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5화 (46/485)

045. 특별한 삶

어느 정도 피로를 푼 일행을 코즈에는 호텔 대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비록 조금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혁이 말한 ‘알파 버전’을 꼭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물론 혼자 살면서 덕질하느라 방 안이 매우 어수선했기기에 그녀는 상혁 일행을 문 앞에 두고 급하게 방청소를 실시했다.

잠시 후 그녀는 사방에 어질러져 있는 동인지를 옷장에 다 밀어 넣고는 안 닫히는 문을 억지로 벨트로 고정시키고는 상혁과 서연을 집 안으로 불러 차를 대접했다.

“아담한 집이네요.”

“혼자 사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차를 따르던 코즈에는 생각해보니 집에 남자를 데려온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대수롭지 않게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뭐, 고등학생인데···. 서연 씨도 있고···.’

그렇게 생각한 코즈에는 자신이 따라준 차를 상혁이 입에 대기도 전에 바로 용건을 꺼냈다.

굳이 행사 때문에 피로한 일행을 억지로 먼 거리에 있는 자신의 자취방에 부른 이유.

그것은 바로 상혁이 말한 ‘신작’의 알파 버전을 플레이하기 위함이었다.

“여기 있어요.”

상혁이 CD를 건네주자 그녀는 마치 빼앗듯이 CD를 낚아채고는 자신의 컴퓨터에 넣었다.

그리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알파 버전의 인스톨을 수행했다.

잠시 후, 성연이 정성들여 만든 음악과 함께 게임 화면이 모니터에 출력되었다.

상혁이 엘란테 도터인 태민을 무지막지하게 착취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픽셀 아트와 함께.

“도트?”

스타일은 도트 같은 느낌이었지만 퀄리티가 마치 한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의 오프닝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그래픽 속에서, 한 소년이 자신의 앨범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출이 특이하네?’

쌓여있는 사진무더기를 한 장 한 장 앨범에 붙이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그녀는 소년이 D&D플레이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엔 귀여운 소년들이 D&D를 플레이 하고, 골판지로 만들어진 투구와 갑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거나, 생일 모자를 쓰고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진들이 한 줄의 대사 없이 음악과 그림으로만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전학을 가는구나.’

울면서 배웅하는 친구들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닫은 주인공이 가방에 앨범을 넣고는 엄마를 따라 차에 탄다.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는 듯 한 느낌의 오프닝이 지나가고, 잠시 후 새 집에 도착한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주인공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새 방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새 방은, 조금 전까지 주인공이 앨범을 정리하던, 소년 스러움이 가득한 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참고서와 책들이 가득한 방이었다.

“오, 멋있어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전달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했다.

비록 대사는 한 줄도 없었지만 그녀는 이 게임의 스토리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D&D를 플레이하며 놀던 주인공이, 전학을 오게 되면서 새 친구들을 모은다는 이야기.

짧으면서도 간결한 스토리를 가지고 시작된 게임은 거기서 바로 플레이에 들어가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렇게 플레이에 들어간 코즈에는 잠시 후 빠르게 게임에 빠져들 수 있었다.

비록 그녀가 D&D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플레이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D&D 멤버를 모아 던전 공략을 시작하는 과정을 초심자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세련되게 설계를 해 놓았다.

덕분에 코즈에는 D&D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음에도 쉽게 게임의 룰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신선하긴 한데···.’

재미는 있다.

그거 하나는 그녀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탐험 파트에서 스토리를 짜는 키워드를 수집하거나,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주사위나 피규어를 업그레이드 하는 부분이라던가, 친구들이 게임에 몰입하는 정도를 비주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든 부분 등 게임 자체는 알파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재미를 모두 파악할 수 있도록 잘 짜여 있었다.

게다가 시선을 사로잡는 오프닝 연출부터 서연이 디자인한 캐릭터들의 개성까지 개별적으로 뜯어보면 게임의 모든 요소들이 매력으로 반짝 반짝 빛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자마자 푹 빠져서 식음을 전폐하게 만들었던 ‘마리의 눈물’과는 달리, 코즈에는 일정 시간 플레이를 하는 도중에 손에서 마우스를 놓고 말았다.

그러자 그런 그녀를 보며 서연이 조심스레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어때요?”

“재미있네요.”

“그쵸···. 재미있죠···.”

분명 재미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연의 표정은 어두웠다.

마치 그녀가 원하는 대답과 다른 대답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분위기가 무거운데, 제가 잘못 말했나요?”

“아뇨. 일본 오기 전에 했던 내부테스트에서도 같은 반응이었어요. 재미있다고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코즈에가 말했다.

그녀의 상식대로라면, 게임은 재미가 전부였다.

그리고 순수하게 그 ‘재미’라는 부분을 따지면, 지금 이 게임이 마리의 눈물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단지 뭔가 부족한 2%가 느껴졌을 뿐···.

