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25화 (226/485)

225. 새로운 것을 완벽하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자기네 회사 게임만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특정 게임이 좋아서 해당 회사에 들어간 사람이라도, 취미가 일이 되면 고통스러운 법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QA파트에서 좀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개발 과정에서, 사내에 QA파트가 따로 있다고 다른 파트의 개발자들이 아예 게임을 안 할 수는 없다.

기획자와 프로그래머는 개발 중인 시스템의 버그 확인을 위해, 그래픽 작업자는 자신이 작업한 결과물이 정상적으로 게임 내에서 구현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개발 도중에 테스트 서버 등에 접속하여 매우 기초적인 테스트를 수행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반적으로 ‘자신이 작업한’ 것의 확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QA는 조금 다르다.

만든 것은 다른 사람인데, 그 ‘남의 작업’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버그와 문제점, 기획의 잘못된 의도로 인해 발생하는 게임의 재미에 대한 피드백 등을 수행하는 파트이기 때문에.

재미라는 알고리즘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대부분 게임에서는 스트레스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보상 체계에서 얻는 쾌감을 증대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되면, 게이머는 게임을 포기하게 될 수 있으므로 적절한 라인이 유지되어야 한다.

QA에서는 그런 부분에서의 검수도 수행하고 있었다.

과거의 게임이 그런 스트레스 전달 장치를 ‘난이도’라고 불렀다면, 현대의 게임은 그것을 ‘과금 장벽’이라고 부른다.

난이도라고 보기엔, 애당초 노력으로 뚫을 수 없거나 과금으로 간단하게 뚫을 수 있게 설계된 요소들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기에.

다른 개발자들이 ‘구현’에만 신경을 써도 된다면, QA테스터들은 실제 ‘플레이’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그것은 그들이 자사의 게임을 일과 시간 이후에 플레이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IT기업이 밀집한 실리콘 밸리에서 중견 게임회사의 QA 테스터로 일하는 로건 모리슨도 그런 식으로 자사의 게임을 싫어하는 테스터 중의 한 명이었다.

물론 일 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게임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요즘 트렌드에 맞춰 들어간다고 강제로 집어넣은 랜덤박스 요소만 제외하면.

올해로 나이 40을 바라보는 그는 올드 게이머 중의 올드 게이머였고 게임을 하는 것을 사랑하기에 업계에 투신한 많은 개발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업계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구르는 동안 게임업계의 변화를 지켜보며 수많은 게임의 테스트를 해 온 베테랑이었다.

8비트 게임 시절부터, 현대의 최신 그래픽을 갖춘 화려한 게임들까지.

그러나 그는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게임보다, 예전 게임이 더 낫다고.

‘예전 게임은 참···. 외우는 맛이 있었는데 말이지.’

액션 게임에서 RPG와 시뮬레이션 장르로 메인 스트림이 옮겨가고 나서, 게임은 유저들에게 ‘컨트롤’과 ‘반사 신경’대신 ‘정보 암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 바다 시대를 할 때 어느 지역의 어디에 가야 유적지가 있고, 어디 항구에서 투자를 얼마나 해야 숨겨진 배를 얻을 수 있는지.

밤 12시 이후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상점은 어느 마을에 있고, 최강의 무기는 어디서 얼마에 구할 수 있는지.

그 모든 정보가 유저가 가진 힘이었고 게임이 주는 재미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의 게임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랜덤 박스에서 좋은 아이템을 얼마나 빠르게 얻느냐가 강함의 척도가 된다.

잡기 힘든 보스를 잡았을 때보다, 랜덤 박스나 보스 보상이 잘 떴을 때 더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는 그런 트렌드를 좋아하지 않는 게이머 중의 한 명이었다.

‘게임은 고전 게임이 최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트랜드에 반기를 들며 ‘게임 다운 게임’을 추구하는 회사들이 몇몇 있었고, PTW는 그가 생각하는 몇 안 되는 ‘게임다운 게임’을 추구하는 회사였기에, 그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선 자주 PTW의 게임을 플레이 하곤 했다.

PTW는 AAA급 게임의 퀄리티와 경험을 전달해주면서도, 지식과 경험에 기반을 둔 재미 패턴을 추구하는 몇 안 되는 개발사였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매된 EOD는 매우 특이한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컨트롤과 피지컬이 무엇보다 중요한 FPS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총을 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임이란 개념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 게임은, 매번 플레이할 때마다 그 깊이로 로건을 감동하게 하고 있었다.

‘이야, 이런 부분까지 구현해냈네?’

