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43화 (244/485)

243. 악마의 테스트

민준은 한마디로 바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것은 자신이 팀을 구성하기 위해 세운, 아니 그 전에 PTW에서 인재를 영입할 때 반드시 지키는 ‘대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됩니다.”

상식적으로 팀 구성을 원하는 민준이 경력이 깊은, 숙련된 인재를 얻을 기회를 마다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바키는 민준의 거절에 당황하며 물었다.

“예? 어째서요?”

“파벌 문제죠. 한 사람이 자신과 같이 일하던 멤버들을 같이 데려와 팀을 구성하는 것을 PTW에서는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파벌이요?”

“하나 묻겠습니다. 만약 저희가 바키 씨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바키 씨는 팀 내에서 본인이 책임지고 데려온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과 더 친하게 업무 협력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바키는 진지하게 고민한 후 솔직하게 답했다.

“어렵겠죠.”

“PTW라는 회사 안에서, 아이디어는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하고, 관계는 동등해야 하며, 결정은 민주적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함정이 있죠.”

“어떤 함정이죠?”

“민주적이라는 게, 무조건 옳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민준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히틀러도 민주주의 투표로 뽑힌 거 아닙니까? 특정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파벌의 존재는 회사 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마련이죠.”

“하지만 무리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본능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게 해야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 자체에서 파벌 같은 걸 구성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견이 묻히지 않는다는 분위기 자체를 만들면, 굳이 무리를 짓는 쓸데없는 짓을 할 시간에 자기 아이디어를 갈고 닦겠죠. 그리고 그게 좀 더 생산적인 방향이고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겠네요.”

“그럼 혼자라도 입사 제안을 받으시겠습니까?”

민준의 말에 바키는 고개를 저었다.

“다 알고 제안을 넣으신 거겠지만 지금 크라잉 텍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음 게임의 제작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요. 회사는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데, 경영진은 이기지도 못할 소송에 비용을 지불하고 만들지도 못할 IP를 사 오는데 막대한 지출을 했죠.”

“작년에 구매하신 홈 월드의 IP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좋은 IP이지만, 지금의 저희 회사가 소화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죠.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현재 유통을 UDI에서 대신 하는 ‘파 크라잉’ 시리즈의 개발 외에는 없습니다. 적어도 그건 개발비라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신작을 개발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애당초 저희 회사에서 자금을 받아서 신작을 만든다고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기획력이 그렇게 좋은 회사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동료들과 남겠다는 겁니까? 침몰하는 배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저만 좋은 곳으로 떠나기엔 제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중하니까요. PTW에서 우리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모를까.”

그것은 돌려 말해서 PTW에서 적자투성이의 회사를 인수해 달라는 제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민준과 마찬가지로 바키가 말한 말의 의미를 바로 눈치챈 존 스캇은 그런 그의 말을 듣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망해가는 배에서 탈출할 기회를 주겠다는데, 배를 통째로 구해달라고 제안하시네? 본인이 가진 가치를 너무 고평가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다른 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바키는 발끈해서 반박을 퍼부었을 것이었다.

그도 자신의 실력에는 자신감을 가진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나 상대는 ‘그’ 괴물 프로그래머인 존 스캇이었고, 그에 비하면 바키의 이름 따위는 없으나 마찬가지로 보아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 앉아있는 젊은 청년.

김민준.

그의 이름 역시 현대의 IT업계에선 존 스캇의 밑으로 두기 힘든 이름 중의 하나였다.

바키는 자꾸만 움츠러드는 기분을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저를 영입하시려면 제 동료들도 같이 영입해 주십시오. 그것을 위해서라면, 제 연봉을 깎으셔도 좋습니다.”

민준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PTW에는 추천 입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누군가 인재를 추천하더라도 반드시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하죠. 저분들의 실력을 제가 모르는데, 입사를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면접 기회는 드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만들려는 팀에 바키 씨와 동료분들이 같이 합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경력도 있고 기술도 있는 인재들인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거부하시는 거죠?”

바키가 갑갑한 듯 묻자, 민준이 말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인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민준의 말투는 덤덤하면서도 차가웠다.

“제가 도전하려는 영역은, 단순히 경험이 많고 코딩을 잘 한다고 뚫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누구도 갈 수 없었던 미지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 만들려는 팀이 스컹크 웍스고 그것을 위한 사람들을 뽑는데 이번 구인의 목적이죠. 저는 그것을 위해서 일부러 스택 오버 플로우에 미끼가 될 만한 알고리즘 문제를 올려두었고 바키 씨의 답변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민준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분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단순히 괜찮은 일자리가 필요한 거라면 제 인맥으로 MS든 SANY든 삼정이든 구글이든 밀어드릴 수 있습니다. 게임 회사를 원하신다면 PTW가 아닌 다른 회사로 추천해 드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스컹크 웍스는 안됩니다.”

