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노하우 결집
간담 개발팀에서 만든 인트로 시퀀스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연방에서 비밀리에 배송 중인 정체불명의 트레일러와 그를 옮기기 위해 파견 나간 주인공.
그리고 그 트레일러를 파괴하기 위해 나타난 적군의 MS ‘자코.’
볼을 운전해 트레일러를 우주선으로 옮기려던 상혁은 적이 나타나자 반격하려 했지만 순간 자신이 타고 있는 기체에 무장이 아예 실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애당초 상혁이 타고 있는 기체는, 볼이 아니라 볼이란 기체의 원형이 되는 기체인 우주용 작업 포드 SP-W03 였기 때문에.
아무튼 덕분에 주인공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공격에 휩쓸려 자신이 배송하려던 트레일러에 날아가 처박힌다.
그리고는 붉은 조명과 함께 뜨는 산소 유출 경고를 보며, 위기의 순간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트레일러의 벌어진 틈새로 자신을 습격한 인간형 로봇과 비슷하게 생긴 기체를 발견하고 살기 위해 기체를 옮겨 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인공이 타게 된 기체가, 바로 연방에서 ‘V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극비리에 개발 중인 ‘간담’의 프로토 타입이었고.
-설명서! 조작 매뉴얼은 없는 건가?!-
밖에서는 계속 트레일러가 공격받고 있는 가운데, 어두운 트레일러 안에서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매뉴얼을 들고 조작법을 익힌다.
그리고 간담을 타고 적을 물리치지만 처음 공격을 받을 때 얻은 부상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만다.
약 5분 길이의 초반 시퀀스는 간담의 팬이라면 누구나 원작을 연상하게 하는 좋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PTW VR에 어울리는 완벽한 연출 시퀀스로 엄청난 몰입감을 주고 있었다.
상혁은 그 부분에 크게 만족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디테일이 엄청 강화되었군.’
실제로 간담의 파일럿 좌석에 앉는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플레이어가 위치한 내부 공간의 구현이 잘 되어 있었다.
처음 상혁이 탑승했던 볼의 좌석은 우주에서 작업하는 작업자의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모델의 사진이 걸려있거나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벽에 걸린 작은 소화기와 점심처럼 보이는 알 수 없는 형태의 통조림이 비닐봉지에 담겨 유리창 근처에서 흔들거리는 것도 그러했고.
반면에 개발 중인 기체라는 것을 보여주듯 손때가 타지 않은 느낌으로 이곳저곳에 봉인용 씰이 붙어있는 프로토타입 간담의 좌석은 화면부터 볼에 달린 커다란 유리창이 아닌, 전원이 들어와야 앞을 볼 수 있는 전자 스크린 같은 느낌으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주인공이 위기의 순간에서 필사적으로 찾아낸 조작 매뉴얼은, 원작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것’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단순히 자코 몇 마리를 잡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가득 원작 뽕을 채워주는 연출에 상혁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테스트 플레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는 VR기기를 벗으며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물건을 개발해낸 칸베에게 말했다.
“좋네요. 원작 팬이라면 미친 듯이 빠지겠어요.”
“저, 정말입니까?”
“예. 마치 원작 세계관의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느낌이네요. 왠지 내가 여기서 싸우는 동안, 원작 주인공도 우주 어딘가에서 자코랑 싸우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파일럿 좌석의 디자인이 기체마다 다른 것 같던데, 맞나요?”
“맞습니다. 지금은 일부 기체만 적용되어 있지만,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전체 MS별로 전부 다른 좌석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흠. 그런 거라면 커리어 모드에서 트로피 같은 개념으로 실내 장식 같은 걸 추가해줘도 좋겠네요. 기체를 옮겨도, 플레이어가 어떤 식으로 업적을 쌓아왔는지 알 수 있게요.”
“우주 크래프트 싱글 모드에서 미션 진행하면 추가되는 장식처럼 말입니까? 좋네요. ‘내 기체다’라는 느낌도 더 살 것 같고.”
칸베가 앞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내 상혁의 아이디어를 받아적고 다시 질문했다.
“다른 개선할만한 사항은 없을까요?”
“아뇨, 처음 버전하고는 완전히 다른 게임 수준으로 달라져서 지금은 매우 마음에 듭니다. 지금 인트로 시퀀스를 보면 퍼스트 간담 시대부터 시작해서 1년 전쟁을 관통하는 식으로 커리어 모드를 구성하시려는 것 같은데, 맞나요?”
“예. 맞습니다.”
“그럼 전반적으로 우주 세기 기체만 다루게 되나요?”