매번 부대에 복귀할 때마다 어디서 복사한 조악한 불법 복제 음악 CD를 팔러 오는 꼬맹이에게 음악CD를 구매했더니, 다음번 출동 때 차 안에서 해당 CD를 재생하며 부대원들이 음악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꽃피우거나, AC/DC의 음악을 틀었더니 갑자기 마블 영화 ‘아○언 맨’1편의 이야기를 하며 잡담을 하는 부대원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평소의 스토리 조각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감동을 만들어내는 파트는 QA 직원으로 오래 일한 로건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디테일을 갖추고 있었다.

-그거 M92예요?-

-어. 얼마 전에 주문했는데 지금 도착했네.

그리고 M92가 아니라 베레타 92야. 이건 군용 제식 모델 권총이 아니라 민수용이니까.-

-잠깐 잡아봐도 돼요?-

로건은 버튼을 눌러 신병에게 권총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신병은 로건이 보는 앞에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보더니, 새 권총에 감탄하며 로건에게 말했다.

-좋은 총이네요. 역시 권총은 묵직한 맛이 있어야지.-

-네가 가진 글록 17도 좋은 총이잖아. 명품이고.-

-저는 그래도 금속 슬라이드 있는 총이 좋더라고요. 글록은 왠지 장난감 같아서.-

-하긴 그래서 나도 따로 이걸 산 거지만.-

신병은 아쉬워하며 권총을 건네주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 권총 이야기를 하며 밀리터리 덕후의 면모를 보여주던 신병을 통해서, 로건은 제식 권총 외에도 사제 총기를 자주 사용하는 미군의 총에 대한 집착을 게임을 통해 전달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며 로건은 뭔가의 찝찝함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PTW라면, 이렇게 권총에 대한 스토리를 강조해놓은 캐릭터를 배치한데 이유가 있을테니까.

그리고 로건이 그 이유를 알아차린 것은, 몇 번이고 임무를 함께 하며 신병과 정이 들 대로 든 후의 일이었다.

-젠장. 신참! 걸을 수 있겠어?-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더 빠르게 반응했더라면···.-

-지금 후회한다고 허벅지에 맞은 총알이 빠져나오기라도 하나? 지금은 탈출에 집중하라고!-

신병의 상태는, 이것이 게임 그래픽임을 감안해도 한눈에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을 만큼 창백했다.

처음부터 준비된 것처럼 그들을 유인한 적들.

그리고 포위된 상황에 내몰리면서 적의 사격에 허벅지를 꿰뚫린 동료.

필사적으로 신병을 구해낸 로건은 신병을 부축하여 탈출 수단인 험비까지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리로 떠올렸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게임 지식’으로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병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병장님.-

-제길, 말걸지 말라고! 지금 계산 중이니까!-

-그냥 가세요.-

-뭐?!-

-제가 여기서 저들을 막겠습니다. 가서 험비로 돌아가 지원을 요청하세요.-

-신병, 너 미쳤어? 우린 지금 탄환도 없고 무기도 없다고!-

-그럼 둘다 죽겠죠. 하지만 제가 버티고 있으면, 한 명은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 둘 중에 한명은 다리가 멀쩡한 쪽이어야 확률이 높을 겁니다.-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탈출을 권유하는 NPC의 존재는, 로건에게 더 이상 NPC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비장한 모습은, 동료를 살리려고 자신을 희생하는, 동료 군인의 모습, 그 자체였기에.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저는 괜찮습니다. 병장님.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뭔데?-

-어차피 죽을 거, 병장님 권총 저한테 주고 가시죠.-

“아, 이런 제길 빌어먹을 개발사 같으니···.”

로건은 뜬금없는 데서 캐릭터 설정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며 욕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뻔한 그런 장면들.

PTW라는 회사는 클리셰라고 부르는 그런 뻔한 장면을, 정말 잘 쓰는 회사였다.

음악이나 연출, 연기 같은 것으로 전개와 의도가 뻔히 보여도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그런 기술이 있는 회사.

그리고 지금 로건이 보고 있는 장면의 연출도, 개발자의 의도가 노골적이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슴에 뭉클함을 느끼게 할 수밖에 없는 연출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쥐는 느낌이 죽이는 권총이네요.-

-그거면 되겠냐?-

-그거면 됩니다. 좋아하는 총을 쥐고,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는 것만큼 멋진 최후는 없을테니까.-

그라고 죽고 싶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객기를 부리는 군인의 아집을, 게임은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멋지게 내뱉으려 하는, 배우의 실감나는 연기와 함께.

-그럼 가세요.-

-앤더슨···.-

-가시라고요! 저 빌어먹을 테러리스트 잡놈 새끼들은 내가 막을 테니까! 뒤도 보지 말고 뛰라고요!-

로건은 그렇게 했다.

