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21화 (222/485)

221. 게임의 미래

사실, SANY에서는 이미 HMZ 시리즈로 머리에 쓰는 형태의 영상 재생 장치를 2011년에 출시한 적이 있었다.

2013년 시점에서 T2 모델까지 출시된 HMZ시리즈는 1세대 모델부터 1280x720 해상도를 지원하며 시장 선도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해당 기기는 어디까지나 VR머신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넓은 스크린을 보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로 VR용 기기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우선 매우 작은 형태의 스크린을 눈앞에 배치하는 HMD의 특성상, 화면 크기를 무한정 키울 수 없으므로 해상도가 올라갈수록 높은 DPI를 요구하는 점도 그렇고, 해상도를 올리기 위해 화면 크기를 늘리면 반대로 무게와 배터리 소모가 증가한다는 단점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저DPI 스크린을 사용하면서도 어안렌즈를 이용하여 양 눈에 다른 화면을 쏘아준다는 발상으로 개발된 ‘옵큐러스 리프트’였다.

2011년, 팔머 럭키가 모바일용 LCD에 자이로 센서, 어안렌즈를 사용한 VR헤드셋의 시제품을 소개한 이후로, 2012년에 옵큐러스 리프트의 시제품이 발매되면서, VR시장은 게임의 미래를 선도할 기술로 평가받으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 이후로 팔머의 아이디어는 SANY의 PSVR, HTC VIVE등 수많은 파생상품을 나으면서 하드웨어 개발 업체에게 수 없는 삽질의 역사를 강요하게 된다.

그리고 상혁은, 각 업체들이 자신들의 머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어떤 삽질을 했는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조금만 끼고 있어도 눈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발에 선이 걸릴 정도로 케이블이 줄줄 달린 기기라던가, VR을 지원하긴 하지만 하드웨어 성능과 가격 때문에 해상도가 형편없어 조금 쓰다가 바로 상자째로 방치되는 비운의 기기라던가, 게임을 하기 위해서 기깃값만 100만 원 넘게 냈는데, 그 기기에서 돌릴 수 있는 컴퓨터를 구매하기 위해 또 수백만 원을 더 써야 하는 기기라던가.

회귀자로서 상혁이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은, 무엇보다 그런 삽질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이미 차세대기가 발매되기 전부터 차세대기 스펙에 맞춰 개발을 일찍 시작할 수 있다던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가장 적절한 게임을 내 놓는다던가.

그리고 이번 VR프로젝트 역시 그런 상혁의 회귀 전 지식이 많이 개입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입니다.”

상혁이 히로와 나츠를 데려간 곳은, 이전에는 ‘코넥트’의 하드웨어를 개발했던 개발팀이 연구하던 개발실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상혁은 코넥트의 완성 버전을 보았고, 개발자들이 만든 MYOM의 초기 버전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금은, 게입 업계에 파란을 가져올 또 다른 파도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연구원이 밤낮으로 일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연구동’이라는 명판이 붙어있는 곳의 문을 상혁이 밀고 들어가자, 후줄근한 복장을 한 몇 명의 개발자가 상혁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오늘은 손님과 함께입니다. 이쪽은 SANY코리아 사장이신 가와구치 히로 씨. 그리고 나츠 씨는 코넥트 때 만났으니 구면이죠?”

“반갑습니다. 선임 개발자 맥켈란 그렉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를 맡고 있습니다.”

“가와구치 히로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그런데, 프로젝트라니, 무슨 프로젝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히로의 질문에 그렉이 상혁을 바라보았고,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렉은 손을 내밀며 안쪽으로 히로를 안내했다.

“그건,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렇게 그의 안내를 받아, 세 사람은 아직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PTW의 ‘신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방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건···.”

히로가 말했다.

“뭡니까? 이거?”

여기 오기 전, 상혁이 VR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에, 가와우치는 자신이 이곳에서 보게 될 기기가 VR과 관련된 기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VR기기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비슷하게 마련이다.

눈에 들어오는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거대한 암실 구조.

그리고 안구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화면의 영상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도와주는 두꺼운 유리 렌즈.

영상 내용을 전달받기 위한 케이블과 전원 공급용 케이블.

쉽게 표현하면, HMD 디바이스던 VR디바이스던 기본적으로 모든 VR 머신은 눈앞에 배치되어있는 거대한 상자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극 초기 장비라고 할 수 있는 넌텐도의 버츄얼 보이때부터 이어진 고유한 특성이었다.

