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새로운 희망
[오늘의 웹진, 주요 머릿기사 살펴봅시다.
먼저 코타쿠입니다.
‘프룸 소프트웨어는 아머드 코아의 신작을 검토하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지금은 라이트 소울 시리즈에 밀려 제작 계획이 전혀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프룸 소프트웨어의 인기 로봇 시리즈에 대한 정보입니다.
회사가 라이트 소울 시리즈의 성공에 고무되면서, 프룸 소프트웨어는 PS2와 PS3가 발매되었을 때, 신형 PS가 공개될 때마다 항상 런칭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던 아머드 코아 시리즈의 개발 대신, 새 IP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올해 3월에 출시되었던 소울류 액션 게임, 블레이드 본이 되었고요.
하지만 기존에 아머드 코아 시리즈를 사랑하던 많은 팬들, 그리고 그 덕에 프룸 소프트웨어를 떠나 다른 회사로 간 개발자들에게는, 그것은 아픈 소식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들린 소식은, 어쩌면 그 팬들에게는 가장 기다리고 있던 소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전에 프룸 소프트웨어에서 아머드 코아 팀 소속으로 작업하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 직원에게, 이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다시 프룸 소프트웨어에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엔지니어는, 프룸 소프트웨어에서 오직 아머드 코아만을 작업했기 때문에, 아머드 코아의 신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이직 제안이 올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이 이야기가 올라온 게시글엔 유저들의 댓글이 무려 5백 개 이상 달리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유저 Q1W2E3R4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 기사는 잠시나마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유저 ASDF123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소울 시리즈도 좋아하지만, 언제나 내 마음속 1픽은 아머드 코아 시리즈였다.
제발 저 정보가 진실이길 바란다.’
콘솔 리퍼블릭입니다.
‘PTW와 SANY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 그리고 MS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려 하고 있다.’
기자는 장문의 기고 글에서, MS에 다니는 자신의 지인이,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PTW와 SANY가 힘을 합쳐 뭔가를 진행하고 있고, MS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에 대해 짐작가는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MS에서 걸은 정보 유출 제한 때문에 그것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도 했습니다.
기자는 처음엔 이 정보에 대해 무시하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8세대 콘솔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으로 기록될 OGC의 출시 이후로. 침묵하고 있는 PTW의 행보에 대해서 돌아다니고 있는 업계의 뜬 소문만 모아도 책 한권은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 기업의 관련 자료를 살펴보던 기자는 뭔가의 직감을 느꼈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이전과 다르게 갑자기 공격적으로 여러 게임회사에 인수 제의를 넣는 MS의 행보를 보면, 어쩌면 그 정보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네요.
기사의 마지막에서, 기자는 그 정보가 사실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만일 그 정보가 전부 사실이어서, 현재 8세대 콘솔 시장을 씹어먹고 있는 거대한 공룡, MS가 두려워할 만한 무서운 무언가를 SANY와 PTW가 함께 출시하려는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2차 NE 컨벤션 이후 그를 가장 흥분하게 하는 뉴스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기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전격 PS 온라인입니다.
‘유저는 언제나, 그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콘솔 리퍼블릭의 기사가 올라온 지 두 시간 만에, 한 게임 칼럼니스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주로 PS 관련 칼럼을 올리는 그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PTW에서 가장 최근에 발매한 작품인 OGC는, 베타 테스트 기간부터 이미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게이머들의 천국이란 어떤 곳에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 게임은 굳이 하지 않아도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한정된 인원이 아니라 모든 유저가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정식발매가 되고 나서, 지금의 콘솔 유저들은 자신들의 게임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자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고도 했는데요,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을 하면서도, 이런 게임을 만든 회사가 만들 차기작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는 것이 그를 슬프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건 기자에게, 마치 미친 듯이 재미있게 읽고 있는 소설의 완결편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기분이 들게 한다네요.
지금은 너무나도 즐겁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현재 하고 있는 게임을 아껴먹고 싶어지는 기분이라고, 기자는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콘솔 리퍼블릭에 올라온 기사를 보았을 때, 기자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그 역시 그 정보가 사실이길 진심으로 바라며, 만약 그 비밀스런 움직임의 결과물이 PS진영에서 나온다면, 자신은 더 바랄 게 없다고 합니다.
