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75화 (276/485)

275. 리얼타임

민준이 보는 상혁은 발표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기획자였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의식을 끌어올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상대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게 만들지를 숨쉬듯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이 상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지금 완벽하게 자신이 설계한 무대 위에서, 2만명의 관객과 전 세계의 시청자들을 상대로 그 탁월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화려한 언변이 아닌,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침묵’으로.

‘왜 말을 안 하지?’

형진은 목이 타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끝내주게 멋지지 않습니까?’ 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상혁이 마이크를 쥔 채 조용히 객석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침묵은, 수백 마디의 말보다 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숨소리 하나마저 들릴 듯한 정적 속에서, 상혁은 조용히 마이크를 들었다.

그러자 상혁의 입에서 살짝 새 나오는 숨소리가 관객들이 쓰고 있는 헤드셋을 통해 그들의 귀를 간질였다.

“오늘.”

상혁이 말했다.

“오늘 저희가 여러분께 소개할 새로운 장비는, 이전의 X-BOX용 모션 인식 장비인 ‘코넥트’에 이은 PTW의 두 번째 하드웨어이자, 유저 여러분께 완전히 새로운 게임플레이를 선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신규 디바이스입니다.

오늘 저희 PTW와 협력사들이 만든 게임들, 그리고 이 자리에 준비된 거대한 세트장과 어트렉션, 고도로 훈련된 스텝들과 설비는, 오로지 이 새로운 장비가 가진 포텐셜을 여러분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즐거운 게이머들의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장비에 대해 아주 간단한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저희의 새 디바이스가 매우 직관적이고 간단한 조작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본적인 조작법을 알고 행사를 즐기는 것이 좀 더 이 멋진 이벤트를 100% 즐기는 방법일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머리 위 허공에, ‘The New Machine’이라는 단어와 함께 관객들이 쓰고 있는 장비가 거대한 형태로 떠올랐다.

그것은 오직 PTW VR정도의 AR 성능을 가진 기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멋진 가상 이미지 퍼포먼스였다.

“2009년 11월 15일. 저희 PTW는 무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우수한 모션 인식 디바이스로 평가 받고 있는 ‘코넥트’를 저희의 첫 번째 NE 컨벤션에서 공개했습니다.

그것은 7세대 콘솔용으로 개발된 장비였지만, 8세대를 넘어 9세대에서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는 내구성과 성능을 목표로 개발되었죠.

그 덕에, 전 세계의 수많은 게이머들은 지금도 TV 앞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며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8년이 지나는 동안, 연산을 수행하는 프로세스의 성능은 눈부시게 발전했죠.

8세대 콘솔이 발매되었고, 제작년엔 갤럭틱 M을 통한 콘솔 부스팅 기능이 발표되었으며, 작년 말에는 해당 기능을 활용하여 현재 유저 분들이 가지고 있는 콘솔 성능을 향상 시켜주는 에드온 디바이스(add-on device)인 PS 부스트와 X-BOX 부스트 장비가 발매되었습니다.”

그것은 상혁과 민준이 회귀로 인해 세상에 생긴 변화 중의 하나였다.

원래는 PS4-PRO와 XBOX ONE X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던 신형 콘솔이, 아예 모든 유저가 새로 구매해야 하는 별도의 장비가 아닌, 기존의 8세대 콘솔에 부착해서 사용할 수 있는 확장 악세서리로 발매된 것.

게다가 그 확장 악세서리는 갤럭틱 M을 가진 유저들은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성능 확장만을 해주는 별도의 디바이스였으니 새로 콘솔을 구매하는 것보다 가격이 저렴했기에, 대부분의 콘솔 유저들은 부담 없이 각 개발사가 제공하는 업그레이드 키트를 구매하여 장착했다.

“이번 신규 디바이스는 콘솔과 연결하면 자체적으로 부스트 기능을 제공하여, 실제로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있을 때라도 단지 연결해 두는 것만으로도 콘솔 성능을 부스팅 하는 콘솔 부스트 기능이 기본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신규 디바이스에 대한 설명.

그것은 ‘오파츠를 뛰어넘는 오파츠’를 추구하는 이번 장비의 스펙에 대한 설명이었다.