물론 그에겐 다른 옵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장했던 세이브를 찾아서, 아예 이 루트로 진입했던 과거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

조금 멋없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패키지 게임이 가지는 고유의 강점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로건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희생해서 동료를 살리려고 한 앤더슨의 마음을 무시하는 선택이 될 것 같아서.

‘진짜 무서운 게임이라니까.’

로건이 평가하는, EOD의 가장 대단한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든, 나쁜 결과로 이어지든, 게이머가 그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만든 내러티브.

EOD에서는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하면서 전쟁 영웅이 된 먼치킨의 기분을 느끼는 것도 물론 좋지만, 반대로 일직선으로 나쁜 결과를 모두 감수하며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이 설계되어 있었다.

오히려 동료가 죽어 나가고, 선택을 실수해서 민간인을 사살한다거나, 저격수에 맞아 정든 동료가 사망하는 소위 ‘안 좋은 루트’들이, 감정적으로는 훨씬 좋은 연출을 하고 있었기에, 로건은 일부러 위험을 감수하며 미션을 진행할 정도였다.

오직 그런 ‘안 좋은 선택’을 해야만, 바로 전에처럼 감정이 넘쳐 흐르는 눈물 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게임 자체가 ‘영웅의 길’ 보다는 ‘고통의 길’을 선택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스토리 전달 방식이었다.

‘결국, 좋은 일이 생기던, 나쁜 일이 생기던, 내가 선택하여 발생한 결과인 이상 그 모든 게 ‘나’라는 존재라는 뜻이겠지.’

게임과는 다르게, 현실은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할 수 없다.

단지 묵묵히 그것을 견디며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갈 뿐.

EOD는 게이머에게 그런 군인이 삶을 전달해주고자 하는 게임처럼 보였다.

-영웅적인 위업이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웅적인 선택이 영웅을 만든다.-

EOD의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는, 이 게임이 추구하는 아이덴티티를 잘 표현하는 문장이었다.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 스스로가, 자신이 지금까지 선택해온 모든 선택의 결과를 납득하게 하는 게임이, 바로 EOD라는 게임이었기에.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플레이어는, 로건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배드 엔딩 루트를 찾아서 하게 만드는 게임.]

[동료의 죽음 앞에서 세이브를 부르기보단 슬픔을 안고 앞으로 걸어가게 하는 게임.]

[전쟁 소재의 FPS게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내러티브.]

[수없이 엔딩을 보면서도, 회차마다 다른 군인의 삶을 체험하게 해 주는 게임.]

[FPS의 미덕이 화려함과 액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수많은 유저들의 후기는 게임 발매 직후에 올라오던 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어있었다.

처음 그들이 접했던 EOD라는 게임은, 기존에 존재하던 FPS라는 장르가 추구하던 ‘재미’를 하나도 갖추지 못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상혁이 구현한 ‘느린 재미’라는 개념은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이라는  초기의 유저 반응을 서서히 긍정적인 느낌으로 바꿔놓았고, 덕분에  [적응하기 힘들다.] [개발사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FPS라는 장르 특유의 시원함은 어디 갔는가?] 라는 부정적인 유저 리뷰는 게임이 발매되고 시일이 지나면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겪어 가면서, 유저들은 점점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남들이 전부 ‘완성된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때, 혼자서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PTW라는 회사가, 이미 그 새로운 재미조차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진 게임회사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새로운 것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

기존 장르가 추구하는 재미를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새 재미를 유저들에게 이해시키는 유일한 방법으로 PTW가 선택한 것은,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재미라 하더라도 출시 시점에서 완벽할 때까지 게임을 다듬어서 내는 것이었다.

***

-최근 EOD의 평점 상승세가 무섭습니다.-

주로 콘솔 게임 정보를 다루는 TV쇼 진행자의 말에, 게스트로 참여한 허먼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원래부터 전문가 평점은 높았죠. 오히려 지금은 처음에 낮았던 유저 평점이, 전문가 평점을 따라잡고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렇군요. 처음에 유저 평점이 낮았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그건 아마 기존 FPS에 익숙하던 유저들이, 게임에 이질감을 느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2차 NE컨벤션에서 EOD의 폭탄 해체 파트를 체험했던 저 조차도, 이 게임의 진짜 정체를 알았을때는 좀 얼떨떨한 느낌이었으니까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우선 행사 때 유저들이 체험했던 버전은, 뭐랄까,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넘치는 그런 게임이었어요.

총성도 들리지 않고, 주변에 적들이 없는데도 입술이 쫙쫙 마르는 긴장감? 그런 느낌의 독특한 긴장감이 있는 게임이었죠.