“모두 함께 가 아니면 제가 싫다고 해도요?”

“그럼 다른 후보를 찾아야죠. 적어도 저는 제가 믿고 맡긴 파트에서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지랄 맞은 버그를 보고 싶진 않으니까요.”

“제 동료들은 그것이 어떤 시련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민준은 품 안에서 항상 들고 다니던 스컹크 웍스의 후보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펜으로 비어있는 종이 뒷면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민준은 자신이 뭔가를 적어 놓은 종이를 내밀었다.

영입 대상인 바키가 아닌, 바키가 함께 입사하고 싶다고 말했던 동료들을 향해서.

“간단한 알고리즘 문제입니다. 바키 씨의 도움 없이, 여러분들이 힘을 합쳐서 풀어보세요.”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존 스캇이 흥미를 보이며 민준에게 물었다.

“그거 잠깐 나도 봐도 됩니까?”

민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존에게 종이를 넘기자, 존은 종이에 민준이 적은 문제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존의 표정은 참으로 다이나믹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고민하는 표정에서부터, 뭔가를 깨달은 표정, 그리고 민준을 마치 악마라도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진짜로 이걸 풀라고요?”

“재능이 있으면 풀겠죠.”

“재능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존 씨는 풀 수 있는 문제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만, 나도 처음 볼 때 막막할 정도로 상식을 깨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인데? 아마 스택 오버플로우 이용자 중에 이 문제 풀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걸요?”

“그런 문제니까 의미가 있죠. 적어도 이 리스트에 있는 사람 중에 이 문제를 풀지 못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존은 종이를 뒤집어 리스트를 곰곰이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웃으며 바키의 동료들에게 문제를 넘겼다.

“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때, 바키가 뭐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민준이 먼저 입을 열어 그의 입을 막으며 경고했다.

“미리 말하지만 바키 씨가 도우면 안 됩니다. 여러분 5명이 푸셔야 합니다. 도움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저와 존 스캇 씨가 함께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택 오버플로우에 올릴 생각도 하지 마세요. 참고될만한 코드를 인터넷에서 찾는 건 자유지만, 제가 알기로 이건 지금 새로 짜지 않는 이상 기존에 풀어져 있는 코드는 없는 문제입니다. 쓸데없이 옛날 블로그 뒤지면서 방법을 찾느니 고민해서 뚫는 걸 추천해 드리죠.”

“이걸 풀면 진짜로 스컹크 웍스에 6명 모두 넣어주시는 겁니까?”

그중 한명이 말하자 민준이 씨익 웃어 보였다.

“예. 약속드리죠.”

“기한은?”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저희도 회사 내에서는 한 가닥 하는 프로그래머들입니다. 세계 최고의 게임 엔진인 크라잉 엔진 개발자들의 실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드리죠.”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존이 웃으며 말했다.

“자만심을 부릴 거면, 적어도 문제는 보고 말하는 게 좋을 텐데.”

그들은 존이 시키는 대로 종이에 적힌 문제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정확하게 존이 지었던 ‘악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민준을 바라보았다.

***

“X발 진짜 외계인인가? 문제 해결은 둘째치고 이런 문제를 생각해 낸 것 자체가 악마 같은 발상인데?”

“하지만 존 씨는 풀었잖아요.”

“젠장, 지금까지 내가 코딩을 못 한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

“포기할까요?”

“좀 더 고민해보자. 존 씨가 보인 반응을 보아서는 풀 수 없는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까.”

“아니, 이 문제가 ‘풀 수 있는 문제인가’는 지금 문제가 아니죠. 진짜 문제는 ‘이 문제를 우리 5명이 풀 수 있는가’지.”

동료들이 골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보며, 바키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민준이 건네준 종이를 복사한 문제지를 바라보았다.

‘뭐지? 이 새끼는 무슨 미래에서 온 인간인가?’

문제의 난이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내용 자체가 워낙 괴랄해서 자신도 푸는 데 5일이 걸린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민준이 종이를 건넨 그 자리에서 문제를 풀어낸 존 스캇과 이 문제를 낸 민준, 두 사람과 자신의 실력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으아아아!! X발! 도저히 안 되겠다!”

그때, 도저히 안 되겠는지 동료 중의 한명이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바키에게 다가와 말했다.

“넌 이미 풀었지? 우리 좀 도와주라.”

“안돼요. 제가 도우면 바로 알아차릴걸요?”

“우리 버전으로 좀 어레인지 하면 되지. 눈치 못 챌 거야.”