이 게시글은 3만 7천개의 공감을 받으며, 현재 콘솔 유저들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저 Chris Ramsa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역시 이 글에 공감한다. 물론 매번 열리는 NE 컨벤션마다, 언제나 날 충격에 빠지게 만드는 PTW의 비밀주의도 충분히 게이머들을 즐겁게 만들지만, 적어도 힌트 정도는 주는 것이 지금의 갈증을 해결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저 Mizukun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침묵이 너무 길었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 적어도 3차 컨벤션이 언제인지는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의 게임 뉴스 헤드라인 이었습니다.]
***
주목받는 기업의 행보가 언제나 그렇듯, PTW는 게임 업계에서 가장 루머의 중심이 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무리 문의를 하여도, PTW에서는 공식적으로 차기작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정보의 진위는 다음 컨벤션이 열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떠도는 루머에 대해 딱히 제약을 거는 것도 아니라서, 일부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온갖 희망 사항을 담은 루머글을 양산하여 뿌리기도 했다.
‘PTW의 엔지니어들이 미군 비밀 작전 지역인 51구역에서 발견되었다.’던가, ‘PTW가 현재 풀 다이브 MMORPG의 개발에 착수했다’던가.
상혁이 그런 가짜 정보를 내버려 두는 것엔 이유가 있었다.
그런 정보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만들어둬야만, 언젠가 실수로 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가짜 정보에 묻혀서 진짜 정보가 퍼지지 않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이쪽에서 고의로 뿌리려는 ‘진짜’ 루머를 사람들이 믿게 하기 어렵게 만드는 허들이기도 했다.
넘쳐나는 가짜 루머 속에서 어떻게 ‘티 안 나게’ 진짜 정보를 뿌릴 것인가.
상혁은 그것을 위해 완벽히 치밀한 계획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PTW의 주도로, 최소 3개 이상의 게임사가 함께 무언가를 진행 중이다.’
‘프룸 소프트웨어에서 차기작으로 아머드 코아를 발매한다는 정보는 70%이상 확실한 정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SANY 엔지니어들이 천하대에 상주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수많은 루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던 기사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기사들이 속속 올라오면서, 유저들의 마음속에는 한가지 단어가 떠오르고 있었다.
기대감.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쌓인 상자를 보고 있는 기분으로, 유저들은 눈에 불을 켜고 퍼즐 조각을 맞추려 하고 있었고 상혁은 그런 커뮤니티 곳곳에 퍼즐의 힌트가 될만한 다양한 게시글을 일반인인 것처럼 게시함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거기에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업체들이 상혁에게 지시받은 내용을 풀기 시작하면서, 콘솔 게이머 커뮤니티는 거대한 흥분에 휩싸이고 있었다.
어떨 때는 하루, 어떨 때는 일주일 간격으로 정보를 풀어가며, 상혁이 유저들에게 보여준 밑그림의 정체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PTW에서 다른 게임사들과 함께 3차 NE컨벤션을 준비 중.’
‘해당 회사 중에 프룸 소프트웨어가 있으며, 아마도 아머드 코아 IP가 확실.’
‘번다이 역시 참여하였으며 IP는 불명.’
‘SANY에서 PS용 주변기기의 생산 라인을 말레이시아에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규모가 심상치 않음.’
‘일본 내 몇몇 게임사들이 직원들에게 일제히 비밀유지 계약을 강요했으며 그것 역시 PTW와 관련 있음.’
‘삼정에서 공격적으로 확장 중인 파운드리 사업부에 SANY측에서 대량의 APU를 발주.
그러나 어디에 쓰일 것인지는 불명.’
결국 상혁이 뿌린 그 수많은 정보들은 게임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 중 한 명인 제이슨 슈라우더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여기 뭔가가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 업계 기자들이 다른 기자들과 가장 다른 점을 꼽는다면, 게임 기자들은 ‘탐사 보도’를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었다.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있기만 해도, 게임 회사에서 알아서 보도 자료를 배포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형태의 보도 방식으로는, 업체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는 있어도, 업체에서 숨기려고 하는 정보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제이슨 슈라우더는 게임 기자로서는 특이하게도, 업체에서 뿌리는 공식 기사보다 자신이 취재해서 얻어낸 정보를 기사로 작성하는 기자로 유명세를 얻었다.
