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71화 (72/485)

071. 매출과 확률

강원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만한 게임회사의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자신이 공들여 히트시켰다고 믿는 게임의 수익을 대부분 회사에서 가져가는 현실에 불만을 품기 전 까지는.

‘그 게임을 키워놓은 게 누군데.’

연간 수십억 이상의 이익을 거두면서도 죽어라 고생한 자신에게는 약간의 연봉 인상과 보너스 외에 주어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원준은 회사를 나와 자신만의 게임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뜻이 맞는 다른 팀원들과 함께, 자신을 돈방석에 앉게 해 줄 스타트업을 만든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2003년의 게임업계는 그야말로 호황 그 자체였다.

수많은 히트작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메이플 스토리를 필두로 부분 유료화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

한창 투자금이 게임시장으로 몰려 벤처 환경도 좋았던 시기였지만, 원준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스타트를 위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강연에 나간다고?”

공동창업자 형민이 뜬금없다는 듯이 이유를 묻자, 원준이 웃으며 말했다.

“뭐, 물론 저희가 게임을 만들어서 흥행하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고 하더라도, 현재 시장에서 얼마나 큰 성공을 하느냐는 마케팅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개발사들이 알파버전을 만들고 퍼블리셔를 구해서 퍼블리셔 돈으로 마케팅을 하는 거잖아.”

“그렇죠. 그런데 우린 그거보다 한발 더 나가야돼요.”

“그게 강연이랑 무슨 상관이지?”

“상관있죠.”

그렇게 말한 원준은 들고 있던 잡지를 형민의 앞에 펼쳐놓았다.

거기엔 현재 D&D게이머들 사이에 가장 핫한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인 상혁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저는 이 녀석한테 선전포고를 할 거니까요.”

원준의 설명이 이어졌다.

“생각해보세요. 신생 벤처기업의 젊은 개발자, 잘나가는 어린 천재 개발자에게 선전포고하다. 멋진 카피라이트 아니에요?”

“흠···. 같은 업계 사람을 깎아내리는 건데 괜찮을까?”

“뭐, 돈 밝히는 게임 개발자를 저질이라고 먼저 디스한 건 이 녀석이니까요. 어찌됐건 제 계획대로 잘만 되면, 우린 강연 한번으로 수천만, 아니 억대의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게?”

“일단 신랄하게 까는 거죠. 이 녀석이 만든 게임은 대중성이 없다는 식으로, 실력이 없어서 마니악한 게임만 만드는 개발자라고요. 우린 그 대척점에 있는, 그러니까 대중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 거라고 하는 거죠. 최종적으로 우리가 게임을 만들어서 너희에게 도전하겠다. 이렇게 엄포만 놓고 끝내면 됩니다. 그걸로 마케팅 효과는 충분할거고요.”

기본적으로 아무리 호황인 시장이라고 해도 방금 게임개발을 시작한 스타트업이 잡지에 실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원준은, 상혁에게 도전함으로써 강제로 이슈를 만들어 홍보효과를 얻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준이 몰랐던 사실은, 같은 기획자인 상혁이 강의의 제목을 보자마자 그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원준의 의도를 추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방금 만들어진 스타트업에서 기존 개발자를 디스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란 건 너무나 뻔한 것이니까.

그런데도 상혁이 늦게나마 강연장에 참석한 것은, 팀원들의 권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참석하지 않을 경우까지 계산해서 원준이 움직이리라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참석해도 참석하지 않아도 상대가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개입해서 상대의 계획을 망가트리는 편이 낫다고, 상혁은 생각하고 있었다.

지 꼴리는 대로 선전포고하고 멋대로 자신을 이용하는 것은, 그거대로 기분이 나빴으니까.

애당초 원준이 세운 계획은 두 가지였다.

상혁이 처음부터 참가했을 경우, 상혁과 토론 형태로 강연을 진행하며 이슈를 만들어간다.

상혁이 참가하지 않을 경우, 디스 수위를 높이고 선전포고를 한 후 강연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 두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상혁이 중간에 참가하자, 원준은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안 올 줄 알고 디스 수위를 높였는데 꽤 껄끄럽게 됐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스탠스를 바꾸는 것도 바보같이 보일 수 있기에, 원준은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상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

“오빠, 우리 계속 이 포즈 하고 있어야 돼요?”

서연이 속삭이듯 말하자, 상혁은 서연을 곁눈질하며 조용히 말했다.

“좀만 더 있어 봐. 일단 포즈로 제압하게.”

“별로 제압 안 될 거 같은데···. 그리고, 조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고······.”

