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It is possible
-가격은 우리가 아는 원래 가격 그대로 가겠대.-
런던의 한 카페에 앉아 국제전화로 민준과 통화하던 상혁이 민준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 그 사양에 그 가격이면 MS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러게. 난 게임 샘플을 보내주지 말라고 했을 때 통과도 어렵지 않을까 했거든.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민준이 묻자 상혁이 설명해주었다.
“개발자와 사업가는 사고하는 방식이 달라. X-BOX자체가 홈 미디어 센터를 표방했던 것처럼 당장의 이득보다는 전체적인 점유율을 중시하는 판단을 할 거라 생각한 거지.”
만일 게임을 먼저 보여주었다면 코넥트는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혁은 일부러 ‘산업 보조 장치’로써의 코넥트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 높은 인식율과 정밀도를 어필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잡았다.
“차세대 먹거리나 노다지쯤으로 보였겠지. 그들에게는.”
-그런 계산이었군?-
“그런 계산이었다.”
상혁의 말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민준이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쪽 일은 어때? 잘 되가?-
“글쎄? 잘 된다고 해야 하나···.”
일단 맷 와드와 친분을 쌓는 데는 성공한 상혁이었지만, 아직 워함마의 IP를 가진 게임을 만들려면 넘어야할 장벽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기존 팬들은 좀 원 세계관과 밀접한 하드하게 고증된 게임을 원할 거고, 팬이 아닌 사람들은 그렇게 하드하게 만들면 ‘저게 대체 무슨 소리당가?’ 라는 반응일거고.”
-난 기존 팬들을 위한 하드한 게임을 만들려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멀티에 쌉 고인물만 있어서 방 하나 잡는데 1시간씩 걸리는 게임 되라고? 그건 안 돼지. 이번 목표는 전 세계에 워함마 IP가 이만큼 멋지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야. 예전에 몬스터 훈타가 고인물화 되어갈 때 ‘몬스터 훈타 월드’로 유저 저변이 확 넓어졌던 것처럼. 매니아만 좋아하는 게임이 아니라 확실하게 비 매니아 층도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는 거지.”
-워함마 IP로?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당분간 좀 더 런던에 체류 할 테니까 관리 잘 부탁해.”
-얼마나 있을 건데?-
민준의 질문에 상혁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한 달. 한 달 안에 어떻게든 이 거래를 유리한 쪽으로 잡아끌고 돌아간다.”
-좋아. 혹시 그동안 내게 부탁할 만한 일은?-
“사람을 뽑아줘.”
-3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개발하려면 인력이 필요하긴 하지. 얼마나 충원할 생각이야?-
상혁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300명.”
상혁이 말한 그 숫자는, 현재 PTW에 소속된 인원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
PTW에서 대규모의 신규 인력을 고용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게임업계에 퍼져나갔다.
그와 더불어, 회사 내에서 다니는 기존 인력들에게 내부 분위기나 작업 여건을 묻는 사람들도 폭증하고 있었다.
다들 관심은 크게 가지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환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전에 공개된 메이킹 필름의 정보를 제외하면 거의 비공개나 다름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가장 흥분하고 있는 이들은, 기존에 PTW에서 일하고 있는 어프렌티스급의 직원들이었다.
신입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본인도 파다완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PTW 직원 생활의 진정한 시작은 파다완부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겨우 한 직급 위에 있는 단계였지만, 주4일제전환부터 보너스 금액까지, 파다완 등급의 직원이 받는 복지나 혜택은 어프렌티스 등급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 파다완 등급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단 한 개.
자신이 담당한 신입 직원을 자신과 동일한 업무 능력을 갖춘 수준으로 키워놓을 것.
애당초 이 제도의 목적이 기존 직원이 주 4일로 전환 되는 만큼 업무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인력을 키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심사는 해당 파트의 마스터 등급이 보게 되는데, 마스터 등급의 직원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3명 이상의 파다완 등급 직원의 승인을 받으면 ‘어프렌티스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회사에 남아있는 어프렌티스 등급의 직원들은, 애당초 누군가가 파다완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강제로 육성된 인원들이었고, 모두 자신의 업무에서 1인분을 할 수 있는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새 직원이 오지 않는 이상 파다완 승급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입사 동기가 부사수 한명 잘 가르쳐서 파다완 등급 직원으로 온갖 꿀을 빠는 모습을 본 직원들은 누구나 빨리 신선한 신입이 들어오길 갈망하고 있었다.
