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78화 (179/485)

178. 강제 유급휴가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상혁은 대기시키고 있던 의료팀을 즉시 투입했다.

그리고 코넥트 앞에서 탈진하여 쓰러진 지수를 병원으로 보냈다.

이미 드레이븐이 등장한 시점에서, 지수의 체력이 한계를 넘어섰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교전은 좀 짧게 하지 그랬어.”

이동식 침대에 실려서 반쯤 풀린 눈꺼풀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수에게, 상혁이 원망스레 말하자 지수는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헤헤···. 마왕이···. 너무 쉽게 쓰러···, 지면 꼴사나우니까···.”

“몸은 괜찮아?”

“파···. 팔이 안 올라가요. 어, 엄지를 세우고 싶은데···.”

그것은 아끼던 여동생이 파김치가 된 모습같은 느낌이라, 상혁은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일단 쉬어. 푹 쉬면서 병원에서 살아. 회복하기 전에 출근하면 엉덩이를 발로차서 쫒아 낼 테니까.”

구급대원들이 지수가 실려 있는 이동식 침대를 옮기려는 순간, 지수가 상혁의 옷깃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잡았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힘없는 동작으로.

“오빠.”

“응. 지수야.”

“제가 개발자라서, 제가 이벤트를 해줘서···. 유저들이 행복했을까요?”

상혁은 몸을 돌려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자신의 옷깃에 닿아있는 지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어. 당연하지.”

“헤헤···.”

“그러니까 가서 쉬라고 이 자식아.”

그제야 스르륵 감기는 지수의 눈을 보며, 상혁은 뿌듯함을 느꼈다.

게임 제작의 ㄱ자도 모르던 작은 여자아이가, 자신의 꿈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는 사실은 개발자로써 가슴이 뭉클해지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멀어지는 지수의 모습을 보면서 귓가에 들려오는 시끄러운 발소리를 들었다.

복도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의 주인은, 누구보다 지수를 아끼고 있던 PTW의 원화가, 서연이었다.

“오빠아아아!!!!”

“고막 나가겠다!”

“지금 오빠 고막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수! 지수는 괜찮아요?”

걱정스러운 듯 묻는 서연의 질문에 상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좀 무리해서 이벤트를 진행했을 뿐이야. 너도 알다시피 핸드 트래커가 좀 많이 무겁잖아.”

“그럼 무리를 시키지 말았어야죠!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요!”

“으어어어···. 걔가 말린다고 들을 애니?”

상혁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던 서연은 상혁의 말을 듣고는 잡고 있던 어깨를 놓았다.

상혁이 말한 대로, 지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절대 고집을 꺾지 않는 개발자였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처럼 여기는 존재에게 무리를 시킨 상혁이 원망스러워, 서연은 상혁을 향해 눈을 흘겼다.

“화났어?”

“조금요. 전 오빠가 무엇보다 팀원들을, 직원들을 끔찍하게 아낀다고 생각했으니까. 조금 의외라고 할까, 실망이라고 할까.”

“아끼니까 그렇게 한 거야.”

“무슨 말이에요?”

“난 이번 이벤트를 보면서 생각했거든. 지수가 부럽다고.”

“탈진해서 쓰러지는 게 부러워요?”

“아니, 그 정도로 뭔가 열정을 다해서 유저들과 함께 멋진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게 부럽더라.”

“아···.”

“뭐, 두 번 하라면 지수도 절대 안한다고 하겠지만.”

“그, 그렇겠죠?”

“그래도 지수는 이번 이벤트를 통해서 MYOM유저들에게 인생 최고의 경험을 선물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최악의 선물도 함께 주었지.”

“최고는 알겠는데, 최악은 뭐예요?”

서연이 묻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저런 경험을 했는데, 이제 다른 게임을 시시해서 어떻게 하겠어?”

상혁이 말한 대로, 월드 이벤트가 끝난 이후 유저들은 ‘MYOM앓이’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

월드 이벤트가 끝난 이후로 거의 매일같이, 상아탑 홈페이지의 유저 게시판에는 월드 이벤트를 그리워하는 유저들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벤트에 참여한 6서클 마법사가 말하는 이벤트 후기]

↳ 또 이벤트 무새냐? 니가 400번째 후기 작성자인건 아니?

↳ 왜 난 들을수록 좋던데. 솔직히 나는 이벤트가 그런 방식일줄 알았으면 적금 깨서라도 6서클 찍었다.

↳ 아니 난 이해가 안 가는 게 지금 이벤트 참여 안한 유저들은 해금된 컨텐츠 즐기느라 미치도록 즐거워하는 중인데 이벤트무새들은 몇 주째 계속 이벤트 이야기만 하잖아.

↳ 그만큼 쩔었다는 거지.

