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05화 (206/485)

205. 완벽에 이르는 길

“공개작은 어떻게 할 거야?”

민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상혁이 말했다.

“일단은 3작품 전부 공개하는 걸로.”

“일단은?”

“일단 EOD는 날짜 맞춰서 공개 가능할거고, 섬마을 칸타빌레도 가능 할 거야. 인조학원은 진행도를 봐서 공개 불가능한 수준이면 비공개나, 아니면 공개 행사를 늦추는 것도 고려해봐야지.”

상혁에게 있어서 ‘절대로 있으면 안 되는 일’은 공개나 발매 일정에 맞춰서 무리하게 개발팀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물론 완성도를 높이거나 버그를 잡는 과정에서 발매 직전에 업무 일정이 좀 빡빡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상혁은 일정 같은 부분에 있어선 최대한 개발팀의 여유를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스케줄 관리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출시 시점에서 개발자들이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미련을 가지지 않도록.

당당하게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임만을 출시하는 것이 PTW의 개발 원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적절한 타이밍에 게임을 발매할 수 있었던 것에는, 거의 예술적인 수준으로 스케줄 관리를 해내던 상혁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까지 완벽한 스케줄 관리로 발매 일을 조정하던 상혁의 능력으로도 커버가 불가능한 변수가 나타난 상황이고.

그 ‘변수’는 물론,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이었다.

나머지 1개 게임의 공개여부가 불확실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민준은 상혁을 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조학원. 그건 어떻게 안 되는 거야?”

“날짜까지 맞춰서 공개 가능한 퀄리티까지는 맞출 수 있겠지. 문제는 개발자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야.”

“나 때문에?”

“그래. 너 때문에.”

“뭐 100% 나 때문만은 아닐 텐데?”

상혁이 쓴 웃음을 지었다.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비록 그 구조가 난해해서 스크립트 팀이 피를 토할 정도로 고생하긴 했지만, 그만큼 확실한 성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테스트를 위해 플레이하는 도중에, 지금 자신이 사람이랑 게임을 하는 것인지 AI와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말하자면 지금의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트랜스○머’의 범○비에게 수백만 개의 대화 라이브러리를 주고 그 안에서 대화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떤 대화를 선택할지는 인간의 뇌 동작 방식을 가상으로 구현한 민준의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선택하고, 그 대화 내용 자체는 사람이 채워 넣는 방식.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로 직접 대화를 생성하는 방식은 작업량은 줄어들지 몰라도 제대로 된 연산에 막대한 성능이 필요하고 만들어지는 대사도 실제 인간과는 살짝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단어 조합 같은 일정 조건을 인식하여 정해진 대사를 출력하는 방식은 그 순간은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대화가 길게 이어지거나 반복되는 질문을 할 때 어색함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러나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미래형 AI와 과거의 AI가 가진 장점을 합친 절묘한 줄타기를 통해 사람처럼 사고하면서도 사람처럼 대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사람 같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 스크립트 팀이 무지막지하게 갈려나가고 있다는 사실과, 생성된 대화에 더빙이 되어있지 않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유저의 음성인식은 지원하지만 더빙은 지원하지 않기에 캐릭터의 대사가 전부 텍스트로만 출력된다는 점은 개발자 전원이 ‘인조 학원’에서 가장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텍스트’만 가지고도 진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스크립트 팀에서 작업한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완성도는 뛰어났다.

중학생 시절부터 스토리 구성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혁찬은 상혁의 가이드를 받아 ‘인조학원’에서 커스터마이즈 가능한 각 성격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했다.

현실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보다, ‘인조학원’에서 만든 가상 성격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 몇 십 배는 더 즐겁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혁이 혁찬에게 요구한 각 성격별 기본 베이스는, 상혁이 기억하고 있는 회귀 전의 인기 게임 스트리머들의 성격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었으니까.

