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80화 (81/485)

080. 회귀자 vs 천재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상혁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민준에게 말했다.

“할 말 있어?”

“존나 많은데.”

“라이센스 딸 거라고는 미리 이야기 했었잖아.”

“그 이야기가 아냐.”

“그럼?”

“쟤네는 왜 같이 가는 거야?”

민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안대를 끼고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지수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서연이 있었다.

“설마 ‘단둘이 아니라니 실망이야! 상혁이는 나만의 것인걸!’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주먹은 내려놓고 말하자 민준아.”

농담을 하려는 자신을 보며 주먹을 들어 올리던 민준이 조용히 주먹을 내려놓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쟤네도 이번 협상에서 받아낼 카드 중의 하나니까.”

“받아낼 카드? 무슨 말이야?”

“흠···. 이번에 인력을 확충하고, 회사 규모를 늘리면서 내가 느낀 게 있거든. 이제 슬슬 다음 스텝으로 가야할 때가 아닌가 하고.”

“다음 스텝이라···.”

“옛날에 말했지만 내가 생각한 회사는 창의력을 담당하는 두뇌 역할의 개발팀과, 퀄리티를 올리면서 게임의 스케일을 키우는 전문가 팀으로 이루어져 있는 회사야. 그렇게 되려면 지금 있는 팀원들은 다들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가 있지.”

“그래서?”

“너도 알다시피 스토리랑 설정에서 이 업계 원탑은 나스 키오코잖아. 협업 계약 맺으면서 이쪽 파견 직원으로 지수를 밀어 넣을 생각이야.”

“그럼 서연이는?”

“타케우지한테 캐릭터 디자인 좀 배우고 오라고.”

“흠···. 나쁘지 않네. 난 뭐 없냐?”

민준의 말에 상혁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민준을 바라보았다.

“넌 나중에 존 스킷이나 존 카맥이랑 일하게 되면 그때 밀어 넣어줄게.”

상혁이 말한 두 사람 모두 업계에서는 전설의 프로그래머였기에, 민준은 미소를 지었다.

상혁이 자신을 그정도 급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러자 그런 민준을 보던 상혁은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농담을 던지다 기어이 머리를 한 대 쥐어 박히고 말았다.

“음. 말하고 보니 내가 아는 전설의 프로그래머 둘 다 성이 존이네. 민준아, 너 혹시 존민준으로 성 바꿀 생각 없냐?”

***

2월.

한국은 한참 추울 때였지만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해서인지 일본은 비교적 따뜻한 기온을 보이고 있었다.

시기는 마침 페○트의 체험판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월.

상대측과 컨텍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상혁의 우려와는 다르게, 상혁의 부탁을 받은 나츠의 소개로 키오코와 타케우지는 상혁과의 미팅을 흔쾌히 수락했고, 그 덕에 상혁은 회귀 전 그토록 존경하던 개발자 두 사람과 만남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싸인을 받으려고 준비한 각종 소설책과 게임 시디를 가진 채로.

그리고 만남 장소에 도착한 상혁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리의 눈물’과 ‘나이츠 어셈블’의 CD를 가지고 자신을 기다리는 두 사람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상혁의 입장에서 운이 좋았던 점은, 바로 이전에 발매했던 게임이 D&D의 ORPG 플레이를 온전히 구현한 ‘나이츠 어셈블’이라는 것이었다.

나슈 키오코와 타케우지 타카시가 원래부터 D&D의 열성 팬이었기에 ‘나이츠 어셈블’의 유저가 되었고, 그로 인해 미팅이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나츠의 설명을 들으며, 상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D&D소재로 게임을 내길 잘했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행의 이야기는 서로의 게임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특히 타케우지가 상혁의 이야기에 많이 놀라는 모습을 보였는데, 한국에서 온 상혁이 두 사람의 동인 시절 이야기까지 상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유의 상대를 띄워 주는듯한 화법을 구사하며 두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상혁의 모습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민준이 기가 찰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상대를 칭찬하면서도 메인 타겟인 ‘페○트’에 대한 칭찬은 쏙 빼놓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상혁은 전작인 ‘월○’나 소설로 나온 ‘○의 경계’등을 칭찬하며 두 사람의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팬이라도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계산적이네.’