“그럴 생각입니다. 물론 번다이에서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번다이는 게임 그 자체보다는 미디어믹스를 통해서 증가하는 프라모델의 매출에 좀 더 관심을 보였고, 그렇기에 내부적으로 기대를 많이 받는 이번 작품에 대해서 가급적이면 최대한 많은 기체를 노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칸베는 무리하게 참전작을 늘리기 위해 스토리가 꼬이는 것을 감수하기보다는, 아예 우주 세기 간담의 세계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느낌으로 커리어 모드를 구성하길 원했다.
그게 팬들이 더 원하는 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상혁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럼 번다이 측은 제가 설득해드리도록 하죠. 저희 쪽에서 그렇게 원하고 있다고 한다면 번다이 측에서도 무리하게 강요하진 못할 테니까요.”
“그래 주시겠습니까?”
상혁의 말에 칸베는 고마움을 느꼈다.
아직 회사 내부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개발팀이 아니기에, 지금까지는 개발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이 수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했지만, 현재는 PTW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그 부분을 상혁이 전면에서 탱킹하면서 다 막아주고 있어 매우 편한 분위기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의견이 최우선이 되는 이런 PTW의 분위기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개발을 진행해온 칸베 입장에서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간담의 팬이 아니었다면 이직도 고려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 칸베에게 상혁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세요.
지금처럼만 하시면, 아마도 이건 역대 최고의 간담 게임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
PTW와 4개 기업이 참여한 이번 협업은 대체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애당초 게임 개발이라면 이골이 난 전문가들이,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이전의 상태로는 뚫을 수 없었던 ‘한계’를 돌파해보자는 느낌으로.
그것은 누군가에겐 기술적인 한계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겐 경험적인 한계이기도 했다.
그러나 각자가 넘으려 하는 벽이 서로 다른 것과는 별개로, 그들 모두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가진 ‘자신만의 능력’으로 만들었던 게임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최고의 게임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도달하려는 목표를 위해서, 5개의 개발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PTW VR이라는 기기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좋네. 의도대로 굴러가고는 있지만, 이 정도로 다들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개발 현황을 검토하고 있는 상혁이 말하자, 민준이 동의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리스크 하나 안 지고 해보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좋은 기회니까.”
“그래서 그런지 돈을 미친 듯이 쓰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다 SANY가 내는 거잖아?”
“그래도 어제 나츠 씨 통해서 연락이 왔더라고.”
“뭐라고?”
“제발 ‘적당히 해주세요’라고 전해달라던데?”
“그래?”
현재 ‘쩐주’역할을 맡은 SANY에게 가장 많은 개발비를 뜯어가고 있는 개발팀은 게임 자체가 라이선스로 떡칠 되어 있는 ‘구란트리스모’개발팀이었다.
구란투리스모를 개발 중인 폴리포디의 대표 미야자키는, 이전 공동 회의에서 칸베가 개발한 간담 VR을 시연해보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전까지의 그는 구란트리스모 시리즈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차량의 외형적 디테일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VR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만큼 플레이어가 탑승하게 되는 좌석의 내부 디테일이 몰입감을 전달하는 생명이라 할 수 있었고, 거의 ‘텔레포터’같은 느낌으로 몰입감이 강화된 PTW VR은 그 느낌이 더욱 강했다.
TPS와 FPS의 차이.
칸베는 정확하게 그 부분을 공략하고 있었고.
그 이후로 구란트리스모 개발팀에서는 개발 중점 사항을 차량 내부 디테일 구현으로 바꾼 상태였다.
정말로 유저가 해당 기종의 차량에 탑승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핸들의 형태부터 대시보드의 재질, 계기판의 모양과 동작 방식, 각 차량에 따라 시동을 거는 모션까지.
현재의 구란트리스모 개발팀이 실내 디테일에 보여주고 있는 집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예 개발자가 해당 차를 타보고 자신들이 구현한 VR과 비교한 다음, 안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까지 전부 수정하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현재 개발 중인 PTW VR용 구란트리스모는, 전 세계 차량 제작사에서 사용하는 수백 종류의 내장재 재질에 따른 텍스쳐와 수천 종류의 대시보드 디자인, 그리고 차량 옵션에 대한 차이까지 전부 구현되는 중이었다.
물론 그 ‘디테일’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전부 SANY가 내고 있었고.
정말로 상혁이 보장한 대로 부담 하나 없이 개발이 가능한 환경의 힘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미야자키가, 최근 회의에서 상혁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아마도 이번 구란트리스모는 역대 시리즈 중 가장 많은 개발비가 들어간 작품이 되겠지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미야자키의 목소리는,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깊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야자키의 말을 떠올리며 상혁이 만족한 표정으로 구란트리스모 개발팀의 개발 상황을 검토하고 있을 때, 민준이 물었다.
현재 협업을 진행 중인 나머지 개발팀의 진행 상황에 대한 질문을.
“아머드 코아 VR은 해봤어?”
“어. GOS의 애니메이션 판을 제작할 때 들어간 이펙트 처리 기술이 지금은 인 게임 이펙트를 처리하는데 들어갔지.
