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화. 진실 (6)
당관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진정한 만류귀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비슷해질 수는 있어도 완전(完全)한 하나의 깨달음으로 귀결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렸다.
뭍 천하 고수들의 사상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었다. 당관은 그 발언의 신선함에 주목했고, 왜 만류귀종이 존재하지 않는 건지 물었다.
아버지, 암왕 당형은 우리가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하였다. 진정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신(神)의 영역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초월하는 만류귀종의 경지 따위는 인간 세상에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더랬다.
‘보자. 너와 내가 익힌 무공은 같다. 그러나 네가 익힌 무공은 내가 창조한 제왕독공을 기반으로 한다. 제왕독공은 결국 수백 년 당가 독공의 총화와도 같으니, 결과적으로 너나 내가 익힌 무공은 당가 무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너의 무공은 나의 발자취를 좇아야 한다. 다소 부족하거나 섬세함이 떨어질지언정 이 애비가 구사하는 무공과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 한데 어떠냐? 네가 구사하는 무공이 나의 무도(武道)를 그대로 따르고 있더냐?’
‘아니지요.’
‘궁극에 이르면 또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궁극은 누가 정하는 것이더냐?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내가 정한 끝과 네가 정한 끝이 진정 같을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가령 너나 나의 재능이 하늘에 달하여, 치열한 노력과 천운으로 인세의 상식을 뛰어넘는 대자연의 궁극에 이르렀다고 치자. 그리된다면 그 존재는 무인이냐, 신(神)이냐?’
‘신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의 영역은 벗어났다고 볼 수 있겠지요.’
‘바로 그것이다. 진정한 만류귀종이란 육신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이 세상과 하나가 됨을 뜻한다. 그런 존재는 무인이라 할 수 없지. 무인으로 시작하여 도(道)를 얻어 신선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아니라면, 무인이란 결코 인간 세상의 법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형의 말은 단정적이었고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형은 그 자신의 논리를 확고하게 진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당형에게 있어 만류귀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훅!
세상이 느려졌다.
점점 느려진 세상은 어느새 멈춘 것처럼 보였다. 아니, 멈추었다.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인지, 아니면 나의 감각이 초월적으로 민감하고 빨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에 어찌하여 아버지와의 대화가 떠오르는가.
그것이 궁금해지는 순간, 아버지의 얼굴 위로 백병신군 막원의 얼굴이 덧씌워졌다.
당관은 그의 얼굴과 달라진 주변 환경을 보았다.
‘청해.’
정확히는 청해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 자신은 막원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음? 병기 말이오?’
‘그렇소. 선배는 어찌 그 많은 병기를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는 것이오?’
‘하하, 내 별호가 백병신군인데 이 정도도 못 다루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지 않겠소?’
‘그 말이 아니오. 막 선배는 한 번 보지도 않은 병기를, 만 일을 연마한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소. 암기술도 그렇소. 선배의 암기술은 본가의 암기술에 비해 떨어지지 않더군. 암기술을 본격적으로 연마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말이오.’
‘별다를 게 있겠소? 병기의 생긴 형태에 따라 휘두르니, 그와 같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지.’
‘병기의 형태?’
‘세상 모든 병기는 만들어질 때부터 그 목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오.’
‘물론 알고 있소.’
‘검은 베는 것보다 찌르는 데에 적합하고, 도는 찌르는 것보다 베는 데 적합하오. 창은 검보다 관통력이 좋지만, 무겁고 길기 때문에 검만큼 빠르고 자유롭지 않지. 반면 단검은 일반 장검보다 가볍고 짧기에 훨씬 빠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발휘할 수 있소.’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을 뜻하겠소?’
‘……?’
‘병기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은 곧 힘의 흐름이 다르다는 뜻이오.’
‘……!’
‘날카로운 병기가 있고 뭉툭한 병기가 있소. 짧은 병기가 있다면 기다란 병기도 있지. 다시 묻겠소.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소?’
‘나는…… 모르겠소.’
‘이치라오.’
‘이치?’
‘가벼움과 무거움, 빠름과 늦음, 약함과 강함, 부드러움과 단단함.’
‘……!!’
‘가벼운 주먹보다는 무거운 주먹의 위력이 단연 뛰어날 것이오. 하나, 위력을 살리지 못한 가벼운 주먹을 쓸 일은 정녕 없는 것이오?’
‘……그렇지 않소.’
‘빠른 무공은 적을 제압하거나 살상하는 데에 효과적이오. 그렇다고 해서, 느린 움직임은 전혀 필요치 않소?’
‘그 또한 그렇지 않소. 중요한 건 효율이니까.’
‘바로 그것이오. 많은 무인이 더 빠르고 강한 무공을 원하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무(武)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오. 진정한 무란, 단순히 빠르고 강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 경중과 강약, 쾌속함과 여유로움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것이 선배가 생각하는 진정한 무(武)란 말이오?’
‘동시에, 내 무공의 시작이자 끝이지.’
‘……!’
‘우리 눈에 답답할 정도로 느려 보이는 것은 거북이나 지렁이나 똑같소. 그러나 거북이가 더 크고 조금이나마 더 빠르지. 그렇다면 지렁이에게 있어 거북이는 빠른 것이오.’
‘상대적이란 거군.’