그리고 그것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상혁과 서연도 같이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언가 맘에 안 드시나봐요?”

“흠···.이걸 어떻게 말해야하나···?”

잠시 고민하던 서연이 말했다.

“저희가 만든 신작은···. 뭐랄까···해보면 정말 재밌다고 생각은 하거든요?”

“저도 그래요.”

“근데 ‘마리의 눈물’하고는 조금 재미의 느낌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어? 그래요? 저도 그렇게 느꼈는데?”

“그쵸? 마리의 눈물은 뭐랄까···. 처음 테스트 할 때 ‘우와아아아! 이거 엄청 재밌다아아아!!’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이건 뭐라고 해야하나···. ‘매우 재미있습니다.’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이에요.”

“그건 아마도 소재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솔직히 저도 D&D가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건지는 이번에 이 게임 하면서 처음 알았거든요.”

“사실 상혁 오빠도 그 문제 때문에 지금 고민을 많이 하고 계세요. 부족한건 알겠는데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다면서요. 이번 여행은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기분 전환 차 온 거기도 하고요.”

“상혁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안타까운 기분을 느낀 코즈에는 이번엔 상혁에게 물었다.

기획자인 상혁이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상혁은 자신도 모른다는 투로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뭐가 부족한지 느낌은 있는데, 구체화가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오늘 코믹가서 더 느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떤 걸 느끼셨는데요?”

“욕망이요.”

상혁의 눈에 코믹마켓은 거대한 욕망이 뭉친 덩어리 같은 느낌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자신이 단지 보고 싶고, 사고 싶다는 이유로 끝없이 긴 줄과 깔려 죽을 것 같은 인파를 감수하며 사방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그 ‘욕망’이 코믹 마켓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느낌이 신작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상혁은 지금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온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단지 우리 게임을 사고 개발자를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행복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단 말이죠. 저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표정을 짓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고민스레 말을 잇는다.

“너무 좋아서, 이 게임을 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착각까지 느끼게 하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밤새 게임을 하고 피곤한 눈으로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노트에 게임 공략에 대해 수없이 적게 만드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근데 감이 올 거같 으면서 안 오니까 그게 미칠 거 같은 거죠.”

상혁은 고개를 숙이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게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일인 게, 아예 답이 없으면 깔끔하게 포기하겠는데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 감이 안 오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상혁은 자신이 만든 게임의 문제를 찾으려고 명상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며 온갖 시도를 다 했지만, 해답은 마치 한숨만 더 불어넣으면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상혁의 가슴을 무겁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을 보며, 코즈에는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고등학생이 이루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 압도적이라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개발자는 많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개발자도 많고, 자신이 만들고 싶어 하는 개발자도 많았다.

그러나 그녀가 알기로 이런 식으로 ‘유저를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라고 말하는 개발자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마리의 눈물’이 그토록 하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지, 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느낌이 들었다.

‘저런 사람들이 만드는 게임이 재미없을 리가 없지.’

아마도 반드시 지금의 문제도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상혁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상혁 씨는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전 그렇게 믿고 있어요. 여러분은, 제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저도 가슴이 뜨거워지는걸요?”

“엥? 저희 게임이 아니라 저희를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요?”

상혁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묻자 코즈에가 당황하며 말했다.

“어? 상혁 씨는 본인의 특별함이 자각이 안 되요?”

“전 평범한 고등학생인데요?”

“평범한 고등학생이 코믹에서 3시간도 안 되서 게임 5천개를 팔아요?”

“그건 운이 좋아서···.”

“평범한 고등학생한테 싸인 받으려고 5천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요? 그 시간에 다른 서클에서 사려던 동인지가 다 동나는 걸 감수하면서?”

“그건···.”

“사람들도 아는 거예요.”

아, 이 게임 너무 좋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도 너무 멋져. 그러니까 이 사람들한테 꼭 싸인을 받고 싶어.

“사람한테 그런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특별함이, 두 사람에겐 있다고요. 보는 제가 질투날정도로요.”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럼 이제부터 그렇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은 말이죠, 좀 더 자신의 특별함을 자각할 필요가 있어요.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팬들을 위해서도요.”

“그···럴까요?”

“누구나 드라마 주인공을 꿈꾸지만, 누구나 드라마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렇게 살 수 있는 기회와 재능을 가지고 있고요.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한다구요.”

순간 그녀의 뼈있는 말을 들은 상혁의 뇌리에 어떤 감각이 스쳐지나갔다.

계속 자신을 간지럽히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신작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이.

평범한 소년이 친구들을 모아서 D&D를 플레이한다는 게임의 어떤 부분이 부족했던 것인지.

사람이 게임을 하면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것.

마리의 눈물엔 있지만 프로젝트 NERD에는 없는 것.

상혁이 고민을 거듭해도 신작에 채워 넣을 수 없었던 그것은, 바로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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