↳ 과거 회상할 시간 있으면 서클이나 올리라고, 지금 컨텐츠 풀리면서 온갖 숨겨진 장소나 퀘스트가 다 접근 가능해졌는데 대체 뭐하는 거야?

↳ 이벤트 참여 안한 애송이는 닥쳐. 그때의 그 느낌은 안 겪어본 녀석은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거니까.

그와 동시에, 지수가 입원해 있는 사이 PTW의 공개 게시판 역시 회사에 추가적인 이벤트를 청원하는 글이 게시판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거 아니어도 되니까 예전 이벤트 한번만 더 해주세요.]

[뉴비도 마왕과 싸울 기회를 달라]

[이건 뉴비 차별이다!]

[저는 6서클 직전에서 잘렸다고요! 이 억울함을 어떻게 해 주실 겁니까?!]

[월드 이벤트 이후 게임 불감증에 걸렸습니다. 무슨 게임을 해도 즐겁지 않아요. PTW를 고소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수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 노트북으로 유저들의 글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옆에서 병문안 차 찾아온, 서연이 깎아주는 사과를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서.

“오, 새 글이다.”

“흥분하지 말라니까?”

“언니, 흥분 안하게 생겼어요? 봐요! 이렇게 즐거워하는데!”

지수가 화면을 돌려 보여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던 서연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수에게 말했다.

“반은 욕하는 건데? 이벤트 한 번 더 해달라고.”

“저는 그만큼 멋졌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알았으니까 쉬라고.”

“아, 게임 만들고 싶다. 퇴원하면 바로 복귀해야지.”

“어?”

지수의 말을 들은 서연이 당황하는 표정을 짓자, 지수가 물었다.

“언니?”

“어? 응. 퇴원하면 복귀해야지.”

“근데 뭐에요? 그 표정은?”

“어? 아냐? 아무것도.”

“솔직히 말해요. 뭔가 있죠?”

“뭐는 무슨? 아무것도 없어.”

결국 지수의 집요한 눈빛을 받은 서연은 지수에게 상혁이 걸어놓은 출입금지 조치에 대해 설명했다.

“상혁 오빠가 너 강제로 3달 휴가 내렸어.”

“엑?!!? 왜요?!!”

“이유는 듣지 않겠대. 무조건 유급휴가 3달 보내고 오라던데?”

“아이씨! 잠깐만요!”

서연의 이야기를 들은 지수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침대 옆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탁자위의 수첩을 보고 전화번호를 눌러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저 유급휴가 뭐에요!?”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직원이 일하겠다는데 그걸 막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시작된 전화지만, 수화기 건너편에서 상혁이 하는 이야기를 듣던 지수의 표정은 점점 시무룩하게 변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그치만···.”

실시간으로 쪼그라드는 지수의 모습을 보며, 서연은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지수는 수화기에 대고 상혁에게 소리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으아아아! 상혁오빠 미워! 평생 저주할거다! 대머리나 되어버려라!”

“안된데?”

“에이씨! 벽창호 같으니! 3달 동안 대체 뭘 하라고!”

서연은 웃으며 화를 내는 지수에게 방금 깎은 사과를 건네주었다.

“상혁오빠도 천천히 재충전 하라는 의미에서 휴가를 준 거일거야. 오빠가 이유 없이 뭘 시킬 사람은 아니잖아? 일단은 휴가 기간 동안 뭘 할지 나랑 이야기 해볼까?”

그렇게 서연이 지수를 달래는 동안, 상혁은 회의실에서 얼빠진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웃는 얼굴을 한 채 서류를 들고 있는  현주가 서 있었다.

“지수가 뭐래?”

“대머리나 되어버리라는데요?”

“3달은 좀 심했어.”

“필요하니까 한 거예요. 본인은 모르고 있어도, 사람의 열정은 은근슬쩍 사람의 몸을 파먹으니까. 나중에 태운 양초같은 상태가 되어버리면 늦는다고요.”

“그러는 넌 쉬지도 않잖아?”

“지수가 양초라면, 전 초고화력 숯같은 존재니까?”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숯도 언젠가는 재가 되는 법이잖아.”

“그러게요. 그래도···.”

상혁의 모니터에도 PTW의 공개 게시판이 떠 있었다.

지수가 보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MYOM의 월드 이벤트가 아닌 신작 발매를 요구하는 유저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페이지가.

“유저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가 없네요.”

MYOM의 월드 이벤트가 종료되고, 게임의 풀 컨텐츠가 공개되면서, 유저들은 이전까지 MO형 대전 게임이라고 여겼던 MYOM이 MMO수준의 컨텐츠를 가진 거대한 RPG게임임을 알게 되었다.

