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스트레스 제로의 게임회사
“같이 게임 만들자!”
“싫어.”
수업이 끝난 후, 빈 교실에서 상혁은 민준에게 함께 게임을 만들자며 설득을 시도했고 상혁의 제안을 민규는 단칼에 거절했다.
애당초 회귀하게 된 이유가 전생에서 게임 만든다고 삽질만 계속하다 과로사한 게 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준은 다시 그 지옥 길을 향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건 저 녀석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날 밤, 구로에서 자신과 똑같이 과로사 했던 상혁은 이상하게 자신과는 다르게 회귀 이후에 더 게임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 너도 그날 밤 나랑 같이 과로사 했잖아. 근데 그 개같은 바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냐? 넌 치도 안 떨려?”
“그야 그대로 똑같이 산다고 하면 당연히 다시 가고 싶지는 않지.”
“그럼?”
“이번엔 회귀 전 지식도 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혁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난 그럼 이만 아디오스.”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려 교실을 나서려는 민준의 다리를 상혁이 붙잡았다.
“으어어!! 같이 게임 만들자고! 난 너랑 같이 가 아니면 싫다고오오!”
“으아아! 놔라 이놈!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아이고 마님 어딜 가시려고 하십니까! 저 버리고 가면 십리도 못 가서 악성 무좀 걸리십니다!”
결국 자신을 놔주지 않는 상혁 때문에 민준은 다시 자리에 앉아야했다.
그러자 상혁은 이번엔 민준에게 딜을 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년간 니 숙제 내가 다 해줄게.”
“싫어. 내가 하고 점수 올려서 서울대 갈 거다.”
“너 고딩 때 계속 내 플스 갖고 싶어 했었지? 집에 있는 플스 너 줄게!”
“PS 1? 그딴 고물을 어따 쓰라고.”
“작년에 나온 거거든?!”
“회귀 전에 PS 5 나온 건 잊었냐?”
“3년간 내가 니 빵셔틀 해줄게!”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으면 된다.”
결국 모든 딜이 먹히지 않자 상혁은 자리에 앉아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민준은 그런 상혁을 보고 있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상혁에게 말했다.
“굳이 내가 필요한 이유가 뭐야? 넌 기획자잖아. 회귀 전 지식도 있고. 적당히 아무 게임회사나 들어가서 성공하면 되는 거 아냐?”
그 말을 들은 상혁은 민준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회귀 전에 니가 진로를 잘못 선택했다는 미련이 있다고 했지? 그래서 게임 업계는 다시는 안 간다고 한 거고.”
“응.”
“나는 너랑 같이 ‘우리’ 게임을 만들지 못했다는 게 내 미련이야.”
민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 역시 그것에 대해서는 미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런 미련 때문에 그 바닥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그 바닥은 너무 개판이야.”
민준이 말하자 상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그 바닥’이 아니면 어때?”
“무슨 소리야?”
“너도 알다시피 대한민국 게임회사라는 게 거기서 거기잖아. 회사 사정에 맞춰지는 출시일. 윗 대가리들이 영향력을 두고 벌이는 정치 싸움. 사업부와 개발팀의 알력 다툼 같은 거.”
“뭐 그렇지.”
“그런 게 게임업계라서 싫은 거라면, 우리가 아예 새로 만들면 되지.”
“만들어? 뭘?”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는 소리쳤다.
“우리가! 회사를 만들면 되지!”
“회사를 만들어?”
“그래! 같이 게임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회사를 차리는 거야!”
민준은 상혁의 제안에 흥미를 느꼈다.
“조금 흥미롭군. 좀 더 풀어봐.”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 회사! 게임의 완성이 출시일을 결정하는 회사! 매출을 위해 무리하게 게임 시스템을 억지로 고치지 않는 회사!”
상혁은 민준에게 질문했다.
“혹시 슈퍼셸이라는 회사를 알아?”
“알지. 캐쥬얼 모바일 게임으로 수백억을 번 회사잖아.”