들어오기만 하면, 자신이 아는 모든 노하우를 동원해서 초고속으로 성장시키리라고 다짐하면서.
민준은 거기에 좀 더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서, 아직 업무 적격 인증을 받지 못한 직원들을 새 등급인 ‘영링(Youngling)’이라는 등급을 신설했다.
현재 숫자는 0.
급격한 인력 증가로 인해 교육을 위한 업무공백이 늘어나겠지만 민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도 수많은 직원들이 자신이 아는 업무 노하우를 정리하며 신입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민준은 이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신입에게 할 수 없는 업무를 시키면서 ‘왜 그런 것도 하지 못하느냐’고 면박 주는 인력도 없었고, 자신이 힘들게 시행착오하며 배운 것이니 너도 고생해봐라 같은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도 없었다.
반대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 노력하는 회사 분위기가 신입이 가지는 마음의 부담을 빠르게 줄여줄 뿐.
물론 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회사가 투자해야하는 비용이 막대하긴 했지만, 그 효과는 투입된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할 수 있었다.
PTW가 프로젝트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높은 퀄리티를 뽑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지금의 회사 시스템에 있었으니까.
‘돈이 더 나가면, 더 좋은 게임을 만들어서 더 벌 궁리를 하자.’
민준은 상혁에 CEO를 넘겨받은 이후로, 상혁이 오직 좋은 개발환경을 구축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수많은 배려를 보며 계속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힘들게 파다완이 된 직원들조차, 마스터 등급을 따기 위하여 휴일을 반납하고 회사에 나와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중령에서 대령이 되면 10가지가 변하지만 대령에서 별이 되는 순간 100가지가 변한다,’라는 이야기다.
PTW에서의 마스터 등급은 군대에서 ‘스타’가 되는 것만큼의 특별함을 가지게 된다.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증.
마스터 등급이 되기 위해서는 영상편집이던 3D모델링이던 애니메이션이든 사운드 이펙트든, 다른 3인의 마스터 등급 직원에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를 가져야했다.
그리고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마스터’가 되면, 거의 두 배 가까운 연봉 상승과 함께 회사 차량 지급, 본인이 원할시 자체 프로젝트 편성 및 인력 충원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추가로 총 근속년수가 25년 이상일 때 은퇴 이후에도 평생 매달 400만원의 연금이 지급되는 복지를 보장받는다.
무려 퇴직금과는 별개로.
아직 제대로 된 법인이 된지 5년도 되지 않았기에 한명도 해당되는 조건의 인간은 없었지만, 마스터급 직원 중에 상혁이 내건 조건을 의심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적어도 각각이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장인이라 자부하는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이라면, 절대 그 정도 복지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PTW에서 게임 제작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자신에게 앞으로 연금을 지급해 줄 회사의 성공을 자신의 손으로 꾸린다는 의미가 있었다.
물론 이 계획을 발표했을 때 회사의 재정을 관리하는 회계팀에서는 거의 거품을 물고 기겁을 하긴 했지만···.
상혁은 강한 의지로 해당 안건을 밀어붙였다.
직원이 회사를 믿을 수 있어야 딴생각을 품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며.
그런 이유로, 이번에 충원계획이 잡힌 인력이 아닌, 순수하게 취미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졸지에 영입제안을 받은 5명의 탑주 들은, 지수에게 PTW의 복지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수가 말하는 PTW는, 말 그대로 개발자에게 ‘꿈의 직업’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 같았으니까.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잔뜩 흥분한 분위기에서 양피지로 만들어진 계약서를 들이미는 바람에 내용도 보지 않고 사인을 하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상혁이 그들에게 내민 조건은 매우 정직한 고용 계약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왜 이렇게 자신들에게 좋은 조건을 내미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거 계약서 뒷면에 신체 포기 각서 같은 거 있는 건 아니죠? 혹시 저 문 뒤편에 가면 메스를 든 의사들이 장기를 떼 가려고 준비 중이라던가?”