그러니 상혁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방의 가운데에 배치된 물건은, 적어도 히로가 보기엔 VR기기처럼 보이는 물건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머리에 쓰는 물건은 맞는 것 같은데.’

히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상혁은 옆에 있는 그렉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거, 지금은 몇 분까지 가능해요?”

“풀 다이브 모드에서 30분 정도면 문제없을 겁니다.”

“넘어가면?”

“시신경이 맛이 가겠죠.”

“그 문제는 아직 해결이 안 된 건가요?”

“어렵네요. 뭔가 기술적 아이디어가 필요할 것 같긴 한데.”

“그럼 그 부분은 저와 따로 상의하시죠.”

거기까지 대화를 마친 상혁이 웃으며 히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살벌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 참고로 이거. 지금은 프로토 타입이라 30분 이상 사용하면 시신경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이하로 사용했을 때는, 뭔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써 보시겠어요?”

“그렇게 위험한 물건인데 사람이 써도 되는 겁니까?”

“뭐 짧은 시간이면 아직은 문제없으니까요. 어때요, 체험해보시겠어요?”

“그 전에, 이게 대체 뭡니까?”

히로의 질문에 상혁은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방 가운데로 걸어가 머리에 쓸 수 있게 만들어진 기괴한 장비를 집어 들어 히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어쩌면, 게임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물건이죠.”

히로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

“들어가 있는 VR월드 종류는 뭐죠?”

“일단 TAW로 맞춰놨습니다. 아마 마을 한가운데서 시작할 겁니다.”

“좋아요. 그럼 처음엔 강도 50 정도로 시작해보죠.”

“알겠습니다. 강도 50. 테스트 시작 시작은 1분 후부터입니다. 잭! 테스트 기동이다! VR월드 구동시켜!”

“아까부터 스탠바이 중입니다. 언제든지 들어오셔도 됩니다!”

“혹시 모르니까 안과 전문의 불러오고!”

“연락해서 지금 달려오고 계세요. 2분이면 도착하신답니다.”

“안약 미리 준비해놔.”

“차갑게 식혀놨습니다.”

“좋아요. 그럼 테스트 시작합니다. 히로 씨. 개발인력과 실험용 원숭이, 그리고 강아지를 제외하면 당신이 이 기기를 쓰는 첫 번째 외부인입니다. 이 테스트는 테스트 시간에 따라 테스트 종료 후 눈의 잔상, 광 과민증, 재채기, 멀미, 어지러움증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며 임계 시간 이상 테스트 할 경우 일부 시신경 조직에 블라인드 스팟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위험에 동의하십니까?”

“예···예?! 예?”

“동의하신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후 모든 신체적 손상에 대한 책임은 테스트 진행자가 스스로의 자의에 의한 결정으로 선택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테스트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뭔가 영화 ‘스타게이트’의 한 장면처럼, 흰 가운을 걸친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가운데 그렉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묻는 것을 보고, 히로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렸다.

뭔가 엄청난 것을 시켜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엄청난 것이 하필이면 엄청나게 위험하기도 한 모양이라서.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히로의 흥미를 끌었다.

상혁이 ‘게임의 미래’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기술이라면, 적어도 장님이 될 위험 정도는 감수할 가치가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풀 다이브라고 했었지. VR월드라는 말도 했었고.’

상혁과 그렉의 말을 떠올린 히로의 동공이 커졌다.

‘설마 진짜로 가상현실 게임?’

히로는 순간 상혁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 같은, 게이머가 스스로 게임 세계의 안으로 들어가는 그런 장비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에 진짜로 그런 가상 현실의 체험이 가능하다면,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을 SANY측에 넘겨준다면, 그것은 콘솔 전쟁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게임 업계의 역사를 바꿀 사건이 될 것이고.

히로는 자신이 이 역사의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면서, 그렉을 향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프로젝트 ‘네오’. 첫 번째 외부 인력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5···4···3···2···1···.다이브 스타트!”

“가와구치 히로! 갑니다!”

순간 눈앞에 무지개가 번쩍이는 느낌을 받은 히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자신 앞에 펼쳐질 놀라운 광경을 기대하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바닥을 굴러다니는 상혁과 그렉의 모습이었다.

“엥?”