상혁은 처음 자신이 스트리머들의 성격을 기반으로 한 베이스 성격 설정을 들고 갔을 때, 혁찬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의 혁찬은, 상혁이 가져간 성격 리스트와 그 내용을 보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뭔 돌아이 집단이라도 만드실 생각이에요?”

“날 믿어. 이런 성격의 애들하고 게임할 때 최고로 재미있을 테니까.”

“그래요? 이건 너무 오버하는 거 같고, 얘는 완전 울보고, 얘는 너무 정치꾼 같은데? 같이 게임하다 패드 집어던지지 않을까요?”

“그거야 만들어보면 알거 아냐? 일단 내가 인조학원에 넣으려는 인 게임 스타일엔 이런 성격이 가장 맞으니까.”

“흠. 그렇다면 해보죠. 대신 검수만 잘 해주세요. 기획서만 봐서는 각각의 성격이 어떤지 잘 모르겠으니까.”

혁찬은 그렇게 말해놓고도 상혁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완벽하게 각각의 성격을 구현해냈다.

실제 원본이 된 스트리머들의 성격보다 더 개성이 강한 느낌으로.

그러나 단순히 재미있는 성격의 스트리머의 대사를 따라하는 것이 게임의 전부였다면, 인조학원은 절대로 지금 수준의 흡입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포텐셜은, 단순히 상황에 적절한 대사를 DB에서 긁어 와서 출력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AI가 각종 이벤트를 통해 유저와의 관계를 성장시키고, 그 성장 시킨 관계를 바탕으로 게임 안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구현된 AI들은 진짜 사람처럼 게임 안에서 다양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었다.

어떤 성격은 정말로 게임을 진정으로 즐기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어떤 성격은 조금만 게임에서 불리해져도 정치 질을 시전 한다던가, 아니면 플레이어가 조금만 실수해도 독설을 퍼붓는 등의 성격들이 함께 게임을 하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해 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예능신이 강림한 듯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성격도 있었고 ‘개그맨인가?’ 싶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성격도, 그리고 정말로 멋지고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는 성격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멋진 점은, 플레이어가 그 성격의 세세한 부분까지 마음대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조금만 게임에서 불리해지면 겁먹는 성격의 캐릭터에게 최고의 게임 실력을 부여할 수도, 자존심만 더럽게 세고 게임은 더럽게 못하는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캐릭터가,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통해 서로 호흡을 맞추며 케미를 이루어내고, 자연스럽게 게임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게 만드는 능력을, 인조학원은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30명으로 불어난 스크립트 팀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거의 하루 종일 붙어서 작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 구현된 스크립트가 넘쳐난다는 점이었지만.

그리고 그렇게 작업해야 할 스크립트의 개수는, 묘하게도 개발을 진행하면 할수록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차라리 컴퓨터가 언어를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지금처럼 자연스럽게는 안 돼. 위화감이 있어도 괜찮으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고쳐줄까?”

“아서라. 스크립트 팀한테 그렇게 말하면 말 꺼내는 순간 살해당할걸?”

“지금까지 작업한 게 아까워서?”

“아니, 개 쩌는 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는 물건을 망쳐놨다고 원망할 거란 뜻이야.”

상혁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스크립트 팀은 이제 거의 광기에 휩싸여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작업에 미쳐있는 상태였으니까.

처음엔 이걸 어떻게 작업 하냐고 투덜대던 스크립트 팀은 이제 발매 전까지 아예 발생 가능한 모든 숫자의 대화문을 전부 채워 넣겠다는 의욕으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대사를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점점 사람과 가까워지는 AI를 보면서 흥분하지 않을 개발자는 없었다.

물론 그것은 ‘인조학원’안에서 플레이어가 AI와 플레이할 게임을 별도로 기획해서 집어넣은 상혁의 탓도 컸다.

최대 12명을 동시에 참가시켜 안에 있는 감염자를 찾아내는 게임 ‘더 인스펙터(The Inspector)’.