“그래도 안 됩니다. 앞면에 적힌 리스트를 보세요. 구골, MS, 윈텔···. 어느 한 명 이름값이 떨어지는 사람이 없어요. 모르는 이름도 있긴 하지만, 분명 그 사람도 민준 씨가 직접 실력을 확인하고 넣은 사람이겠죠. 민준 씨는 그런 괴물들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 문제는 스스로 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젠장, 모든 사람이 너같이 축복받은 재능을 타고난 건 아니라고.”

“고민하면 풀 수 있는 문제에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건 어때요?”

“이미 우리가 아는 접근 방식은 다 해봤다고!”

“아는 방식 말고 새 방식을 만들어서 접근하셔야죠.”

“그게 말은 쉽지···.”

이제까지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문제를 척척 해결하던 동료들이 거대한 벽 앞에서 절망하는 모습을 보며, 그 순간 바키는 민준이 어째서 크라잉 텍의 수많은 엔지니어 중에 자신만을 원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던 동료들을, 민준이 어째서 받지 않으려고 한 것인지도.

‘모든 걸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해결하지 못할 만한 문제를 만난 적이 없는 거였구나···.’

자신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료를 슬픈 눈으로 보고 있던 바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자신의 도움이 없으면 저들은 그 문제를 절대로 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나 바키가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했던 자신과 다르게,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민준이 ‘어떻게’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

“지루하구먼.”

“TV라도 보세요.”

“방송이 죄다 독일어라 봐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럼 참선이라도 하세요.”

“전 불교 신자가 아니에요.”

“그럼 주무시던지.”

“그러지 말고 문제 하나만 더 내주시죠?”

“문제 푸신 지 30분도 안 지났습니다.”

“그러지 말고 하나만 더 내주지?”

“오늘은 그게 마지막이라고 약속하셨잖아요.”

바키와의 미팅이 있던 날 이후로, 존 스캇은 호텔방에 쳐박혀서 민준이 준 프로그래밍 문제에 대한 해답을 노트북으로 코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얻어내자, 그다음엔 민준에게 새 문제를 만들어내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런 존을 보며 민준은 한숨을 쉬더니 몇가지 문제를 더 만들어주었고, 존은 눈을 반짝이며 문제에 몰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풀고는 계속 새 문제를 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고, 귀찮아진 민준은 그런 그에게 하루 3개라는 제한을 걸고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스택 오버플로우에서 답변 다는 게 인생이자 취미인 존에게 하루 3개의 문제는 지나치게 적은 개수였다.

“젠장, 팀 리더가 이렇게 좀생이 같아서야.”

“아니, 저도 종일 문제만 만들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심심하면 스택 오버플로우에 답변이라도 다세요. 거기 존 씨의 답변을 기다리는 어마어마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저만 괴롭히시는 겁니까?”

“거기 올라온 질문의 80%는 이미 누군가 답변한 건데 질문자가 검색을 안 했거나 봐도 이해가 안 가서 올리는 질문들이고, 민준 씨가 주는 것처럼 기발하고 참신한 문제는 없으니까 그렇죠.”

“찾아보면 괜찮은 질문도 꽤 있습니다.”

“찾기 귀찮아. 눈앞에 원더풀한 퀴즈 제조기가 있는데, 굳이 인터넷의 바다를 뒤지고 싶지 않아요.”

“그럼 차라리 존 씨가 그런 참신한 문제를 만들어보시죠?”

“어?”

“제가 한 것처럼, 존 씨가 팀원으로 영입할 만한 인재만이 풀수 있는 문제를 만들어서 스택 오버플로우에 질문을 올리면, 누군가 답변을 달 테고, 그 사람을 스컹크 웍스로 데려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와, 그 생각은 못 했는데?”

존은 씨익 웃으며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는 민준을 보며 말했다.

“좋아. 제가 민준 씨가 올린 것보다 더 괴상한 질문을 만들어서 올려드리죠.”

“그렇다고 현재의 인류가 풀 수 없는 난제 같은 걸 올리시면 안 됩니다. 물론 팀원 전체가 전부 존 씨 같은 인재들이면 좋겠지만, 그건 진짜 손에 잡힐 정도로 적으니까요.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벽을 뚫을 수 있는 사람이 풀만 한 문제가 좋겠죠.”

“그냥 무지막지하기 어렵게 내면 안 되나?”

“그러다 제프리 딘 씨 정도밖에 못 푸는 문제가 되면 어쩌려고요.”

“그것도 그렇네.”

“해보시면 알겠지만 의외로 퀴즈는 푸는 것보다 만드는게 어렵습니다. 뭐, 존 씨라면 저보다 더 멋진 질문을 만들어내실 수 있겠지만요.”

