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디스켓의 여백이 부족해
“장난해? 우리 교수님 코드도 이거 보단 비효율적일걸?”
“대충 내가 알 수 있게 비유해볼래?”
“과장 조금 더하면 존카맥이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그걸 판단하는 내 수준이 낮아서 그렇게 보인 거일 수도 있고. 확실한 건 소스코드의 나머지를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프로그래머인 경찬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태훈은, 조금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경찬에게 말했다.
“소스코드의 나머지? 거기 있는 게 전부가 아니야?”
“내가 황당한 게 그거야.”
경찬은 컴파일러의 화면을 태훈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읽어봐.”
“난 봐도 몰라.”
“한글은 읽을 줄 알잖아? 주석 부분을 보라고.”
“어디보자···. 캐릭터 선택화면에서 쉬프트 셀렉트 B를 누르면 나오는 히든 보스를 잡으면 나머지 소스코드가 업로드 되어있는 주소가 나온다고? 이게 무슨 말이야?”
“코더가 남긴 이스터 에그 같은 거지. 앞부분이 더 가관이다? ‘나는 이 코드의 전부를 공개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디스켓의 여백이 적어 이곳에 전부 올리지는 않는다.’”
“뭔 페르마의 대정리도 아니고···.”
“낚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정도 코드를 짠 사람이 그런 장난을 칠 것 같지는 않고 일단 나는 이 나머지 코드를 얻을 수 있다면 돈이라도 내고 싶다. 내 한 학기 등록금보다 수십 배는 가치 있는 코드들이야.”
“좋아, 그럼 잠깐 비켜봐.”
PC게임 제작 동아리라고 해도 당시 100만원이 넘는 PC를 몇 대씩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동아리 방에는 한 대의 PC만 있었다.
태훈은 이번엔 아까 카페에서 하지 못했던 익스트림 발리볼을 플레이하기 위해 게임을 구동했다.
그리고 나오는 메시지를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브 디스켓을 넣으라는데?”
“그건 피카추 배구랑은 좀 다르네. 이건 세이브가 있는 게임인가?”
경찬이 ‘없음’을 클릭하자 게임이 구동되며 1인 모드와 대전 모드, 튜토리얼을 선택하는 메뉴가 떴다.
경찬은 우선 1인 모드를 선택하고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AI도 구현해놨네? 진짜로 고딩이 만든 거 맞아?”
경찬이 묻자 태훈은 플레이를 계속하며 경찬의 질문에 답했다.
“내가 직접 봤다니까. 흠, 생각보다 재밌는데?”
“대전으로 해서 같이 하자.”
경찬은 태훈의 옆에 앉아 익스트림 발리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알바 교대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계속 카페에 앉아 익스트림 발리볼을 플레이하고 있는 희진처럼, 두 사람은 곧 익스트림 발리볼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문화대학교 게시판에는 하나의 대자보가 붙게 되었다.
“게임을 클리어해주시면 10만원 드립니다.”
***
상혁과 민준은 게임을 업로드 한 이후로는 게임 개발에서 잠시 손을 뗀 상태였다.
우선 중간고사가 코앞이라 그 문제를 해결해야했기도 하고, 원화가가 없는 상태에서 차기작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임의 완성 이후로 PC통신과 인터넷에 게임을 업로드 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두사람이었지만, 체감으로는 꽤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상혁아! 빵 사줄게! 나 캐릭터 해금 하는 법 좀!”
“민준아! 신 캐릭 추가 안 하냐?! 나 새 캐릭터 디자인 해 왔는데?”
근처 컴퓨터 샵은 갑자기 부모님의 손을 잡고 컴퓨터를 사러 오는 아이들로 인해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세진 컴퓨터 랜드 지점장은 두 배로 늘어난 매출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리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아예 디스켓을 박스채로 내놓고 아이들에게 익스트림 발리볼의 세이브용 디스켓을 팔고 있었다.
그것은 개발자로서는 참으로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학교 친구들이 모두 자신이 만든 게임에 미쳐 산다는 건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진짜로, 시대를 잘 찔렀네.”