몰려오는 좀비들을 막으며, 기지를 건설하고 식량을 수집하고 무기를 제작하는 좀비 아포칼립스 협동 생존 게임 ‘어나더 데이(Another Day)’.

마지막으로 공성전을 컨셉으로 한 3D 협동 액션 게임인 ‘울프 캐슬(Wolfcastle)’.

세 게임 전부 AI와 멀티플레이를 산정했을 때 재미있는 장르를 기준으로 상혁이 별도로 설계한 오리지널 게임이었고, AI와 동시에 돌아가야 하는 인조학원의 엔진 특성 상 조금 레트로 한 그래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재미만큼은 확실한 게임들이었다.

특히 추리와 거짓말이 메인이 되는 마피아류 게임인 ‘더 인스펙터’ 같은 경우는 장르 특성 상 대사에 따른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괴물 같은 작업량의 주원인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립트 팀은 가장 증오스러우면서 사랑스러운 게임으로 더 인스펙터를 꼽았는데, 그 이유는 실제 테스트 플레이를 할 때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강력함을 가장 높게 체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짜 살아있는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인조학원의 AI들은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플레이어와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패턴의 행동을 취했다.

호감도가 높으면 성격에 따라 플레이어가 살인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서도 다른 AI에게 거짓말을 해서 플레이어를 변호하기도 하고, 믿었던 플레이어에게 살해당했을 때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원망의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로써는 생소한 개념의 플레이였기에, 그 다양한 패턴이 가능하도록 AI를 조정한 것은 상혁의 기획이었다.

원래부터 게임 외에 게임 스트리밍 방송 감상도 취미였던 상혁은 미래에 유행할 마피아 게임 합방의 온갖 클리셰와 예능 플레이를 게임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 덕에 더 인스펙터는 스크립트 팀뿐만 아니라 현재 PTW내에서 인조학원 테스트에 참가한 모든 인원이 꼽는 ‘갓겜’이 되어 있었다.

“사실 게임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재밌는 건 아닌데 말이지.”

상혁이 말했다.

사실 게임 자체는 평범한 마피아류 게임일 뿐이다.

단지 몇몇 아이템과 지형 트랩, 속임수를 위한 시체 조작 트릭이 들어간 마피아 게임.

굳이 말하면, 지금 들어가 있는 마피아 게임은 2019년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SF배경의 마피아 게임 ‘어몽○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돌아다니며 미션을 하는 형태가 아니라, 직업과 아이템, 함정과 트릭이 존재하는 버전으로.

그래도 베이스가 마피아 게임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기에, 실제로 게임이 주는 재미엔 한계가 있어야했다.

원래 이런 장르의 파티게임이 다 그렇지만, 마피아게임 같은 게임은 ‘친한 사람’들과 같이 게임할 때 즐거운 게임이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 게임하면 전혀 재미없는 게임이니까.

하지만 그 평범한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커스터마이징 한 개성 넘치는 미소녀, 미소년들이라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조학원에 탑재된 다른 게임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나더 데이는 점점 무너져가는 기지 속에서 공포에 질려 소리 지르는 AI를 보는 맛이 쏠쏠했고, 울프 캐슬은 수백 명이 몰려오는 공성전 안에서 다른 AI들과 함께 성을 지켜 내거나 점령하는 재미가 있었다.

오죽하면 매 게임이 추가될 때마다 가장 많은 작업량을 감당해야하는 스크립트 팀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새로운 게임의 추가를 상혁에게 요청할 정도였다.

‘작업이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해낼 테니까, 제발 게임 좀 더 넣어주세요’라고 하면서.

이미 그 3개의 게임만으로도 차세대 게임기 런칭 때까지 출시 여부가 간당간당한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 버전의 인조학원의 재미는 PTW내에서 충공깽 수준의 충격을 선사하고 있었다.