“난 사천왕 같은 느낌이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후후후···.”

서연과 지수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상혁이 있는 방향으로 무선 마이크를 들고 걸어왔다.

아무래도 원준이 진행 도우미를 시켜 상혁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라고 부탁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애당초 이게 상대가 바라던 그림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상혁이 마이크를 받아들자, 원준의 힘찬 목소리가 강연장을 흔들었다.

“아, 여기 오셨네요! 세계가 주목하는 어린 천재 개발자! 이상혁씨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거 재미있어지겠는데?”

터지는 박수 소리 가운데 민준이 작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상혁은 마이크를 들어 원준에게 답했다.

“조금 전까지 신랄하게 깐 것 치고는 정반대의 소개네요.”

“조금 전엔 제가 너무 흥분해서 실수한 것 뿐입니다. 전, 나름대로 상혁씨를 존경하고 있단 말이죠.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콘솔 게임으로 글로벌 진출에 성공한 개발팀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람이 절 무능하다고 까는 건가요?”

“무능하다고 한 게 아닙니다.

대중성 있는 게임을 못 만든다고 한 거죠.”

“글쎄. 뭐랄까, 그건 그쪽 생각이겠죠.”

“단순히 제 생각이라고 하기엔 근거가 너무 많지 않나요? 충분히 경력자를 뽑을 자금이 있는데도 통제하기 쉬운 신입만 뽑는 거라던가, 매번 만드는 게임이 기존 게임이랑 궤를 달리하는 게임만 만드는 거라던가.”

“전 게임으로 유저에게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게 개발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유저가 원하는 걸 주는 것도 개발자의 일이겠죠. 예를 들면, 기존에 흥행하고 있는 게임의 컨셉을 살짝 틀어서 비슷하지만 다른 재미를 주는 게임을 만드는 것 같은 일이요.”

“뭐 개발자마다 각자 추구하는 게 있으니까 제가 절대적인 정의라고 이야기하지는 않겠어요. 게임회사가 돈을 추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그런 게임을 만드시면 됩니다. 판단은 유저들이 하겠죠.”

“역시 작년 GOTY(Game Of The Year)를 12개나 수상한 개발자라 대답에 여유가 넘치네요.”

기본적으로 GOTY는 각 게임 매체에서 기자들이 선정한다.

그리고 그해에 가장 많은 GOTY를 수상한 작품이 최다 GOTY에 선정되는데, PTW에서 만든 ‘나이츠 어셈블’은 그 게임성을 인정받아 최다 고티는 아니어도 12개의 매체에서 GOTY를 수상한 상태였다.

청중들은 두 젊은 개발자의 싸움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고 있었고 이것은 확실히 원준이 바라던 그 그림이었다.

“저는 위대한 게임은 그만큼 많은 유저들이 기꺼이 주머니를 벌리게 만드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백만 원이던 이백만 원이던 기꺼이 돈을 쓰게 만드는 그런 게임이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게임이란, 게임을 구매하러 게임샵에서 줄을 서는 동안 기대감으로 게이머를 두근거리게 만들고, 집에 가는 발걸음을 빠르게 만들다가, 게임을 하는 동안 게이머와 함께 추억이 되고, 10년이 지나도 그 추억을 되돌리면서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게임이니까요. 10년 후에 돌아보니 ‘그딴 게임에 2000만 원이나 쓰다니 내가 돌았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임이 아니라요.”

“게임의 가치는 유저수와 매출이 증명하는 겁니다. 추억이나 좋은 기억 같은 추상적인 지표가 아니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가치로요.”

“그건 그쪽 생각이고, 개발자로서 가치를 두는 부분은 개발자마다 다른 거죠. 그쪽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게임을 계속 만드시면 됩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계속 만들면 되고요.”

원준은 집요하게 상혁을 ‘옳다’와 ‘그르다’의 영역으로 끌고 가려 했지만, 상혁은 딱 잘라서 ‘서로 생각이 다르다’라는 식으로 정리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상혁과 대결 구도를 잡고 싶어서 하는 원준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었기에 원준은 상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마이크를 들어 상혁의 말을 부정했다.

“상혁 씨는 단순히 서로 ‘다르다’로 정리하고 싶어서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아닙니다. 전 유저가 쓰는 돈이 게임에 대한 애정의 척도라고 생각하니까요. 매출이야말로 그 게임을 평가할 수 있는 절대 유일의 진리입니다. 게임이 재미없는데 누가 돈을 쓰겠어요?”

원준의 말을 들은 상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들어 원준을 향해 말했다.