“또한 여러분께서 보유하고 있는 PS4에 유선으로 연결하여 사용하여 각종 콘솔 게임들을 플레이하거나, 유저가 직접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가상의 게이밍 룸에서 75인치 TV화면을 바라보며 최대 4K 해상도로 콘솔 게임을 즐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내가 게임을 즐기는 방에 TV가 없더라도, 커다란 TV가 있는 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기분을 느낄 수 있죠.

물론 영화나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상혁이 말하는 동안, 상혁의 뒤에 있는 스크린에 여러 가지 테마로 꾸며진 게이밍 룸이 슬라이드 되며 가상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게이머를 보여주었다.

좁은 방에서 작은 TV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게임의 굿즈로 가득 찬 방에서 대형 TV를 보며 게임을 하는 게이머의 모습을.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이죠.

이번 3차 NE 컨벤션에서, 저희는 이 신규 디바이스의 발매와 동시에 런칭 타이틀 3종과 2종의 발매 예정작을 동시 공개합니다.

방금 여러분이 보신, 우주를 누비는 전함의 함장이 되어 함대전을 치르는 SF 우주 전 컨셉의 신작 ‘우주 공간 저편에(Beyond Outer Space)’와 현재 프랑스에서 공개 예정인 레이싱 게임 구란트리스모의 최신작, ‘구란트리스모 7 Perfect’ 그리고 전투기 비행 시뮬레이션인 스페이드 컴뱃의 최신작, ‘스페이드 컴뱃 6 Prime’.

이렇게 3종의 게임이 3일 후 3차 NE 컨벤션이 끝나는 시간에 동시 발매 예정이고 나머지 2종의 게임도 개발이 완료되는 대로 순차 공개될 것입니다.

물론 이번 이벤트에 참여한 여러분께서는, 오늘 행사 회장에서 바로 저희의 신형 디바이스와 신작 게임을 구매하여 오늘부터 집에서 바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거라 예상하지만, 저희 PTW와 SANY가 전 세계 게이머들을 위해 개발한 이 신형 장비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이벤트가 끝나고 출구에서 쓰고 계신 장비를 반납하시고, 그게 아니라면 지금 쓰고 계신 장비 그대로 구매해서 들고 가시면 된다는 소리죠.”

상혁이 이번 3차 NE 컨벤션을 위해 SANY에서 받아낸 PTW VR의 물량은 관객 수에 맞춘 총 30만 개 정도의 수량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이번 이벤트에서 그 모든 장비를 ‘강매’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상혁은 관객들에게 굳이 행사에 쓰인 ‘시연용’ 장비를 사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관객들이 ‘새 제품’보다 지금 쓰고 있는 장비를 더 가지고 싶어서 하게 만들 마법의 단어를, 상혁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연용 장비라고 판매용보다 스펙이 더 구리다거나 염가형 부품으로 만든 제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여러분이 쓰고 계신 장비는 일부러 이번 3차 NE 컨벤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한정판’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머리에 쓰고 있는 그 장비 안에는, 외형이나 로고도 통상판과 다른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번 이벤트가 끝나도 보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VR 환경에서 3차 NE 컨벤션을 둘러볼 수 있는 가상 데이터가 들어있습니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프랑스와 호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나머지 컨벤션의 데이터와 함께.

그것을 위해서 전용 내장 메모리도 추가되어 있고요.

그건 통상 판엔 탑재되어 있지 않은, 오직 이번 3차 NE 컨벤션 관객 여러분들을 위해서만 준비된 특별한 제품입니다.

아, 물론 원하신다면 출구에서 한정판 디바이스를 반납하고 통상판의 새 제품을 받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상혁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럴 생각을 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지금 쓰고 있는 이 장비를 가지고 다른 나라의 이벤트까지 모두 보고야 말겠다는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소리를 듣고 반납하면 미친놈이지.”

형진이 그렇게 말하자 채팅창에서도 동의하는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딱히 한정판이 아니었던 ‘코넥트’조차도, 출고 번호를 기준으로 6만 번까지의 제품이 ‘1st 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저거 무조건 프리미엄 붙는다. 로고만 달라도 웃돈 붙을텐데, 내장 데이터도 다르다고? 그것도 5개 국가에서 동시 진행 중인 이벤트를 전부 다시 볼 수 있고?

