”
당관과 묵비가 연호정을 힐끔거렸다. 가끔 듣는 말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끄러미 연호정의 눈과 가슴을 살펴보던 혁련휘가 고개를 저었다.
“몸뚱이 안에 숨겨 놓은 것들에 대해서는 일이 끝난 연후에 얘기해 보세.”
“그러시지요. 한데…….”
연호정이 방원후를 바라보았다.
방원후가 흠칫하며 눈물 콧물을 쏟아 냈다. 사람 몸뚱이만 한 도끼를 든 고수까지 등장했다. 어린아이에게는 공포로 눈이 돌아갈 만한 광경이었다.
혁련휘의 눈빛이 변했다.
“갈(喝)!!”
쩌어어어엉!
반경 수십 장 안의 공기가 모조리 터져 나갈 것 같은 엄청난 일갈이었다.
당관과 묵비, 옥청은 물론 연호정조차 움찔할 정도로 강렬한 목소리.
방원후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가린 양팔이 벌벌 떨리는데, 그야말로 애달프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혁련휘가 엄한 얼굴로 말했다.
“인간의 몸으로는 마를 육신에 담은 채 하늘에 이를 수 없다…… 그렇다면 광혈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포기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든지.”
“사, 사부님.”
“하지만 그 도전에 인외(人外)의 방식을 끌어들였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건 마도(魔道)가 아니다. 그저 선을 모르는 자의 악도(惡道)에 불과한 것이다.”
혁련휘는 선(線)을 언급했다. 연호정과 연위가 그렇게나 강조하는, 그 선이었다.
“광혈이 비인외도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십여 년 전이었다. 광신도들의 미친 짓거리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너희들을 잡을 힘이 없었다. 그럴 상황도 아니었지. 내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서 허구한 날 진기를 소모해야 했으니.”
혁련휘의 과거.
그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승을 떠난 넋은 저승이라는 우주(宇宙)로 떠나가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천도(天道)라고 말할 것도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법칙이란 말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러지 않았다.”
혁련휘는 방원후를 보며 너희라고 하였다.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설마하니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저 어린 꼬마가 광혈교의 교도라도 된다는 말일까.
“죽은 사람의 혼은 하늘로 승천하고 백은 땅으로 화한다. 둘은 다르면서도 같다. 어느 하나만 뽑아 와서 제멋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했지.”
혁련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죽어 버린 전대 사제장들의 넋을 끌어와 썩어 버린 시체의 몸뚱이에 박아 넣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두 번째 삶을 영위케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삶.
그 말을 들은 연호정은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두 번째 삶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지금의 연호정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는 시공을 초월해 과거로 돌아왔으니, 진정한 의미의 두 번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혁련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제 그만 보내 주어라.”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휘를 제외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방원후에게서 이질감을 느끼는 그였다.
“광혈의 전대 고수들을 불러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한데 너희는 불사를 이루겠다는 명목 아래 우주로 나아가야 할 어린아이의 넋까지 가져와 억지로 외도(外道)를 걷게 하는 것이냐! 네놈들이 정녕 사람이라 할 수 있더냐!”
혁련휘의 엄한 음성에 점차 거친 마기가 깃들었다.
훅!
파천월도를 거둔 혁련휘가 왼손을 뻗었다.
시커먼 손톱이 돋아난, 짐승의 앞발처럼 기괴하게 뒤틀려진 악마의 손을.
“이만 보내 주거라! 나는 처음부터 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한 것은, 네놈들이 그 아이의 혼을 갖고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보내 줘!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은 것인가! 그런 식의 비인외도로 불사(不死)를 꿈꾸려 해 보았자, 진정한 불사란 절대 불가능한 영역이야! 도대체 불사의 어느 영역에서 찬연한 삶의 위대함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그때였다.
치이이이이익!
극도로 격양된 혁련휘의 감정이 닿은 듯, 파천월도에서 시커먼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 불꽃은 단숨에 혁련휘의 혈관을 파고들어, 그의 왼손 끝으로 전달되었다.
화아아아악!
무서운 압력.
파천월도에 묶인 성마의 힘을 끄집어내 궁극의 깨달음으로 쏘아 내니, 비인외도의 극치를 이룬 광혈의 인형도 더는 버틸 수가 없다.
우두둑!
멍한 얼굴로 혁련휘를 보는 방원후.
그의 몸 어딘가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둑! 우두두두둑!
한번 시작된 탈골음은 순식간에 몸 전체로 퍼져 나가며 방원후의 골격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콰드득! 우둑! 찌이이익!
골격이 커지며 피부가 찢어졌다.
치이이익!
놀랍게도, 찢어진 피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 덕에 순식간에 봉합되었다.
그렇게 방원후는 점점 커졌다.
더는 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몸으로 나아가는 인형.
혁련휘의 눈이 재차 오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와라, 광혈의 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