“내 생각에도 그래.”
같은 게임을 2020년에 내놓았다면 빛도 못 보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타겟의 니즈에 맞춰서 핵심을 찌른 익스트림 발리볼은 아이들의 마음을 불태우고 있었고, 덕분에 상혁과 민준은 뿌듯한 마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돈만 벌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차기작으로 하자고.”
민준의 아쉬운 소리에 답한 상혁은 성적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엄마 회초리로부터 살아남으면 말이야···.”
그때만 해도, 상혁과 민준은 자신들이 만든 게임의 성공이 단순하게 국지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베타테스트를 맡겼던 반 친구들이 빠르게 전교에 확산시킨 부분도 있고, 통신료 때문에 PC통신 접속자가 적은 연도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빠르게 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홍보용으로 이스터 에그를 심어놓은 민준도, 두 사람이 만든 게임이 밖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반 친구들이 좋아하는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그러나 상황은 두 사람이 모르는 곳에서, 두 사람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
“여기 배달이요.”
희진은 카페에 들어오는 커다란 박스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건 저 자리에 설치해주세요.”
순전히 경찬이 소스코드를 얻기 위해서 상금을 걸고 시작했던 대회로 인해서, 상혁과 민준이 만든 게임은 용돈 벌이 삼아 참여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미친 듯이 퍼져나갔고, 컴퓨터가 없는 대학생들이 인터넷 카페로 몰려들면서 카페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PC 이용자를 위해서 두 대 정도의 컴퓨터만 두고 이용료 대신 음료수 값을 받는 카페였지만, 사장은 과감하게 8대를 추가로 구매했고 이제는 아예 시간별로 이용금액을 받고 있었다.
가격은 한 시간에 2천원.
나름 비싼 금액이었지만 음료를 사면 절반 할인이었기에 매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꽉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님들은 모두 컴퓨터마다 두 명씩 모여 앉아 ‘익스트림 발리볼’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흐흐 희진아. 니 말대로 하니까 매출이 장난 아니다 이거?”
“그럼 알바비 좀 올려주세요.”
“뭐하게?”
“저도 컴퓨터 사려고요.”
“너도 저 미친 짓에 동참하려고?”
나이든 사장이 보기에 지금 겨우 컴퓨터 게임에 목숨을 걸고 있는 대학생들은 미친놈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게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난 모르겠다. 일단 지금 저게 돈이 된다는 것 밖에는.”
익스트림 발리볼은 심지어 극 저사양에도 돌아가게 설계된 게임인데다 한자리에서 두 명이 한 화면으로 대전할 수도, 혹은 랜선으로 연결하여 컴퓨터 두 대에서 플레이할 수도 있었다. 통신이 연결되어있는 환경에서는 네트워크 대전도 지원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에 대부분은 친구와 둘이서 플레이 하는걸 선호했다.
그 말은 굳이 인터넷을 추가로 연결하지 않아도 손님몰이가 충분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미래에는 아예 카페 없이 컴퓨터만 왕창 놓고 게임 팔이 하는 집도 생기겠네. 넷카페가 아니라 PC방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어.”
자신도 모르게 미래의 PC방 사업을 예지한 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래 봐야 저것도 한때지.”
그렇게 점장은 미래의 주요 사업거리를 선점할 기회를 놓쳤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카페 사장의 매출을 두 배 이상 올려준 장본인인 상혁은 민준을 앞에 두고 빈 교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민준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저것도 한때야.”
상혁이 말하는 ‘저것’은 익스트림 발리볼이었다.
2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15년차 게임업계 경력자인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게임.
기존의 타임라인에서 유행한 게임인 피카츄 배구를 미래의 게임 시스템을 넣어서 어레인지한 작품이었지만, 상혁은 익스트림 발리볼의 한계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어차피 우주크래프트 확장팩 나오면 우리 게임은 발려.”
준수한 게임 시스템을 가진 익스트림 발리볼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디스켓 한 장 용량의 윈도우 게임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결국 압도적인 퀄리티 앞에서는 퀄리티로 대응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현재 개발 멤버.