그러나 정작 정식 발매된 게임은, 그런 플레이와는 거리가 먼 컨텐츠가 메인이었습니다.

부대를 돌아다니며 서브 퀘스트를 수행하고, 숨겨진 병과를 해금하고, 장비를 주문하거나 다른 병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공개 버전’과는 전혀 다른 플레이가 메인으로 잡혀있었죠.

그건 기대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평점이 오르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오히려 그 ‘느릿한’ 파트가 긴장감 있는 파트의 긴장감을 더 살려준다는 사실을, 유저들이 깨닫게 된 거죠.-

-그건 무슨 뜻인가요?-

-예를 들어보죠. 어느 날 인터넷 카페에 갔는데, 누군가가 저에게 부탁합니다.

배탈이 나서 이탈한 같은 편을 대신해서 못해도 괜찮으니 처음 보는 게임에 참가해달라고요.

그럼 그 게임에 몰입할 수 있을까요?-

-어렵겠죠.-

-반면에 제가 그 게임을 좋아하고, 이 대회를 위해 친한 친구들과 5달 전부터 열심히 노력했으며, 친구 어머니의 병원비가 이번 대회의 상금에 달린 상태라면 어떻겠어요?-

-같은 게임, 같은 플레이라도 플레이어가 인지하는 것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오히려 느릿한 일상파트가 있기에, 간간이 나오는 메인 미션에서의 심리적 부담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그건 32대 32명이 대규모 전장에서 미친 듯이 살육을 벌이는 기존 FPS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감각이고요.

그것은 느리지만 확실한 재미를 선사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그 느린 재미를, 이제야 유저들이 확실히 인지하게 된 거죠.-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EOD는 PTW의 완전히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8세대 콘솔 게임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봐도 될까요?-

-그래도 될 겁니다. 적어도 제가 볼 때 EOD역시 PTW의 다른 게임들처럼, 수십 수백 번의 끝을 보면서 즐기다가 서재 한 켠에 놓아두고 10년 후에 다시 꺼내서 플레이할 게임임엔 분명하니까요.-

-명작이란 이야기군요?-

-적어도 저에겐 씹명작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UGC는 어떻습니까? 요즘 베타 공개 이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그거요?-

사실 허먼이 준비한 오늘의 메인 토픽은 EOD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허먼 역시 2차 NE컨벤션의 참가자로서 UGC의 베타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접속 코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EOD도 재미있는 게임임에는 분명했다.

그가 방금 말한 것처럼, 언젠가 반드시 다시 꺼내서 하고 싶을 만큼 매우 잘 만든 게임인 것도 확실했고.

FPS라는 장르의 상식을 과감하게 깨부수며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인 것도 맞았다.

그러나 문제는, 정식 발매된 EOD가 그의 기준으로 ‘씹 명작’이라면, 아직 ‘베타테스트’중인 UGC는 ‘우주 갓겜’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정식으로 발매되어 수백만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신작을, 겨우 수만 명이 참여한 ‘베타 테스트’만으로 묻어버릴 만큼.

허먼은 오늘 그 베타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것이었다.

-UGC라···.-

-허먼 씨는 베타 테스트 키를 가지고 계시죠? 베타 키가 없는 전국의 시청자들이, UGC에 대해 궁금해할 거로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UGC란 게임이 그 정도로 기대를 받을 만한 재미를 가지고 있나요?-

-글쎄요. 적어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겠네요.-

-뭘 말해주실 수 있나요?-

-여태까지의 PTW게임과는 다르게, UGC는 적어도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은 아닐 거라는 겁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20분만 플레이해봐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UGC라는 게임은 거의 치트 수준으로 재미있는 우주 갓 게임이거든요.-

그리고 허먼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체험한 UGC가 어째서 ‘우주 갓겜’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의 콘솔 게임 팬들이 주목하여 듣고 있는, 전국 규모의 TV쇼에서.

그리고 그런 그의 설명은, 얼핏 듣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아, 한가지 먼저 말하자면, ‘UGC’라는 게임 자체는 매우 평이합니다. 그냥 고전 게임 느낌이 나는 미니 게임들을, 게임 안의 NPC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것뿐이니까요.

안에 있는 게임도 마피아 게임이라던가 생존 게임 같은 단순한 멀티 게임인 데다 그래픽은 PS2 수준보다 떨어지죠.-

-그런데도 우주 갓겜이라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허먼이 미소 지었다.

-안에 있는 AI가 완전 개 씹 사기 치트 수준의 물건이라서.-

그렇게 허먼은, 평범해야 할 게임을 ‘우주 갓겜’으로 만든 치트 덩어리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엔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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