“거기는 회사 안에 작은 개발팀이 여러 개 있고 서로 자유롭게 게임을 개발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게임이 재미없거나 문제가 생겨서 프로젝트가 접히면, ‘우리는 이렇게 망했습니다’라는 프레젠테이션 행사를 해.
그리고 샴페인을 터트리면서 프로젝트의 실패를 축하하는 거지.”
“실패를 왜 축하해?”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공유한 것에 대해 감사를 하는 게 표면적 이유.”
“진실은?”
“프로젝트 실패에 대해 개발자가 부담을 가지게 하지 않으려는 회사의 방침이지.”
“아까보다 좀 더 흥미로워졌어. 계속해.”
민준이 흥미를 가지자 상혁은 신나서 더 떠들기 시작했다.
100년도 안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회사들이 흥망성쇠를 겪으며 나름의 모델을 구축한 것이 게임 업계다.
그 안에 상혁이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그게 대부분 외국 회사라는 점은 문제였지만.
“또 어떤 회사는 책상이 전부 바퀴 달린 책상으로 되어있어서, 프로젝트에 불만이 있으면 바로 코드 빼서 다른 팀으로 갈 수 있게 해 놓았다고 하더라고. 팀장이 좀 고깝게 굴면, 코드 빼서 다른 팀으로 가버리는 거야.”
“잠깐, 그래 가지고 게임이 완성이 돼?”
“그래서 거기서는 게임이 거의 안 나와. 엄청 오래 걸리더라고.”
“그런데 회사에서 뭐라고 안 하는걸 보면 회사가 돈을 많이 버는가 보네?”
“뭐, 그 회사가 가진 플랫폼이 스팀이니까. 굳이 게임 만들어서 돈 안 벌어도 돈이야 무지막지하게 벌리지.”
상혁은 그런 외국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참조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회사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장황한 설명을 들으며 민준은 중간에 질문을 하기도 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며 상혁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두 사람이 완성한 이상적인 게임 회사의 형태는, 말 그대로 거의 ‘놀면서 게임을 만드는’ 형태의 회사가 되어 있었다.
‘스트레스 0’가 모토인 회사라니.
민준이 생각하기에 직원으로써 그것보다 좋은 형태의 회사는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상혁아.”
“응?”
“다 좋아. 정말로 니가 말한 그런 회사에 다닐 수 있다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같이 하는 거야?”
“아니, 지금 니 계획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뭐?! 무슨 문제?!”
“다 놀면 돈은 누가 버냐?”
세상에 완전히 스트레스 없는 일이란 건 존재할 수 없다. 특히 남의 돈을 버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고.
민준은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재벌 2세쯤 돼서 강남에 50층짜리 빌딩 10개쯤 가진 놈이 취미로 게임 동아리 차리면 니 말대로 될 수도 있지만, 너나 나나 둘 다 개털이잖아. 거기까진 어떻게 도달할 건데?”
“게임 팔아서 돈 벌어야지!”
“좋아. 문제는 이거야. 지금은 1998년이지. PC는 이제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게임은 우주크래프트 오리지널이 막 나와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대야. 근데 문제는 그 우주크래프트 오리지널 하나 만드는데 수십의 전문가가 달라붙어서 몇 년을 개발해야 하는 시대라는 거지.”
“그래서?”
“너랑 나랑 두 사람밖에 없는데 우리가 우주크래프트를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냐?”
민준의 지적은 지극히 현실적이자 합리적이었지만, 상혁의 생각은 달랐다.
“그건 접근방식이 잘못됐어. 우린 우리가 누구를 이겨야 하는 가를 보면서 싸우면 안 돼.”
“그럼?”
“우리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를 보면서 싸워야지.”
상혁은 노트를 하나 꺼내서 캐릭터를 그렸다.
“이건 지뢰크래프트 캐릭터 아냐?”
“맞아. 지뢰크래프트 출시 연도가 언제였지?”
“그거까지는 몰라.”