상혁이 ‘play to win’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임 개발 팀은 멤버가 코더인 민준과 기획자인 상혁이 전부인 2인 체제였고, 사운드는커녕 그래픽 담당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익스트림 발리볼 때처럼 반 친구들한테 시켜보면 어때?”
민준이 대안을 제시해보았지만,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런 게임은 딱 그 정도로 정신나간 산만함이 어울리니까 통한거지, 그리고 난 2연속 캐쥬얼 게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회귀 이후 상혁이 게임 개발에 있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그 게임의 시장성이나 게임성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은 게임’.
워밍업 삼아 가장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게임을 최초로 만든 상혁은 이제 본격적인 규모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건 민준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익스트림 발리볼은 너무 가벼워서 코드 작업할게 적더라. 다음번엔 좀 무거운 걸로 만들고 싶다.”
“그럼 무거운 만큼 그래픽도 힘을 줬으면 하는데, 원화가가 없으니 쉽지가 않네.”
“미술부 애들 중에 한명 꼬시는 건?”
“컴퓨터 그래픽이랑 손 그림이랑 달라서 처음부터 배워야 할 걸?”
“1998년에 지금 현업으로 뛰고 있는 사람 빼고 아예 컴퓨터 그래픽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그것도 우리 또래엔 아예 없을 걸?”
민준은 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하자, 상혁은 책상에 엎드려 팔뚝에 이마를 비비며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하늘에서 일러스트레이터 하나 딱 안 떨어지나아아아?”
“일러스트레이터도 사람인데 하늘에서 떨어지면 그건 이미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그냥 뭉개진 고깃덩어리지 않을까?”
“넌 참 로망이 없구나.”
“프로그래머니까. 난 로직으로 돌아가지.”
“야, 말이 안 되는 걸로 치면 애당초 우리가 25년을 회귀한 게 더 말이 안 되잖아. 혹시 아냐? 우리를 이 시대로 돌려보낸 운명의 신이 지금 이 순간 교실문을 딱 열고 우리의 일러스트레이터를 보내주실지?”
상혁의 주장은 황당함을 넘어서 억지 수준까지 가 있었기에 민준은 그런 상혁의 말을 바로 반박하려 했다.
“야, 네 말대로 지금 당장 교실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들어오면 내 손에 장을···.”
-드르륵-
그때, 정말로 마법처럼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상혁과 민준은 동시에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교실문에 서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 오매불망 기대하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상혁과 민준이 다니는 학교의 여선생인 현주였다.
“에이~. 아니네~.”
두 사람이 엄청나게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이 들어온 방향을 돌아보다가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짓자, 현주는 뭔가 자신이 죄인이 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에게 굉장히 생소한 감각이었는데, 2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뛰어난 외모로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그녀로서는 둘의 반응이 이해 안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에 대해 두 사람을 채근하기 전에, 가까스로 자신이 두 사람을 찾은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상혁, 최민준?”
“네? 선생님? 저희한테 볼일이라도?”
딱히 이번 중간고사 때 낙제한 과목도 없었고, 최근에는 할 일이 없어 학교도 충실하게 안 빠지게 다녔던 상혁은 현주가 왜 자신들을 찾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현주가 손에 든 디스켓 뭉텅이를 들어 올리자 상혁은 선생이 왜 자신들을 찾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게임, 너희들이 만든 거라던데?”
아마도 생각보다, 상혁과 민준의 친구들은 이 익스트림 발리볼이라는 게임에 심하게 미쳐있었는가 보다.
“선생님. 저희는 그 게임을 만들기는 했지만 저희가 그 게임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됐어. 그런 이야기 들으려고 온 게 아니니까.
이게 너희가 만든 게임이 맞아?”
그녀의 추궁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기엔 학교에서 너무 거하게 활동한 흔적이 많아서였다.
그러자 현주는 디스켓을 품에 다시 넣고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잠깐 나 좀 따라올래?”
물론 학생인 두 사람에게 거부권한 따위는 없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그녀를 따라 학생 지도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꿈에서도 예측하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