황탑주인 카밀라 피셔가 지수에게 묻자, 지수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모르죠.”
“진짜로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조건인데요. 거기에 전원을 마스터 등급으로 고용하신다고요? 너무 조건이 후한 거 아닌가요?”
“괜찮아요. 적어도 저희 회사는 지불한 만큼은 직원에게 어떻게든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회사니까. 아, 물론 장기를 뽑는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헤헤헤···.”
이후 그들에게 상혁이 맡길 작업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지수로써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보이는 이 제안이 정당한 제안임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탑주들에게 제시된 내용은 정확하고 명확했다.
‘마법사 대전’의 마법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탑주 들은 자신의 오컬트적 지식과 전문성을 회사에 제공한다.
회사는 그 대가로 마스터 등급의 복지와 정식 직원으로써의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별도로 그들이 가진 것 외에 무엇을 배워서 받은 가치를 채우라던 가, 혹은 숨겨진 조건이 있는 계약이 아니었기에, 탑주들은 잠시 서로 수군거리더니 지수가 내민 정식 고용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그것은 양피지가 아닌 일반적인 사무 서류로 되어 있었다.
고용 계약서 외에, 비밀유지 서약서 및 동종업계 취업 금지 서약까지.
어차피 이곳이 아니라면 전문 개발자도 아닌 그들을 받아줄만한 게임회사는 없었으므로, 탑주들은 기꺼이 모든 서류에 사인했다.
“좋아요. 전부 사인하신 거죠?”
여러 군데 퍼져 있는 사인 란에 빈곳 없이 사인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한 지수가, 미소를 지으며 탑주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무르기 없어요?”
“뭘 하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좋은 조건인걸요? 오히려 그쪽에서 취소하자고 할까봐 걱정일 정도로요.”
프랑스에서 온 녹탑주, 마리 샤를로트가 말하자 지수가 싱긋 웃어보였다.
“좋아요. 그럼 뭐, 바로 시작하죠.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야 할 작업은 이겁니다.”
그리고는 바로 회의실 화면에 거대한 도표를 띄우며 탑주 들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죠?”
탑주들의 질문을 받은 지수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기존 주문 체계를 모두 삭제하고 새로 만들겠다는, 상혁의 새로운 로드맵에 관한 내용이었다.
“프로젝트가 방치된 2년 동안 여러분들은 고성능의 모션 인식기술을 바탕으로 일종의 격투 게임을 만들어 놓으셨죠. 물론 대전 게임 형식의 ‘마법사 대전’도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저희 CCO인 상혁오빠는 조금 다른 그림을 보고 계셨어요. 초보가 하더라도 모션만 따라하면 완벽한 주문이 나가는 현재의 시스템이 아니라, 마법의 체계 자체를 연구하고 수련하며 자신만의 주문을 배워나가는 시스템을요. 현재의 ‘마법사 대전’이 몇 가지 메인 동작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다른 동작을 통해서 주문의 계열을 나누고 그 속성을 암기해서 대전하는 ‘대전 게임’ 이었다면, 저희가 새로 바꿀 ‘마법사 대전’은 틀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될 겁니다.”
“연구와 수련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취하겠다는 거죠? 그리고, 저 도해는 무엇을 표현하는 건가요? 무슨 마법진같이 보이는데?”
“흠,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뭔가를 말하려던 지수의 목소리가 멈췄다.
마치 말하려던 내용을 까먹은 것 같은 모습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며 뭔가 말하려 하는데, 목소리는 내지 않는 행동을 하던 지수는 ‘에잇!’ 귀엽게 짜증을 내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리고는 교과서를 읽는 말투로 천천히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FPS 게임을 할 때 WASD는 이동, R은 재장전, 마우스는 시야 변경이라는 공식은 거의 모든 FPS에서 공통으로 적용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표준화된 약속 같은 것이죠. 저희 PTW에서 탑주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 모든 모션 인식 RPG에서, 그것이 마법을 사용하는 게임이라면 표준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지수는 담담히 계속 읽어갔다.