“푸하하하핫! 그렉 씨! 이거 진짜 먹히네요!?”

“하하하하! 이거 처음 테스트 하는 사람은 무조건 당한다니까요?!”

“상혁 씨···. 대체 이게···.”

“아, 미안합니다. 사실 이거 처음 테스트할 때 제가 당했던 장난인데, 외부인원한테도 먹히는지 궁금해서요. 장비는 동작하니까, 지금 바로 켜 드릴게요. 그렉 씨, 네오를 기동해주세요.”

“예.”

“아니 지금 이게 도대체!!!!”

상혁에게 소리 지르려던 히로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하시는···. 헐?!”

그것은 그가 기대하던 ‘완전한 가상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직도 눈앞에, 반쯤 흐릿하게나마 상혁과 그렉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현실’과 동시에, 히로의 눈에는 ‘TAW’특유의, 판타지 배경의 마을의 풍경도 비추고 있었다.

마치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마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으로.

그것은 히로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모습이었다.

“이게···대체···.”

“이게 저희가 개발 중인 차세대 VR머신. ‘프로젝트 네오’의 테스트 모델입니다. 눈앞에 영상이 들어있는 스크린을 띄워주는 것이 아니라, 프리즘을 이용해서 각막에 직접 화상을 쏘는 방식의 HMD장비죠.”

“홀로그램 같군요.”

“감도를 더 올리면 이렇게 됩니다.”

상혁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그랙이 노트북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고, 히로는 그 순간 자신의 앞에 보이는 홀로그램이 순식간에 진하게 짙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집중을 해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게임 속 그래픽과 구별이 되지 않는 수준의 3D 영상이 히로의 눈을 비추고 있었다.

“이게 지금 강도로 치면 몇이죠?”

“80입니다.”

“그럼 100도 볼 수 있을까요?”

“100은 좀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잠깐이면 됩니다.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하죠.”

“좋습니다.”

상혁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히로는 그 순간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눈을 돌려도, 고개를 돌려도 완전히 구현된 3D 마을만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고, 그것은 히로로 하여금 완전히 구현된 가상의 세계에 자신이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히로는 상혁이 어째서 이 기술이 ‘게임의 미래’라고 이야기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괴상한 기기는, 기존 VR기기가 가지고 있던 치명적인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괴물 같은 머신이었기 때문에.

‘시야각이 없다.’

기본적으로 눈 바로 앞에 렌즈를 배치한다 하더라도, 눈동자를 돌리면 반드시 검은 부분이 보이게 된다.

말하자면 기존의 VR기기가 물안경을 낀 상태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느낌이라면, 지금 자신이 머리에 쓰고 있는 장비는 양안의 시야각 전체를 커버하는 화상을 쏘아주는 장비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몰입감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고 있었다.

눈앞에서 돌아다니는 3DNPC를 보면서, 히로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미리 장착한 핸드 트래커의 움직임을 인식한 코넥트가, 가상의 손을 만들어 그의 손 움직임을 가상세계에 구현해 냈다.

그렇게 NPC를 만지려고 시도한 그는, 촉감이 없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정도 기술을 2013년도에 기대하는 것이 도둑놈 심보긴 하지만, 아까 상혁이 보여준 호들갑은 진짜로 풀 다이브 기술이라도 만들어 낸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사실 첫 테스트 때 그렉의 장난에 속은 상혁의 작은 장난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체험은 히로에게 엄청난 만족감을 주고 있었다.

비록 촉감이나 후각이 구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각과 청각을 통한 체험만으로도 훌륭히 가상세계의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히로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그렉은 조용히 상혁의 옆에 다가와 말을 건넸다.

“흠. 역시 VR은 다 좋은데 옆에서 보면 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게 단점이네요.”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보다 슬슬 종료해줘야 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그랙이 키보드를 조작하자 히로의 시야에 가득 차 있던 가상의 세계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히로는, 다시 자신의 눈에 비치는 연구실의 모습을 보면서 엄청나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죠?”

상혁이 웃으며 말하자, 히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눈이 좀 아프네요.”

차갑게 식힌 안약을 상혁이 건네주자, 히로는 눈에 안약을 넣었다.

그러자 시원한 느낌과 함께 눈의 피로가 조금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히로를 보면서, 상혁은 이 장비를 사용할 때 생기는 눈의 부담에 대해 이야기했다.