물론 탐사 보도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가 조사하는 것들은 게임 업계가 숨기려 하는 어두운 면을 비추는 기사들이긴 했지만.
‘게임 개발 업계의 과도한 크런치 문화’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일 때 개발자를 대량으로 고용하고 게임이 출시되면 정리해고 해버리는 비디오 게임 업계 문화에 대한 비판’
‘록스타 게임즈 경영진의 직원에 대한 갑질’
거기에 기대받던 IP가 침몰할때마다 해당 게임이 왜 실패했는지를 조명하는 기사들까지.
그가 주로 올리는 기사들은 게임 업계의 어두운 이면을 밝히는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흥미를 가진 이슈는, 이전에 그가 다뤘던 이슈들과는 꽤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건 유저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그 희망과 얽혀있는 복잡한 퍼즐들은, 탐사 보도 전문기자인 제이슨의 흥미를 끌 만한 것이었다.
정확히 통제된 정보만 유출되길 원하는 상혁의 입장에서는, 제이슨이 PTW의 행보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애당초 제이슨 슈라우더가 업계의 어둠을 파헤치는 것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동시에 그는 게임 기자 전체를 통틀어 사전 유출 정보의 정확도가 가장 높은 기자로도 손꼽히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상혁으로써는 대응할 방법이 없었는데, 애당초 제이슨이라는 기자도 자신이 기사를 쓰기 전에는 해당 이슈에 대한 조사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는 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쪽은 상대가 뿌린 정보가 고의적으로 뿌린 퍼즐이란 것을 전혀 모르는 상황.
그리고 반대쪽은 상대가 자신이 뿌린 퍼즐 밖의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업계에서 ‘가장 정보를 잘 숨기는 개발사’와, 업계에서 ‘가장 정보를 잘 캐내는 기자’의 진검 승부가,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
‘얘네는 무슨 게임에 목숨이라도 걸었나?’
업무 협력을 위해 PTW 본사에 방문한 폴리포디 소프트의 대표,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PTW와 기술지원을 위한 협업을 진행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애당초 회사 내부의 분위기부터가, 일본의 여타 게임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에.
컨소시엄이 구성된 직후부터 시작된 PTW의 언론 플레이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를 가장 놀라게 만든 물건은 역시나 민준이 만든 STC였다.
그리고 그것은 미야자키가 데려온 폴리포디의 엔지니어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이래도 60프레임이 나온다고?”
2015년 10월에 파리 게임쇼에서 발표한 ‘구란트리스모 스포트’는, 사실 거듭된 타협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타협의 원인은, 폴리포디의 개발팀이 자신들이 원하는 그래픽 수준을 가지고 8세대 콘솔에서 부드러운 게임플레이를 구현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은 레이싱 게임이 가진 치명적인 딜레마라고 할 수 있었다.
순간의 섬세한 조작과 스피드 감을 생명으로 하는 장르지만, 반대로 그래픽이 좋지 못하면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레이싱 게임이란 장르였기 때문에.
그래서 폴리포디의 개발자들은 선택과 집중이란 전략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눈이 가게 되는 차량의 그래픽 수준은 크게 올리면서, 상대적으로 덜 체감되는 물리엔진이나 환경 효과를 깎아나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은 겉으로 보기엔 멋져 보이지만 내부는 어딘가 속 빈 강정같이 보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리얼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라는 카피와는 아예 다른 물건이 되어 있었다.
미야자키도 그것 때문에, 이번 작품의 포지션을 정식 넘버링이 아니라 외전 격의 실험적인 작품으로 진행하려고 한 것이었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구란트리스모 스포트’는 8세대 콘솔에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던 그들의 이상을 사정없이 깎아 만든 일종의 결함 품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유저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어찌 되었건 그렇게 해도 매출은 나올 테니까.
그리고 그 수익을 바탕으로, 미야자키는 차세대 콘솔인 9세대 콘솔에서 정식 넘버링 제품을 가지고 승부수를 던질 예정이었다.