한정판 대신 통상판 고르는 놈이 미친놈이지.-

-어차피 나눠주는 시점에서도 새 거였으니 그냥 행사장에서 쓰고 그대로 집에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남이 쓰던 장비도 아니니까.-

-내일 입장하는 표값 3배는 뛸 듯. 형진이가 300만 원에 티켓 사길 잘했네.

저거 이벤트 참여자 아니면 아예 구매도 못 하는 거일 텐데.

아마 내일 입장권은 천만 원은 줘야 사겠는데?-

그리고 그 모습을 무대 저편에서 지켜보던 민준은 화려한 언변으로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비를 팔고 있는 상혁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악마같은 놈···.”

애당초 이번 이벤트 자체가, PTW VR의 기능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체험이 불가능한 이벤트였다.

그러니 PTW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관객 수 만큼의 신형 장비를 갖춰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리고 그렇게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회장별로 2만 대씩 총 10만대의 시연용 디바이스가 재고로 남을 예정이었다.

단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서 필요한 10만대의 재고.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이벤트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상혁은 간단하게 잔머리를 굴렸다.

아예 30만대를 주문해서, 관객들에게 전부 떠넘기자는 악마같은 발상을.

어차피 기기가 발매된 초기에는 아무리 SANY에서 충분히 초기 공급 물량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절대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었기에, 상혁의 판단은 적절하다 할 수 있었다.

오늘 이벤트에 참여한 인원 모두가, 신형 디바이스가 발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구매하기 위한 자금을 준비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은 그야말로 고객의 니즈와 회사의 입장을 정확하게 일치시킨, 서로가 WIN-WIN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라 할 수 있었다.

멋진 행사에도 모자라서, 졸지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NE 컨벤션 참가자만 구매 가능한 특별한 한정판 구매의 기회까지 잡은 관객들의 텐션은 한없이 올라갔다.

그리고는 시연용 장비라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장비를 벗어 그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감으로 유명한 ‘와플’의 제품에도 밀리지 않는 완벽한 마감.

오래 착용해도 땀이 차지 않도록 제작된 내부 재질.

귀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부드럽게 귀를 감싸는 이어컵.

그리고 어떤 각도로 내려놔도 바닥에 고글 부분이 닿지 않도록 설계된 섬세한 디자인까지.

굳이 이게 한정판이 아니더라도 이것을 가지고 싶어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물며 바로 조금 전, 그렇게 멋진 우주전 이벤트를 경험한 이후라면 더 그러했고.

그리고 IT관련 정보에 해박한 일부 관객들은, 상혁이 말한 ‘한정판’이라는 단어보다 다른 단어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지나가듯 이야기한 단어 중에, VR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AR 장비가 아니라 VR 장비라고?’

지금까지 관객들이 보고 있던 장면은, PTW가 준비한 현실의 세트에 가상의 이미지를 얹어서 완성된 AR이미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기존의 AR이 가지고 있던 홀로그램 수준의 반투명한 이미지가 아니라, 완벽하게 현실의 물체 위에 덧씌워진 완벽한 ‘가상 물체’의 이미지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AR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은 연출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이 기기가 두꺼운 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현실의 배경을 완전히 지우고, 오직 기기가 제공하는 이미지로만 시야를 가득 채우는 ‘VR’공간을 제공한다고 이야기했었다.

“잠깐만요!!! 질문 괜찮습니까?!”

결국, 참지 못한 관객 중의 누군가가 손을 높이 들며 상혁에게 소리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사람에게 쏠렸다.

그러자 상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관객은 자신에게 누군가가 마이크를 건네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관객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쓰고 계신 장비에 내장된 마이크랑 이벤트 스피커를 연결했으니 그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그런가요?”

순간적으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자신의 목소리에 움찔한 관객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상혁에게 질문했다.

지금은 주변의 시선보다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컷기 때문에.

“방금 분명 ‘가상의 룸’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모드가 있다고 하셨죠?

그리고 한정판에는 VR환경에서 타 국가의 컨벤션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데이터가 들어있다고요.

지금 저희가 쓰고 있는 이 장치.

VR기기입니까? 아니면 AR기기입니까?”

그것은 상혁이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둘 다입니다.”

상혁이 말했다.

“저희의 신형 장비는, VR과 AR 환경을 넘나들며 유저들이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 사이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장치로 개발되었습니다.