“망막에 직접 화상을 쏘는 장비니까요. 100% 강도로 테스트하면, 빛이나 색의 세기도 강해지니 시신경에 많은 부담이 가는 것 같더군요.”

“그럼 그대로 출시는 못 한다는 건가요?”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건 프로토 타입이라고요.”

장비를 벗은 히로는 나츠에게 헤드기어를 넘겼다.

그리고 잠시 후, 나츠가 허공에 손을 휘젓는 모습을 보면서 상혁에게 물었다.

“아까 저도 저랬나요?”

“예.”

“이건 혼자 있을 때만 해야겠네요.”

“원래 VR기기라는 게 그렇죠.”

히로는 한숨을 쉬었다.

상혁은 자신이 가진 카드를 보여주었고, 이제는 자신이 답해야 할 차례였다.

그러나 쉽게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대체 이것의 보상으로는 뭘 제시 해야하지?’

‘협상’을 이야기하기엔, 상혁이 보여준 카드가 생각보다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물건이었기 때문에, 히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잠시 후 히로는 자신이 가진 카드로는 상혁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끗이 인정했다.

“좋은 경험을 시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인정해야겠네요. 저희 SANY쪽에서는 딱히 이정도 기술에 대한 보답으로 드릴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예. 돈이라면 MS쪽이 더 많이 가지고 있을 테고, 게다가 PTW에서 돈을 원하지도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겠죠. 아마 윌 게이트 씨가 이 장비를 본다면 바로 프로젝트 통째로 구매하겠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100% 그렇게 하실 겁니다.”

“하지만 SANY측에서는 이 기술이 필요하시잖아요? 지금 당장 출시는 못 하더라도, 앞으로의 콘솔 경쟁에서 승리하시려면, 이 기술이 SANY에게 있어서는 좋은 카드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 대가로 저희가 지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혁이 말했다.

“물론 저희가 원하는 게 돈이라면 MS에서 달라는 대로 줄 수 있겠지만, 저희는 이 기술을 비싼 값에 사줄 ‘고객’을 원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기술을 저희와 함께 완성해줄 ‘파트너’입니다.”

“그게 SANY라는 겁니까?”

“지금 저희는 프리즘을 통해 반사 시킨 화상이 각막에 주는 부담을 줄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죠.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꽤 높은 수준의 광학 기술 수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건···.”

“SANY의 카메라 부서가 가지고 있겠군요.”

“적어도 광학 기술 측면에서는, 니콘과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기업이니까요.”

“좋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SANY를 설득해서 이루어 내겠습니다.”

히로가 손을 내밀며 말하자, 상혁도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PTW와 SANY의, 신형 VR기기를 향한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오오! 상혁 씨! 이거 진짜 엄청나요! 진짜 같아! 이런 건 처음이야!”

어느새 잊혀져 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츠의 환희에 찬 목소리를 뒤로 한 채.

***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술개발을 위한 MOU을 체결했다고 해서, 8세대 콘솔 전쟁의 승부에서 SANY가 유리해진 고지를 점한 것은 아니다.

프로토타입은 어디까지나 프로토타입일 뿐이고, 상혁은 이 기기의 상용화 시기를 아무리 빨라도 7~8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상혁이 요구하는, 기기의 높은 허들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가격은 20만원 대. 무게는 500그램 이하. 선은 한 개, 혹은 무선이어야 하며 160도 시야각에 5.1채널 사운드와 노이즈 캔슬링을 기본 지원해야 합니다. 양안 화질은 최소 각 1080P 이상. 그 조건을 갖춰서 원활한 공급이 가능한 수준의 양산이 가능할 때, 시장에 공급하겠습니다.”

“조금 비싼 가격이라도 충분히 팔리지 않을까요?”

“콘솔용 보조기기로 발매하는 겁니다. 코넥트의 사례를 보아도 이 기기는 최소한 9세대 콘솔까지는 원활하게 지원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지금 기술 수준으로는 절대 구현 불가능한 가격과 성능인데요?”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나중엔 가능해질 겁니다. 모바일 시장이 커지면서, 소형 기기 성능과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있으니까. 적어도 8년 후에는 적당한 수준으로 완성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길게 봅시다. 전설의 명검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결국,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는 받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PS진영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미팅은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 기기가 발매되는 순간, 콘솔 대전의 승패가 뒤집히겠지.’