“어떤 게임에 0.001%확률로 얻을 수 있는 전설 아이템이 있다고 합시다. 한번 뽑는데 3천 원 정도 들고요. 그 아이템은 다른 12아이템과 세트라서, 12개를 다 모으면 엄청나게 강해질 수 있다고 하자고요. 수십억을 쓴 어떤 유저가 그 아이템 중 11개를 모아서 1개만 더 모으면 되는 상황이라 칩시다. 그리고 그 유저가 다시 돈을 무지막지하게 써서 아이템을 뽑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나왔어요. 실망한 유저에게 갑자기 팝업창이 뜨며 말합니다.”

‘100만원을 당장 내시면 12개 중에 다른 아이템이 나올 수 있는 뽑기를 한번 더 하게 해 드릴게요.’

“자, 여기서 아예 포기하고 다시 0.001%확률을 노리시겠어요? 아니면 100만원을 내고 1/12확율을 노리시겠어요?”

“당연히 1/12확률이죠. 그건 중복이 나왔을 때 돈을 덜 써도 되도록 게임사에서 배려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배려할 거면 아예 중복이 안 뜨게 해야죠. 그건 그냥 개 시발 게임회사 양심이 애미 출타한 거예요. 또 다른 몇 천만 원이 쓰기 싫으면,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거잖아요.”

“아니 그런 극단적인 사례를 들고 오는 건 좀···.”

“돈 벌었으니까 정당한 거 아니에요?”

원준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말대로 매출이 절대적인 지표라면, 상혁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저도 딱히 랜덤박스가 전부 나쁘다던가, 아이템 판매가 죄악이라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 그것도 똥손을 타고 났다던가 아니면 게임할 시간이 부족한 유저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조이기도 아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매출을 절대적 가치로 삼으면 그 선을 넘는 게 너무 쉬워진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그 선을 넘는 걸 자랑스럽게 유능함의 척도인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는 게 싫은 거고요. 요약하자면···.”

상혁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적당히 해 쳐 드시라는 거죠.”

원준은 당황했다.

분명 매출이 좋은 게임의 척도가 맞을 텐데, 상혁이 존재하지도 않는 극단적인 과금 모델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악으로 몰고 가자, 왠지 자신이 틀린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2003년 당시엔 부분 유료화 게임 시장이 열린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기에 상혁이 말한 형태의 극단적인 과금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원준이 몰랐던 것은, 상혁이 과금 모델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2020년대에 게임 제작자로 일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부분 유료화 BM에 대해서라면, 상혁은 방금 말한 과금 모델 외에도 유저의 돈을 뜯는 수백 가지 방법에 대해 줄줄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나 다름없었다.

‘젠장, 상대 페이스에 말렸다.’

잠시 고민하던 원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혁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속으로 분노했다.

애당초 자신이 상혁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대중성을 무시하는 개발자’로서의 상혁이지 ‘매출보다 유저 만족도를 중시하는 개발자’로서의 상혁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혁이 중간에 매출 쪽으로 포커스를 옮김으로써 자신을 마치 돈만 밝히는 개발자의 이미지를 씌워버린 것이다.

이대로면 원래 목적인 상혁에게의 선전포고가 망가질 것이라 생각한 원준은 숨을 고르며 마이크를 잡았다.

“잠시 논점이 어긋났는데,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상혁 씨가, 아니 PTW가 너무 매니악한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저는 대중적인 게임을 만드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입증하고 싶습니다. 제가 속한 저희 회사의 역량이, 상혁씨가 속한 PTW보다 더 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요.”

‘좋아 이제 선전 포고만 하면···.’

원준은 다시 이야기가 계획대로 굴러간다고 느꼈다.

상혁이 마이크를 들어 원준을 보며 입을 열기 전 까지는.

“좋습니다. 그럼 한판 붙죠.”

“예?!”

“그쪽이 말했잖아요. 저희 팀은 대중적인 게임을 못 만드니까 매니악한 게임만 만든다고요. 아니라는 걸 증명할테니, 한판 붙자고요.”

“지금 그 말은···.”

“그쪽도 게임을 개발하려고 스타트업을 차린 거 아닙니까? 저희도 신작을 개발하려고 준비 중이니 서로 만든 게임으로 누가 더 잘 만들었나 한판 붙어봅시다.”

원준은 자신이 하려는 말을 가로챈 상혁을 무섭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원준의 눈빛은 싹 무시한 채, 덤덤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었다.

“그게 애당초 그쪽이 원하는 거였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눈은, 지금까지 팀원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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