게임의 AI가 내는 대사 전부를 총괄 지휘하여 제작 중인 혁찬이, 현재 만들고 있는 인조학원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릴 정도로.

‘안에 아무리 똥겜을 집어넣어도 미친 듯이 재미있어질 것 같은 게임.’

똥겜을 집어넣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베이스 게임 안에, 애당초 합방의 재미를 극적으로 살릴 수 있도록 상혁이 인조학원 전용으로 만든 게임이 들어갔으니,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번에 공개되는 신작 중에 ‘재미’라는 측면에 있어서 인조학원을 능가하는 게임은 없다는 것이 PTW내부의 주된 평가이기도 했고.

“문제는 이게 끝도 없이 계속 재미있어진다는 거지.”

상혁이 말하자, 민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나?”

“그렇지. 지금까지 우리가 게임을 개발하던 방식은, 특정 재미를 산정하고 그 재미를 극한까지 끌어내는 완성도를 기준으로 잡고 만드는 거였거든.”

때때로 그 제한은 ‘현재의 팀이 만들 수 있는 게임의 한계’일 때도 있었고 ‘현재의 콘솔이 제공할 수 있는 성능적 한계’일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적당한 선에서 끊을 수 있는 리미트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픽을 더 올리고 싶어도 콘솔 성능 때문에 더 올릴 수 없다던가, 아니면 현재 개발팀 규모에서 개발 가능한 게임의 스케일이 딱 그 정도가 한계라던가.

문제는 인조학원의 경우 그 선이 애매하다는데 있었다.

캐릭터와 학교생활이나 방과 후 활동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는 파트의 경우 8세대 콘솔의 한계 수준까지 그래픽을 끌어냈기 때문에 더 좋은 수준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 안에서 즐기는 게임의 경우는 필연적으로 레트로 스타일의 게임이 되면서 사양에 여유가 생겼으니까.

물론 그 남는 여유는 전부 AI가 사용하는 연산으로 돌리게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이 애매한 것은 사실이었다.

게임을 더 추가하자니 작업량이 끝없이 늘어날 것 같고,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자니 자꾸만 욕심이 난다.

애당초 상혁이 3개의 게임을 선정함에 있어서 ‘특수한 상황’을 가정한 게임으로만 라인업을 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아무래도 마피아나 생존게임, 공성전 같은 경우는 요구되는 대화의 방향성이 한정되게 되어 있었으니까.

성격의 경우는 추가가 더 까다롭다.

성격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 기존에 있던 모든 성격과의 상호작용 대사가 함께 추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것도 이미 존재하는 3개 게임의 대사와 학원 생활 파트 대사까지 전부.

완성도를 올리자면 끝없이 올라가지만 그렇다고 끝없이 올릴 수도 없는 마검 같은 게임이 바로 현재의 인조학원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거 완전 마검이야. 마검.”

“마검?”

“개발자 기 빨아먹는 마검. 좀만 더 하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서 끝도 없이 개발력 투입하게 만드는 저주받은 게임이라는 소리지.”

“뭐, 근데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건 개발력을 투입하면 끝없이 재미있어진다는 거 아냐? 그리고 너한텐 그게 제일 중요할거고.”

민준의 말에 상혁이 미소 지었다.

“뭐, 그렇지.”

“그리고 나머지 게임들도 절대 꿀리는 느낌은 아니지 않나?”

“어. 그것도 그렇고.”

실제로 순수하게 ‘재미’만 놓고 보면 개발 123팀의 개발자들 모두가 인조학원을 최고로 꼽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개발 중인 3개의 게임 중 인조학원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이 전달하는 가치는, 단순히 재미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미 리얼함의 정점을 추구하는 영역에 도달한 EOD라던가, 드라마틱한 스토리 라인으로 진짜로 섬마을의 제자들과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감동을 선사하는 섬마을 칸타빌레의 제작진도, 각각 ‘긴장감’과 ‘감동’이란 영역에서 만큼은 자신들이 게임 업계의 역사를 새로 쓴다는 마음으로 개발에 임하고 있었다.