상혁이 본격적인 제안을 꺼낸 것은 상혁의 말을 듣던 민준이 민준이 이렇게 생각할 때쯤이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을 뵙자고 한 것은 두 사람의 팬으로써 꼭 두사람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일입니까?”

현재는 체험판을 발매한지 얼마 되지 않은 페○트의 본편 개발에 집중하고 싶어하던 타케우지가 말했다.

그러자 상혁은 타케우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서를 붙여 상대방을 안심시켰다.

“같이 게임하나를 새로 만들자던가, 그런 종류의 제안이 아닙니다.”

“그럼 뭔가요?”

“본격적인 제안을 하기 전에, 하나 보여드릴게 있습니다.”

상혁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시연용으로 편집했던 배틀로얄 게임의 편집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영상이 시작되자, 타케우지와 나슈는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이 틀어준 영상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유즈맵이네요?”

“예. 일단 프로토타입은 그렇게 제작을 했습니다.”

“엄청 놀랍게도 저희가 만들고 있는 게임과 컨셉이 비슷하네요. 장르는 다르지만.”

타케우지가 말하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개된 체험판을 했을 때 저도 놀랐으니까요.”

“거짓말을 하려면 입에 침은 바르고 해야···. 억!”

민준이 상혁의 뻔뻔함을 지적했지만 다행히도 한국어로 말했기에 반대쪽의 두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고, 민준의 발을 밟아 입을 틀어막은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진행해나갔다.

“저희가 제안하고 싶은 건, 지금 그쪽에서 제작 중이신 페○트의 ip라이센스를 저희한테 제공해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아직 체험판밖에 나오지 않은 게임의 IP를 사시겠다고요?”

“예.”

순간, 타케우지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떠올랐다.

자신이 친구와 함께 만들고 있는 이 IP의 가치는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굳이 지금 타이밍에 거래를 제안하는 것은 가격을 후려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죄송하지만 싸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 만드는 쪽에서 그 값어치를 알고 계실 테니까요.”

“그렇다면 제 대답도 아시겠군요. 제안은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저희는 이 잠재력 있는 IP를 계속 키울 생각이니까요. 페○트는 지금 당장 헐값에 남한테 팔아넘길 수 있는 설정이 아닙니다.”

그러자 제안을 거절당했음에도 미소를 계속 짓고 있던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제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 뭔가 잘못 전달된 것 같네요. 저희는 그쪽 IP를 통째로 사겠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

“저희가 원하는 건, 단지 저희 게임에 페○트의 등장 캐릭터나 고유 설정을 쓰게 해달라는 제안입니다.  물론 독점도 아니고요.”

“흠.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결과물은 저희 쪽과 협의가 되어야하는데요, 그 말은 저희와의 합의 없이는 그쪽에서 임의로 캐릭터 설정을 변경할 수 없다는 이야기고요.”

“그건 저희 쪽 작업물을 나슈 씨와 타케우지 씨가 검수해준다는 말이죠? 오히려 그건 저희 쪽에서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캐릭터를 사용하고 싶다는 말이군요.

지금 보여주신 이 게임에 넣으실 생각인가요?”

“그렇습니다.”

타케우지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타 서클과의 협업으로 게임을 출시한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인 2002년 12월에 출시한 ‘월○’의 동인 대전 격투게임 ‘멜○ 블러드’같은 케이스도 있었으니까.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괜찮겠지. 검수도 받는다고 하고.’

다른 것보다, 원작의 장르인 비쥬얼노블보다 상혁이 보여준 ‘배틀로얄’이란 장르가 원작 설정에 더 맞는 것 같은 모습이 타케우지의 마음을 끌었다.

마치 자신들의 게임을 원작 설정에 맞춰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별도의 게임처럼 보일정도로.

거기까지 생각한 타케우지는 한결 부드러워진 미소를 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그런 종류의 협업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ip 라이센스를 제공하는 댓가로, 그쪽에서는 판매 수익의 몇%를 지급하실 생각인가요?”

“0%입니다.”

“예?”

“%배분이 아니라 선지급금으로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타케우지는 당황했다.

물론 게임이 잘 팔리면 % 지급도 괜찮은 선택이다.