필요할 땐 VR기기가, 필요할 땐 AR기기가 되는 것이 저희 신형 장치의 특징이죠.”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법 같은 소리죠? 맞습니다. 완전히 주변 시야를 차단해야 가상의 공간을 보여줄 수 있는 VR 기기와, 투명 디스플레이 위에 이미지를 띄우기 때문에 현실의 이미지를 완전히 가리지 못하는 AR기기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니까요.

하지만 저희 PTW의 엔지니어들과 스컹크 웍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광학 기술을 가진 SANY의 α카메라 개발진이 그것을 이루어내었죠.

구체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금은 기술적인 이야기라 지루할지도 모르겠네요.”

상혁은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그들의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마법 같은 광경.

그것이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상혁의 설명은 마치 마술의 트릭을 설명하는 것처럼 듣는이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에.

상혁이 손가락을 퉁기자 허공에 거대한 안구의 모습이 등장했고, 상혁은 손을 휘저으며 그 이미지를 회전시키고, 투명도를 조절하기도 하며 이번 장비의 원리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시각 이미지라는 것은 동공을 통과한 빚이 수정체를 지나 안구 안쪽의 망막에 상을 맺음으로써 사람이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저희의 VR기기이자 AR기기인 신형 장비는, 두꺼운 글래스 안에 수백 개의 반사판을 광섬유 같은 느낌으로 설치하여 여러 개의 빛을 망막에 쏘는 방식으로 동작하죠.

하지만 그것은 옆에서 글라스를 보아도 알 수 없는 낮은 해상도의 약한 빛입니다.”

이윽고 마치 조각이 모이는 것처럼, 반투명한 작은 이미지가 수없이 겹쳐지며 점점 선명해지고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된 그 이미지는, 허공에 원래대로라면 존재할 리 없는 이 황당한 제품의 이미지를 완성해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만 같은, PTW VR의 가상 이미지를.

“새 장비는 그 저해상도의 약한 빛을 수없이 겹침으로써 고해상도의 가상 이미지를 구현합니다. 양쪽 막막의 필요한 위치에 정확히 필요한 이미지를 구현함으로써 입체감과 거리감을 구현하면서도 정확하게 현실같은 색감과 해상도를 지닌 가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안구 전체로 확장하면, 이런 게 가능합니다.”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관객들의 시야가 한순간에 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은, 자신이 들어간 가상 공간이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상혁이 손가락을 튕겨 호출한 공간은, 바로 가상현실을 주제로 한 가장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에서 따온 것이었기 때문에.

‘매트릭스?!’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 흰 공간.

그리고 그 안에 놓여있는 낡은 TV와 쇼파.

헤드셋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통해 청각적인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보는 가상 공간의 존재감은, 그것이 VR 이미지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보고 있는 관객들이, 진짜로 이것이 매트릭스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딱-

상혁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시 현실 공간으로 튕겨나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상혁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그들이 보고 느낀 것.

그것이 주는 경험이, VR기기의 체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텔레포터를 사용한 느낌에 가까웠기에.

‘이 인간들이 대체 뭘 만든 거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상혁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보신 것처럼, 저희의 새 장비는 아예 가상 공간 자체에 뛰어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망막의 시신경 범위 전체를 커버하는 공간에, 화상 이미지를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만든 이미지는 기존 VR 기기가 가지고 있던 시야각의 제한을 넘어 아예 주변의 모든 이미지를 가상 이미지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가, 정말로 다른 공간에 텔레포트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지금의 장치고요.”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저희가 이 신규 장비의 이름을 ‘딥 다이버(Deep Diver)’라고 지은 이유입니다.”

상혁의 뒤에 있는 거대 스크린에 제품 이미지와 함께 출력된 텍스트.

거기엔 앞으로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 새로운 장비의 이름이 담고 있었다.

“저거보다 어울리는 이름은 찾을 수 없겠네. 진짜로.”

형진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채팅창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떠들기 시작했다.

비록 그들이 본 것은 단순한 평면 이미지였지만, 상혁이 ‘심볼’로 내세운 가상의 공간이 담고 있는 의미, 그리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평면의 이미지로도 충분히 지금 그들이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방금 관객들이 경험한 충격은, 지금부터 상혁이 보여주려는 딥 다이버가 가진 포텐셜의 편린에 불과했으니까.