삼물삼색(三物三色).

어느 게임 하나 서로가 서로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며 성장하는 모습은 상혁에게 한없이 뿌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문제는 그 3개 프로젝트 중 한 개 프로젝트에 자신의 앞에 있는 슈퍼 먼치킨 민준이 과도한 애정을 쏟고 있다는 것 뿐.

스크립트 팀이 수백만 개의 스크립트를 작업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동안, 민준도 쉬고 있지는 않았다.

개선, 그리고 또 개선.

중요한 게임의 도중에 뜬금없는 대화가 나오지 않도록, 민준은 대화 주제에 따라 생성되는 시냅스의 가중치를 최적화했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부분에서 좀 더 많은 옵션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엔진을 개선했고,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근본적인 성격에도 변화가 가해질 수 있도록 버전업을 수행했다.

처음엔 연애에 관심도 없던 캐릭터가, 함께 게임을 하며 호감을 쌓아가면서 나중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도록.

그런 식으로 대놓고 민준이 맨투맨으로 붙어서 스크립트 팀과 ‘완벽한 게임’을 위해서 작업하는데, 완성도가 안 올라갈 리가 없었다.

상혁은 민준이 이토록 개발에 집착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다.

지금까지 코넥트와 MYOM의 메인프레임을 작업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멘토링이나 코드의 핵심 파트만 작업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사내 프로그래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헬퍼로 활동하는 게 민준의 작업스타일이었으니까.

그런 민준을 보며, 상혁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민준이 전에 말했던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싶은 게임과 관련이 있겠지.’

노골적으로 집착하는 게임의 스타일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그러나 민준이 어차피 지금 단계에서는 그 게임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지 않을 것임을 잘 아는 상혁은 굳이 민준에게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PTW가 민준이 원하는 수준으로 준비가 되고, 지금까지 만든 게임들에서 쌓인 기술과 노하우가 적정 수준에 달하면, 굳이 자신이 묻지 않아도 민준이 알아서 말해줄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상혁에게 미래에 만들 게임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게임들을 완벽하게 만들어 유저들 앞에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준의 지금 스탠스는 그런 상혁의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만족하고 있었고.

“어쨌건 민준이 너 덕분에 앞으로 나올 게임이 완벽하게 나오게 될 거란 건 좋은 일이지. 아마 게임이 나오면 다들 놀라게  될 거야. 게임회사가 처음으로, 유저에게 같이 게임할 ‘친구’를 선물해주는 거니까.”

그러나 상혁의 말을 들은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완벽? 아직 완벽을 말하기엔 이르지.”

상혁이 말한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개의 퍼즐 조각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상혁이 너한테 요청할게 있다.”

“뭘 또 하려고? 지금 버전도 개발사에서 업그레이드 해준 기기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수준인데?”

“그건 그쪽 사정이고, 상혁이 넌 나한테 ‘스트리머’와 합방하는 느낌을 유저가 느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잖아. 난 그 요청에 대응하는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며, 민준이 한 부의 카탈로그를 내밀었다.

그 카달로그엔, 작년에 일본의 게임 컨퍼런스인 CEDEC에서 공개된 하나의 프레임 워크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었다.

상혁도 잘 알고 있는, 앞으로 오타쿠 세계의 미래를 바꿀만한 핵심 기술이 담긴 프레임워크가.

“LIVE 2D?”

“역시, 있긴 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민준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상혁에게 말했다.

마치, 맡겨놓은 것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몸은, 이것이 필요하다.”

“라이선스?”

“아니. 뭘 쪼잔하게 라이선스야?”

민준이 말했다.

“회사채로 사줘.”

민준이 요구한 것.

그것은 상혁에게 지금까지 PTW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인수 합병’을 시도하라는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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