PTW에 와서 STC에 ‘원본’을 넣고 돌리기 전까지는.
미야자키는 한국에 방문할 때, 일부러 8세대 콘솔에 맞춰서 사양을 조절한 버전이 아닌, 적절한 프레임을 맞추기 전의 온갖 기능들이 전부 구현된 ‘오리지널 버전’을 가져왔다.
그러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애당초 자신이 가져온 물건 자체가 8세대 콘솔에서는 돌리는 게 불가능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타사의 레이싱 게임의 그래픽을 가볍게 추월하면서도, 비나 빛 반사 등의 환경 효과가 그대로 살아있고, 노면의 상태에 따른 물리 효과의 적용도 전부 되어있는 오리지널 버전은 현존하는 최고 사양 PC도 처리에 애를 먹을 정도의 괴물 같은 요구 사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야자키는 처음부터 3가지 버전을 준비해서 들고 왔는데, 하나는 PGS에서 공개되었던 데모를 돌린 최적화 버전, 하나는 그가 ‘최소한 이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한 ‘개인적인 희망’ 버전, 그리고 마지막이 ‘이건 9세대 콘솔밖에 못 돌리겠다.’라고 생각한 오리지널 버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야자키에게, STC란 ‘괴물’은 오리지널 버전을 PS4에서 콘솔 부스팅 없이 60프레임을 뽑아내는 먼치킨 같은 최적화 성능을 보여주었다.
물론 4K가 아닌 FHD해상도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미야자키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임 화면이 의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넘버링 발매도 가능하겠다. 적어도 이 정도 최적화 능력이라면 타사 게임 전부를 압도하는 최고의 레이싱 게임을 만들 수 있겠어.’
미야자키는 즉시 머릿속으로 원래 잡고 있었던 ‘구란트리스모’의 발매 계획을 수정했다.
애당초 판매량이 낮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라이선스 비를 아끼기 위해 줄여놨던 차량의 숫자를 크게 늘리고, 서킷의 종류도 역대 시리즈 중 가장 많이 넣을 수 있도록.
민준과 스컹크 웍스가 완성한 STC의 성능은, 그렇게 미야자키로 하여금 자신의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렇게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미야자키의 옆에서 속으로 경악하며 구란트리스모의 시연 버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회귀 전 정보로 기억하고 있는 ‘구란트리스모 스포트’가 원래 그리려던 그림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미야자키로 하여금 8세대 콘솔 버전을 희생하게 하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물건이었다.
‘말 그대로 9세대 콘솔에나 맞을 물건이었군.’
회귀 전의 폴리포디는, 결국 자신들이 구현하려던 이상을 포기하고 주요기능들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반쪽짜리 게임을 만들어 ‘스포트’란 이름을 붙여 팔아먹었었다.
그리고 유저들에게 오지게 욕을 처먹었었고.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이번엔 민준이 만든 STC가 있고, 차량이나 서킷의 라이선스를 구매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SANY에서 대줄 테니까.
회귀 전엔 존재할 수 없었던 게임을 보며 즐거워하는 유저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상혁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미야자키를 향해 말했다.
“미야자키 씨.”
“예.”
“말 그대로, 시리즈 최고의 물건이 나올 수 있겠네요.”
“그래야죠.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럼 나머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른 곳에 가봐야 해서.”
그렇게 말한 상혁은 테스트 룸을 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상혁의 제안으로 기존에 자신들이 만들던 IP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IP를 개발 중인 협력사를 방문하기 위해.
무려 5개의 프로젝트가 동시 진행되는 상황.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상혁은 한없이 즐거웠다.
지금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IP중의 하나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자, 민준아.”
정문을 나선 상혁이 자신을 기다리던 민준에게 말하자, 민준이 답했다.
“왜 그렇게 웃고 있어?”
“당연히 웃어야지. 내가 제일 사랑하는 IP의 게임을, 우리 회사 컨벤션에서 발표하게 되는 거잖아.”
그리고는 힘차게 앞으로 걸어나가며 소리쳤다.
“가랏! 민준! ‘기동전사 간담’의 VR 버전 제작 상황을 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