‘상대적이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소.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이란 것은 절대적이오.’
‘상대적이라는 복수(複數)의 개념을 절대적이라는 단수(單數)의 개념으로 끌어올린 것이오?’
‘틀렸소. 상대적인 것은 곧 철전의 양면과 같은 것. 결국은 그 또한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오.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소.’
‘……!!’
‘만 가지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고 하오.’
‘만류귀종.’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는 분명 존재하오.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느냐, 그곳으로 나아갈 것이냐, 혹은 알고만 있을 것이냐는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오.’
‘선배는 만류귀종에 이르기를 원하오?’
‘그렇소. 진정한 무도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고 믿기 때문이오.’
천하의 이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 이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체가 없는 세상의 진리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막원의 무리(武理)는 당형의 무리와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상통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세상을 보는 시선부터 추구하는 바까지 너무나도 판이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실력으로는 당형이 우위에 있다고 하나, 막원 역시 성천에 이름을 올린 절대고수였다.
두 달인은 비슷한 영역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당관에게는 큰 충격이자 흥미로움이었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진정한 만류귀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신이 될 수 없기에 신선의 도리를 좇지 않는 이상 귀종을 넘볼 수도,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천하의 모든 개념은 만류귀종을 품고 있다.’
하나를 나누고 또 나누는 것은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불과하니, 결국 하나에 이르기 위해 무공의 이치를 이해하려 하는 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당관은 두 사람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자 확신을 갖기까지 지나왔을 무수히 많은 길을 이해하진 못했다.
‘무엇을 좇아야 하는가.’
당관은 당형을 떠올렸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당관은 막원을 떠올렸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당관은 자신을 떠올렸다.
‘……?!’
스스로를 들여다보던 당관은 순간 지독한 부끄러움과 패배감을 느꼈다.
‘이럴 수가……!’
아무것도 없었다.
놀랍게도, 당관 그 자신에게는 당형이나 막원처럼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가 없었다.
지금껏 문중의 제자들, 혹은 자식들을 가르칠 때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한다, 등 확신 가득한 길을 제시해주었다.
한데 지금은?
당관은 무공을 넘어 자신의 인생에 있어 무엇 하나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없음에 경악했다.
사천의 주인? 사천당가의 가주? 당가의 혈통? 당가의 복수심? 독의 지독함? 암기의 위험함?
‘이런…….’
그것들은 정보(情報)였다.
당관은 자신이 그 모든 것들을 진정 이해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알아 왔고 그렇게 배웠으며 그렇게 이해한 ‘척’했을 뿐이지, 알고 있는 모든 정보의 근원을 낱낱이 파악해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지금 이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노력도 있었고 고뇌도 있었지만, 진정 노력하고 고뇌해야 할 부분은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허망함을 느꼈다.
당관은 뇌옥에 가둬 둔 아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모든 사람이 상식과 주변 시선에 매몰되어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을 때,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중심으로 다른 분야에 도전하여 승리의 깃발을 휘날렸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기어이 승리의 깃발을 휘날린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뛰어난 선조 한 사람의 능력도 아니었다.
‘역사다.’
사천당가는 죽음의 역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가문이었다.
‘한데 어찌하여 나는 그러한 자부심을 오롯이 내 것으로 이해하고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나.’
당관의 눈에 허무함이 어렸다.
지금껏 남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진정 자신의 자아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당관은 진정한 나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진정한 나의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무수히 많은 정보와 가치들에 갇혀, 나 자신의 욕망과 형태가 무엇인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만류가 무엇이고 귀종이 무엇인가.
당형은 누구이고 막원은 또 누구인가.
무도(武道)란 어디에 있고 신선의 도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치이이익.
당관의 팔과 다리가 연기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만들어 준 명칭, 당씨 문중의 주인이라는 ‘정보’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던 당관은 발견한 진실 또한 감당할 수 없었다.
츠츠츠츠.
팔다리가 사라지고, 복부와 가슴도 사라져 갔다.
턱과 볼, 이마와 코가 사라지며 본래의 그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점(點) 하나만이 남았다.
그렇게, 당관의 혼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버렸다.
죽음이었다.
허물어지는 깨달음의 벽 너머의 진실을 감당하지 못한 당관의 영혼은 진짜처럼 살아온 가짜의 역사 아래 자아 붕괴의 길을 선택했다.
놀랍게도, 그는 진실로 죽어 가고 있었다. 깨달음을 감당키 힘들었던 그의 정신은 육신까지 죽음의 문턱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곧 생사의 간극 속에 있는 법. 당관은 오십여 년에 가까운 역사를 덮어 버린 텅 빈 그림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당관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던 순간.
한 줄기 노랫소리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가주는 좋은 사람이오.’
아스라하게 들려오는 편안한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도, 자식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한때 엇나갔을지언정 제대로 잡아 준다면 충분히 좋아지지 않겠소?’
‘희망적인 말이로군.’
누구지? 내가 지금 누구와 대화하는 거지?
‘아!’
익숙하고도 익숙한 목소리.
먼저 보낸 처도, 사귀었던 벗들도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은인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꿈꾸고 있지 않소이까?’
훅!
순간 흩어졌던 연기가 다시 뭉쳐지며 당관의 두 눈을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