덕분에 지금 인 게임 그래픽 퀄리티를 보면 무슨 영화 보는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물론 GOS때 쓰인 기술을 그대로 넣을 수는 없었다.
그건 6세대 콘솔이었던 PS2시절 발매된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애당초 게임기 스펙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렌더링 센터를 수개월씩 돌려가면서 처리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이미 출시 시점에서 시대를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던 결과물을 8세대 콘솔에서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무리 STC의 힘을 빌리더라도 무리였다.
하지만 거의 집념 수준으로 그래픽 퀄리티에 집착하던 아머드 코아 개발팀은 스컹크 웍스와 STC의 도움을 받아 기어이 GOS 애니메이션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그래픽 수준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한번에 처리되는 이펙트의 수를 줄이고, 대신 현실감을 강조하는 방법을 취하면서.
그리고 그것은 GOS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PTW가 쌓아 올린 노하우 덕분이었다.
‘폭발하는 미사일의 디테일보다, 미사일을 맞은 상대의 리액션이 좀 더 디테일을 살려줍니다.’
GOS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PTW의 그래픽 팀은 단단한 금속 재질의 로봇이 각종 데미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시뮬레이션 했다.
반응 장갑이 폭발하는 미사일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극초고열의 레이저가 금속을 지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대기와의 마찰로 가열된 레일건의 금속 탄환이 장갑을 관통할 때 어떤 물리적 충격을 주는지.
날아오는 투사체의 질량과 안에 들어있는 폭약의 종류와 양, 그리고 피격 각도에 따라 어떤 식으로 이펙트가 달라지는지.
PTW는 GOS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리얼한 전투를 구현하기 위해 수천 시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 모든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만들어놓았고, 그것을 전부 아무 대가 없이 아머드 코아 개발팀에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개발 중인 아머드 코아가 단순히 로봇 형태를 지닌 3D 모델링들의 싸움이 아닌, 진짜 ‘로봇’들이 격돌하는 전투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스페이드 컴뱃은 어때?”
“거기는 아무래도 구란트리스모 개발팀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환경 효과 적용하는 데는 그쪽이 전문가들이니까. 게다가 미 국방부에서도 지원을 받았고.”
PTW가 스페이드 컴뱃 개발팀에 지원한 것은, 이전에 EOD를 개발하면서 미 국방성과 쌓은 인맥이었다.
미군 사이에서 PTW라는 회사의 이미지는 매우 좋았는데, 그것엔 EOD의 존재가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EOD의 발매 전엔, 미군이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오인 사격한다던가 하는 사고로 비난받았는 경우가 많았지만, EOD가 출시된 이후에는 대체로
‘그래, 그렇게 헷갈리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미군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라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실제 현장에서 병사가 느끼는 부담감과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매우 리얼하게 그려낸 게임이 EOD였으니까.
심지어 한 군사 법정에서는, 테러리스트로 오해하여 민간인을 공격한 사건에 대한 증거물로 ‘EOD’가 채택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미군은 PTW라는 존재에 대해서 극도로 호의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고, 그 덕에 상혁은 어렵지 않게 스페이드 컴뱃의 개발진이 아예 미군이 보유중인 여러 가지 전투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미군과의 협력을 진행할 수 있었다.
미군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투기뿐만이 아니라, 미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럽이나 러시아의 전투기까지도.
그리고 지금은 그 기종 차이에 따른 미묘한 디테일을, 스페이드 컴뱃 개발팀이 최선을 다해 게임에서 구현하는 중이었다.
“간담은?”
다음으로 민준이 물은 것은 현재 PTW를 제외하면 컨소시엄을 구성 중인 4개의 협력사 중에서 유일하게 오리지널 게임을 개발 중인 간담 개발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민준의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자료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현재 개발이 완료되어 게임 안에 적용된 기체의 종류와 커리어 모드에서 플레이어가 그 기체를 입수할 방법에 대한 데이터가 적혀 있었다.
“우주 세기만 구현한다고 했는데도 엄청나네. 갤그그도 탈 수 있다고?”
“기본적으로 연방 아니라 지온 쪽으로 전향해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한 게임이니까.
굳이 말하면 하늘림에서 제국이랑 스톰클록 중에 하나 골라서 승리하게 만드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 거지.”
“하늘림?”
“어. 지금 간담 팀에서 개발 중인 커리어 모드랑 가장 유사한 걸 꼽자면 하늘림 같은 형태라고 할 수 있을거야.
메인 퀘스트가 있고, 거기에 특정 루트로 들어가면 해당 기체를 얻어서 진행할 수 있는 사이드 퀘스트 라인이 있고.