“2009년에 베타였어. 그해에 고티 받은 게임들은 용의 시대 오리진이나 언리미티드2 같은 게임들이었고. 지뢰크래프트가 언리미티드2보다 그래픽이 좋아?”
“안 좋지···. 아!”
민준은 상혁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근데 지금은 1998년이잖아. 지금 컴퓨터에서는 지뢰크래프트도 안 돌아간다고?”
“딱히 지뢰크래프트를 만들려는건 아냐. 같은 느낌으로 우주크래프트보다 그래픽은 떨어지지만 확실하게 자신만의 재미가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거지.”
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상혁의 머릿속에 1998년을 기준으로 확실하게 성공할 만한 게임의, 그것도 기획자랑 코더 합쳐서 2명이 만들 수 있는 게임의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어쩌면 상혁의 계획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와 동시에 민준은 회귀 전 고등학생 시절에 생각 없이 상혁의 말에 휩쓸렸다가 25년을 고생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왠진 모르지만 지금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상혁의 페이스에 자신이 말려들어가는 느낌.
그러나 단칼에 거절하기에는 상혁이 제시한 계획은 너무나도 달콤한 느낌을 주고 있었고, 결국 민준은 조건을 걸기로 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떤 조건이든 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너랑 나, 두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게임 기획을 가져와 봐. 판단은 그걸 보고 할게.”
“기획을?”
“정말로 그 아이디어가 먹히는 아이디어라면 굳이 완성된 게임이 아니어도 기획서만으로 재미있어야겠지. 15년차 게임업계 프로그래머이기 이전에 게이머로서 니 기획서를 보고 판단하고 싶다.”
상혁이 쓴 기획서야 수도 없이 보았던 민준이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협업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적인 시스템 기획이었을 뿐이었다.
아직 민준은 상혁이 아이디어 단계부터 만들어낸 기획을 본적이 없었기에 이번에 상혁에게 그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민준의 생각에 그것은 전생의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게임 그래픽의 도움 없이, 단지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2사람이 제작해서 시대를 압도할 수 있는 게임.
그것도 컴퓨터 사양이 낮은데다 인터넷도 보급되기 전인 1998년에.
“그건···,”
“어차피 기획은 해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니 말대로 이상적인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대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애당초 게임이 재미없으면 우리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 될 테니까. 우선 기획서부터 보자고.”
상혁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민준은 추가적인 조건까지 걸었다.
“1998년 기준으로 일반적인 컴퓨터 사양에서 돌아갈 것.
지금 게이머들이 평균적으로 즐기는 게임보다 월등하게 재미있을 것.
그리고 너랑 나, 두 사람이 3달 안에 개발 완료 가능한 가벼운 게임일 것.
이 3가지 조건을 만족 시키는 기획서를 가져오면 합류를 결정하겠어.”
우선 그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상혁의 계획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민준은 우선 상혁이 확실하게 그 시작을 위한 기획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전생에 니 계획대로 했다가 과로사까지 했으니까 두 번째로 널 믿어주길 바란다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민준은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 고생했던 전생의 전철을 두 번 다시 밟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일부러 어려운 조건을 걸어서라도 포기시킬 수 있다면 그게 상혁에게도 좋은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민준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상혁이 이미 ‘그 게임’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상혁은 고개를 번쩍 들어 민준의 손을 잡았다. 그런 상혁의 눈은 아까 게임 회사에 대해 설명할 때보다 더 반짝이고 있었다.
“진.짜.로.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획서만 가져오면 너도 합류하는 거지?”
“어?!”
“약속한 거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가방을 챙기더니 뒤로 돌아 교실 밖으로 향했다.
“어디 가?”
민준이 묻자 상혁이 돌아보았다.
회귀 전 알고 지냈던 25년과 회귀 후 만난 하루를 합쳐서, 지금까지 민준이 보았던 표정 중에 가장 밝은 표정으로 상혁은 힘차게 답했다.
“기획서 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