“보신 것처럼, ‘딥 다이버’는 현존하는 모든 VR기기와 앞으로 나올 VR기기를 포함하여 모든 가상현실 장비를 초월하는 독보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직도 전 세계의 업체들이 8년전에 나온 ‘코넥트’의 동작 인식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적어도 향후 20년은 경쟁사들의 제품이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것이 이 장비니까요.”

그리고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지금 시각이···. 이제 겨우 30분 정도 흘렀군요.

오후 4시 30분.

다들 생각하셨을 겁니다.

왜 한국의 이벤트를, 프랑스의 아침 시간에 맞춰서 오픈하는 걸까 하고요.

그리고 그건 미국에 있는 유저들이 더 심하겠죠. LA의 이벤트는 자정에 시작했으니까.

아무리 전 세계에서 동시에 쇼케이스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시간을 그렇게 유저분들에게 불편하게 잡은 것은 것으로, 저희는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분에게 불평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스포일러를 막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너무 회사 사정에 맞춰서 게이머를 휘두르는 건 아닌가?

그리고 어째서 프랑스의 아침 시간을 기준으로 이벤트를 잡은 것인가.”

그것은 형진도 동의하는 바였다.

어째서 유럽 유저들이 편한 시간에 맞춰서 한국의 이벤트를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스포일러 방지라는 이유는 납득할 수는 있지만, 마음이 편한 설명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바로 전의 슈퍼볼 광고에서 나왔던 캐치프레이즈를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We Know)”

상혁이 말했다.

“저희는 불편한 유저들이 있을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새벽에 이벤트에 참여해야 하는 미국 사용자분들의 소외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굳이 프랑스 이벤트의 아침 시각에 맞춰서 전 세계 NE 컨벤션의 개시 시각을 맞춘 ‘진짜’ 이유는, 여러분들께 이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상혁이 다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탁 소리 나게 튕겼다.

다시 한번, 마법같은 경험을 모두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 오후 4시에 행사 참여를 위해 입장한 모든 관객들은 PTW가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상혁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딥 다이버를 통해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로 반짝이고 있는 프랑스의 라 사르트 서킷의 이벤트 회장으로 변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관객의 귓가에, 지구 반 바퀴를 넘어 2만 명의 관객을 프랑스에 있는 3차 NE 컨벤션 회장으로 이동시킨 ‘마술사’상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여러분은, 한국에서 전 세계 5곳의 회장에서 동시 진행되는 쇼 케이스를 전부 감상하게 될 겁니다.

단 하나도 놓치는 일 없이.

저희가 보여드리고자 하는 모든 것을 전부 보여드리는 것.

그것이 이번에 시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모든 이벤트의 개장 시간을 하나로 맞춘 ‘진짜’ 이유니까요.”

오로지 게이머를 위한 결정.

이벤트의 퀄리티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의 유저가 동시에 참여하면서도, 모든 이벤트를 다 같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미친듯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마법 같은 장비.

그 앞에서, 흥분을 감출 수 있는 게이머는 이 회장에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X바아아아아아!!!!”

“미쳤다아아아!!!!”

“기저귀! 기저긔를 가져와!!!!”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을 보며, 상혁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귀에 달린 이어폰에 손을 대며 말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 NE 컨벤션의 쇼케이스 진행자, 미야자키에게.

“미야자키 씨.”

“예. 상혁 씨.”

“한국 쪽은 끝났습니다.”

“예. 저희 관객들도 VR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충격받았죠.”

“그럴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자신이 무대 체질이라도, 이 정도의 이벤트 앞에서 심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 저렇게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을 보면서, 상혁은 조금은 홀가분한 느낌으로 미야자키에게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미야자키 씨.”

“예.”

“여기서부터는 당신의 턴 입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미야자키가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말했다.

“맡겨주세요.”

그렇게, 2만 명이 아닌 전 세계 10만 명이 동시에 참여한 3차 NE 컨벤션은, 시간과 거리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전에 본인들이 직접 세웠던, ‘최고의 게임 쇼케이스’라는 기록을 직접 깨부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두 번째 순서는, 딥 다이버로 연결된 10만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진 폴리포디 디지털의 ‘구란트리스모 7’이 맡게 되었다.

그것은 대표인 미야자키가 직접 게임을 해본 이후, ‘Perfect(완벽)’이란 서브타이틀을 부여한 역사상 최고의 레이싱 게임의 쇼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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