그러나 선지급 계약은 정말로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의 확신이 없으면 함부로 진행하기 어려운 형태의 계약이었다.

아무리 체험판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하더라도,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까지는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타케우지는 조심스레 입을 열어 상혁에게 질문 했다.

“그러면 그 대가는 얼마정도나 생각하고 계신가요?”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일시불로 2억엔입니다.”

2억엔.

당시 환율로 한국돈 22억원 정도의 금액.

당시 동인 게임 판에서 초 대박작의 판매량이 10만장 정도였으니, 2억 엔이면 거의 3만장을 넘게 팔아야 달성할 수 있는 매출 금액이었다.

순이익이 아니라 ‘매출’.

겨우 체험판이 발매된 직후의, 단순히 독점도 아닌 IP의 사용권을 위해 2억엔을 지불하겠다는 상혁의 말에 패닉에 빠진 타케우지에게, 상혁은 추가로 가져온 제안을 더 던져넣었다.

“아, 그리고 원하신다면 페○트의 발매 시기에 맞춰서 애니메이션도 제작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제작비는 전액 저희 쪽에서 지불하고요.”

“돈이 썩어나세요?”

예절에 어긋나는 표현이었지만 너무 당황한 타케우지가 자신도 모르게 묻자, 상혁이 웃으며 답했다.

“아, 얼마 전에 ‘나이츠 어셈블’의 pc판을 발매했는데 그게 매출이 좀 괜찮아서요.

지금 말씀드린 지출정도는 충분히 감당 가능할겁니다.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출시시기에 맞춰서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다면, 게임 오프닝도 간지 나는 애니메이션 삽입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내친김에 성우 더빙도 좀 하시고요.”

“아무리 팬이시라지 만 의심이 들 정도로 좋은 조건인데요. 진짜 목적이 뭡니까?”

이제 동인팀에 들어오는 제안 치고는 조건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 반대로 의심이 들어오는 상황.

상혁은 그런 타케우지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혁의 설명이 진행될 수 록, 타케우지와 나슈는 의심을 지우고 상혁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쪽에서 저희 쪽에 얼마의 투자를 하던, 그게 ip의 가치가 올라가는 일이 되어서 결과적으로 그쪽이 이득을 본다는 이야기군요?”

“맞습니다. 저희 쪽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페○트의 IP가 자리를 잡는게 유리하죠. 그래서 가능한 푸쉬를 다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IP의 가치는 저희 게임에 돌아오겠죠. 같은 캐릭터를 쓰니까요.”

“그 정도 능력이면 오리지널 IP를 써도 되지 않나요?”

“타케우지 씨에게 나슈 씨가 있듯이, 저에게는 여기 있는 민준이가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세계 최고 실력의 프로그래머죠. 그리고 저는 시스템 기획에 특화된 기획자고요. 저희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지만, 좋은 IP를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제작자 중에 그 능력이 가장 뛰어난 건.”

상혁이 양손을 벌리며 눈앞의 두 사람을 가리켰다.

“바로 여기 있는 두 분이시고요.”

민준이 보니 상혁을 보는 두 사람의 눈은 이미 감동에 젖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두 사람에게 쐐끼를 박기 위해 준비해둔 결정타를 날렸다.

“저는 저희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열쇠가 두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체험판 단계이니 싼값에 ip 라이센스를 후려치겠다거나, 혹은 저희가 투자한 금액이 있으니 지분을 내놓으라던가 하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고요. 저는 반대로, 두 분에게 저희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러 온 겁니다. 저희가 지금 가장 부족한 것. 글로벌하게 성공할 수 있는 IP를 만들어낼 수 있는 두 분의 능력을 빌리고 싶다는 거죠.”

“···.”

대답을 떠올리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감동에 젖어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두사람을 보며, 상혁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작업 멘트를 날렸다.

“저희를 도와주시겠어요?”

상혁이 내민 손을 타케우지가 잡는 것을 본 민준은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회귀 이후 게임업계의 타임라인에 큰 영향을 준 순간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무려 몇십년 후에 수조원을 우습게 벌어들일 초거대 IP를, 상혁이 말 몇 마디로 쌈싸먹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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