“특정한 공식에 따라서, 계열 별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서클’을 확립. 끝없는 연습을 통해 주문을 숙달하여 마법사가 되는 과정.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앞으로의 ‘마법사 대전’이 지향할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여기서부터는 기억나네요.”
지수가 종이를 주머니에 다시 구겨 넣더니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탑주들을 보며 말했다.
“단순히 동작을 하면 발동되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정해진 공식에 의해서 자신의 서클을 구축하고 구축된 서클에 기반 하여 주문을 사용하게 하는 것. 연구에 따라 자신의 새로운 마법을 만들거나 서클의 개조를 통해 특정 마법의 효과를 강화하고, 변경 가능한 시스템. 마법진을 자신의 캐릭터에 문신으로 새겨 주문의 시전을 돕는다거나 특정 아이템을 촉매로 시전 불가능한 주문을 시전 할 수 있는 시스템. 단순히 ‘마법사 대전’을 위한 주문 시스템이 아니라, 앞으로 PTW가 구축하고 확장 될 거대한 가상현실 게임의 메인 축이 될 수 있는 주문 체계. 저희 회사에서 여러분들이 구축해주길 바라는 시스템은 바로 그것입니다.”
“어···. 엄청나게 큰 작업이 될 텐데요? 실제로 그게 가능할지 의문일 정도로···.”
지수가 말하는 ‘작업’은, 이제까지 탑주들이 해온 작업을 ‘장난’으로 만드는 수준의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탑주들을 향해 말했다.
상혁이 믿는 비전을, 자신 역시 믿고 있었으니까.
“저를, 상혁 오빠를, PTW를 믿으세요. 지금 여러분이 이곳에서 만들 물건은, 앞으로 모든 게임에 나오는 ‘마법’이란 존재를 그냥 ‘장난감’정도로 만들어버릴 엄청난 결과물일 테니까.”
Q버튼을 누르면 화염구가, W버튼을 누르면 얼음 폭풍이 나간다.
단순히 마법사 같은 느낌을 주는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애들 장난으로 만들 시스템을, 상혁은 마개조된 ‘마법사 대전’을 보는 순간 바로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지수와 민준만이 유일하게 그 로드맵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상황.
지수는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겠다는 상혁의 과감한 계획이 미칠 듯이 마음에 들었기에, 이곳에 모인 8명의 탑주가 과로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그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아시겠죠? 아까 제가 왜 후한 제안이 아니라고 했었는지.”
그렇게 말하며, 지수가 귀여운 미소를 지었지만 탑주들에겐 그 미소가 더 이상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저승으로 자신들을 끌고 가려는 저승사자의 표정으로 보일 뿐.
결국 조용히 듣고 있던 적탑주 나나미 루카가 손을 들어 지수에게 물었다.
“좋아요. 말 그대로 되면 정말 재미있겠죠. 아예 제 2의 현실 같은 느낌이 될 테니까. 그건 저희 같은 오컬트 매니아들이 항상 꿈꾸던 거기도 하고요. 문제는 그거죠.”
‘그게 정말로 가능한가.’
“애당초 이 모든 마법 이론을 기초 설계한 장본인으로써, 또한 ‘마법의 어머니’인 사람으로서, 지수 씨의 생각이 어떤지 듣고 싶네요. 이거, 가능은 한 건가요?”
그녀의 지적은 타당했다. 일단 말로만 들었을때는 엄청나게 복잡한 작업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지수는 상혁이 알려준, ‘구체적으로 이것을 구현하는 방법’또한 알고 있었기에 여유 있는 모습으로 루카의 질문에 답했다.
“가능합니다.”
“가상으로 마법 설정을 짜는 것과, 실제로 그게 돌아가게 하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저희 모두를 2년간 가장 고생 시킨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었고요. 지금도 복잡해서 미칠 것 같은 걸,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하시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죠?”
“방법이 있으니까요.”
지수가 마커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어느 정도 기획자로써의 관록이 붙은 모습으로.
그리고는 마커의 뚜껑을 열며, 탑주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알려드리죠. 이 ‘복잡한’ 물건을 어떻게 ‘간단하게’ 구현할 지에 대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