MYOM이 필드를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수행하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파티를 짜고, 마법을 연구하고, 아이템을 만들며 상아탑에서의 계급을 올리고, 상아탑의 일원으로써 선후배 관계와 사제관계를 구축하며 ‘마탑’의 일원이 되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뒤에는, 완벽하게 짜여진 깊이 있는 세계관 속에 숨어있는 온갖 히든 피스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컨텐츠를 접한 유저들의 놀라움은, 점점 차기작에 대한 기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대전 게임인줄 알았던 MYOM이 이정도의 스케일이라면, 처음부터 완전한 이세계의 구현을 표방한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의 컨텐츠는 더 엄청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기대감은 PTW계시판의 온갖 추측글로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이 게임의 전체 스케일을 잘 알고 있는 상혁이, 점점 부담감을 느낄 정도로.

그리고 현주는, 상혁이 부담감을 느낄 정도라면 직원들은 더 심하게 압박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CEO였다.

“개발 1팀과 2팀의 야근이 점점 늘고 있어. 너무 무리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흠, 하지만 그건 자발적 야근이잖아요? MYOM의 월드 이벤트에 나머지 팀원들도 적절히 자극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니까. 직원들이 욕심을 부리는 거라면 그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무리하는 것일까 봐 조금 걱정이 돼.”

“흠···. 일괄적으로 휴식을 부여하는 건 기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꺾을 수도 있으니까요. 선생님이 판단해서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인원은 적절히 쉬라고 권유해주세요. 지금 저희 직원들이 달아오른 건, 자신들도 지수가 한 것처럼 유저의 기억에 평생 남을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니까.”

“그래서, 그 열망으로 지금 직원들이 팬들의 기대감을 만족 시킬 수 있을까?”

현주의 질문에 상혁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이머란 항상 좀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법이고, 그 앞에서 장르의 차이 같은 것은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상혁은, 이대로 출시된다면 유저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 버전으로는 조금 어려울 겁니다. MYOM이 준 임펙트가 너무 강하니까. 장르가 다르다고 해도 유저들이 기대하는 것을 100%채울 수는 없겠죠. 이 게임이 강점으로 삼은 이세계의 완전한 구현이란 요소는, 마찬가지로 MYOM도 가지고 있는 요소니까요.”

“그럼 어떡하려고? 힘들게 만든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직원들이 괴로워하지 않을까?”

“뭐,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현주의 질문에 상혁이 미소 지었다.

언제나 그랬듯,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를 안심시키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게, PTW의 CCO인 제 역할이니까.”

“무언가 계획이 있는가보구나?”

“선생님. 모르셨어요?”

“어?”

“저에겐 항상 계획이 있다는 걸?”

“그래. 그렇지.”

그런 상혁을 보며, 현주는 웃으며 서류를 내밀었다.

“일단 지금은 그 계획보다 이걸 좀 봐줬으면 하는데.”

“이게 뭔데요?”

“진작부터 왔어야하는 거.”

상혁이 넘겨받은 서류.

발신인의 이름이 나츠 유미코라고 적혀있는 서류의 표지에는, 한눈에 볼 수 있는 커다란 크기로 SANY의 엠블렘이 박혀 있었다.

이라고 쓰인, 굵은 글씨의 제목과 함께.

그러나 상혁은 그 표지를 보고도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이번에 공개된 신작 3개 모두, X-BOX360 발매를 전제로 개발된 게임들이었기 때문에.

“거절 하면 되잖아요? 이번에 공개된 게임은 PS로 발매할 예정 없다고. 뭣보다 MS의 게이트 씨가 코넥트 발매를 위해서 감수한 비용을 생각하면, 이번 신작 3종은 무조건 X-BOX로 내야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현주의 말에서 상혁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것을 아는 현주가, 굳이 자신에게 이 서류를 가져온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적어도 자신이 아는 그녀는, 이미 정해진 일에 대해서 자신에게 시시콜콜 의견을 물을 정도의 CEO는 아니었으니까.

“뭔가 있군요?”

“그러니까 가져왔겠지?”

그렇게 말하며, 현주가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엔 이 제안서가 첨부되어있는 메일의 내용이 프린트 되어 있었다.

예전 ‘마리의 눈물’의 PS 발매 시절부터, SANY의 직원으로써 PTW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나츠가 보낸 메일의 내용이, 그녀가 첨부한 ‘추신’과 함께.

[PS. 상혁씨 제발 저 한번만 살려주세요. (T_T)]

그 메일을 본 상혁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현주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선생님?”

“응.”

“같이 일본 한번 가야겠네요.”

“여기.”

이미 예약까지 마친 비행기 표를 흔드는 현주를 보면서, 상혁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MYOM과 ‘코넥트’의 발매가, ‘GOS’의 PS3 독점 선행 발매로 비등비등했어야할 콘솔 게임기 업계의 균형을 얼마나 무너트렸는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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