게다가 상혁은, 기기 출시에 맞춰 전용 게임의 출시 역시 약속해 주었기에, 히로는 즐거운 기분으로 관련 자료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자신이 얻어낸 성과를 임원 회의에서 설명했다.

PTW와 SANY가 손잡고, 새로운 VR기기의 개발을 하여 얻어낼 빛나는 미래에 대하여.

그러나 SANY임원진들은, 히로가 기대하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부정적인 의식으로 가득찬, 반대 의견을 쏟아내면서.

“양산까지 8년이요?”

“저희는 지금 경쟁이 가능한 카드를 원하는 겁니다. 8년 후가 아니라요.”

“가와우치 사장님. 지금 뭔가 오해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8년 후에 이런 걸 하겠다. 그래서 돈을 벌어오겠다. 이런 공수표는 초등학생도 발행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지금 개발이 거의 끝난 기술이며, 저희가 마무리단계와 양산을 맡으면···.”

“가와우치 사장님. 발매를 앞당기고 가격을 올리면 모를까, PTW에서 요구한 가격은 저희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가격입니다. 반드시 적자가 날 거고, 그 규모도 작지 않을 거고요. 저흰 MS가 아닙니다. 윌 게이트같이 뒤에서 자금을 밀어줄 수 있는 그런 쩐주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 개발비의 대부분은 PTW에서 댈 거고, 저희는 이걸로 코넥트의 기술 일부도 사용 가능할···.”

“그럴 시간에, 독점 타이틀이나 따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한국에서 너무 오래 있으셨던 것 같군요. PTW라는 회사를 너무 고평가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코넥트 덕분에 MS의 X-BOX가 많이 팔리는 것은 맞지만, 저희는 그들보다 탄탄한 퍼스트 파티를 가지고 있고, 전용 타이틀도 많이 가지고 있죠. 당분간은 그걸로 경쟁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7년 후, 8년 후에나 나올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기술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말이죠.”

그들이라고 게임 업계의 흐름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가와우치 히로는 그들이 어째서 그런 의견을 내뱉고 있는지 깨달았다.

‘정치···.’

그들로서는, 콘솔 불모지라 입지도 좋지 않은 그의 선전이 탐탁지 않은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SANY코리아라는 자리 자체가, 일종의 한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조용히 게임기나 팔면서, 주는 일이나 잘 처리하면 될 것을, 이렇게 일을 키워서 뭔가를 이루려 하는 것이 그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았다.

히로는 단지, PS 유저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선물하고 싶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코넥트때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좋은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는구나.’

히로는 절망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PTW는 다시 MS와 손을 잡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PS진영의 미래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때, 그의 귀에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저게 그렇게 대단한가?”

그것은 지금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라이 가츠오 SANY CEO의 목소리였다.

2006년, SANY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을 거쳐, 바로 작년인 2012년 CEO 취임 이후로, 본격적으로 SANY 전자 제국의 신화를 다시 쓰려 하는 그는 콘솔 게임을 통해 성공 신화를 써온 인물인 만큼 SANY의 부흥에 PS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인물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히로가 가져온 물건은 분명 게이머의 눈길을 끌 수 있을 만한 물건이었다.

그것이 비록, 지금 당장 출시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닐지라도.

묘하게 임원들이 모두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가츠오가 아는 가와구치는 미래가 없는 물건에 커리어를 걸 만큼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기에, 가츠오는 히로를 보며 말했다.

“그거, 혹시 나도 체험해 볼 수 있나?”

히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런 상황이 있을 것을 예견했던 것처럼, 한국을 떠나기 전 상혁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아마 임원 회의에서 좋은 이야기 듣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하라이 가츠오 CEO라면, 분명히 이 안건에 흥미를 보일 거라고 생각되네요.’

‘흥미를 보이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간단하죠. 한국으로 데려오세요.’

‘한국으로요?’

‘적어도 저희가 만들고 있는 물건은, 한 번만 테스트해도 이게 얼마나 미친 물건인지 알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히로에게 미소를 지었다.

‘히로 씨가 그랬던 것처럼.’

히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CEO를 보며 힘차게 외쳤다.

“한국으로 가시죠!”

이런 상황까지 예견하여 자신을 도와준 상혁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면서.

그리고 그날, SANY의 CEO와 SANY코리아의 사장.

두 사람의 대표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PTW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혁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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