아직 전부 구현은 못 했지만, 심지어 퍼스트 간담 스토리를 플레이 하기 전에 봉인된 유니콘 간담을 구해서 1년 전쟁을 끝내는 시나리오도 가능하게 만든다던데?”
“오, 장난 아니겠는데?”
“간담 팬들은 아마 울면서 좋아할걸?”
“좋아. 다들 잘 하고 있단 말이지?”
“더 원할 게 없을 만큼 잘 하고 있어.”
“그럼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겠네. 우리 게임은 어때? 설마 다른 협력사 IP가 쟁쟁하다고 우리 게임이 묻히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겠지?
5개 게임의 퀄리티를 모두 살리려고 노력하는 건 알겠지만, 난 그렇다고 우리 게임이 묻히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스컹크 웍스가 만들어진 이후로 지금은 다른 엔지니어들이 커버할 수 있는 게임개발보단 신기술 개발 쪽에 전념하고 있는 민준이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당연히 3차 NE컨벤션의 메인 타이틀 자리를 차지해야 할 PTW의 VR게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민준의 질문에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맡겨둬. 물론 다들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줄은 예상 못 했지만, 적어도 우리 게임이 거기 밀릴 만큼 재미없는 게임은 아닐 테니까.”
“그래?”
“어. 그래.”
상혁이 말했다.
“애당초 전용 컨트롤러를 사용하면 모를까, 나머지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조작 방식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잖아.
심지어 레이싱 휠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차량마다 디자인이 조금씩 다 다르게 구현한 지금 버전에서는 눈에 보이는 핸들의 모양하고 손에 잡히는 핸들의 모양이 다르니 위화감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
패드를 쓰면 그건 더 심해지고.
화면 속의 내 캐릭터는 양손으로 좌 우에 있는 컨트롤러를 잡고 있는데, 정작 내 손은 PS 패드를 잡고 있어야한단 말이지.
거기서 오는 위화감은 지금 개발중인 4개의 게임에서는 피할 수 없을거야.
그렇다고 로봇을 조종하는데 화면속 캐릭터가 듀얼 쇼크를 들고 있는 건 매우 모양 빠지는 모습이니까.”
“그럼 우리 거는? 우리 게임도 그건 마찬가지 아냐? 우리도 패드는 쓰잖아?”
민준의 지적에 상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지, 우리 게임의 함선은 함장이 되어서 우주 전함을 조종하는 거잖아.”
“그래서?”
“우주 전함 함장이 뭘로 싸우냐?”
상혁의 말에 민준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주둥이?”
“맞아. 주둥이. 함장은 주둥이로 싸우지. 그리고 PTW VR에는 고성능 내장 마이크가 달려있고.”
“그럼 음성으로 함선을 조작하는 게임이라고?”
“맞아.”
상혁이 말했다.
“우리 게임은, 진짜 함장이 된 기분으로 유저가 의자에 앉아서 승무원들에게 소리치면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중이야.
그리고 난 지금 거기 꽤 만족 중이고.
적어도 PTW VR로 줄 수 있는 경험이라고 하면, 우리 게임이 다른 게임보다 좀 더 현실에 근접한 체험을 유저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상혁의 말을 들은 민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좋네. 그래도 혹시 뭔가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해지면 말해줘. PTW에서 발생한 문제든, 아니면 협력사에서 발생한 문제든.
그게 아예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문제는 스컹크 웍스에서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럴게. 하지만 내가 지금 걱정하는 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야.
오히려 지금 문제가 될만한 건 마케팅 적인 문제지.
다들 의욕적으로 뛰어드는 것도 좋고, 그걸로 인해서 게임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도 좋지만, 모든 게임의 손익분기점이 지나치게 올라가고 있어.
개발비가 많이 투입되면 투입될수록, 팔아야 하는 게임의 수량도 늘어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전 시리즈에서 한 번도 100만장 이상 팔려본 적이 없는 아머드 코아 같은 IP는 슬슬 부담될 수준까지 도달했고.”
“그렇다고 상혁이 네가 개발비 좀 작작 쓰라고 말할 건 아니잖아?”
“그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니까. 내가 협력사에 요청한 건 딱 하나야.
최고의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고. 그들이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이상, 우린 컨소시엄의 대표로서 우리의 역할을 해 내야겠지.”
“그게 뭔데?”
“최고로 잘 만든 게임을, 최고로 잘 팔리게 만드는 거.”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한 부의 서류를 꺼내 민준에게 내밀었다.
그 서류의 맨 앞 페이지엔 굵은 글자로 이런 제목이 적혀 있었다.
[제 3차 NE컨벤션 개최 계획]
최고의 게임들에 걸맞게, 최고의 주목을 끌 수 있도록.
상혁이 민준에게 넘겨준 기획서.
그것엔 2차 NE 컨벤션 이후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임쇼’로 불리는 PTW의 게임 공개 행사가, 드디어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오기 위한 기획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