민준의 마지막 말은, 칭찬이라기보다는 도발에 가까웠다.

그리고 존 스캇은, 그런 도발에 엄청나게 약한 인물이었다.

“두고 보시죠. 그 잘생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 만들어드릴 테니까.”

그때, 민준의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 두 사람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민준은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존에게 잠시 조용히 해주기를 부탁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독일어가 민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Hallo? Ist die Telefonnummer von Min-Jun korrekt?(여보세요? 이게 민준 씨 번호가 맞습니까?)-

독일어를 모르는 민준은 당황하며 영어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옆방으로 달려갔다.

독일어 통역을 위해 함께 체류 중인 나스타샤 킨스키가 옆방에 묵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준이 갔을 때, 그녀는 캐쥬얼한 복장으로 누워서 티브이를 보는 중이었다.

민준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녀가 있는 앞에서 휴대 전화를 스피커폰 모드로 돌렸다.

그러자 이전에 미팅에서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3자간 통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민준에게 바키가 가장 먼저 전달한 것은, 민준이 말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스컹크 웍스로 동료들을 전부 데려가고 싶다는 제안은 철회하겠습니다.-

-약속한 일주일까지는 아직 이틀 남았는데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못풀테니까요.-

-이제 이해하셨군요?-

-예.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민준 씨가 요구하는 실력의 수준이, 게임 업계에서 요구되는 수준을 아득하게 상회 한다는 것도요.-

-그럼 좋습니다. 스컹크 웍스 가입을 환영합니다. 나머지 분들께는 약속대로 PTW입사 면접 기회를 드리죠.-

-감사합니다.-

-아뇨, 사실 요구되는 재능이 다른 것일 뿐, 바키 씨가 보장하는 동료분들의 재능도 대단한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을 잘하는 것과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은 서로 다르죠.-

-저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게임 제작을 하면서 어떤 문제도 해결해왔던 동료들이, 참조할 만한 코드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달았으니까요.-

흔히 우스갯소리로 흔히 하는 말 중의 하나가, 프로그래머에게 ctrl+c,v 기능을 못 쓰게 하면 일을 못 한다는 이야기였다.

프로그래머들은 스택 오버플로우나 깃 허브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구축된 집단 지성의 활용에 익숙하고, 자신들이 아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은 집단이다.

그렇기에 일을 할 때도 문제가 생기면 남에게 질문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여 문제를 해결할 때가 많았고, 그것을 얼마나 능숙하게 잘 하느냐가 실무 능력의 기준이 될 정도로 그들의 업무 협력 체계는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상혁이 ‘깃 허브라는 이름의 칼라로 묶여 있는 프○토스 같은 놈들’이라고 놀릴 정도로.

하지만 그런 놀라운 능력은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민준은, 자신이 구성한 팀의 일원들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기를 원했고.

실무 능력만 따지면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 확실한 크라잉 텍의 경력 기술자를 5명이나 거절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키는, 민준이 요구하는 ‘스컹크 웍스’의 멤버의 기준이 그토록 높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었다.

민준이 준 리스트에 있는 멤버의 숫자만 50명.

그중에 7명은 존 스캇의 삽질로 인해서 영입 불가 상태가 되어 버리기도 했고, 5명은 제안을 거부했는지 이름에 줄이 그어져 있었지만, 나머지 멤버들 중의 절반만 모아도 스택 오버플로우 상위권 멤버들은 죄다 영입한 상태가 된다고 할 수 있었다.

ctrl+c,v 기능을 막던, 인터넷을 끊어버리던, 본인이 가진 지식과 실력만으로 코드를 직접 ‘창조’해낼 수 있는 괴물들.

바키는 민준이 그런 괴물들을 모아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민준 씨.-

-예.-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질문하세요.-

-민준 씨가 팀 스컹크 웍스에 어떤 인재를 요구하는 것인지는 이제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저를 영입하겠다고 하신 것인지도요.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남는데요. 대체 이정도 멤버를 모아서 뭘 하실 생각입니까? 리스트에 있는 인원들 대부분이 어느 회사를 가던 CTO자리 정도는 가볍게 꿰찰 수 있는 멤버들이던데요?-

그러자 민준은 잠시 뜸을 들이다 바키의 질문에 대답했다.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말씀하신 대로, 리스트에 있는 인원들은 한명 한명이 전부 기술적 한계 따위는 공성 망치같이 때려 부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해야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한 가지밖에 없겠죠.-

-그게 뭡니까?-

바키의 질문에 민준이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된다는 믿음이 실려있는 목소리로.

-시대의 벽. 스컹크 웍스는 시대가 가로막고 있는 ‘불가능’의 벽을 박살 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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